밀려드는 난민들…비판의 표적이 된 솅겐조약

2015-12-31     브누아 브레빌
     

 

유럽연합(EU)은 지난 12월 15일 EU의 외곽국경 통제를 담당할 새로운 국경경비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EU 국경관리기구인 프론텍스를 대신할 새로운 EBCG를 신설하겠다는 것. 이 새 기구에는 강제 집행권이 부여되므로, 조정권만 지닌 프론텍스와 달리 긴급상황에서 회원국의 동의 없이 국경경비대 투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난민문제 해결에 있어 미봉책에 불과하다.

1백만 건 이상 쏟아지는 망명 신청, 매일 같이 그리스와 몰타 해변으로 몰려드는 수십 척의 난민선, 지중해 난민참사에 따른 기록적인 희생자 규모, 국경통제를 위해 군대를 파견하는 국가들... 2015년 사상초유의 난민사태로 인해 EU는 심각한 운영마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는 난민의 유입을 봉쇄할 목적으로 자국의 국경 통제를 재개했다.

11월 13일 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도 이런 움직임에 편승하고 있다. 정치계 일각에서 파리학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회원국 간 통행을 자유화한 ‘솅겐조약’을 지목한 것이다. “솅겐은 죽었다.” 대통령을 지낸 니콜라 사르코지 공화당(UMP‧대중운동연합에서 명칭개칭-역주) 당수는 말했다.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도 질세라 “국경의 부재는 곧 범죄를 향한 광기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일어서라 프랑스(DLF)(‘일어서라 공화국’‧DLR에서 명칭 개칭-역주)’의 니콜라 뒤퐁에냥 역시 “지하디스트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당 출신의 마뉘엘 발스 총리도 “유럽이 제대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솅겐지역(유럽 국민들의 국경 검문검색과 여권검사를 면제하는 솅겐 조약이 적용되는 지역-역주) 전체를 폐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며 으름장을 놓았다.(1)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 갓길에 세워진 트럭에서 부패한 시신 71구가 발견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터키 해변에 밀려온 시리아 난민 꼬마(해변에서 발견된 시신의 수는 더 많았다)의 주검이 담긴 사진 한 장은 전 세계적인 애도의 물결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수많은 난민참사가 지난 한 해를 장식하면서 많은 이들이 난민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것은 물론 어디까지나 여론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향하기 전까지의 일이지만 말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난민사태에 대해 분개하며 밀입국 알선 조직원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겨눴다. 가령 베르나르 카즈뇌브 프랑스 내무부 장관은 “인신매매 불법조직을 상대로 무자비한 전쟁”을 선포했고, 토마스 드 메지에르 독일 내무부 장관은 “인간의 비극을 돈벌이로 삼으려는 밀입국 알선 범죄조직과의 전쟁”을 약속했다. ‘밀입국 알선 브로커들’은 분명 죄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의 죄는 유럽의 합법적 이민 절차와 중동·아프리카 등지의 높은 이민 수요 사이의 현실적 괴리를 이용한 것밖에 없다.

사실 유럽의 국경이 무조건로 이민자에게 닫혀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2013년 EU 28개 회원국이 합법적으로 자국 이주를 허용한 역외 외국인 수는 150만 명에 달했다. EU 회원국은 각국의 경제상황 및 인구현황, 정권의 정치색에 따라 이주민 유입규모를 조절해왔다. 가령 프랑스는 2014년 가족 초청, 유학, 고숙련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의 취업, 망명신청 등의 일환으로 모두 20만 9,782건의 체류증을 발급했다. 2010년에 비해 1만 3천 건이 늘어난 셈이다.

한편 그 사이 중동과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 발발한 내전 사태로 수백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그들 중 상당수는 비자를 발급받지 못한 채 유럽의 국경을 넘어 밀입국했다. 그들은 밀입국을 위해 대개 트럭에 숨거나, 임시 거처를 구하거나, 작은 밀입국선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거나, 부정한 공무원을 매수하는 과정 등을 거치게 된다. 이런 과정에는 자연히 불법조직이 개입하게 마련이다.

 

  

 

밀입국 차단에 각종 제도 도입 및 비용 투입

25년 전부터 EU는 밀입국 차단을 위해 각종 제도를 도입했다. EU 경찰공동정보망인 솅겐정보시스템(SIS)을 운영하는 한편, 2000년 지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도 했다. 또한 2005년에는 EU 국경관리청(FRONTEX)을 신설했다. 이 EU 기구는 헬기, 드론, 군용선박, 야간투시경, 심장박동감지기 등을 대대적으로 투입함으로써, EU 외곽의 국경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전산학자들이 만든 프로젝트 그룹 ‘이주민 파일’(2)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밀입국 조직들이 유럽으로의 밀입국 알선 덕에 벌어들인 수익은 최소 160억 유로로 집계됐다. 반면 EU 회원국들은 불법이민자 추방에 110억 유로, 1만4천km에 이르는 외곽 국경 경비 강화에 최소 20억 유로를 지출해야만 했다.

물론 이 비용은 미국이 자국 영토를 성역화하는 데 들이는 예산에 비하면 많은 편은 아니다. 미국은 국경 통제에 매년 180억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특히 3,140km에 달하는 멕시코 접경 지역에 중점적으로 예산을 투여하고 있다. 가령 이 지역에 5m 장벽과 1,800개의 감시탑을 세웠다. 또 장벽 뒤에는 2만 명의 보안 요원들을 배치해, 150m당 1명이 국경을 수비 중이다.

정치학자 피터 안드레아스는 미국이 완벽한 국경통제 수단을 갖추면서 밀입국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신분 위조 비용, 공무원 매수에 필요한 자금 등이 더 많이 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로 인해 밀입국 조직은 마약밀매 조직에 버금갈 정도로 대형 범죄조직으로 성장하고 말았다.(3) 그러나 이러한, 거의 군대 수준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난민의 유입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역부족이다. 사실상 난민의 유입규모는 그들의 출신국 사정에 따라 좌우될 뿐이다. 그렇게 매년 미국 국경을 넘는 밀입국자 수는 30~40만 명에 달한다.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수단 등에서 발발한 내전사태로 많은 피란민이 생겨났다. 더욱이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난민규모는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대개 피란민들은 자국 내에 피난처를 마련하거나 접경국가로 이주하곤 한다. 그로 인해 레바논, 터키, 요르단, 이 세 나라에만 무려 4백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유입됐다.(4) 반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유럽행을 감행하는 난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이 분쟁국의 시민들은 EU 회원국 중 어디에서든 난민지위 신청이 가능하다. 모두가 1951년 7월 28일 제네바 협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난민지위를 획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유럽국에 발을 디디면 거의 반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럽대륙에 이르는 여정에는 온갖 험난한 장애물들이 가득 차 있다. 먼저 외국에서 망명신청을 하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가령 프랑스에 망명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자국에 주재 중이거나 혹은 자국의 기관이 폐쇄됐을 경우에는 시리아나 소말리아와 같은 이웃국가에 주재 중인 프랑스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난민 비자’를 신청해야 비로소 프랑스에 입국해 난민지위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내무부는 난민비자를 가뭄에 콩 나듯 발급하는 상황이다. 가령 2014년 난민비자를 발급 받은 시리아인은 712명에 불과했다.(5) 시리아 홈스 출신의 주민이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가서 비자를 신청하는 경우 합법적으로 레바논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다음으로 좀 더 합법적인 방식으로 EU에 입국하는 방법이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운영 중인 난민 캠프를 찾아가 ‘재배치 협정’에 따라 좀 더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나라로 이송될 때까지 임시로 머무르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난민지위를 획득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경로로 난민지위를 획득한 시리아인의 수가 2014년 500명에 불과했다.(6)

오늘날 난민 규모는 수백만 명에 달한다. 대부분은 지하디스트 그룹이 활개를 치는 터키-시리아 국경 지대나 반군에 의해 거의 초토화된 리비아를 거쳐 험난한 여정 끝에 유럽으로 밀입국한다. 그러니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기까지는 밀입국 알선 조직원의 도움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난민이 목숨이 걸린 이 길고 험난한 여정을 감행할 수 있지도 않다. 젊고, 건장하고, 의지가 강하며, 밀입국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만큼 주머니 사정도 넉넉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난민은 고학력자에 도시민 출신이다. 그 중 성인 남성이 72%(르펜의 주장처럼 99%는 아니다), 성인 여성 13%, 어린이가 15%다.

현실을 도외시하는 ‘더블린 II' 규정

2003년 EU가 채택한 ‘더블린 II’ 규정에 따르면, 난민은 처음 입국한 유럽국에서 난민지위를 신청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주의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처사다. 대부분의 난민의 경우에는 다른 나라로 이주하려는 꿈을 품고 이탈리아나 그리스를 잠시 거쳐 갈 뿐이다. 더욱이 더블린 규정에 따르면, 스웨덴에 사는 친척이나 친구를 찾아가는 것은 불법에 해당한다. 또한 대부분의 난민이 유럽의 변두리 국가에 가장 먼저 입국하는 상황에서 심각한 지역 간 불평등이 초래될 위험도 있다. 더욱이 북유럽 국가들이 자국으로 들어온 난민을 처음 입국한 나라인 그리스나 이탈리아로 되돌려 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 만큼 현행규정의 유지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2000년대 초 스페인은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와 마그레브 지역의 난민 사태를 최전선에서 겪었다. 당시 지브롤타 해협을 건너거나, 스페인의 자치도시 세우타나 멜리야로 넘어오는 피란민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 지역 국경 통제가 강화되자(장벽 및 난민 억류 캠프 설치, 프론텍스 작전 강화 등) 이번에는 리비아나 튀니지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나 몰타로 들어오거나,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유입되는 난민의 수가 크게 늘었다.(7)

2011년 이후, 아랍의 봄이 발발하자 이 세 나라에는 유럽을 찾아가려는 피난민들의 행렬이 쇄도했다. 세 나라는 난민유입으로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한편으로는 국경 통제를 강화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난민의 입국, 수용, 거처(대개 난민캠프) 마련, 수천 건의 난민신청 업무를 책임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긴축정책의 여파로 그리스는 그런 역할을 온전히 해내기 힘들었다. “이것은 우리 역량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는 경제위기에 인도주의 위기까지 겪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 7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선언했다.(8)

이미 최약체 회원국은 “가장 엄한 문지기 케르베로스(그리스신화에서 지옥문을 지키는 개-역주)로 변신하라”는 무시무시한 EU의 강요를 받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리스는 종종 유럽 ‘파트너국’으로부터 주기적인 질책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가령 12월 초 EU 회원국들은 그리스에게 “국경통제를 제대로 안 하면 솅겐지역에서 퇴출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모든 나라는 솅겐의 법규를 준수해야 한다. 물론 난민 신청은 난민이 처음 입국한 나라에서 해야 한다는 규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에 입국한 사람의 난민 신청은 다른 어느 나라가 아닌, 그리스가 맡아야 한다.” 지난 12월 3일 폴란드 출신의 도날드 투스크 유럽이사회 의장(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역주)은 이렇게 겁박했다.(9) 물론 이런 충고는 당연히 아테네나 로마 보다는 스톡홀름이나 파리, 베를린의 입장에서 훨씬 더 따르기 쉬운 주문일 것이다. 그래서 투스크 의장은 얼른 “엑소더스의 최전선에 선 나라들은 유럽의 연대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난민문제도 결국엔 금융정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 경우에도 연대는 EU가 가장 공유하는 미덕은 아닌 셈이다. 많은 북유럽국가들은 그저 난민문제를 남유럽국가들의 문제로만 국한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니 결국 이 무거운 짐을 누가 짊어질지를 두고 남유럽 국가들끼리만 분쟁을 벌이게 된다. 가령 2008~2009년 EU 국경관리기구 프론텍스(FRONTEX)가 지중해상에서 실시한 노틸러스 난민구조 작전을 두고 이탈리아와 몰타 정부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 기구가 구조한 난민들을 대체 어느 나라가 수용하는 것이 좋을까? 이탈리아 정부는 구조작전을 벌인 나라, 다시 말해 몰타가 난민을 책임져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몰타 정부는 국제법을 들이대며, 가장 ‘안전한’ 항구, 즉 람페두사로 난민들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국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리자, 결국 EU가 나서서 몰타에 불리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후 몰타는 프론텍스의 임무에는 무조건 동참하기를 거부한다.(10)

그러나 2011년 행운의 여신은 더 이상 이탈리아의 편이 아니었다. 당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권은 시칠리아 섬으로 유입된 튀니지 난민에게 유럽 내 통행이 가능할 수 있도록 2만5천 건의 임시체류증을 발급하기로 결정한다. 그러자 그 즉시 오스트리아, 독일, 벨기에, 핀란드, 네덜란드, 슬로바키아의 내무부 장관들이 일제히 “솅겐조약 위반”을 이유로 반기를 든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는 프랑스-이탈리아 간 철도 운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 그러자 또 다시 EU 집행위원회가 개입했고, 이번에는 프랑스 정부의 손을 들어준다. 이로써 EU는 유럽 내 자유로운 통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기로 결정한다. 그때까지는 “자국의 치안이나 공공질서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경우”에만 국경을 폐쇄할 수 있었다면, 2013년 이후로는 “다른 회원국이 EU 외곽 국경 통제에 심각하고 지속적인 결함”을 보이는 경우에도 국경을 폐쇄할 수 있게 된다.

유럽의 관문이 완전히 뚫릴 정도로 심각한 난민유입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이 새로운 규정은 솅겐지역의 존재를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 이후 범행을 자행한 지하디스트들 일부가 난민 틈에 끼어 입국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 차례 심각한 국경 폐쇄 위기가 발생했다. 그러자 EU는 즉각 터키 정부와 난민 협상에 돌입했다. EU는 터키에 30억 달러를 지원해주고, 터키인에 대한 비자를 면제하는 한편, 유럽연합 가입 협상도 재개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터키는 자국 영토로 유입된 난민을 잠시 억류하고, 경제이주자를 자국에 재입국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공동의 실행계획’은 역사적인 조처로 평가됐지만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그 전에도 유럽연합과 그 회원국들은 이미 85개 나라와 300건에 달하는 재입국 협정(쳬결국의 국경을 넘어 유럽연합으로 유입되는 난민을 다시 그 해당 국가로 송환할 수 있게 규정한 협정-역주)을 체결한 바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협상은 협박의 성격을 감추고 있다. 말하자면 EU 회원국들은 앞으로 협조만 잘 해주면 대외정책이나 통상정책에서 좀 더 타협적인 자세를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상대국의 환심을 살 뿐이다.(11)

터키 대통령이 밀입국자들의 송환에 있어 아무리 완고하다 해도, 터키와의 협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터키 정부는 문제를 다른 나라에, 예를 들면 리비아에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령 현재 리비아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밀입국 알선 조직의 천하로 전락했다. 결국 모든 정황을 살펴볼 때, 앞으로도 수개월 혹은 수년 간 유럽 변두리 국가로 난민이 대량 유입되는 사태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EU 회원국들이 자국의 국경 통제를 완화할 가능성 역시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회원국들의 강경 추세는 오히려 1957년 통행 자유에 관한 로마조약을 기초로 한 EU 통합계획의 근간을 뒤흔들 우려가 높다.

1985년 6월 프랑스와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베네룩스 삼국)는 국경 개방에 관한 솅겐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본래 이 협정을 체결한 것은 일반 시민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염두에 두어서가 아니었다. 당시 유럽은 1년 이상 “공동시장의 위기”를 겪고 있는 상태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세관원들이 역내 무역 증가로 노동 강도가 높아진 데 대해 불만을 품고 준법투쟁에 돌입했다. 그들은 자국 국경을 지나는 모든 트럭을 상대로 일일이 검문을 실시했다. 그러자 이에 대해 트럭 운전수들은 봉쇄조치로 대응하며 엄청난 교통체증 사태를 몰고 왔다. 특히 휴가철의 봉쇄조치는 시민들에게 너무나도 큰 불편을 초래했다. 분쟁이 해결된 뒤, 베네룩스 사무국은 유럽 내 개인과 상품의 자유로운 왕래에 관한 사안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당시 원활하지 못한 유럽의 도로 사정으로 자국의 산업 및 수출에 큰 타격을 입은 독일도 이러한 아이디어에 적극 찬성한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1985년 솅겐조약이 체결된다. 이어 1990년에는 기존의 솅겐조약을 개정한 솅겐협약이 체결됐고, 1997년 이후에는 서유럽에서 각국의 국경이 실질적으로 개방된 데 이어, 훗날 순차적으로 국경개방 조치가 26개 회원국으로 확대된다.(12)

1980년대 이후 EU 역내 무역이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가령 해외에서 생산된 부품이 몇몇 국가를 거쳐 조립라인에 도달하면, 이 부품을 조립해 프랑스산 자동차가 제조됐다. 2013년 유럽의 도로를 통해 수송되는 상품의 화물 수송량은 약 1조 7,650억 톤킬로미터(화물 수송량을 나타내는 단위-역주)에 육박했다.(13) 매일 수십만 대의 트럭이 수많은 상품을 실고 유럽 일대를 누볐다. 그 정도의 화물량을 제때 배달하기 위해 국경검문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20년 전부터 수천 명의 노동자는 통행자유 조치 덕에 자국과 접경한 국가에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됐다. 가령 프랑스의 경우 1995년 국경을 넘어서 일을 하러 다니는 노동자의 수는 15만 8천 명에 달했다. 오늘날 이 수치는 35만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사실 유럽의 경제구조를 완전히 손보지 않고 솅겐조약을 폐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단일시장의 열렬한 수호자들도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조약 폐기의 위험성을 열심히 경고하는 것이다. 가령 네덜란드 운송물류협회는 지난 9월 국경개방 조치를 폐지할 경우 회원사들이 무려 6억 유로의 손실액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정치 책임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시 각 회원국의 국경을 재건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번에는 새로운 종류의 장벽이 통상 부문에 큰 위협을 가할 것이다”라고 세실리아 맘스트롬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경고했다.(14)

솅겐조약의 철폐는 하청산업과 소셜덤핑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일부 기업은 주요상품 판매지역으로 도로 생산지를 옮기려 할 것이다. 더욱이 솅겐조약의 철폐는 난민 위기도 해결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다시금 개방됐던 프랑스 국경을 폐쇄한다고 해도 스페인으로 난민선이 몰려드는 사태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난민들이 피레네 산맥의 관문이 닫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알선조직을 통해 어떻게든 새로운 밀입국 경로를 찾아내려 할 것이다. 가령 1950~1960년대에 안토니오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포르투갈 독재 정권이 자국민의 해외 이주를 금지했을 때 나타났던 현상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프랑스 정부는 아마도 현재 헝가리가 세르비아와의 접경지대에 설치하는 것과 비슷하게 국경 지대에 장벽을 설치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미국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국경 통제가 고도화될수록, 전문 밀입국 조직만 활개를 치고 정작 밀입국자는 근절할 수가 없다.

보트피플 구출 나선 사르트르 인도주의 따라야

유럽의 극우정당들이 솅겐조약과 이민이 실업, 테러, 사회복지재정 약화 등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이미 극우정당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줄곧 국경을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친유럽’ 정당들이 30년 전부터 그들이 열심히 건설해온 유럽연합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 폐쇄적인 자국우선주의가 극우를 넘어 모든 정당으로 확대된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제는 여느 정당들도 특수한 상황에 대해 그에 합당한 어떤 특별한 해법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저 자국의 서민층과 이민자의 대립에 기초한 낡은 전법에만 기대려 한다. 현재 터키에 유입된 난민 수십만 명을 유럽에 수용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독일이나 스웨덴을 제외하고는,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자고 주장하는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극좌파 정당들마저 반이민 정서를 지닌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난민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황이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파리 테러 이후로 난민의 유입이 수용능력을 초과한 현실에 관한 논의가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프랑스는 1929년 대공황에서 완전히 헤어나지도 못한 데다 심지어 전쟁까지 준비하고 있던 1936~1939년 무려 45만여 명의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을 받아주었다. 물론 이 엑소더스 사태에 대해 일부 국민들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노동조합이나 좌파 정당들의 지지가 큰 힘이 돼주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뒤에도 프랑스는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로 인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동남아시아에서 온 보트피플을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당시에도 장폴 사르트르에서 레이몽 아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프랑스의 저명한 지식인들이 중국해에 갇힌 보트피플들의 구조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덕분에 13만여 명에 이르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인들이 제네바 협약의 일환으로 입국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 정착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15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2년 간 기껏 2만4천 명의 시리아인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을 뿐이다.

난민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 이미지 부각

과거 레이몽 바르 정부는 공산주의자들의 품으로부터 도망 친 난민들의 정착을 위해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에게 따뜻한 말을 아끼지 않았고, 난민지위 발급을 용이하게 해주며 쉽게 입국할 길을 열어주었다. 또한 임시거처 마련을 위한 센터와 일상생활을 지원해줄 ‘안내위원회’를 설치했다. 또한 프랑스 국립고용사무소(ANPE, 고용센터 ‘Pô̂le emploi’의 전신) 내에도 난민들을 위한 특별부서를 개설했다. 또 기업들에게는 세제혜택을 제공하며 난민의 고용을 장려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바탕이 된 이런 정책들은 수많은 긍정적 결과를 낳았다. 사회학자 카린 메슬랭은 이렇게 지적했다. “이러한 정책은 난민들이 프랑스에서 첫발을 내딛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난민을 바라보는 사회의 비판적 시각을 완화하고, 난민의 이주를 합법화하는 역할을 했다.”(15)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오늘날의 난민들은 국가의 정체성을 위협하며 사회복지를 축내는 자들, 자국민의 일자리를 훔쳐가는 자들, 극단주의 교도들, 심지어 무시무시한 테러리스트 등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들은 대혼란 속에 유럽에 발을 디뎠지만, 정작 유럽 내에서도 그들을 위해 준비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해안가에 상륙하거나, 혹은 헝가리나 슬로베니아 국경에서 몸싸움을 벌이며 밀려드는 수천 명의 난민들을 담은 이미지들은 유럽인들에게 마치 침략당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언론매체가 보여주는 그러한 이미지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찌 유권자들이 치안강화 정책에 마음이 혹 하지 않겠는가?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샤를리 에브도> 이후 너무 많은 시간이 허비됐다’, 2015년 11월 18일, www.republicain.fr / 마린 르펜의 성명, 2015년 11월 19일/ ‘프랑스는 국민을 암살위험으로 내모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니콜라 뒤퐁애냥의 블로그, 2015년 11월 15일/ 프랑스2 방송, 2015년 11월 19일을 각각 참조할 것.
(2) ‘이주민 파일(The Migrant Files)’ 프로젝트에는 유럽의 이주 문제를 취재 중인 25명의 유럽 언론인이 참여하고 있다. ‘The money trails’, 2015년 6월 18일, www.themigrantsfiles.com 참조할 것.
(3) Peter Andreas, <Border Games. Policing the U.S.-Mexico Divide>, Cornell University Press, 이타카, 2009년.
(4) Hana Jabert, '난민을 누가 받아들일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10월.
(5) <2014년 활동 보고서>, 프랑스 난민 보호단체 ‘프랑스테르다질’(France Terre d'Asile), 파리, 2015년.
(6) 같은 보고서.
(7) Camille Schmoll, Hélène Thiollet, Catherine Wihtol de Weden, <지중해 난민>, CNRS 출판, 파리, 2015년.
(8) AFP 통신에 인용, 2015년 8월 7일.
(9) 도날드 투스크, “이번 난민 사태는 멈추기 힘들 정도로 너무 거세다’’ , <르피가로>, 파리, 2012년 12월 3일.
(10) Julien Jeandesboz, ‘솅겐의 저편. 프론텍스와 유럽의 국경 통제’, Sabine Dulline, Etienne Forestier-Peyrat가 쓴 <세계화된 국경>(프랑스대학출판부,파리,2015년)에서 인용
(11) Virginie Guiraudon, ‘이민 및 망명 정책의 유럽화로 인한 영향’, <Politique européenne>, 제31호, 파리, 2010년.
(12) 모든 유럽연합 회원국은 망명의 권리에 관한 더블린 II 조약과 연관돼 있다. 그러나 솅겐조약의 경우 영국, 아일랜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키프로스, 크로아티아 등 6개 회원국이 체결하지 않았다. 반면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아이슬란드, 노르웨이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님에도 솅겐조약에는 가입해 있다.
(13) 킬로미터 당 몇 톤의 화물량에 해당하는지를 측정하는 단위.
(14) ‘유럽, 국경 재건은 통상을 위협할 것이다’, <롭스>, 파리, 2015년 11월 21일.
(15) Karine Meslin, ‘보트피플의 수용. 특별한 국가적 차원의 동참’, <플랭 드루와>, GISTI에서 발간하는 잡지, 제70호, 파리, 2006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