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좌파, 왜 멈추었나?

[Dossier]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정세

2015-12-31     르노 랑베르

좌파의 투쟁은 투표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도 계속된다. 계획이 야심찼던 만큼, 새로운 전투들이 정권을 잡은 좌파를 기다리고 있다. 보수세력들이 무기를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저항하고 음모를 꾸미고 부패를 일으킨다. 라틴 아메리카의 진보주의자들도 이를 알고 있다.2000년대, 신자유주의 국가들의 본거지를 향한 공격을 개시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공의 물결 뒤, 이제 그들은 자신들도 일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이면과 맞닥뜨렸다. 이러한 좌절감 때문에 정치에 대한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잠재워 버렸던 국가들에서 이뤘던 사회적 쟁취가 소멸될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를 짓누르는 어려움들을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 과연 좌파가 앞으로 새로운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하위 기사 참고


베네주엘라에서의 가혹한 패배, 우파로 선회한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와 정치적 위기가 닥친 브라질, 거리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에콰도르 등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는 고군분투 중이다. 미국의 음모라고만 하기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카리브해에서 티엘라델푸에고 제도까지, 이들 진보세력은 또 한 번 과거의 괴물과 맞닥뜨렸다.

“은행가들의 위기에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다.”


도심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위, 커다란 낙서가 눈길을 끈다. 몇 해 전부터 유럽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이 문구를 여기서 보니 더욱 놀랍다. 여기는 리우데자네이루, 2년 전만 해도 축제가 한창이던 곳이다. 2013년 3월 같은 장소, 두 개의 차선은 숲의 한 가운데를 향해 이리저리 뻗어 있는 듯하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전한 표지기사와 같았다. 금융혼란의 중심에서 그리고 짙은 안개 속에서, 구원의 예수상은 코르코바도 산 정상을 날아오르고 있었다. <도약하는 브라질>이라 외치던 주간지는 “라틴 아메리카의 가장 아름다운 성공”이라는 기사에 14개 면을 할애했다(2009.11.14.).

와해된 자유주의로부터 더 이상 얻어낼 것이 없었던 유럽 좌파는 대서양 반대편으로 눈을 돌려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삼바, 볼리비아의 모레나다, 에콰도르의 파시오, 베네주엘라의 호로포 리듬으로 축하하던 ‘라틴 아메리카 실험실’의 성공은 이제 그들이 승리를 꿈꿀 차례임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아대륙의 경제에 타격을 입힌(<기업들이 원하는 자유주의로의 선회>기사 참고)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전망은 어두워졌다. 한 가지 떠올려 보자. 2013년 11월 6일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파리 소르본느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자유주의를 가차 없이 비난했다. 그러나 일 년 후, 그는 EU와의 자유무역협정에 서명했다. ‘볼리바르 혁명’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베네주엘라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시키고자했던 결연한 의지 덕분에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2015년 1월 26일, (중립적 성격의) 라틴 아메리카 카리브해 경제위원회(ECLAC)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베네주엘라의 빈곤율은 2012년에서 2013년 사이 25.4%에서 32.1%로 증가했다.(1)

2014년 10월 브라질 대통령 선거운동 중 재선에 도전하던 지우마 호세프 후보가 TV토론에서 한 말이 화제가 됐다. 그는 상대편 후보인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의 아에시우 네베스의 지출에 대한 견해(긴축정책)를 비판하며 외쳤다. “당신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잘라내고, 잘라내고 또 잘라내는 것뿐이다!”(TV andeirantes, 2014.10.14). 하지만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호세프는 긴축정책이라는 ‘쓴 약’을 옹호하며, 끝까지 지켜내겠다고 약속했던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잘라내고 말았다(O Estado de S.Paulo, 2015.9.9).

집권 후 힘 잃는 좌파의 얄궂은 운명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상징으로 남아있는 쿠바가 미국 상공회의소와 협력해 ‘경제자문회의’를 만들었을 때, 2015년 11월에 치러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선거 2차 투표에서 좌파의 페론주의는 패배했다. 브라질과 에콰도르 그리고 베네주엘라에서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강렬한 사회 운동 덕분에 선출된 정부의 사퇴를 요구했다.

‘집 없는 노동자 운동(MTST)’의 길례르미 보울로스 대표는 “과거 라틴 아메리카는 유럽 좌파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유럽처럼 긴축정책을 시행한 이후,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라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브라질에도 포데모스 정당이 필요하다고 한다”고도 덧붙였다. 유럽에 라틴 아메리카 좌파의 성공을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갖고서 출범한 스페인의 포데모스 정당에 태동의 영감을 선사한 지역이 이제 반대교사가 돼버린 것일까? 때때로 진보주의자들은 방향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럴 때 우리는 희망을 찾아 지구를 가로질러야 하는 운명인 것일까? 계속 같은 자리를 빙빙 돌지라도? 정권의 배신이나 태도의 돌변을 의례적으로 비난할 때, 집권 좌파들이 겪는 어려움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반대로, 라틴 아메리카가 새로운 승리를 기록하기 위해 애쓸 때 (우리 지면에서 광범위하게 분석한) ‘라틴 아메리카 실험실’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긴장을 이해하려는 시도 역시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반박할 것이다. 이 지역 국가들은 역사, 지도자, 정책 모두 서로 닮은 구석이 없다. 가난한 이들 이상으로 은행가들을 만족시키려 안달하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의 브라질과 ‘21세기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베네주엘라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반박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볼리비아의 알티플라노에서 1981년의 프랑스까지, 베네주엘라의 카리브해에서 뉴딜 정책을 추진했던 미국에 이르기까지, 좌파 세력은 종종 비슷한 괴물에 맞서 싸워왔다.

최근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좌파 정당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그들은 힘을 잃는다”(2)고 지적했다. 투표는 군대보다 훨씬 많은 장점이 있는 도구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살해 또는 수감, 고문당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은 것도 장점들 중 하나다. 하지만 투표는 다른 속박을 강요하기도 한다.

2003년부터 정권을 장악한 호세프와 룰라 다시우바의 노동자 당(PT)은 정부와 각 부처 요직을 자기 사람들로 채워야 했으며, 지방으로 세력들을 내려 보내야 했다. 2000년 각 도시별로 자리했던 지부는 187개. 2008년 그 수는 3배인 559개가 됐다. 물론, 당에서는 새로운 활동당원들을 뽑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임기의 운영, 규칙 제정, 공공정책 소통법 등 실질적인 문제를 둘러싸고 간부구성이 점진적으로 위축되는 상황이었다”(3) 라고 노동자 당의 발테르 포마르는 비탄 섞인 목소리로 설명했다. 브라질 대통령의 국제문제 담당 특별고문인 마르코 오렐리오 가르시아는 “그 결과, 우리는 사회와의 교류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생각을 멈추었고, 관료주의화 돼버렸다”고 한탄한다.(4) 결국, 노동자 당은 그들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투쟁을 통해 정권을 잡았는지는 전혀 모른 채, 그들에게 사회적 권리만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더 이상 활동당원들을 모집할 수 없었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도 이러한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었다. 우파에서 반격을 준비 중일 때, 코레아 대통령은 측근 중 한 명인 리카르도 파티노 외무부 장관에게 “(대통령의 정당) 알리안자 파이스당의 하부조직을 강화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에콰도르 수도의 대규모 운집 장소인 플라자 그란데를 두 시간 만에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표에서 였다(El Universo, 2015.7.16).

반면 활동당원들이나 사회운동가들은 자신들의 비판을 수용하는 정권의 중개자 역할을 훨씬 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코레아 대통령은 여전히 이러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례로, 2013년 10월 알리안자 파이스당의 국회의원 일부가 많은 활동당원들의 지지를 얻어 새로운 형법의 범위 내에서 낙태 합법화를 검토 중이었다. 이에 반대하던 대통령은 곧장 “이런 식의 배신과 비겁함이 계속된다면, 나는 사임하겠다”(5)라고 발표했다. 의원들은 단념했다.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하부조직과 멀어지는 것과 더불어, 법제화 역시 이들을 분열시켰다. 2014년 봄, 미국의 정치학자 스티브 엘너는 베네주엘라 통합사회주의당(PSUV)의 의원들의 가지는 중압감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7명의 당 부대표들은 주지사이거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정부의 각료들이다.” 2009년에 열린 첫 번째 회의에서 벌어진 상황과는 반대로 2014년 당 부대표들은 당원들의 투표로 선출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합의에 의해” 선택된 주지사, 시장, 국회의원 그리고 일반 활동 당원들이었다.(6)

좀 더 남쪽에 위치한 브라질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경제학자 헤이나우두 곤칼베스는 “노동자 당은 정권을 잡기 전부터 당의 전략을 놓고, 여러 당파들과 극심하게 대립했는데, 그 대립 과정에서 의원들이 권력을 잡았다”고 지적한다.(7) 브라질 최대규모 노동자단체인 중앙노동자연맹(CUT)의 아르투르 엔히크 전 대표는 “국가의 ‘통치권’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다고 변명한다. 선거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단계라고 생각하는 전술이 선거목적에 자신의 신념을 맞추는 전략으로 변할 때, 정치적 야망은 흩어져버린다”고 비판한다. 그 정치적 야망이 아예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노동자 당의 당원 장 티블레는 “이제 노동자 당은 성공에 유리한 조건보다 장애물을 더 많이 만들고 있다”(8)고 냉정하게 지적한다. 만약 노동자 당의 조직이 브라질 정치제도를 변화시키고 ‘민주주의의 민주화’에 전념했어도 그가 이런 결론에 다다랐을까? 하지만 노동자 당에서는 그런 계획을 염두에 둔 적이 없다. 이렇게 노동자 당은 돈의 권력과 부패, 로비에 맞서 싸우는 것을 단념했다.

권력은 민주주의의 위력이자 시련이다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주의 여정의 어려움은, 비단 권력행사의 악영향 뿐이 아니다. 어떤 유권자에게 기대를 걸어야 할지 결정하는 문제도 있다. 독재자들이 공산주의 조직들을 억압하고, 신자유주의가 얼마 되지도 않는 노동자들의 보루를 무너뜨리고, 미디어가 민간 영리업체들의 손아귀에 넘어간 국가들에서 더 이상 사회주의다운 사회주의는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사회주의의 이상을 꿋꿋이 지키고 있는 일부 국민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다수 득표자가 승자가 되는 선거의 기반을 다진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망상에 가깝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은 현실을 향해 문을 살짝 여는 행위이기는 하나, 얼마나 열어두어야 할지 끝내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맹은 먼저 진보주의 진영에서 실행됐다. 차베스 대통령도 코레아 대통령도 기존의 정치 조직 안에서 부상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서로 다른 여러 조직들이 실질적인 양립이 아닌 확신에 기반을 둔 단결을 이루어냈다. 바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귀환이라는 확신이다. 이는 동맹 내 각 세력들의 야심을 실현하는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 베네주엘라와 에콰도르, 볼리비아에서 좌익 정권이 탄생한 직후 작성된 새로운 헌법들은 이러한 모호성을 반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은연중에 ‘대지’ 보호 등의 주제에 대해서는 실망을 예고하기도 했다.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볼리비아 부통령은 “좌파의 영향력을 볼 때, 양보는 일시적이어야 한다. 적들의 요구를 일부 고려하는 데 그쳐야 한다”(9) 고 말한다. 우파와의 동맹은 없지만, 전통적으로 몇몇 분야에서 중산층, 일부 소수 경영자들과의 동맹은 가능했다. 노동자 당은 행정권에 대해서는 좀 더 구속력 있는 체제 안에서도 노력이 가능하다 하며 루비콘 강을 건넜다. 1980년, 노동자의 당이 창설될 때 그들은 “경영자 없이”라고 외쳤다. 2002년, 노동자의 당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복음주의 기업가 조제 알렝카르와 연합했고,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보수 정당들과 연합했다. 중재에서 타협까지 명확한 경계는 없고, 정부 또는 사회운동에 참여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각자가 서로 다른 점을 느낄 뿐이다. 언제쯤에야 우파와 함께 통치하는 것을 멈추고 우파를 위한 통치를 시작할까? 브라질의 호세프 대통령은 정치적 반대파들의 로드맵을 채택했다. 선거에서 이긴 후 당선 제일주의에 대한 압박이 사라지기도 전에 빠른 속도로 좌파 정책의 포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는 2년에 한 번씩 투표가 있고, 한 차례의 선거 운동이 끝나자마자 다음 선거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에콰도르의 한 고위 공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아니라고 비난하지만 2007년 이후 우리는 열 번의 선거에서 이겼다. 일 년에 한 번 이상 이긴 셈이다. 그렇지만 선거 일정은 정치 일정과 일치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도 선거운동보다 정책수립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 권력은 민주주의의 위력이면서, 동시에 시련을 의미하기도 한다. 매번 다시 시작되는 권력은 민주주의 안에서 덧없다는 사실이다. 권력이 충분히 보수적일 때 야당은 언론이나 민간부문의 지원에 기댈 수 있다. 경제 상황 때문에 좌파가 희망 섞인 연설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권력을 잡지 못한 우파의 잘못이다.

민주주의는 사회 문제의 중요성을 국민들 사이에서 가늠한다. 여기 새로운 전위로 분장한 민주주의가 있다. 베네주엘라의 우파 지도자 엔리케 카프릴레스는 2년 전 <르몽드>지에 자신의 새로운 신념들을 밝혔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2002년 (실패로 돌아간) 차베스 대통령에 맞선 쿠데타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자신은 “우파와는 거리가 멀다”고 밝히며 가슴에 손을 얹고 이렇게 말했다. “변화의 열쇠는 바리오(서민 거주지)에 있다. 그러므로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고, 이집 저집으로 다니면서, 동네마다 의회를 설치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2014.4.3.).

좌파가 살려놓으면, 우파에 투표한다

유권자들에게 기댈 경우 추가적인 어려움이 발생한다.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이 말한 대로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반대파가 보수주의 집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좌파를 포함해, 개개인의 소비 욕망 속에도 존재한다.” 우루과이의 호세 ‘페페’ 무히카 전 대통령은 자국을 더 많이 변화시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이 아이폰을 원했기 때문이다!”(10) 가난하다고 모두 혁명가인 것은 아니며, 모든 혁명가가 제도권 의회를 열광적으로 꿈꾸는 것도 아니다.

물론, 생활수준이 개선되기도 했다. 라틴 아메리카 좌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던 생활수준의 개선은 일부 변화를 야기했다. 2015년 10월 아르헨티나 대선 1차 투표 전날, 진보주의 SNS에는 ‘아르헨티나의 경제 순환 주기’라는 제목의 도표 하나가 올라왔다. 도표에는 순환 과정의 여러 단계가 소개돼 있었다. ①우파가 중산층을 무너뜨린다 - ②가난해진 중산층이 국민 정부에 투표를 한다 - ③당선된 국민 정부는 중산층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 - ④중산층은 자신들이 지배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우파에 투표를 한다. 그리고는 다시 ①로 돌아간다.

이러한 현상이 비단 중산층 국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의 무토지 농민운동(MST)의 결집력 약화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대학교수인 아르만두 보이투는 이렇게 대답했다. “과감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 당의 정책들은 단체의 한 분파를 정착 소농민들로 변화시켰다. 자신들이 가진 유대 외에도 잃을 것이 생기자 그들의 과격함은 무뎌졌다. 자가소유사회라는 보수적인 꿈은 다른 동기들을 기반으로 한 것일까?”

쿠바를 포함해,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같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고대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몇몇 정치인들은 일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볼리비아의 여러 보수정권 아래에서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현 경제부 장관 루이스 아르세는 “이제 볼리비아에서는 누구나 부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기뻐한다. 이것이 과연 놀라운 소식일까? 왕정복고 시대의 자유주의 및 보수주의 사상가였던 프랑수아 기조에 대한 이러한 모방은 새로운 원주민 부르주아의 출현을 용이하게 한다. 딱히 이전 부르주아들보다 진보적이진 않았던 이들 중 어떤 이는 ‘자기식 혁명’을 이렇게 요약하기도 했다. “난 돈이 있다.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11)

‘볼리바르 혁명 과정’이 국민들의 정치화를 부추기는 능력 덕분에 그 이름이 빛나긴 했지만(줄리앙 르보티에, 욜레티 브라코의 기사 참고), 일부 하부 조직은 혁명에 등을 돌리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엑토르 미첼 무히카 리카르도 주프랑스 베네주엘라 대사는 그가 겪은 일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2013년 대통령 선거일 전 날, 그는 서민 동네에서 젊은 여성을 만났다. 그녀의 눈은 정부의 야심찬 재분배 정책으로 많은 혜택을 누린 계급의 자긍심으로 반짝였다. “예전에 참 비참하게 살았어요. 하지만 차베스 대통령 덕분에 그 비참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는,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이제 가난하지 않으니 야당에 투표할 겁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베네주엘라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역설적 상황, 좌파 정책의 수혜자들이 오히려 좌파 정권과 멀어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포마르는 반대한다. “삶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가 브라질에서 한 것은 소비를 확대시킨 것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더 많이 시장의 논리에 복종하게 됐다.” 노동자 당은 극빈층도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게 하고, 비영리 목적의 의료기관을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저축으로 퇴직연금을 조달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방식은 정치적 신념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다. 공공서비스를 만들었다면 더욱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세금을 올려야 하고, 중산층의 반발에 부딪쳤을 것이다. 룰라 대통령 그리고 지우마 대통령이 도입한 타협 전략과는 양립할 수 없는 방법이다.”

경기 침체 속에서 타협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데려간다. 라틴 아메리카의 어떤 진보 정부도 자국의 생산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그들로서는 국제적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세제 부문에서도 이렇다 할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금리가 하락하고 경제침체에 빠지면, 재분배 비용은 입속의 사탕처럼 녹아버린다. 이제 강자들을 건드리지 않고 약자들을 안심시킬 방법은 없다. 강자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며 약자들의 결집을 예상하는 편이 낫다. 몇 발짝 떨어져 긴 시간이 흐른 후에는, 진보주의 지도자들은 사회운동으로 다시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그리고 사회운동은 다시 희망을 선사할 수 있을까?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저널리스트. 프랑스 미디어 관찰기구(Observatoire français des médias)를 공동 설립했고, <청부 경제학자(Économistes à gages)>를 공동집필했으며(2012년 Les liens qui libèrent & Le Monde diplomatique에서 출판), 2012년 발표된 <집지키는 개들(Les Nouveaux Chiens de garde)>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번역·김자연

(1) 베네주엘라에 의하면 2015년 1분기에 빈곤은 감소했다.
(2) 룰라 연구소 심포지엄, 상파울루, 2015.10.5.
(3) 발테르 포마르 Valter Pomar, ‘잃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Pour ne plus avoir peur de perdre), 특집기사 ‘Feu sur l'école’, <마니에르 드부아 131호>, 2013년 9-10월호.
(4) Brasileiros 인터뷰, 상파울루, 2015.6.9.
(5) «Rafael Correa amenaza con renunciar si el Congreso despenaliza el abort», 2013.10.11, Infobae.com
(6) Steve Ellner, «Venezuela : Chavistas debate the pace of change», Report on the Americas, vol. 47, n° 1, New York, 2014년 봄.
(7) IHU Online과의 인터뷰, 2015.8.27.
(8) Alana Moraes, Jean Tible, «¿Fin de fiesta en Brasil?», Nueva Sociedad, Buenos Aires, 2015.9-10.
(9)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보편성과 개별성, 볼리비아 혁명의 변증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9.
(10) 아마도르 페르난데스-사바테르가 전해준 일화. 다시 감사를 표함.
(11) 이 두 인용 구절은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발췌한 것임, 런던, 2014.12.4

*참고자료


경제성장률

·아르헨티나
2006년: 8.4 %
2010년: 9.5 %
2014년: 0.5 %
·볼리비아
2006년: 4.8 %
2010년: 4.1 %
2014년: 5.4 %
·브라질
2006년: 4.0 %
2010년: 7.6 %
2014년: 0.1 %
·에콰도르
2006년: 4.4 %
2010년: 3.5 %
2014년: 3.8 %
·베네주엘라
2006년: 9.9 %
2010년: -1.5 %
2014년: -4.0 %

*세계은행출처

빈곤 인구 비율
(전체 인구대비 %)
·아르헨티나*
2002년: 25 %
2013년: 4.3 %
·볼리비아
2000년: 38.8 %
2013년: 18.7 %
·브라질
2001년: 13.2 %
2013년: 5.9 %

·에콰도르
2000년: 31.8 %
2013년: 12.0 %
·베네주엘라
2000년: 18.0 %
2013년: 9.8 %
·라틴아메리카
2002년: 19.3%
2013년:11.7%

*도시 지역 빈곤 인구만 해당.
출처: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경제위원회


불평등 지수
·아르헨티나
2000년: 51.1
2013년: 42.3
·볼리비아
2000년: 63
2013년: 48.1
·브라질
2001년: 59.3
2013년: 52.9

 

·에콰도르
2000년: 56.4
2013년: 47.3
·베네주엘라
1999년: 48.3
2006년: 46.9


(0은 완전한 평등, 100은 절대 불평등을 나타냄)
출처: 세계은행

*인용문


“미키 마우스는 혁명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1962년 봄, 라틴 아메리카부 국무차관 리처드 굿윈과의 토론에서 멕시코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작성한 다음의 “북아메리카인들에게 전하는 말”이 미국 최대 텔레비전 중계망 중 한 곳에서 낭독될 예정이었다. 토론은 열리지 않았고, 주멕시코 미국 대사관에서는 푸엔테스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혁명! 그렇습니다. 오직 혁명만이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국가들이 현대화되고, 아직 사용되지 않은 우리의 자원들이 팔리거나 낭비되는 대신 잘 개발되고, 농지개혁이 이루어지고, 내수시장이 만들어지고, 생산이 다양화되고, 대중교육과 산업화가 장려되는 데 필요한 구조적 변화 말입니다. 혁명! 여러분들은 하늘을 증인 삼고, 폭력과 유혈에 손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봉건제국의 지도층들에게 그들 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을 납득시키지 못했습니다. (···) 피? 그렇습니다, 역사적 지연의 대가는 피로 치러집니다. 불공정함은 피로 대가를 치릅니다. 제퍼슨을 떠올려보십시오. 스파르타쿠스에서 피델 카스트로, 종교 혁명, 영국 혁명,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멕시코 혁명, 러시아 혁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혁명이 폭력 안에서 실현됐습니다. 미키 마우스는 혁명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배고픈 사람들, 용감한 사람들, 분노와 증오에 찬 사람들을 위해 혁명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탄식하겠죠. “그럼 민주주의와 자유는요?”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룰 수 있는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 미카엘 로위의 인용, <라틴 아메리카의 마르크스주의 문집>, Maspero, Paris, 1980.


에르고 숨(Ergo Sum)

2001년 아르헨티나가 국가 채무 불이행으로 유례없는 위기를 맞았을 당시, 시인 가브리엘 로살레스는 21살이었다.
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귀를 잡아당겼던 선생님을 위해,
광부였던 내 할아버지의 거무스름한 폐를 위해,
시골에 계신 삼촌들이 걸린 여러 경변증을 위해,
독재정권 시절 밀리코(군인)들이 감옥에 가둔 나의 또 다른 삼촌을 위해,
나는 학교가 없던 그 마을을 떠나야만 했으므로,
매월 말 정부 보조금으로 힘겹게 버티는 나의 할머니를 위해,
내가 사는 길모퉁이에서 발견한 10살짜리 사내아이의 작은 손에 쥐어져있던 폭시란을 위해,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홍수를 위해,
예전에 나는 구유에서 태어난 가여운 예수의 친구였으므로,
여인이 되기 전 다섯 명의 아이를 가졌던 우리 동네의 성모 마리아를 위해,
일자리는 찾지 못하고 술과 대마초에서만 기쁨을 찾는 동네 친구들을 위해,
아버지의 돈 없는 노년을 위해,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로 말미암은 고통이 여전히 우리의 양심을 짓누르게 하는 그들을 위해,
나는 나를 꿈꾸게 하는, 꿈이 있는 멋진 여인과 아침 햇살을 함께 맞이하므로,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아버지가 될 것이고 내 아이의 눈물이 그들에게는 마치 새들의 약속과도 같을 것이므로,
나는 포석을 던진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마티아스 드브레인, <아르헨티나 시 전집>, Cross a la mandibula 수록, Nuit myrtide 출판사, Lille,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