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7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법
혁명은 끝이 없는 에스컬레이터보다 해안가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더 닮았다. 솟아올라 앞으로 나아가다가 멈추는 듯싶더니 가라앉았다가 다시 솟아오른다.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미래를 결정짓는 민중동원의 강도에 따라 이 연속적 움직임의 단계가 달라진다. 그런 가운데, 진보 세력은 극복해야할 여러 갈등상태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7가지 과제를 들 수 있다.
첫 번째 과제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다
우리 정치계는 오래 전부터 민주주의를 실제 사회와 사회주의 사이에 놓인 비실용적인 다리처럼 여겼다. 그러나 볼리비아 좌파는 이 견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방법뿐 아니라 사회변혁에 꼭 필요한 틀도 제공했다. 지난 몇 년간 각 지역의 혁명과정은 사회의 자치적 조직력을 강화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와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혁명의 영역으로 여기는 발상은 민주주의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북미에서 들여온 케케묵은 민주주의 개념에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재발견한 민주주의는 서민적이길 바란다. 다시 말해 거리의 민주주의이길 바란다. 일터에서, 정부와 국회 안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절대적인 민주주의의 급진화가 진정한 사회주의의 특징이 된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선거나 무력개입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세계를 바꾸려는 모든 투쟁은 개혁주의와 기회주의 사이에서 망설이는 형국일 것이다.
두 번째 과제는 좌파만큼 역사가 오래된, 권력장악의 문제다
“권력을 잡아야 하는가, 아니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권력을 세워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보수적인 우리는 항상 권력장악을 목표로 여겨왔다. 그리고 국가라는 존재가 아무리 민주적일지라도, 공공의 것과 보편적인 것을 독점하는 형태로 형성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나 독점권을 형성된 상태 그대로 취한다면, 이는 관료주의를 또 다른 관료주의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권력을 포기해야만 할까? 그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작은 공동체 안에 틀어박혀 축소판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정크푸드 반대운동에 전념하며, 물물교환을 기반으로 하는 비상업적인 순환적 교류를 시작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권력은 멀리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항시 과두지배세력이 독점하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론상으로 국가는 물질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난관이 있다. 물론 국가는 일련의 제도, 규범, 절차를 통해 그 존재가 구체화된다. 그러나 국가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형성한다. 논리적이고 도덕적인 추론들처럼 도로, 교육, 상업, 보건 등 서로를 이어주는 모든 것을 우리가 집단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으로 관장한다. 이처럼 국가는 원칙을 만들고 우리는 이 원칙에 따라 삶을 영위하며 서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면서도 동일한 역사적 공동체에 속한다고 느낀다. 당연히 놓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이런 수단을 혁명가 좌파가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권력을 잡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이를 개선해서 의사결정구조를 민주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좌파 역시 기존의 행동을 되풀이하는 또 다른 엘리트층을 낳게 될 뿐이다.
세 번째 과제는 헤게모니의 쟁취다
나머지 사회계층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사회 블록의 지성적, 도덕적, 윤리적, 논리적, 조직적 방향점으로 여기는 헤게모니. 국내 모든 알력관계가 변화하려면 먼저 사회의 논리적 사고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 도덕적인 면을 포함해 각자가 세계질서를 정립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 2000년대 전에는 최상의 상태에서 모든 일이 잘 돌아갔다. 우리에게 약속한대로 천연자원의 민영화와 함께 공공복지도 잊지 않고 보장됐다. 이에 대한 확신 덕분에 일상생활의 질서가 확립되고 각자의 욕망을 제한하는 선이 지켜졌다.
그러나 이러한 지성적 구조는 점차 용납하기 어려워졌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대로의 세상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더는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을 정비하던 모든 주요 이념들에 의문을 품게 됐다. ‘상식’이 바뀌어버린 이 상징적 변화의 시기를 겪으며 사람들은 새로운 계획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베네주엘라의 우고 차베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브라질의 루이스 룰라 다 실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가 등장했다. 이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혼동 중에 출현한 것이다. 하지만 문화적 틀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과정에서 언젠가는 무력항쟁이 시작될 것이고, 새로운 헤게모니를 전파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상대편을 굴복시켜야만 할 것이다.
네 번째 과제는 희망의 깃발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격렬한 집단토론을 통해 혁명적 이념들이 모였고, 구체적인 세력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극도로 위험한 침체기에 있다. 우리는 이념전쟁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희망의 깃발을 놓쳐서는 안 된다. 혁명은 ‘활동하는 희망’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헤게모니 싸움이 또 다시 결정적인 것이 됐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대학, 노조, 단체 안에서 투쟁하는 우리들은 정부 운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했다.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이로 인해 우리의 후위부대를 포기해야만 했다. 여기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수장은 장관과 동급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볼리비아가 저지른 실수가 바로 이것이다. 우파는 이틈을 타서 다시 뭉치려 하고 있다. 또 다른 난관이 있다. 우리가 야당이라면 희망을 세우고 이를 구현할 이념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집권당일 경우에도 이 모든 일을 필수적으로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경제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도전과제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라틴 아메리카 혁명가들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민중동원의 영웅적 서사시는 영원하지 않다. 몇 개월, 아니 몇 년이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침체기를 겪고 있다. 지금은 일상생활과 구체적인 결과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이다. 충분히 투쟁했고 자신을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길은 이제 “이제 나도 혁명의 열매를 수확하고 싶다. 내가 마실 물과 학교, 병원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요구할 정치지도자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혁명가의 또 다른 면모, 즉 훌륭한 관리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 시작된 과도기적 단계를 거치면서 우리가 이런 요구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섯 번째 과제는 엑스트라 액티비즘(1)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우리의 혁명과정을 관통하는 또 다른 갈등은 경제·사회복지가 지구환경보호 문제와 맞선다. 간단히 말해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주 거론되는, 그 유명한 식민지형 원자재 생산모델인 ‘엑스트라 엑티비즘’에 대한 논쟁이다. 이 부분에 있어 에콰도르, 베네주엘라, 볼리비아는 과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볼리비아의 경우, 모든 일의 시작은 1570년 당시 프란시스코 데 톨레도 총독이 포토시(Potosí)에 우뚝 솟은 세로리코(Cerro Rico) 산에서 강제노역을 시작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로 인해 볼리비아는 대도시를 위한 원자재 생산국으로 탈바꿈했다. 볼리비아는 450년째 국제분업 구조에 따라 원자재 생산국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기록적으로 높은 빈곤율과 불평등지수,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겨버린 국민의 물질적 빈곤이라는 특징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을 하면 좋은 경제성과를 내겠지만 대신 우리의 미래를 부양할 토속적 유산을 저버리게 된다. 그렇다고 궁핍에 빠진 국민을 버려두고 나무를 보호하는 데만 전념할 수는 없다. 토착민들의 생활환경이 전혀 목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5백년간 형성돼온 식민지적 빈곤과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던져지는 요구사항이 있는데, 나는 이를 식민지적 자연보호주의라고 부른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여, 발전을 꿈꾸지 마시오. 인류를 위해 무언가 하려면 나무를 보호하는데 헌신하시오. 우리 북아메리카는 숲을 파괴하고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전 세계로 퍼트리는 일을 맡겠소”라고 그들은 말한다. 즉, 라틴 아메리카는 개발을 중단하고 미래를 포기하면서 환경편익 비용이나 지불하라는 소리다.
알티플라노(안데스 산맥 남부에 위치한 고원)에 사는 친구 중에는 돌집에 사는 사람도 있다. 가장 가까운 학교도 걸어서 5시간 거리다. 충분히 먹지 못해 종일 잠만 잔다. 내 물음에 누가 대답해주면 좋겠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떠한 지식경제를 세워야 하나? 엑스트라 엑티비즘에서 벗어나야 할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석기시대로 돌아가는 방식은 아니다. 우리의 천연자원 활용은 과도기를 거치는 과정에 전제돼 있는 것이고, 이를 통해 국민이 새로운 경제모델로 넘어갈 수 있는 문화·정치·물질적 조건이 형성돼야 한다.
여섯 번째 과제는 ‘신자유주의를 위한 쓸모 있는 바보들’이다
라틴 아메리카 진보주의 정부를 비평하는 이들은 우리 좌파가 이런 논리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진보주의 정부가 몇 주 안에 공산주의를 세우는데 실패했다고 비판하는 그들은 외국의 후한 지원을 받는 세미나에서 우리의 ‘무능력’을 비웃는다. 우리가 세계시장을 제압하지 못했고, 일거에 ‘행복한 삶'을 제공(심지어 법령으로!)하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이 세속적인 급진주의자들은 불가피하게 실패한 혁명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신자유주의의 쓸모 있는 바보들’ 역할을 한다. 구체적인 수단을 제시하지도 않고, 사회운동에 기반을 두거나 혁명적 원동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안도 전혀 하지 않는다. 무능력하지만 위풍당당하게 앞장서서 새로운 공세를 펼치는 그들은, 우리의 실패가 유일한 목표인 지배층을 위해 그들의 거짓 과격성을 발휘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 과제는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두 차례의 커다란 단계를 거쳤다. 첫 번째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에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의 마가렛 대처와 함께 시작돼 2005년경까지 확산됐다. 이 시기에 국가는 공공의 부를 민영화하고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용됐다. 우리는 현재 두 번째 단계에 있다. 민족국가들은 그들을 분산시키려는 신자유주의 앞에서 유용성을 잃어버렸다. 먼저 (자유주의적, 또는 신자유의적인) 야당의 형성 및 동원이 쉬워졌고, 국가의 예산 및 통화 지배권이 약화됐다. 그리스의 경우, 부채의 매커니즘을 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그러므로 좌파는 새로운 사회 블록에서, 국내외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한다.
글·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Alvaro García Linera
볼리비아 부통령. 2015년 9월 29일 에콰도르 수도 퀴토에서 발표한 컨퍼런스 연설문을 수정한 글이다.
글·이보미
한국외국어대 번역대학원 졸업
(1) Extra-activism, 500년전 서구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등 식민지에 정착시킨 자연약탈 경제모델. 식민지는 지배국가에 원자재(예: 카카오)를 공급하는 동시에 지배국가의 공산품(예: 초콜릿)을 비싼 값에 소비하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이다. 현재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