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 자유를 경찰에 위임한 프랑스

2015-12-31     장자크 강디니


국가비상사태를 한 달간 유지한 성과는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테러 관련 기소는 단 한 건, 사법수사는 전무한 상황. 최고의 전문가들이 사법적 절차에 더 많은 기술적, 인적, 재정적 수단을 요청하는 가운데, 프랑스 정부는 실효성과 기본적 자유를 무시한 채 방향성을 잃은 경찰에 전권을 위임해버렸다.

2015년 11월 19일 오전 4시 30분, 니스의 한 아파트. 경찰청 정예부대원들이 어느 튀니지인 가정의 현관문을 폭파한다. 파편이 튀며 여섯 살짜리 딸의 머리와 목에 상처가 난다. 부대원들은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자리를 뜬다. 주소를 착각했던 것이다. 11월 21일 오후 8시 30분, 생투앵로몬의 할랄 식당 ‘페퍼그릴’. 방호복 차림의 경찰 한 무리가 식당의 홀로 몰려간다. 경찰들은 식사 중인 고객 몇 명에게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으라고 명령한다. 그리고는 지하로 내려가더니, 식당 주인이 손잡이를 돌려서 열면 된다고 하는데도 잠겨 있지 않은 문을 기어이 부숴버린다. 11월 22일 정오 직전의 센생드니의 한 아파트.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수염을 기른 어느 남자의 집 문을 경찰이 부수고 들어가 집 안을 온통 휘젓더니 말 한 마디 없이 떠나버린다. 11월 24일 도르도뉴. 무정부주의 성향의 친환경 채소재배업자 부부가 새벽에 가택수색을 당했다. 3년 전 노트르담데랑드 공항 건설계획 반대시위에 참여했던 이들이었다.

도령(道令)은 “테러 성향의 활동에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무기·물품 등이 현장에 있다고 판단되는 심각한 이유가 있을 때”라고 명시하고 있다. 12월 8일 내무부는, ‘착각’임을 인정하면서, 한 가족의 가장에게 11월 15일부터 자택구금을 명령한 법령을 폐지했다. 액상프로방스의 어느 하수처리장 사장인 전 고용주에게 허위 근거로 고발당한 피해자는 하루에 네 번씩 경찰서를 들락날락해야 했다. 그의 가택을 수사한 경찰관들은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저 수염 난 영감은 누구냐”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상화였다.

이는 ‘국가비상사태 관측소’를 설립한 <르몽드>의 한 기자와 ‘La Quadrature du Net’이라는 단체(1)가 블로그 ‘뷔드랭테리에르(안에서 바라보다)’에 집계한 수백 건의 사례 중 일부다. 이 사례들은 내무부가 작성한 만족스러운 묘사들과 대조적이다. 11월 14일부터 12월 15일까지 총 360명이 자택구금을, 334명이 심문을 당했고 그 중 287명이 구류됐다. 사법적 통제 없이 밤낮으로 시행된 2,700건의 행정상 가택수색에서 기동대가 압수한 무기는 총 431정. 그 중 전쟁무기는 단 41정이었다. 공개 사법절차 488건 중 354건이 무기 혹은 마약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례 없는 병력동원이 끝나자, 12월 15일 파리 검찰청의 반테러 부서에서는 단 두 건의 예비심문이 열렸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과다.(2)

 

 

예기치 않게 발생했으며 매우 잔혹했던 11월 13일의 파리 테러는 온 프랑스를 충격과 쇼크 상태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파리 테러가 과연 이러한 상황으로 이어져야만 했을까? 프랑스 대통령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이는 프랑스와 프랑스의 가치들에 맞서는 전쟁 행위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1월 20일, 올랑드 대통령은 1955년 4월 3일자 법에 근거해 국가비상사태를 11월 26일을 기점으로 3개월간 연장하는 ‘국가비상사태 관련법’을 국회에 상정했다. 그날 이 안건은 의원들의 반대가 거의 없이 가결됐다. 이후 상원의원들이 헌법재판소에 제소하지 못하도록, 마뉘엘 발스 총리는 흔해빠진 논거를 제시했다. “어제 국회에서 가결된 조치들은 - 전자팔찌에 관한 조치에 관해 확신하건대 - 합헌으로 판결날 가능성이 낮습니다. (...중략...) 저는, 우리가 조속히 처리하면 좋겠습니다.”(3) 여세를 몰아 프랑스 당국은 가결된 조치들이 “유럽인권조약이 보장하는 몇몇 권리에 대한 예외를 요할 수 있다”고 - 이는 유럽인권조약 제15조가 허용하는 바이다 - 유럽회의 사무총장에게 통지했다.

정부의 반테러 대응 VS 공공자유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지 며칠 후 이루어진 설문조사에서, 사람들이 이 조치들에 대거 찬성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초기에는 이러한 예외 가 언제나 ‘내부의 적(현재로서는 무슬림과 환경보호운동가들)’을 이루는 소수와 소외 집단을 향한 듯 보였다. 그러나 법학자 다니엘 로샥이 지적하듯, 정부는 진압을 위한 ‘불가피한 비율’을 이미 넘어선 지 오래였다. “심문과 감시, 가택구금과 가택수사를 확대함으로써 경찰과 사법부는, 테러 행위와는 무관하나 이슬람교 신자라는 ‘잘못’을 지닌 사람들에게 해를 미칠 위험을 무릅써가면서, 인구 전체에 대한 거대한 거미줄을 짜놓았다.” (2015년 11월 28일자 <르몽드>)

‘무슬림’이라는 표적은 국가비상사태의 식민적 기원을 되돌아보게끔 한다. 이 법률 및 진압에 관련한 혁신적 아이디어의 최초 제안자는 에드가 포르 행정부의 내무부 장관 모리스 부르제모누리이다. 알제리 독립전쟁의 시작을 알린 1954년 만성절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부르제모누리는 군당국에 권력을 이전시키는 결과를 수반할 계엄령을 선포하는 대신 경찰 권력을 확대했다. 이러한 절차는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전투원들의 병사 지위를 인정하고 전쟁의 존재를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민간당국이 기존의 권력 집행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공공질서를 위협하거나 국가주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재난의 성격을 지닌 사건들에 보다 최적화된 방식으로 권력을 강화하고 집중하는 법률적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장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이름을 지닌다.”

1955년 4월 3일에 법안은 - 프랑스 오드 주의 사회당 소속 의원 프란시스 발스의 경계심 가득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 찬성 379표 대 반대 219표(주로 공산당원과 사회당원)로 가결됐다. “역사는 모든 예외법들, 즉 무정부주의자들이 일으킨 일련의 테러가 발생한 다음 날 가결된 1893~1894년의 흉악범 관련 법, 공화국을 보호하기 위해 예정된 것이다. 그러나 1852년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가능케 하고 1871년 파리 혁명자치정부를 분쇄하는 데에 이용됐던 계엄령 법 등의 법들이 추후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4)

현행 조치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활동’이라는 개념을 ‘처신’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가택구금과 관련해 법문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특정인의 처신이 안보와 공공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심각한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 또한 “평소의 처신과 방문 장소, 발언 등으로 인해 경찰당국 혹은 안보당국의 주의를 끈 인물”이라고 언급한다. 이처럼 국가비상사태 관련법은, 사법의 예측적 개념이라는 미명하에, 범죄를 ‘계획하는’ 인물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의 구속을 가능케 한다.

증거재판주의와 대비되는 ‘예측을 근거로 혐의를 두는 논리’는 이미 2008년 2월 25일 가결된 보호감호법에 등장했다. 이 법의 폐지는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의 지켜지지 않은 대선 공약 중 하나다. 법학교수 미레이 델마마티는 이 법문이 히틀러 시대 법 중 폐지되지 않은 드문 법 중 하나인 1933년 독일 보호감호법(Sicherungsverwahrung)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독일의 보호감호법은 폐지됐다가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2004년 독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부활해 그 법적 유효성을 인정받았다. 델마마티는 2008년 법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2008년 법은 “범위가 엄격하게 규정된 형사상 범죄가 아니라, 정의하기 불가능한 개념인 ‘위험성’을 근거로 한 개인의 자유를 무기한 박탈할 수 있는 법이다. 나는 우리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으며, 유럽인권재판소가 최근 독일의 사건에서 유사한 메커니즘을 문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5) 프랑스 헌법재판소가 어째서 이 법을 거의 통과시킨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런 류의 의문과는 한참 거리가 먼 마뉘엘 발스 행정부는 12월에 두 건의 청원을 참사원(최고행정재판소)에 제소했다. 첫 번째 청원은 국민전선 당수 마린 르펜이 작성했으며 니콜라 사르코지와 로랑 보키에(공화당)가 동의한 제안을 담고 있다. ‘S’로 표시된 인물, 즉 국가 안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인물 2만 명을 위한 감호소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이 ‘위협성 인물’의 절반은 이슬람 급진주의자, 나머지 절반은 정치 및 노동운동 투쟁가 혹은 무법자(Hooligan)로 구성됐다. 행정부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법안이 유죄 선고를 받지 않은 인물들의 예방적 행정구금을 규정할 수 있는가? 내무부 장관 베르나르 카즈뇌브가 고백하듯이, “그 어떤 형사상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게 해줄” 리스트를 근거로 해서?(6)

두 번째 청원은 행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헌법에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이 주장을 지지하는 이들에 따르면, 예외적 상태를 합헌화함으로써 이를 법률적 차원에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민의 자유 보장을 침해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헌법이 미리 내다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헌법학 교수 올리비에 보는 일부 동료들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법치주의와 예외적 상황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확고부동한 사실이라고 보는데, 이는 헌법은 본래 권력을 정비하고 제한하기 위함인 반면, 모든 예외적 상황은 헌법에 예외를 포함시킴으로써 헌법적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비상사태는 두 가지의 심각한 독재 위험을 안고 있다. 첫째는 경찰에 부여된 예외적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국가비상사태를 영구적 상태로 만들 위험을 무릅써가면서 이 비상사태를 수차례 반복해 연장하는 것이다.”(7)
반면 참사원은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12월 17일 발표된 참사원 의견서는 현 정부가 검토 중인 헌법개정안이 두 가지 ‘유용한 효력’을 발생시키리라고 판단한다. 헌법개정안은 ‘행정경찰 조치에 명백한 근거’를 제공할 것이며, ‘국가비상사태의 선포와 실행에 기틀을 잡아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비상사태는 ‘위기 상황’에 한정되므로, 이러한 상황이 무기한 연속해 연장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이 11월 16일 의회에서 발표한 헌법개정안의 또 다른 측면은 바로 테러범 판결을 받은 프랑스 이중국적자의 프랑스 국적 박탈 가능성이다. 참사원에서 이는 뻔한 반응밖에 이끌어내지 못했다. 역시 우파와 극우파가 장기간 부르짖었던 이 조치는 “법률적 목적에 합치하나 위헌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를 헌법에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해진다.

한편 경찰국가의 부상에 맞선 저항의 움직임이 조직되고 있다. 12월 11일, 참사원은 COP21(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차원에서 가택구금된 어느 정치투사가 제기한 “이동의 자유에 대한 근거 없는 침해”에 대한 우선적 위헌심사(QPC) 요청을 헌법재판소에 넘겼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청원자의 논거를 일소했고, 이에 내무부가 정치적 반대자들의 시위를 금지하고자 반테러리즘이라는 명목으로 이들을 가택구금하는 것은 ‘현자들’의 합법적인 기름부음을 받게 됐다.

이 날 프랑스 인권연맹은 가택구금 및 행정상 가택수색, 집회 자유 제한의 근거에 관한 서로 다른 세 건의 QPC를 제출했다. 이에 관해 인권연맹의 변호사 파트리스 스피노시는 설명한다. “이는 국가비상사태의 적법성에 반론을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국가비상사태의 이름으로 아무런 사법적 통제 없이 결정된 기본적 자유 침해의 위험성을 규탄하려는 것이다. 주거 불가침 및 사생활 존중 원칙에 관계된 조치들을 사법적으로 감독할 헌법적 의무가 존재한다. 표현의 자유, 생각과 의견을 표현할 권리에 관한 헌법적 원칙이 침해 당하고 있다.”

12월 17일에 발표된 문서에서는 100여 개의 협회와 단체, 노조(8)가 “테러 위험과 무관한 사람들까지 대상으로 하는, 국가비상사태의 진정한 남용”을 규탄했다. “스포츠 시합과 크리스마스 마켓 등의 행사는 허용되는 반면, (...중략...) 공공장소 집회 금지는 늘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가비상사태를 철회하고 비상사태에서 준비된 헌법개정안을 취소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프랑스 총리는 2011년 7월 오슬로와 유토야 섬에서 테러가 발생한 후 노르웨이 총리가 했던 말을 심사숙고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 큰 민주주의, 더 큰 인도주의다.”(9)


글·장자크 강디니 Jean-Jacques Gandini
변호사, 프랑스 변호사 노조 전임 회장.


번역·박나리 
연세대 불문학 및 국문학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http://delinquance.blog.lemonde.fr 및 ‘프랑스 국가비상사태에 관련된 기쁨 (혹은 그 반대) 조사’, www.laquadrature.net
(2) ‘55-385번 법을 적용해 1955년 4월 3일부터 2015년 11월 14일까지 취한 행정조치들’, www.assemblee-nationale.fr
(3) Slate.fr, 2015년 11월 20일.
(4) 이 단락은 Thomas Wieder, ‘예외법 : 좌파가 나설 때’, Le Monde, 2015년 12월 5일 기사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한 Vanessa Codaccioni, <예외적 법: 정치적 범죄 및 테러 행위에 직면한 정부(Justice d’exception. L’Etat face aux crimes politiques et terroristes)>, CNRS Editions, Paris, 2015.를 참조했다.
(5) Arnaud Fossier, ‘법적 예외에 관련해, 미레이 델마마티(Mireille Delmas-Marty)와의 인터뷰’, Tracés, n° 20, Lyon, 2011.
(6) France Inter, 2015년 8월 26일.
(7) Le Monde, 2015년 12월 2일.
(8) ‘국가비상사태에서 벗어나라’, www.ldh-france.org 사이트에 게재 및 서명한 단체로는 프랑스 노동총연맹(CGT), 농민연합, 인권연맹, 연대노총(Solidaires) 등이 있다.
(9) 2011년 7월 22일 기자회견, www.regjeringe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