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폭풍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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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통적인 것들>, 2010- 요스만 보테로 고메즈 |
1998년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20번의 선거에서 무려 19번 승리를 거두는 동안, 베네수엘라 좌파에게 ‘패배’는 잊혀진 단어였다. 그러나 지난 12월 6일 베네수엘라 국회의원 선거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볼리바리안 혁명에 큰 상처를 남겼다. 야권이 총 167석 중 112석, 전체의 67%에 달하는 의석수를 차지한 것이다. 야권은 이번 승리로 1998년 12월 6일 대선 이후 꼭 17년 만에 의회 권력을 되찾았다. 과연 좌파는 이번 패배로 주저앉게 될 것인가?
선거에서 패배한 베네수엘라 연합 사회당(PSUV)과 좌파 당들은 득표율 41.6%로 유권자 560만 명의 지지를 받았고, 우파인 민주연합회의(MUD)는 득표율 54.4%로 유권자 750만 명의 지지를 받았다. 2013년 대선과 비교하면, 야권은 40만 표를 얻었고 차베스주의자들은 200만 표를 잃은 셈이다. 우파의 승리는 우파 자체의 능력이라기보다, “투표장에 갈 바에야 낚시나 하러 가겠다”는 대다수 볼리바르주의자들의 무력감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1) 베네수엘라 국민들 중 상당수가 여기에 동의한다. 여당 지지자들의 책임 회피는 우선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200%에 달하고, 국민들은 지속적인 물자부족에 시달린다. 생필품을 사려면 몇 시간을 줄서야 한다. 그나마 정부가 가격을 관리하는 생필품이라, 그렇게라도 살 수 있는 것이다.(2)
2002년 쿠데타가 일어났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지난 17년을 통틀어 야권이 볼리바리안 혁명을 전복하겠다는 목표에 지금처럼 가까워진 적이 없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야권은 행정 분야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다른 대부분의 의회 민주주의와는 달리 5권 분립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에 선거관리위원회와 ‘시민권력기구’가 추가된 것으로, 시민권력기구는 재정 감독관, 검찰, 중재인을 포함한다. 행정부 멤버들 외에도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국회에 입성한다. 즉, 현재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과거의 차베스 지지자들인 것이다.
베네수엘라 헌법은 국회의원들에게 무제한적인 특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의석의 2/3를 차지한다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고, 정부를 구성하는 주체는 여전히 대통령이다. 따라서 의회가 국가 전체를 좌지우지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 번째는 가장 과격한 안으로, 제헌 의회를 소집해 1999년 헌법을 개정한 후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는 약한데, 헌법 개정을 통해 몇몇 주요 부분에 대한 기본법을 수정함으로써 정부의 기타 분야에 대해 의회에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세 번째는 MUD 소속 의원들이 여당의 주요 인물들,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법원, 검찰청, 선거관리위원회의 주요 멤버들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초선 의원들로서는, 위의 세 가지 모두 위험 부담이 크다. 우선, 우파 의원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사퇴하거나 반대표를 던지면, 우파는 2/3이라는 과반수를 얻지 못하고, 결국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MUD가 12개의 정당들이 모여 구성한 정당 연합인데다 일부 정당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이러한 가능성을 마냥 배제할 수 없다. 모든 우파 의원들의 의견을 균열 없이 통일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국회 내부에서는 각종 이면 공작이 난무한 지 오래고, 친정부 세력과 반정부 세력 간의 반목을 포함해 끊임없는 화합과 분열 행태가 있었음을 고려하면, PSUV가 압도적으로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MUD보다 우위에 서게 될 가능성이 있다.
1999년 헌법과 관련된 상기 세 가지 안들 중 우파의 입장에서 가장 간단한 것은, 정부의 핵심 요직에 있는 인물들을 차례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먼저, 탄핵 절차의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대법원 멤버들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려면 검찰이 국가 사법부 최고 기관인 대법원 멤버들을 기소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검찰은 마두로 대통령의 편이다.
네 번째 선택지도 있다. 국회도 필요 없고,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국민투표를 시행하는 것이다. 경제 위기로 인해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야권은 이것이야말로 2019년 1월 임기 전에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안 역시 안전하지는 않다. 국민투표를 진행하려면 등록된 유권자 20%의 지지가 필요하다. 과거 2004년에 야권이 차베스 대통령에 맞서 이 방법을 쓰려 했을 때, 20%에 해당하는 유권자 250만 명의 서명을 얻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게다가 그 이후 선거인단의 수는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인구증가도 원인이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 때까지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던 인구들도 등록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민투표를 시행하는데 필요한 서명인 수는 400만 명에 달한다. 아무리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다고 해도, 400만의 서명을 얻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야당이 할 수 있는 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야당 대변인이 이미 예고했듯, 차베스 시절에 만들어진 일부 진보적인 법들을 즉각 폐지할 수 있다. 우선 폐지 대상들을 살펴보자. 불모지에도 세금을 부과하고 한 사람이 5,000ha 이상의 토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한 2001년 농지개혁법(3), 대량해고를 금지하고 주당 노동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인 20013년 노동법, 콘텐츠 검열을 허용하고 제3섹터, 즉 ‘공동’ 미디어의 성장을 촉진하는 2004년 미디어책임법(4), 물가조정법이 있다. 그리고 몇몇 다자간 협정들도 포함되는데, 카리브해 주변 국가들에 원유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페트로카리브(Petrocaribe), 베네수엘라가 주축이 돼 설립한 국제 방송 네트워크 텔레수르(Telesur)에 대한 자금 지원,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국영 대기업에 대한 공공기금 투입이 있다.(5) 대표적인 국영 대기업으로는 우파가 다시 민영화하려는 전화회사가 있다. 또한 야당은 레오폴도 로페즈와 같이 부정부패와 폭력으로 수감 중인 ‘정치범’들을 위한 사면법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6)
사실 현재 베네수엘라의 급선무는 바로 마두로 대통령 시기에 엄청난 경제적 혼란을 초래했던 환율통제 시스템을 손보는 것이다. 그러나 야권은 이 부분에 대해 느긋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 대통령의 세력을 약화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굳이 바꿀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환율에 손을 댈 경우 국민들의 생활이 단기적으로는 더 힘들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야권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7)
조만간 베네수엘라에 갈등과 분쟁의 시기가 닥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파가 권력을 다시 장악한 만큼, 차베스 시절의 흔적들을 가능한 한 없애려 할 것이다. 그러나 우파의 운신의 폭은 매우 제한적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이 정부 내에서나 국민들 사이에서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28면 기사 참조). 또한 차베스 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 후, 현재 재정비와 쇄신에 힘쓰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복귀 운동 역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대통령에 의하면(2015년 12월 15일), 선거결과 발표 후 차베스 세력을 구성하는 마두로 대통령과 사회운동 측은 “볼리바리안 혁명의 부흥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헥토르 나바로 전 고등교육 장관, 호르헤 지오르다니 전 계획부 장관, 미구엘 로드리게즈 토레스 전 내무부 장관은 정부 정책의 수정과 관련해 각종 비판과 건설적인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거리 집회에서는 차베스주의자들이 모여 선거패배의 원인을 분석한다. 정부는 모든 시와 행정구역의 대표들을 소집해 화합 주간을 기획했다(28면 기사 참조). 이러한 노력의 효과는 정부가 사회운동 측의 제안들, 특히 경제분야의 조언들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글·그레고리 윌퍼트 Gregory Wilpert
<Changing Venezuela by Taking Power : The History and Policies of the Chávez Government>(Verso, 런던, 2007)의 저자
번역·김소연 dec2323@empas.com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투표 참여율은 74.25%로, 66.45%였던 2010년 국회의원 선거 때보다 높았다.
(2) 그레고리 윌퍼트, <석유는 베네수엘라 경제에 약이 될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3년 12월호.
(3) 모리스 르무안, <베네수엘라, 약속의 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0월호.
(4) 르노 랑베르, <남미 좌파 정부와 우파 언론의 표현 자유 싸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2년 12월호.
(5) 이 협정에 의거해 카리브해 주변 국가들은 베네수엘라로부터 원유를 시가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6) 프랑크 고디쇼, <라틴 아메리카를 뒤흔드는 워싱턴의 검은 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5년 6월호.
(7) 라당 셰르, <부패의 늪에 빠진 베네수엘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5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