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한 브라질 미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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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마지코>, 2001 - 베아트리츠 밀라제스 |
브라질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선 가운데, 미술시장이 유일한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5년 9월에 열렸던 제5회 리우데자네이루 국제아트페어(ArtRio)는 대성황을 이뤘다. 입장하려면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던 리우 아트페어에는 브라질 화랑뿐 아니라 해외 화랑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이러한 성공은 브라질 미술계에서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00년대 브라질이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브라질 예술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브라질 백만장자들이라는 새로운 수집가 그룹이 형성됐다. 2015 리우 아트페어에 참가한 파리의 베르나르 세송 갤러리는 룩셈부르크와 제네바에 지점을 두고 있고 클로드 비아라를 비롯 쉬포르‧쉬르파스 운동 미술가들을 대표한다. 직원들은 기대에 부풀어있다. 베르나르 세송 갤러리의 공동 창업자이자 대표인 로익 베네티에르의 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리우 아트페어에서 우리 갤러리는 보통 10~15점을 판매한다. 투자처를 찾기 위해, 또는 해외작가의 좋은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매년 새로운 수집가들이 아트페어를 찾는다.”
베르나르 세송 갤러리 전시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바르셀로나에서 온 마요랄 갤러리가 있다. 스페인 미술시장이 침체된 시점에 스페인 모던 아트 작품으로 브라질 구매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피카소의 도자기는 1만5000 달러, 달리의 유화는 20만 달러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미술시장에서 투명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탓에 최종 판매가는 알기 어렵다. 어쨌든 조르디 마요랄 대표는 “경제 침체기에 피카소나 달리 같은 화가들의 작품은 안전한 투자품목이다”고 하며 판매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올해 8월부터 브라질 경제는 공식적으로 침체로 돌아섰다. 브라질 통화인 레알의 가치는 7월과 9월 사이에 25%나 하락했다. 이러한 태풍 속에서 모던 아트는 보장된 투자처인 셈이다. “피카소와 달리의 작품은 묻지 않고 투자해도 된다. 반면 컨템퍼러리 아트 작품은 가격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다.”
리우 국제 아트페어의 공동 창립자인 브렌다 발란시는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해외 갤러리 수가 매년 늘어나는 것이 놀라울 게 없다고 한다. 리우 아트페어는 2005년 시작된 상파울루 아트페어에 이어 브라질의 두 번째 아트페어로 2011년 1회 행사 후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브렌다 발란시는 리우 아트페어의 성공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20여개의 갤러리가 참가하는 소규모 행사를 상상했는데 1회 대회에 벌써 82개 갤러리가 참가했다(참고로 남미 최대의 국제 아트페어인 2015 상파울루 아트페어에는 120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미술계 인사들은 수집가가 모두 상파울루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브라질의 미술 수집가들은 전통적인 부자 가문으로 브라질 왕국 시대 이래로 같은 가문의 사람들이다. 후에 이 가문들은 상파울루로 근거지를 옮겼지만 그들의 뿌리는 여전히 이곳 리우이다.”
리우 아트페어가 첫 해부터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관세인하 혜택이다. 리우 데 자네이루 주(州) 주민이 아트페어에서 해외작품을 구매할 경우 관세를 41%에서 20%로 인하해 준다. 대부분의 해외 갤러리 역시 관세인하가 리우에 온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이미 판매된 작품을 아트페어 기간에 재판매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관세인하 혜택 덕에 리우 아트페어는 2015년에도 성공을 거둘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화랑 측의 얘기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베아트리즈 밀라제스의 유화 ‘오 마지코(O Magico)’는 2008년 소더비 경매에서 105만 달러에 낙찰됐다. 현존하는 브라질 미술가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높은 가격이다. 현 미술시장의 여왕인 아드리아나 바레장(1)과 마찬가지로 밀라제스는 브라질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더 이상 브라질을 떠날 이유가 없다. 1982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브라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전혀 몰랐다. 세계 역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독재 정권(1964~1984)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된 후 리우에서 처음으로 전시 커미셔너를 만났고 그 후에 해외 전시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해외에서 관심을 가져야 브라질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밀라제스의 경우는 1995년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미술관에서 전시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브라질을 떠나 파리에 정착했던 로베르토 카보 역시 브라질 미술계의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브라질을 처음 떠났을 때 브라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미술시장도 없었고 수집가도, 예술가도, 전시장과 갤러리도 몇 없었다. 15년 후 브라질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이제 미술가도 작품활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아트페어 덕분이다. 리우와 상파울루 외에도 브라질리아, 벨루 오리존치, 사우바도르에도 아트페어가 개최되고 있다.”
독립 전시 커미셔너로 활동하고 있는 키키 마주켈리는 10년 전 런던으로 이주해 현재 라틴 아메리카 현대미술을 알리는 피나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수집가들 끌어들이는 브라질 미술시장
“지난 10년 동안 브라질 미술계는 급격하게 변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변방 예술’에 관심을 보였고 덕분에 브라질에서 그림 가격이 올랐고 미술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브라질 수집가들이 국제시장의 중요한 ‘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릴리 사프라라는 한 브라질 수집가는 2010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걷는 남자 I’를 1억410만 달러에 구매했고 루이 15세가 소유했던 코모드를 베르사이유 궁에 돌려주기도 했다. 이를 보면 ‘플레이어’란 표현이 적합하지 않은 듯하다. 로베르토 카보는 브라질 수집가들의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리우, 상파울루, 뉴욕에 지점이 있는 ‘나라 로에슬러’ 갤러리의 브라질인 고객 수가 500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적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브라질 소더비의 대표인 카챠 민들린 레치 바르보자는 “브라질 수집가들은 국제 미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여러 유명 미술관 이사회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브라질 수집가들의 위상을 설명했다. 브라질 소더비는 매년 뉴욕에서 라틴 아메리카 예술품 경매를 개최하고 있다. “브라질 미술시장은 경제 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또한 레알 화의 가치 하락이 오히려 해외 수집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브라질 화랑 협회의 분기별 보고서(2)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미술작품 판매 가격이 평균 27.5% 증가했다. 협회에 소속돼 있는 갤러리의 절반은 2000년 이후에 생겨났다. 경제침체에도 불구하고 “미술시장은 계속 성장 중이며, 주요 갤러리의 절반이상이 매출 증가를 보였고 채용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가 설계한 니테로이 현대미술관은 주앙 사타미니가 기증한 1,217점을 전시하기 위해 1996년 개관했다. 니테로이 시가 미술관 재정을 100% 지원하고 있다. 리우 현대미술관은 지우베르트 샤토브리앙 컬렉션 7,000점을 기증 받았으며, 미나스 제라이스 주 200만㎡ 위에 세워진 세계 최대 야외 미술관인 이뇨칭 미술관은 베르나도 파즈 컬렉션을 대여 받아 전시 중이다. 이렇듯 브라질의 미술관들은 작품을 구매할 예산이 없어 대부분 기증이나 대여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콘수엘로 바사네지는 리우에서 라르고 다스 아르치스라는 예술가 레지던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입주 예술가 대부분이 자국에서 지원을 받은 해외 미술가들이라고 한다. “브라질 미술가들, 특히 낙후지역인 동북지역의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싶지만 재정지원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외국 미술가들은 다양한 지원정책의 혜택을 받고 있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하지만 브라질이 예술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화 분야 연방 예산이 2003~2013년 4배 증가했으며 전시회, 미술관, 대학교의 미술관련 학과들이 계속 늘고 있다. “문화 분야가 어느 산업 분야보다도 역동적으로 성장했다. 정부는 전시회, 미술관, 페스티발 등 다양한 분야에 지원했다. 덕분에 예술가들은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고 이름을 알릴 기회를 제공받았다. 하지만 정부는 미술시장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정책을 쓰기도 했다.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툴리우 바르가스 재단이 발행하는 문화 경제 보고서의 저자인 실비아 핀구에루트는 말한다.(3)
수집가 입장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작품 가격의 41%나 되는 높은 관세다. 참고로 미국은 예술작품에 대한 수입관세가 없고 프랑스는 5%다. 현대 라틴 미술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갤러리 중 하나인 취리히 소재 다로스 갤러리는 2007년 리우에 예술센터를 개관했지만 전시할 작품을 들여올 수 없었다. 결국 올해 문을 닫았다.
“세계 최대의 가고시언 갤러리는 높은 관세 때문에 올해 리우 아트페어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마이애미 아트페어가 성황을 이뤘다. 마이애미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브라질 부자들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 마이애미 아트페어로 몰렸기 때문이다.(4) 브라질 미술시장은 1951년 시작한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더불어 성장했지만 자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터무니없이 높은 관세와 관료주의 때문에 벌써 정체 징후를 보이고 있다.” 파리 에스트 대학교와 프랑스 대학 연구소에서 예술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는 알렌 크맹 교수의 진단이다. 브라질 정부 역시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현재 분위기에서는 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미술가들을 위협하는 또 다른 함정이 있다.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미술가들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추구하기 보다는 ‘팔릴 만한’ 작품을 제작한다는 점이다. 설치 미술가 호산젤라 레누는 갤러리 전시보다는 기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작품을 판매 중이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녀의 평가는 신랄하다. “젊은 작가들이 벌써부터 화랑이 취급하기 용이한 ‘소품’을 만들면서 자신들의 창작세계를 스스로 좁히고 있다. 하지만 예술가라면 작품 판매보다는 창작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미술시장 성장이 낳은 후유증이다. 이전에는 자유, 가능성, 실험정신이 살아있었다.”
글·안 비냐 Aanne Vigna
중남미 전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진보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번역·임명주 mydogtulip156@daum.net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점령하라> 등이 있다.
(1) ‘Le marché de l’art contemporain 2015. Top 500 des artistes contemporains (2015년 현대 미술시장. 상위 500대 예술가‘ (2014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판매), Artprice, Saint-Romain-au-Mont-d’Or, 2015. 10.
(2) ‘4e étude du marché de l’art contemporain au Brésil (브라질 현대미술 시장 4차 보고서)‘, Latitude-ABACT, São Paulo, 2015. 9.
(3) <La culture dans l’économie brésilienne (브라질 경제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 Fondation Getulio Vargas, Brasília, 2015.
(4) Emmanuelle Steels, Anne Vigna, ‘Fièvre acheteuse des Brésiliens à Miami (브라질 신중산층의 ‘마이애미 사재기’)’, <Le Monde diplomatique>, 2013. 2.
*박스기사
수치로 본 브라질 미술시장
2014년 판매 작품 수 : 5,750점 (작가 900명)
매출액 : 360만 레알(약 10억 7천만 원) 이상,
전체 60% 이상의 갤러리
구매자 구분 (판매액으로 본 비율)
- 브라질 개인 수집가 : 73%
- 해외 개인 수집가 : 12%
- 브라질 기관 : 12%
- 해외 기관 : 4%
작품 수출액 : 6,010만 달러 (2011년),
8,220만 달러 (2014년)
판매 작품 구분 (2014년)
- 그림 : 24%
- 사진 : 23%
- 조각 : 19%
- 설치 : 2%
- 비디오 : 1%
출처 : Programme Latitude, 상파울루,
2014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