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진 ‘아랍의 봄’

2015-12-31     물레이 히샴

‘아랍의 봄’이 불어닥친 지 4년.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혁명의 물결이 아랍의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됐으나, 이 지역 국가들의 권위주의와 지하디스트의 위협에 직면해 지지부진하다. 그러나 이 곳 국민들의 해방에 대한 열망과 인간 존엄성에의 요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아랍 세계는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도전들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아랍 세계가 더 평화롭고, 더 민주적이고, 더 안정적인 미래를 꿈꾼다면 이런 도전들을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도전들은 주로 독재국가들이 추진하는 반혁명적 퇴행 행위, 혁명과정의 불분명한 성격, 골칫거리 IS(이슬람 국가)가 야기하는 지정학적·종파적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많은 아랍 정권들은 장피에르 필리우(Jean-Pierre Filiu)가 ‘현대적 맘루크들’(1)이라고 명명한 정의에 딱 부합한다. 원래 맘루크들은 압바스 왕조(750~1258년)가 이슬람세계 밖에서 모집한 노예 군인들이었다. 그들의 주인들 입장에서 볼 때, 맘루크들의 비(非)아랍성으로 인해, 수많은 가족들·부족들·공동체들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렸던 충성투쟁들이 맘루크들에게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맘루크들이 커다란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획득하여, 마침내 12세기에는 그들의 주인들을 밀치고 들어앉았고, 이집트에서 걸프만까지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끄는 사회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쉽게 인정받았으며, 또한 배려해야할 파벌도 후원자들도 없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외부의 침략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게 되었다. 세습적이고 독재적인 맘루크들의 유산이 오늘날 이집트와 시리아에서처럼 아랍의 군사 공화국들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 정권들은 스스로를 국가 권력의 집행자로 간주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사회의 외부인이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사회는 무쇠같이 억센 사람의 지배를 늘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간주한다. 몇몇 국가에서는 이런 정신 상태가 식민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에서 이런 맘루크의 유산은, 1805년에서 1849년까지 통치자로 군림했던 무함마드 알리 파샤(Muhammad-Ali Pacha)가 개혁을 하면서 강조한 시민 국가 개념을 근거로 삼아, 19세기 초에 다시 나타났다.

‘아랍의 봄’에 직면하자. 맘루크적 반응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왕의 특권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집권자들은 국가 기구가 열등한 계급인 사회 세력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대비하려 했다. 이집트에서 2011년 혁명이 호스니 무바라크의 퇴진을 끌어낸 후, 선출된 무슬림 형제들의 정부에 반대하여 압델 파타 알시시(Abdel Fatah Al-Sissi) 장군이 계획한 2013년 7월의 쿠데타는 자신들의 어떤 특권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군인들의 경이로운 결정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Bachar Al-Assad) 정권이 평화적인 시위를 진압하면서 보여준 잔인성은 권력에 대한 어떤 이의제기도 용납할 수 없다는 이들 정권의 속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지정학적 긴장이 아랍 전제 군주들의 반혁명 전략을 강화시켜 주었다. 이란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시아파 팽창주의의 위협이 증가하자,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내의 모든 반대세력을 악마화해 버렸고,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이런 음울한 제휴 전략의 또 다른 실례를 바레인에서 볼 수 있다. 이 조그만 수니파 군주제 국가의 지도자들 입장에서 볼 때, ‘아랍의 봄’ 시절에 갑자기 생겨난 반대파들은 이란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바레인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시아파 주민들을 이란이 조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적 개혁에 대한 열망은 1971년 독립한 이후에 바레인을 끊임없이 뒤흔들었다. 시리아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테헤란의 지지를 받는 알아사드는, 근동을 지배하려는 미국의 사주를 받아 수니파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반대파를 비난하고 있다. 지역 전체가 수니파들에 의해 침수당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친 아사드 연합 역시, 시리아의 알라위파에서 예멘의 후티족을 거쳐, 헤즈볼라 소속 레바논 시아파까지 소수파들의 거대 모자이크 연합을 결성하고 있다.

‘아랍의 봄’ 사건이 발생한 이후,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분쟁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이런 혼란을 재촉했던 요인들 중에는 유가하락과 이란 핵에 대한 국제협상의 타결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정치적 다원주의를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는 군사정권의 복원이 무슬림형제들에 대한 잔인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무슬림형제들이 테러를 일으킨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사실 이들은 규칙을 준수했으며 무장투쟁도 포기했었다. 1950년대 이래로 이슬람지지자들과 반대파가 이처럼 무자비하게 박해를 받은 적은 결코 없었다. 권력의 대(對)테러리스트 전략은 자기실현적 예언 방식으로 작동한다. 경찰과 군대의 진압이 폭력적인 반응을 불러오고, 폭력적 반응은 역으로 훨씬 더 무자비한 진압을 정당화해준다.

현대적인 맘루크들은, 서구진영이 맘루크들의 폭력에 눈을 감고, 독재 체제들에 대해 무조건적 지지 정책을 다시 펴도록 하기 위해, 지하드(성전)에 대한 공포를 이용한다. 독재 체제들은 서슴지 않고 이중 플레이를 한다. 내부적으로 종교적 극단주의를 공격하고, 외부적으로는 극단주의가 강화되도록 정책들을 시행한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의 지지를 받는 칼리파 하프타르(Khalifa Haftar)장군의 군대는, 자신들과 경쟁하는 트리폴리의 이슬람 정부를 격퇴하는데 모든 노력을 쏟으면서, 고의로 IS가 시르테(Syrte) 지역을 통제하게 내버려 두었다. 시리아에서 알아사드는 ‘아랍의 봄’에 대항하여 수많은 이슬람주의자들을 감옥에서 석방하고, 다른 반대파 그룹의 투사들을 그 감옥에 집어넣었다. 예멘 정부는, 알카에다와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시아파 반군 후티족을 이란의 사주를 받는 테리리스트들로 규정했다. 걸프만의 군주국들이 IS를 가장 나쁜 적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이 군주국들은 자국의 영토에서 활동하는 종교 조직들이 자국 영토 밖의 무장 이슬람 운동단체에 재정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거나 거의 취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가 똑같은 위선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는, 자신들이 단언하는 것과는 반대로, 지하드의 위협이 사라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지하드의 위협이 모든 민주주의적 개혁을 봉쇄하기 위한 귀중한 핑계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승리하지만 언젠가는 혁명과정의 예측할 수 없는 특성에 부딪힐 우려가 있다. 서방의 관찰자들은 거의 모두 ‘아랍의 봄’이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이들의 눈에는 이미 합의가 이루어진 결론이다. 튀니지에서만 연약한 민주주의가 황폐된 땅에서 여전히 피어오르고 있다. 아랍 정부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에게 고약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역사적 사건의 한 페이지를 어서 넘기려고 한다. 민주적 요구들을 용인했던 과거 오류의 기분 나쁜 결과는 당연히 자신들이 취한 태도가 옳았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역사는, 혁명이 파도처럼 주기적으로 쇄도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시 말해, 정부가 여기에 대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존엄과 자유에 대한 요구는 필연적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현재 거리에 시위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혁명과정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10년 첫 번째 파고를 일으켰던 문제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아랍 국가 대부분의 실업률은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경제 역시 무기력하고, 행정 역시 비효율적이고, 민간 분야는 걸음마 단계다. 많은 수의 격렬한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아랍 사회에서 여전히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데, 아랍 정부들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교육 시스템이 재능보다는 돈에 의한 선택을 중시하고 있고, 궁지에 몰린 세계의 시장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능력들을 갖춘 사람들을 교육시켜야 하는데, 그럴 능력도 없는 상속자들만 계속 교육시키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지도자들이 시민들의 말할 권리를 계속해서 박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 계층과 경제계 사이의 결탁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고, 이로 통해 자신들의 특권에 집착하는 소수 엘리트가 국가 제도들뿐만 아니라 국가의 자원을 통제하고 있다. 발전의 신화가 주민들에게 점점 더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국내총생산(PIB)이 증가했다는 듣기 좋은 소리를 주민들이 엄청나게 듣고 있지만, 그 증가가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도 젊은이에게 미래도 제공해 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심화, 인프라구조의 부족, 교육 시스템의 결함, 만성적 부패 같은 사회악 중 어떤 것도 2010년 이후 개선된 것이 없었다.

구조적인 문제들이 그대로 남아있거나 악화되고 있는 반면, 아랍 사회의 사회적·문화적 조직은 눈에 띠게 변화했다. 보통 시민도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 속에서 살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경찰의 위협이나 이데올로기 교육에 의해서 그렇게 쉽게 시민들의 복종을 얻어낼 수는 없다.

공포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다. 공포의 대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현재 사람들은 IS가 커지고 지하드가 증식하는 것을 걱정하고, 시리아와 예멘에서 국가들이 붕괴될까봐 걱정한다. 곳곳에 퍼져 있는 이런 공포 때문에 시민들은 더 이상 민주주의적 개혁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이 공포는 이집트와 리비아에서의 혁명운동의 실패에 의해 촉발된 환멸을 심화시키고 있다. 왕궁 정문에서 변화의 희망이 무참히 부서져버린 모로코와 요르단은 말할 것도 없다. 공포와 기만이 조합되어 사회적 무기력을 낳는다는 사실에 놀랄 것은 하나도 없다. 대안이 부재할 때는 체념하고 인정하기 때문에 아주 흔히 정권을 지지하게 된다.

그러나 공포, 환멸, 무기력은 일시적인 정신 상태라서 지도자들이 영속적으로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지도자들이 신뢰할만한 개혁들의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5년 전에 화약에 불을 붙였었다. 똑같은 원인들이 조만간에 똑같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 개혁에 착수할 것인지 혹은 새로운 폭동이 터지기를 기다릴지는 지도자들이 선택할 문제다.

이런 딜레마가 머지않아 심각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 가지 징후가 암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레바논에는 지난 여름 쓰레기 수거를 보장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을 탓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길가에 쌓인 산더미 같은 쓰레기 더미 앞에서 터진 분노는 종교적·인종적 차이를 넘어 사람들을 결집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 분노 표출은 레바논 사람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더 넓고 깊은 좌절을 드러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정부의 태만을 비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케케묵은 종교 시스템을 전복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었다. 비록 이 케케묵은 종교시스템이 오래전부터 외관상으로 이 나라의 정치적 안정을 보장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시위자들은, 낡아빠진 기준에 근거하여 세습하는 늙은 엘리트들의 손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대신에 모든 레바논 사람들에게 평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더 민주적인 체계의 설립을 요구했다.
몇 달 전 알제리는 전대미문의 사회운동이 벌어지는 현장을 연출했다. 사하라 지역의 셰일가스 개발 계획안이 발표되자, 가난하고 황량한 이 지역의 주민 수천 명이 추후에 재해를 일으킬 수압파괴에 반대하여 그리고 자연자원의 약탈에 근거한 개발 모델에 반대하여 저항 시위를 벌였다. ‘아랍의 봄’의 기원이 바로 알제리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이 투쟁은 의미심장하다. 변화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1988년의 대규모 시위, 이슬람구국전선(FIS)의 선거 승리, 이어서 군대의 난폭한 실력행사가 벌어진 후 곧바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이어졌다. 이 비극에서 이미 국가와 사회 사이의 알력이 표면화되었다. 비록 간헐적이고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분출하는 다양한 투쟁들은 2010년의 정신이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랍의 봄’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정치적·사회적 변화가 일회성적 결집행위들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치욕을 당한 전제군주를 몰락시키는데 성공했다 해도, 반대 세력들이 조직적인 능력, 정치적 역량, 확고하고 일관되고 지속적인 제도적 비전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2011년의 짧은 승리 후에 이집트의 정부 반대파들에게 그렇게 모자랐던 것들이 바로 이런 자질들이었다. 군대의 복귀를 막아내지 못하는 무능력은, ‘아랍의 봄’의 마지막 시기처럼,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관련된 모든 국가에서 야당 지도자들은 불행을 초래하는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들이 거기서 교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봄이 다시 온다면 그들은 좀 더 잘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나리오가 가능하려면 훨씬 더 위험한 장애물인 IS를 사전에 제거할 필요가 있다. ‘다에시(Daech, IS의 아랍어 각 단어의 첫 글자를 결합하여 만든 단어)’의 섬광 같은 세력 확장은 다에시가 전복하려는 국가들이 유약했고, 더불어 지정학적 경쟁심과 외부 개입에 의한 파괴적인 게임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운명의 아이러니는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개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국가는 특히 국가라는 기구가 자신의 사회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화될 수 없는 안정된 모델 국가들로 오랫동안 간주되었던 나라들이다. IS의 잔인성이 지하드의 이데올로기 교체의 새로운 국면을 드러내고 있지만, IS의 성장에 필요한 인적 자원은 이미 현장에 존재하고 있었다.

시리아에서 IS가 성장하는 데에는 외부 용병들뿐만이 아니라 현지인의 상당한 지지가 필요했다. 현지인의 지지는 넘쳐났다. 자기 주민들의 욕구를 전혀 채워주지 못하는 시리아 정부가 자기 주민들을 빈곤과 소외감에 빠지게 했고, 이런 주민들은 잘 준비된 종파에게 쉽게 이용당하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는, 미국의 침략을 받아 무너진 정권 다음에 들어선 누리 알말리키(Nouri Al-Maliki) 정부로부터 차별을 받은 수니파 공동체가 IS를 호의적으로 영접했다.(2) 미국은 권력남용으로 미움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들에 의지해 전쟁을 치렀다. 시아파 민병대들은 예전 이라크 군대에 남아있는 전쟁 무기를 대범하게 약탈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조직·악명·군사력의 측면에서 이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IS의 출현은 하나의 세력이 유입되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중앙 정부의 박해를 받은 현지의 호의적 반응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IS는 또한 소수의 메시아 그룹과 다양한 부족들, 차별받은 지역 공동체들, 사담 후세인 정권의 전직 장교들 혹은 간부들이 동거하는 여러 세력의 연합체다. IS는 여러 가지 점에서 알카에다와 구별된다.(3) 알카에다는 지하드를 단지 군사 작전으로 생각한다. 어떤 영토를 지배하거나 제도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알카에다는 스스로를 ‘유랑하는 전사들의 네트워크’로 정의하고, 전쟁의 목표는 이승의 삶이 끝난 후 많은 세월이 흘러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IS는 전투에서 즉각적으로 열매를 거둬야만 한다. 폭력은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고, 그런 목적 하에서 자신들의 세상에 대한 비전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토적 실체를 만드는 것이 종교적 명령을 따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지하드는 영토를 정복하고, 지배권을 확립하고, 지리와 시간의 모든 자원을 활용하라고 강요한다.

신중하게 신병을 채용하고 이들에게 엄격한 요구를 강요하는 알카에다와는 달리, IS는 공개창구에서 신병을 모집하고, 요구하는 유일한 자질은 참여 동기일 뿐이다. 알카에다가 완전히 전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IS는 주민들을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IS에게는 여성들, 가족들, 아이들이 필요하다. 외국 용병들의 역할은, 무기를 짊어지기 보다는, 외부 세계를 향한 선전 메시지에서 신앙인 공동체의 이상화된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있다.

국가에 대한 그런 개념은 대부분의 수니파 교도들에게, 이단이 아니라면,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IS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국가들의 폭넓은 연합을 끌어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외부의 간섭이 개입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IS 현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하드의 위협은 사실상, 아랍 세계에서 자신들의 야망을 실현하려는 러시아와 터키 같은 강대국들의 알리바이로 이용되고 있다. 러시아의 시리아 폭격은 확실히 IS와 연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연합이 몰락하면서 잃게 된 제국의 힘을 재건하여 근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모스크바의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4)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함으로써 러시아는, 서구진영이 러시아와 경쟁하는 우크라이나 혹은 또 다른 영토에 대한 협상카드를 쥐는 셈이다.

국지적 측면에서 전략 목표는 단순하다. 말하자면 정확히 알라위파를 기반으로 하여 산정된 신성(神聖) 국가를 시리아 대통령에게 보장해 주면서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군사적 투자에 대한 수익이 없기 때문에 이 전략이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까지 러시아는, 근동을 법적으로 정의된 국가들로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민족적·종교적 정체성의 프리즘을 통해 근동을 이해하는 낡은 접근 책을 시류에 맞춰 써먹을 작정이다.

같은 이유로 러시아-시리아 동맹이 어느 순간에는 이라크로 넘어갈 우려가 있다. 바그다드는 예전의 다종교의 국가 단일체로 돌아가는 계획을 점차적으로 포기했다. 이라크는 이제 스스로를 온전히 시아파로 이루어진 국가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라크는 IS가 점령한 영토를 수복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영토수복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수니파 공동체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확실히 러시아의 군사 우산의 혜택을 받고자 할 것이다. 이런 군사 우산은 어느 때가 되면 미국의 방패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의 보복 우려는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유럽 수도의 전철에서 폭탄이 폭발하여 관계된 정부를 약화시킨다 해도, 러시아는 자국 국가수반의 전략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 테러에 대한 공포를 퍼뜨리는 것은, 국경 너머의 외부에서처럼 내부에서도 철권통치를 정당화해줄 것이다.

그런 만큼 괴물 IS를 제거하는 것은 러시아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IS가 유럽의 이익을 약화시키고 시리아의 친 서방 반대파를 억누르는데 아주 유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IS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시리아 정권은 자신의 포악성을 잊게 하는데 IS를 이용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아파에 대한 이데올로기 전투를 강화하는데, 이란은 수니파 진영을 분열시키는데, 터키는 쿠르디스탄(Kurdistan) 노동자당에 대한 원한을 풀기 위해 IS를 이용하고 있다.

터키의 경우, 괴물 IS의 도구화 전략은 주로 내부적인 목적으로 이용된다. 터키는, 레세프 타이프 에르도간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혼란에 대처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긴장·공포·분열의 분위기를 영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한다. 터키가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반(反) IS 동맹은 자국 주민 중에 포함된 쿠르드족들뿐만 아니라 시리아와 이라크에 있는 쿠르드족을 공격하는 구실이 되고 있다. 이런 단계적 확대 전략이 전반적인 불안정성을 악화시키고 새로운 분쟁 축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에르도간은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최악의 정책을 통해서라도 에르도간은 선거에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리의 테러는 IS의 전략변화를 보여준다. 이 폭력은,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헤즈볼라에 대한 베이루트에서의 테러와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의 러시아 항공기에 대한 테러를 저지른 후 그 다음에 터트린 후속타다. 이 폭력은, IS에 반대하는 동맹국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당사국들을 시리아와 이라크 밖에서 공격하는 조직의 만만치 않은 분출 능력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폭력은 실질적으로 자신의 요새에 대한 만만치 않은 공격에 IS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외국에서 펼쳐진 이 반격은 국내 전선에서 IS의 공격 기세가 위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표면상으로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이 폭력이 나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고, 알카에다의 종말론적 논리와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방은 공중 군사 작전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구는 IS를 뿌리 뽑지 못할 것이다. 경험은 비(非)국가 당사자들이 영토의 재정복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쿠르드족이 이라크의 신자르(Sinjar)를 공격하여 승리한 사실과 IS와의 분쟁에서 베두인족이 개입하여 승리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반격은 현장에 모인 모든 세력의 연합 전략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가지가지의 이권과 지정학적 경쟁심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아랍 국가들이 나선 반혁명의 도미노 효과, ‘아랍의 봄’의 재출현 가능성, 지하드라는 괴물 주변에 얽히고설킨 이권이라는 세 가지 전망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랍 세계의 미래는 아주 불확실하다.

글·물레이 히샴 Moulay Hicham
물레이 히샴 재단 이사장,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회원, <추방당한 왕자의 일기, 모로코의 내일>(그라세, 파리, 2014년)의 저자, 이 텍스트의 최초 번역판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연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노스웨스튼 대학에서 2015년 10월 23일 발표되었다.


번역·고광식
파리 8대학 언어학박사로 대학에서 프랑스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르몽드 세계사 3> 등의 역서가 있다.

 

(1) “현대의 맘루크들, 안전과 성전 마피아들”, 오리엔트 21, 2015년 9월 15일, http://orientxxi.info
(2) 피터 하링(Peter Harling), “이라크의 분열이 말해주는 것”,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4년 7월.
(3) 쥘리엥 테롱(Julien Théron), “알카에다와 IS 사이의 치열한 경쟁”,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15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