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식 사회주의 ‘차비스모’

2015-12-31     요레티 브라쇼&줄리앙 르보티에
   
▲ <공통적인 것들>, 2010- 요스만 보테로 고메즈


차비스모(Chavismo 차베스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부는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차비스모는 여전히 서민 계층 안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단 한 번의 선거 패배로 차비스모가 사라질까?


1999년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16년 간, 볼리바르 혁명은 대중의 힘을 이끌어내 밑에서부터 베네주엘라만의 새로운 실험을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대중의 결집은 정부가 한 것이 아니다. 정부는 점차 막대해져가는 대중의 힘이 설 자리를 인정했을 뿐이다. 새로운 시민으로 떠오른 이들은 차베스처럼 거무스레한 피부를 지닌, 빈민가에 거주하는 주민들이었다. 차비스모(Chavismo 차베스식 사회주의)가 국가의 재정을 늘리는데 필요한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지만, 차비스모의 역사적인 유산은 정치의 한 가운데에 ‘대중’이라는 경계를 세웠다는데 있다.

차비스모 정부는 체제를 개혁하지 못했지만, 체제 안에서 새로운 것을 생산해내며 ‘참여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중요시했다. 2002년 설립된 공공계획 지역위원회는 동네의 토지 사용법에 대해 각 도시의 시장(市長)들과 경쟁에 들어갔다. 2006년 등장한 주민 평의회는 대중이 참여하는 여러 조직(사회개혁미션, 문화 위원회 등)을 통괄하고(1), 지역 국토개발 프로젝트를 세웠으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중앙정부의 지원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이는 대중의 힘을 확신하는 차비스모 지향주의 정책의 일례이다. 주민 평의회는 지역자치의 초석을 다졌고, 2009년 주민평의회 연합인 코뮤나스(Comunas)의 등장 이후에는 국가 단위의 주민평의회로 발돋움했다. 코뮤나스는 대중의 힘으로 세워진 새로운 기구가 기존의 기구를 대신하는 성과처럼 여겨졌다.

주민들의 결집과 차비스모 정부가 공존한다는 것은 전자가 후자에 종속된다는 가정 없이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론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둘 사이의 긴장감은 팽팽했다. 그러나 사회 구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부와 (비록 예전부터 이어온 여정의 결과일지라도) 최근 인정받은 대중운동 간의 유례없는 상호작용이 바로 볼리바르 혁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운동은 생각만큼 빠르게 자율성을 희생시키지도 않았다. 따라서 전통적인 권력의 정치적 관행과는 다른 관행이 생겨났다.

차베스 대통령 임기 3년째에 야당, 대기업, 민영 미디어가 주도한 쿠데타가 일어났다.(2) 차베스는 그 대응책으로 행정 공무원들의 강도 높은 쇄신을 단행했다. 이 쇄신의 가장 큰 목적은 차비스모 프로젝트를 충실히 수행하게 만들고, 차비스모 정책 활동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었다. 혁명은 사회 운동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지지자들이 항상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주민 운동의 ‘개척자 캠프’에는 토요일 휴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은 자주적인 관리와 스스로 하는 건축을 선택했다. 하루 일과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아침 7시가 되면 성별과 연령을 불문한 모든 주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이 건축 장비를 준비하고 시멘트 블록을 채우고, 벽에 오르거나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은 매우 짧다. 하루의 끝에는 주간 집회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집회에서는 여러 달, 혹은 몇 년 동안 이어질 힘든 작업을 위한 공동생활 규칙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정부가 약속한 생산적인 발전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캠프의 방식에 대해서도 토론한다. 이 캠프가 단순히 주민들의 주거 공간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사람과 정치가 함께 꽃피울 수 있는 장소로 만들기 위함이다.

주민운동에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요구조건이 필요했다. 대중의 주거지를 건설하기 위해 공공재원을 위탁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토지 사용을 합법화하고, 재원과 필요한 물자에 접근이 가능해야 하며, 사회 운동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간의 동맹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 한다. 주민 운동 내에도, 차비스모 정치인들 내에서도 해결해야할 과제는 산적했고, 다른 세력들은 정부가 지원하고, 민간, 국내외 대기업이 보장하는 주거지 건설을 추진했다.

자율성과 의존성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참여적이고, 주동적인 베네주엘라의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에 직접 참여 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이끄는 주동자가 되는 것이다. 차비스모 정부가 대중운동을 관리한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의존성은 불균형한 경우가 많지만 늘 상호간에 존재하며, 세심하고 항상 가변적이다. 문화, 커뮤니케이션, 주거는 대중의 힘이 가장 많이 미치는 분야이다. 반면 군대나 석유 분야는 대중의 영향력과 거리가 멀다. 특정 조건 하에,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형식에 대한 과신 없이 대중의 힘은 정치계의 부패를 제한시킬 수 있다. 대중의 힘은 정당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베네주엘라에 뿌리내렸다.

12월의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야당은 벌써부터 새 입법안의 윤곽을 그리고 있다. 그 내용은 정부가 환수한 후 비생산적으로 사용했던 토지를 반환하도록 토지법 개정하기, 지금까지 다국적종자기업 몬산토의 진출을 가로막았던 종자 법 무산시키기, 차베스 생전에 도입했던 노동 법 해체하기 등이다.

2012년~2013년 대선에서 패배했던 엔리케 카프릴레스는 가장 서민적인 목소리를 대변하는 척하며 ‘뿌리부터 차비스모’라는 방자한 패거리들보다는 더 능란했다(<Correo del Caroni>, 2014년 10월 4일)(3). 그는 매우 능숙하게 야권 연합 프로그램 162가지 사항에서 시간을 끌며 목표를 슬쩍 빠뜨렸다. 그의 목표는 구체적으로 베네주엘라 공화국에서 차베스식 사회주의 색을 버리고 ‘민주주의적 본질을 되살리기 위해’ 차비스모 법안들을 개정하는 것이다. 남은 문제는 이 민주주의 안에 대중을 위한 자리는 어디인가, 혹은 대중은 어떤 자리를 야당에게 넘겨줄 준비가 됐나 하는 점이다.


글·요레티 브라쇼 Yoletty Bracho, 줄리앙 르보티에 Julien Rebotier
두 사람은 각각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정치학 박사과정과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으로 활동중이다.


번역·김영란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졸업.

 

(1) Renaud Lambert, <대중 참여가 베네주엘라의 ‘구식 정부’를 움직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9월
(2) Maurice Lemoine <대중이 살려낸 우고 차베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2년 5월
(3) <Lineamientos para el programa de govierno de unidad nacional(2013-2019)>, Mesa de la Unidad Democrática, Caracas, 2012년 1월 23일, www.unidadvenezuel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