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유럽 자본시장동맹

2015-12-31     프레데릭 르메르 & 도미니크 플리옹

2019년까지 자본시장동맹을 구성하겠다는 프로젝트는, 주창자들에 의하면 기업의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하고 EU내 투자를 촉진시킬 전망이라고 한다. 그러나, EU집행위원회의 우선 과제로 떠오른 이 프로젝트는 그림자 금융을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금융위기를 촉발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사상 최대의 금융위기를 겪은 지 고작 7년이 지났을 뿐인데, 금융규제 완화의 조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008년 가을, 은행경영진들을 압박하던 불안은 증권화(통상적으로 대출채권 등 고정화된 자산을 매매가 가능한 증권형태로 전환하는 자산유동화를 뜻하며, 금융시장의 불안요인 중 대표적인 예) 방지제도와 각종 금융규제들과 함께 벌써 머나먼 기억 속으로 사라진 듯하다. 금융 부문을 담당하는 EU 집행위원인 조나단 힐은 “EU 28개 회원국들 간의 자유로운 자본 순환을 위해, 장벽을 허물 때다”고 주장했다.(1) 이러한 야심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EU 집행위는 자본시장동맹(UMC)의 출범을 우선 과제들에 포함시켰다. 2015년 9월에 공개된 EU 집행위의 행동계획에 따르면, 산업계 자문, 영향 조사, EU 지침서 수정, 새로운 법안 마련 등 일련의 과정들을 단계적으로 거쳐 2019년까지 자본시장동맹을 완성할 예정이다. 그동안 수많은 규제완화 방안들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위의 입장은 완강하다. 힐 위원은 “경제 안정을 해치는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제로 성장이기 때문에,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현재, 경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중소기업들이나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하는 인프라 프로젝트나 모두 적절한 자금조달처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원인은 전통적인 자본순환 구조의 기능장애이다. 은행들은 대출을 꺼리고, 정부는 예산의 압박에 시달린다. 결론적으로, 시장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한 개혁안이 필요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위기를 방조하는 금융규제완화

기업을 위해 도입된 안들은 기존의 자금조달 절차를 단순화하고, 기업의 부채상환능력 평가를 표준화하며, ‘민간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민간 투자를 활성화할 경우, 비상장 기업들은 꼭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 없이 특별 기금이나 보험 등을 통해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금융 당국의 감독 하에서 이루어지고, 정보 공개의 의무가 수반되는 주식 공모에 비해 절차도 덜 까다롭다. 이러한 민간 투자 시장은 현재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몇 년 안에 유럽 전체로는 600억 유로, 프랑스에서는 100~150억 유로까지(2013년에는 75억 유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정부도 금융 중개의 탈피, 즉 은행을 거치지 않는 자금조달 방법을 반기고 있다. 경제활동 활성화를 위해 고안된 ‘마크롱 법안(재무부 장관 에마뉴엘 마크롱의 새로운 경제개혁안)’에도 기업 간 대출촉진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은행을 통하지 않고, 즉 규제 없이 이루어지는 기업 간의 금융 거래를 의미한다.

기업의 은행 대출금을 투자자들이 인수하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EU 집행위는 국공채에 비해 이익도, 위험도 높은 투자방식인, 기관 투자자들이 비상장 기업들의 대출금을 직접 인수하는 경우에 대해 세제혜택을 줄 것을 제안했다. 프랑스에서는 소시에테 제네랄이 이러한 방식으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만기 5년 이상 대출금 80%를 악사(AXA) 측에 넘겼다. 소시에테 제네랄은 나머지 20%만 부담하는 셈이다. 크레디 아그리콜, BNP 파리바, 나티시스 역시 이와 유사한 계약을 보험회사들과 체결한 상태이다.

그러나, EU 집행위 제안들 중 핵심은 은행대출의 증권화(Securitization) 촉진이다. 이를 통해 은행은 자신이 보유한 대출을 또 다른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자본시장에 판매함으로써 상환관련 위험도 낮추고, 판매 수수료도 챙길 수 있게 된다. 이는 2000년대 중반에 성행했던 방식으로, 미국의 은행들은 가계의 부동산 대출을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그러나 증권화는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위험을 남에게 떠넘긴다는 측면에서 은행들의 책임감을 떨어뜨리고, 또한 자본시장 구조를 복잡하고 서로 의존적인 형태로 만든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때도 이러한 얽히고설킨 관계들 때문에 부동산 버블 붕괴가 가속화되고 경제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 제안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의식한 것인지, EU 집행위는 ‘확실하고 투명한 증권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실상은 규제와 기준을 최소화하기 위한 은행들의 로비활동이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은행들의 노력은 곧 결실로 이어졌다. 힐 의원은 은행들이 대출금의 일부를 증권화하는 것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유럽 국가들의 눈에는 시장이 주도하는 미국의 시스템이 효과적인 모델이자 기업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모델로 비춰지는 모양이다. “은행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유럽경제, 특히 중소기업들은 은행 측이 대출규모를 축소할 경우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고 EU 집행위는 녹서(Green book)에서 아주 심각하게 경고한다.(2) 그러나 이 발언은 2008년 금융위기의 명백한 원인이 시장금융과 규제완화였다는 사실을 너무 빨리 망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금융기관의 대출금까지 증권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자유화의 주창자들은 여전히 자본시장동맹의 필요성을 입증하려 애쓰고 있다. 유럽의 금융 시스템을 영미국가들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면서, 자본시장동맹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을 가져올 것”이며, “특히 중소기업들에게 자금 접근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한다.(3) 그러나 유럽 중소기업협회의 연구 책임자인 게르하르트 휴머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의 절대 다수는 여전히 은행을 우선적인 자금조달처로 생각할 것입니다. 자본시장동맹이 은행대출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는 없습니다.”(4)

미국의 중도파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도 “중소기업과 관련된 자본시장동맹의 장점은 지나치게 과대평가됐다”는 입장을 밝혔다.(5) 힐 위원 역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들, 즉 유럽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중소기업과 관련된 본 프로젝트의 장점을 부풀린 사실을 인정한다. 그는 선별된 청중들 앞에서 “중소기업이 범 유럽적인 논쟁의 핵심으로 등장한 이유는 중소기업이 경제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제안을 해야 대중들의 관심을 쉽게 끌 수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6) NGO인 파이낸스 왓치(Finance Watch)와 독일조합은행협회는 자본시장동맹이 결국 유럽 거대은행들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만 기여할 것이라고 비난했다.(7)

‘금융위기 확산의 주범’
그림자금융 증가우려

자본시장동맹 프로젝트는 게다가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system)'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림자 금융은 2008년 금융위기를 확산시킨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그림자 금융이란, 은행처럼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기관들을 매개로 한 자금조달과 금융거래를 일컫는 말로, 통상적으로 은행들에게 적용되는 각종 규제들을 피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 보험, 연금 기금, 기타 투기성 기금들이 시장의 자금조달 역할을 맡게 되면 추가적인 위험이 발생한다. 이 투자기관들은 대출의 품질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나 경험이 없다. 이러한 몰이해를 감추기 위해 이들은 대출자에 대한 평가와 분석 대신 위험등급을 내세운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 위험등급이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금융 시장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 있다. 게다가 이러한 투자기관들은 시중 은행들과는 달리 중앙은행이 제공하는 구제금융의 혜택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금융버블이 붕괴될 경우 그 여파는 걷잡을 수없이 커지게 된다.

언뜻 보기에는, 자본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유럽경제에 대한 은행의 세력이나 영향력이 줄어들 듯하다. 그렇다면 은행들은 왜 자본시장동맹 프로젝트에 호의적인 것일까? 그것은 은행들이 그림자 금융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대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은행들은 규제를 받지 않는 ‘수의계약’ 형태의 복잡한 금융상품들을 개발하고 판매함으로써, 전통적인 은행대출에 적용되는 규제들을 교묘히 피해간다.

이제 은행들은 투기성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유럽중앙은행을 통해 얻을 수 있게 됐다. 유럽중앙은행이 증권화된 대출을 담보로 한 자금융자를 허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의 증권화 지지는 ‘실물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그림자 금융을 키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은행들은 유럽중앙은행으로부터 확보한 유동자산을 예를 들어 투기성 활동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수익실현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8) 금융 버블은 이렇게 탄생하고, 또 이렇게 부풀어 오른다. 증권화에 기반한 자금조달 시스템이 불안정한 이유는, 위기 상황에서 증권화 자산은 담보로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보았듯 은행들의 자금줄이 끊기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동맹 프로젝트는 대형은행들을 금융 시한폭탄으로 바꾸어놓고 있다.

주제의 전문성으로 인한 대중들의 무관심을 발판으로, EU 집행위는 새로운 금융위기의 구성요소들을 하나둘씩 끌어 모으고 있다. 자본시장동맹의 구성은 2008년 이후 그나마 회복세에 있는 유럽경제를 또 다시 위험에 빠뜨리는 처사다. 장 클로드 융커가 이끄는 EU 집행위는 자본시장동맹을 위한 행동계획의 일환으로 2015년 10월 ‘경제의 자금조달 능력과 성장능력을 저해하는 규정들’과 기타 ‘불필요한 규제들’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9) 유럽 11개국이 도입에 찬성한 금융거래세 역시 조만간 뜨거운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장점은 희미하고 위험은 엄청난 자본시장동맹을 현실화하려면, 먼저 수많은 난관들이 해결돼야 한다. 심지어 자본시장동맹은 잘못된 진단에 근거하고 있다. EU 집행위가 유럽경제 침체의 주요원인 중 하나인 예산 및 임금지출의 축소를 아예 논의에서 제외시켜 버린 것이다.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럽중앙은행의 조사를 비롯해 수많은 연구결과에서 드러났듯,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는 투자할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긴축정책 때문이다.(10)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결과도 불확실한 이런 위험천만한 프로젝트를 왜 이렇게 서둘러 진행하려 하는 것일까? 영국을 안심시켜 영국이 EU에 잔류하게 함으로써 ‘브렉시트(Brexit)'를 막아보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또한 융커 위원장, 힐 위원과 금융계 간의 각별한 인연도 석연치 않아 보인다. 융커 위원장은 유럽의 대표적인 조세천국 중 하나인 룩셈부르크의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힐 위원은 금융분야 전문 로비기업인 퀼러 컨설턴트(Quiller Consultants)의 설립자로 시티오브런던 한복판에 본사를 두고 HSBC와 긴밀하게 협업했다.(11) EU 집행위와 유럽중앙은행이 본 프로젝트를 통해 국제 금융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유럽 대형 은행들에게 힘을 실어주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마치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안티고네(1948)’의 한 구절인 “고통에 관한 인간의 기억은 놀랍도록 짧다”를 몸소 증명함으로써, 유럽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유럽 은행들의 수익성을 높여주려는 듯하다.

글·프레데릭 르메르 & 도미니크 플리옹
각각 금융거래과세시민연대(ATTAC)의 회원들로, 르메르는 파리 13대학 경제 센터(CEPN)의 박사학위에 있으며, 플리옹은 파리 8대학의 금융경제학 교수이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Capital markets union : an action plan to boost business funding and investment financing>, EU 집행위원회 공보, 브뤼셀, 2015년 9월 30일
(2) <자본시장동맹의 구축>, EU 집행위원회 녹서, 2015년 2월 18일
(3) <자본시장동맹의 구축>, op. cit.
(4) 회의 보고서, <Maximising the capital market opportunity for SMEs and start-ups>, 2015년 5월 28일, www.accaglobal.com
(5) Douglas J. Elliott, <Capital markets union in Europe : Initial impressions>, 브루킹스 연구소, 워싱턴 DC, 2015년 2월 23일
(6) European financial regulation and transatlantic collaboration », 브루킹스 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의, 워싱턴 DC, 2015년 2월 25일
(7) 본 기사의 작성자들은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준 파이낸스 왓치의 얼라인 페어와 프레데릭 아쉬, 그리고 피터 월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한다.
(8) Attac & Basta!, 은행들의 흑서, Les Liens qui libèrent, 파리, 2015.
(9) <증거: 유럽연합의 금융관련 규제들>, EU 집행위원회, 2015년 9월, http://ec.europa.eu
(10) <Survey on the access to finance of enterprises>, EU 집행위원회 & 유럽중앙은행 http://ec.europa.eu
(11) <Hill as finance commissioner should be rejected>, Observatoire de l’Europe industrielle, 브뤼셀, 2014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