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제도화한 베냉의 석유밀매

2015-12-31     사빈 세수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선구자인 베냉은 2월 대선을 위한 선거 캠페인에 돌입해 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와 국경을 맞닿은 이 작은 나라에서 정권 교체는 일종의 전통인 반면, 경제는 법망을 벗어나 대규모의 석유 밀매에 의지하고 있다. 취약한 정부가 겪는 증상인 것이다.

베냉의 제1, 제2도시 코토누, 포르토노보에서는 밤이면 형광초록색 불빛을 내뿜는 유리병들이 도로변에 넘쳐난다. 나무탁자에는 ‘크파요(Kpayo; 인접국인 나이지리아로부터 밀수한 휘발유)’ 판매소임을 알리는 네온사인이 놓여있다. 베냉의 공용어 중 하나인 구엉-그베(Goun-gbe)어로 크파요는 ‘가짜’, ‘모조품’을 뜻한다. 수천 명의 시민들에게 적은 수입이나마 가져다주는 유일한 희망인 이 크파요는 인구가 1천만에 불과한 소국 베냉이 1억 7700만 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서아프리카의 대국 나이지리아와 인접한 770km의 허술한 국경을 불법으로 통과해 들어온다.

단토크파 시장은 면적이 약 20ha(20만㎡)에 달하는, 코토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시장 근처 어느 대로변에서 올해 21세와 17세가 되는 아실과 마르셀 형제는 진열대를 펼쳐놓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마스크도 없이 유해한 공기를 그대로 들이마시며, 휘발유를 관개용 호스와 플라스틱 깔때기로 조심스럽게 옮겨 붓는다. 구릿빛 액체가 노란 양철통에서 목 좁은 유리병 혹은 재활용한 술병으로 천천히 흘러들어 간다. 첫째 아실은 바칼로레아를 치른 뒤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아직 고등학생인 둘째 마르셀은 매일 저녁 숙제를 마친 후 형을 돕는다. 이들의 어머니는 간호사로 일하며 홀로 네 아이를 기르고 있다. 아실은 “가족을 도와야 한다. 대학 학위는 아무 쓸모가 없다. 여기서는 엔진이 아니면 일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석유밀매를 위해 감수하는 위험들

이들은 매주 약 1,000~1,500리터의 크파요를 팔아 매월 150~200유로의 수입을 올린다. 이는 상한선이 60유로인 공무원의 최저급여보다 훨씬 높다. 통계상의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으나 대략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다른 크파요 소매상들과 마찬가지로, 두 형제는 이 일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첫 번째 위험은 크파요의 가격 변동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리터당 1유로에 달하던 크파요 가격은 2015년 5월부터 8월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이는 나이지리아 정부가 석유 공급업자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물렸으며, 4월 총선에 관한 불안감(1) 때문에 나이지리아 시장에서 크파요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5~6개 공급업체를 통해 여러 산유국에서 정식 수입돼 주유소에서 1유로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되는 정품 석유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소매상들에게 아무 이득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상태로 석유밀매는 도로변에서 계속됐다. 암시장의 규모가 너무 커진 탓에, 공식 주유소 네트워크가 주변국 토코나 가나, 코트디부아르처럼 확산되지 못하고 전국 350개 지점에 그쳤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개발은행(ADB)은 베냉의 전체 석유소비 중 약 80%가 밀수입으로 이루어진다고 추산하고 있다.(2) 크파요의 가격은 지난해 9월에 다시 내려가 리터당 50상팀 수준을 회복했는데 이는 정식 유가에 비해 많이 낮다.

아프리카 경제성장에 있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라이벌이자 세계 11위의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는 2012년 석유 보조금을 줄이려 시도했으나,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 같은 실패의 원인은 나이지리아가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HDI)상 198위 중 164위를 차지하며 여전히 세계 최빈국으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유가가 오를 때마다 나이지리아의 경제적 수도인 라고스에서는 폭력 시위가 발생한다.(3) 게다가 지난 5월처럼 공권력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공급업체들이 재고를 풀지 않을 경우, 석유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 즉시 베냉의 크파요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연간 1억 2,200만 유로의 수익을 창출하며 베냉 정부에게는 3천만 유로의 세수 손실(4)을 야기하는 이 석유밀매 외에 베냉의 경제는 면직업 및 농업(GDP의 36%)뿐 아니라 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두 분야인 도소매업(18%)과 운송업(11%)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코토누 항은 겨우 1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거대도시 라고스로 향하는 제2의 해상수송항이기도 하다.

크파요 소매상들이 겪어야 하는 또 다른 위험은 때때로 목숨을 잃기도 하는 화재의 위험이다. 지난 10월 31일, 크파요를 실은 트럭 한 대와 경찰들 사이의 추격전 끝에 화재가 발생해 단토크파 시장 일부를 태워버렸듯 말이다. 도로변에 위치한 크파요 진열대에서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시동을 끄지 않은 채 기름을 가득 채우기라도 하면 언제든 불이 붙을 수 있다. 점화 플러그에 휘발유 한 방울만 떨어져도 모든 게 다 타버리는 것이다. 케실레 사레 트찰라 베냉 전 보건부장관은 “우리 의사들은 형편없는 의료수단들을 가지고 끔찍한 상처들, 3도 화상을 긴박하게 치료해야 한다”고 말한다.

때로는 어린 청소년이거나 등에 아기를 업은 여성인 경우도 있는 이 소매상들은 밤새도록 고객을 상대하는데 고객의 대부분은 최고 다섯 명까지 사람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 운전수들이다. 대중교통이 부재하며, ‘제미쟝(Zemidjan)’이라는 이름의 이 오토바이 택시들이 코토누 시에서만 약 15만 대 정도 활동하는 덕분에 오토바이는 오늘날 베냉에서 가장 경제적인 이동수단이다. 베냉의 비공식적 경제의 일부인 이 오토바이 택시가 아니라면 베냉에서 일자리를 찾을 방법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흔히 그렇듯, 베냉의 25~34세 청년의 실업율은 60%로 매우 높은 편이다.(5)

인구 역동성으로 점점 청년들이 취업시장에 나오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인구의 40%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 시골의 빈곤으로부터 달아나고 있다. 도시 지역에서는 이 비율이 31% 정도다. 이는 코토누 도시권의 덩치가 30년 만에 네 배로 불어나고 전 인구의 16%가 국가영토의 0.7%에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코토누 시장이자 전 대통령인 니세포르 소글로는 “인구 이동은 호흡과 비슷하다. 코토누 인구는 밤에 1백만 명 정도이지만 낮이 되면 2~3배로 늘어난다. 일을 하러 나이지리아에서까지 오는 실정이다. 코토누 시가 매일 밤 텅 비는 것은 베드타운(주거지역으로 특화된 위성도시-역주) 덕분인데, 이 베드타운은 코토누에서 각각 43km, 38km 떨어진 포르토노보, 위다까지 포함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코토누 시에서는 본래 라고스의 교통체증을 가리켰던 용어인 ‘고 슬로(Go-slow)’ 시간을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실시한다. 물론 오토바이 택시들의 조직을 정비하기 위한 정책들이 취해졌고, 나아가서는 오염물질을 덜 배출하는 엔진을 유통시키기 위한 보유차량 리뉴얼 프로그램으로 프랑스개발청(AFD)의 재정원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신형 엔진을 구비할 여력이 없는 운전자들을 위한 대출이나 원조 장치는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크파요에 관해서라면 시장은 무력한 태도로 기정사실만을 내세운다. “나이지리아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비공식적 상업을 관리하기 어렵다. 역내 정책이 부재하기에 실현가능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 석유밀매는 소매상들에게만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며, 크파요 도매상 중에서는 전 세계 정재계 유명인들도 찾아볼 수 있다. 종종 상당한 지위를 누리며 잘 알려진 인사들인 이 공급업자들은 크파요를 대량구입해 비축해둘 여력이 있고, 이후 자신들의 유통마진을 공제해 거리의 소매상들에게 이를 유통시킨다. 국경의 몇몇 판매소에서는 세관원들도 자기 주머니로 들어갈 100CFA프랑(약 15상팀)의 조촐한 ‘세금’을 50리터 들이 양철통 하나하나에 징수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세관원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월 소득을 늘리는데, 진짜 세금은 정식 유가의 25%에 달한다.

탈법행위를 조장하는 모조 민주주의

타의 모범이 되길 원하는 이 나라에서 크파요를 금지하려는 시도는 모두 쓰디쓴 실패로 끝났다. 과거 ‘아프리카의 카르티에 라탱’으로 불렸던 베냉은 아프리카 최초로 1990년에 자유 선거제를 도입했다. 그 이후 정권 교체는 일종의 규칙이 됐으나, 이 민주화 모델 이면에는 자국의 석유공급 체제조차 개혁할 수 없는 나약한 정부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 2013년 1월에는 세메-크포지에서 경찰이 크파요 비축분을 압수한 이후 폭동이 일어났다. 크파요 소매상들은 한 경찰관의 부인에게 몽둥이질을 하고 경찰관을 납치했으며, 진압군에 강하게 저항했다. 진압군은 밤 내내 바리케이드를 만든 크파요 상인들에게 맞서기 위해 원군을 요청해야 할 정도였다. 이에 야이 보니 행정부는 석유밀매를 막으려는 대책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 정부는 오늘날까지도 베냉 국토에서 백주대낮에 실시되는 대규모의 석유밀매를 계속해서 용인하고 있다.

베냉의 정치학자이자 세네갈 다카르에 본부를 둔 독립적 토의그룹 웨스트 아프리칸 씽크탱크(Wathi)의 창립자인 질 올라쿤레 야비는 “크파요는 베냉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잘 보여주는 요소이다. 이는 나이지리아와의 관계, 베냉 경제에서 비공식적 분야의 비중,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운영되는 베냉 정부의 모순점을 설명해준다.”고 요약한다. 인접국인 토고에서는 냐싱베 에야데마 일당의 부패한 군부독재정이 석유밀매를 금지하는 데 성공했고, 토고에서 크파요는 번영을 누릴 수 없었다. 그러나 베냉 정부는 물질적인 수단도, 권위도 없다. 야비는 “사실상 석유밀매를 개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산업에 직접 의지하고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그 누가 등을 돌리겠는가? 나는 베냉의 민주주의 체제가 선거제 유지에 한정된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거제 유지를 제외하고, 베냉의 민주주의 체제는 극도로 해로우며 공익과 무관하게 운영된다”고 밝힌다.

비공식적 분야가 원동력 역할을 하고, 모두가 이로 인해 이득을 보는 상황이기 때문에 밀매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암시장을 문제 삼는다면, 자국의 지정경제학적 제약과 ‘이상적인 공공경영’에 대한 국제 금융기구들의 명령 사이에서 그 간격을 헤아리고 있는 베냉의 정치적, 사회적 안정성을 위협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비공식적 경제의 근본적인 원인 중에는 사회생활에 관한 독특한 견해가 있는데, 익명을 요구한 어느 사업가는 “부를 증대시키는 행위라면 수단이 무엇이든 대체로 합법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정치적 스캔들은 몇 년 전부터 언론 일면을 꾸준히 장식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네덜란드 측에서 수자원 분야에 제공한 4백만 유로의 원조금을 횡령한 사건이 있었다. 부패가 만성화된 나머지 가장 긴박한 프로젝트들조차 절대 실현될 수 없는 상황이며, 모두가 착공 전에 자신의 ‘커미션’을 챙기려 한다. 이렇게, 십 년 전에 계획이 발표됐던 코토누 신국제공항은 현 공항이 도시 한복판에 있어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있음에도 공사가 조금도 진척되지 않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안을 따라 건설되기로 했던 ‘어업도로’에는 아스팔트도 깔리지 않았으며, 포르토노보와의 왕래를 원활히 해줄 다리 역시 기다림 속에 있을 뿐이다.

정치학자 질 야비는 자신이 ‘크파요 민주주의’라 부르는 것,(6) 즉 ‘모조 민주주의’의 존속을 비난한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공공활동과 비공식적 경제 간에 명확한 구분선이 없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역할이 그들의 사익 추구와 뒤섞이며, 이러한 왜곡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탈법행위와 즉각적 이익추구를 장려한다. 정부가 어떤 권위도 누리지 못하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5년 6월 야이 보니 대통령이 행동가로 알려진 리오넬 쟁주를 총리로 임명한 사실은 도시 청년층 일부에게서 희망을 이끌어내었다. 프랑스계 베냉인인 쟁주는 은행가 출신으로 오토바이나 크파요 외에 또 다른 전망을 내놓을 수 있는 인물인 듯하다. 그러나 그의 행동 여력이 제한된 탓에 1년 이상은 난처한 상황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베냉은 생존 논리에 따라 크파요를 계속 일상적으로 판매하고 소비할 것이다.

글·사빈 세수 Sabine Cessou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거주하며 프랑스 <리베라시옹>의 특파원을 지냈고, 현재 같은 신문의 아프리카 담당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박나리 
연세대 불문학 및 국문학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Pierre Rimbert, ‘Pétrole et paranoïa’, Le Monde diplomatique, 2015년 4월 기사 참조
(2) Daniel Ndoye, <Baisse des cours du pétrole : l’occasion d’en finir avec la contrebande d’essence au Bénin?>, Banque africaine de développement, Abidjan, 2014년 12월 22일.
(3) Jean-Christophe Servant, ‘Au Nigeria, le pétrole de la colère’, Le Monde diplomatique, 2006년 4월 기사 참조
(4) Henri Doutetien, <Et si nous osions formaliser le “kpayo”?>, La Croix du Bénin, Cotonou, 2012년 8월 17일.
(5) 아프리카개발은행과 OECD의 ‘아프리카 경제전망’ 2015년 보고서 중 베냉 편 참조
(6) Gilles Yabi, ‘L’Afrique n’a pas besoin de démocratie “kpayo”’, Géopolitique africaine, n° 53-54, Paris, janvier-mars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