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켄트리지 예술의 불편함을 다시 읽다
당신이 미술 전공자나 평소 꾸준히 현대미술 전시를 관람해온 미술 애호가가 아니라면,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 ‘도대체 현대 미술은 왜 이리 난해할까?’라는 물음을 한 번은 떠올렸을 것이다. 현실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예술의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현대미술은 언제나 그러한 방식으로 동시대의 관객들에게 난감함을 선사해 왔다.
당시에는 충격과 논란의 대상이었을지라도, 이미 연구 및 평가된 내용을 교과서에서 학습하고 마주할 수 있는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은 그나마 낯설지 않다. 그러나 동시대에 활동하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 앞에서 경험하는 낯선 느낌, 소통과 해석의 어려움은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혼란과 공포로 확장돼 다가온다.
사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현대미술의 광경은 무엇을 말하는지 곧장 알아채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고,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주는 아름다운 이미지는 아니다. 어렵고 불편하고 모호하며, 가끔은 소모적이고 거대하기도 하다. 이 아름답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것들이 어떤 가치가 있으며 이것으로 도대체 무엇을 할까 의문도 든다. 아마 당신이 이번 주말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의 전시장을 들어선다면 아마도 그러한 의문을 한 번 더 품게 될 것이다. 투박하고 거친 드로잉,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운 거대한 설치 작품 혹은 공간, 설치가 끝난 것인지 공사가 진행 중인지 끝난 건지 알 수 없는 전시장, 그리고 그 안에서 맥락 없이 뚝뚝 끊기는 이야기들. 전시의 주인공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 1955~)가 당신에게 선사하는 ‘오늘의 예술’이다. 다행히도 미술관에서는 혼란스러운 관객을 위해 상당히 충실한 리플렛을 제공한다는 점이 조금은 위안이 될 것이다.
윌리엄 켄트리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났다. 남아공의 근현대사는 인종차별정책을 빼 놓고 말할 수 없는데, 특히 켄트리지가 태어난 시기는, 네덜란드 출신 아프리카너 국수주의자들이 펼친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분리 정책이 강화돼 인종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던 때였다. 그들은 남아공의 주민들을 백인, 유색인, 인도인, 흑인으로 인종별 그룹을 나누어 등록했고, 이를 신분증에 표기했다. 물론 여기에서 가장 상위 그룹은 백인이고, 하위 그룹은 흑인이었다. 흑인들은 정해진 구역에서 거주하고 마음대로 이주할 수 없었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했다. 대다수가 기피하는 저임금 노동만 할 수 있었고, 백인들과 같은 공공시설을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ANC)의 활동을 금지하고, 인종차별정책에 반발하는 그들의 움직임을 억압했다.
목탄이라는 소재로 투박한 진실성과 서정성 담아
켄트리지는 그러한 시대에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백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육의 영향으로 인해,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문제에 예민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유년기부터 백인 그룹도 아니고 흑인 그룹도 아닌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정 짓고, 질문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으나, 한 번도 정면으로 맞서지는 않았던, 특별대우를 받았던 백인 엘리트들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비록 아프리카 민족회의와 함께 궐기하지는 않았더라도, 자신이 속한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계속 말해왔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아파르트헤이트 하의 인종차별과 폭력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 받아왔는데, 그 작업 방식이 독특하다. 우선 목탄으로 드로잉을 한 후에 스탑모션으로 촬영하고, 이를 지우고 그 위에 다음 동작을 그린 뒤 다시 촬영하는 것을 반복해 애니메이션으로 완성하기 때문에, 화면에는 이전 드로잉의 흔적이 조금씩 남아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목탄이라는 소재에서 느껴지는 투박한 진실함과 서정성이, 남아공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폭력사태와 당시의 사회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의 목소리에 힘을 더한다.
그는 이러한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후 점차 발전해 2000년대부터는 음악, 영상, 콜라주, 조각 등 갖가지 장르를 융합한 다매체 설치 작업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학과 아프리카학, 미술, 연극, 마임을 전공하고 극단과 방송국 등에서 아트 디렉터로 근무했던 그의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배우고 일했던 자신의 경력처럼, 그의 작품 역시 가능한 모든 매체를 통해, 한 가지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종합적이고 다층적인 예술의 모습을 실현한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윌리엄 켄트리지 - 주변적 고찰>(15.12.1~16.3.27)은 켄트리지의 초기작부터 최근 작품까지 총 망라한 국내 최초의 개인전이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서는 개관 이래 최대 규모의 기획전이다. 아파르트헤이트 하의 남아공의 풍경 및 이후 사회상을 담은 목탄 드로잉 애니메이션 ‘소호와 펠릭스’ 연작, 식민주의의 압박과 갈등을 이야기하는 “나는 내가 아니고, 그 말은 내 것이 아니다”, 인종차별주의에 저항하다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이들의 이미지에 역설적인 제목을 붙여 부조리함을 더하는 ‘사랑이 충만한 캐스피어’ 등 남아공의 사회상을 담은 작품뿐만이 아니라, 남서아프리카의 나미비아에서 벌어진 인종 대학살을 소재로 미니어처 극장을 제작한 작품인 ‘블랙박스’, 또 카셀 도큐멘타(1)에 출품해 찬사를 받았던 ‘시간의 거부’, 중국 문화혁명을 소재로 이상적인 유토피아주의를 다룬 ‘양판희에 대한 메모’ 등 다양한 역사적·문화적 스펙트럼을 담은 대표 작품들을 통해 켄트리지의 예술세계를 전반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세상을 다시 읽는 예술의 거침없는 불편함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형영상설치 작품들이다. 2008년 작인 ‘나는 내가 아니고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다’에서 켄트리지는 여덟 개의 스크린을 사용해 부조리한 짧은 스토리에서 기반한 각각의 장면들을 상영한다. 이는 서로 연결되지 않을뿐더러, 이해가 불가능한 이미지의 파편처럼 보임으로써 관객에게 혼란을 제공한다. 연극과 퍼포먼스, 그림자의 왜곡과 인형극, 프로젝션과 같은 다양한 매체의 혼용은 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켄트리지는 궁극적으로 이 작품의 부조화를 통해 식민주의의 압박과 혼란스러운 사회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에서 관객이 고전적인 아름다움이나 마음의 평화를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곧바로 이해 가능한 이미지로 평온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에 들어선 관객이 부조리와 모순, 이질감을 직접 경험하며 불편한 충격과 혼란을 느끼도록 하고, 그 불편함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건네는 것이 켄트리지의 대화 방식이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부조리와 모순, 이질감, 무질서 등은 사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사회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아파르트헤이트는 철폐됐다지만, 아직 남아공에는 인종차별의 흔적과 기억이 남아 있으며, 혼란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작가 역시 그러한 사회에서는 부조리와 모순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으며, 이 무질서한 전시장은 사람의 머릿속과 같다고 했다. 그렇다. 미술이 단순히 아름답기에는 그것이 반영하는 우리의 사회와 우리의 머릿속이 너무도 복잡하고 어지러우며,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현대미술의 가장 큰 역할은, 아름다운 것을 그대로 재현해 미적 쾌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 보다 불편함과 이질감, 충격으로 관객을 일깨우고 질문을 던져, 당연하게 여겨온 것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돕는 것에 있다.
켄트리지의 전시 제목인 ‘주변적 고찰’은 그의 렉처 퍼포먼스에서 가져온 것으로, 중심에서 개진되는 논리적 사고의 전개가 아니라, 한 주제에서 자유롭게 연상되거나 확장돼 나가는 사고의 흐름을 뜻하는데, 그는 전시의 제목에 걸맞게 관객에게 쉼 없이 질문을 던진다. 사회와 개인, 역사와 미래, 기억과 망각, 예술과 정치 등을 넘나드는 그의 질문들은 그 깊이와 넓이가 너무도 다양해서 단번에 모두 받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그 불편한 질문들을 건네받아 사고를 거듭하다보면, 부조리하고 무질서하며 비현실적인 이것이, 사실 이 현실 세계와 무엇보다 가까이 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전시장을 나온 후에는, 이해 불가능한 작품 앞에서 느꼈던 막막함과 공포가 현실의 부조리 앞에서도 어렴풋이나마 그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던 역사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내가 속한 이 곳의 부조리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켄트리지가 우리에게, 혹은 오늘의 현대미술이 관객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며, 켄트리지 자신은 정치적 예술이나 사회 고발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현실 사회를 돌아보게 되는 이유이다.
이 즈음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아름답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예술이 어떤 가치가 있으며,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예술로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예술은 식량이나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정책을 만들거나 복지를 베풀지도 않으므로 그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이는 소모적인 놀음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예술에서 질문을 구하고 영감을 얻은 인간은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중심을 벗어난 주변의 관점으로 세상을 다시 읽는 예술, 영민하고 섬세한 눈으로 남들이 보지 못한 결을 읽어내는 예술, 거침없이 불편함과 충격을 안겨주는 예술, 치열하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의 목소리가 중요한 것이다. 그들이 던지는 논제의 크기는 각각 다를 수 있지만, 지금 여기의 현실과 등을 맞대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등하다.
지금 여기, 이 사회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 사회와 우리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보고, 듣고, 느끼고, 고민해 답을 구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예술가의 목소리는 그러한 관객의 존재로 인해 더욱 단단하게 완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평생을 고민해 던진 질문들이 곳곳에 가득한 윌리엄 켄트리지의 전시는, 오래도록 바라보고 천천히 음미하고 깊게 고민해 다시 찾을만한 가치를 지닌다.
글·김지연
홍익대학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무석사를 받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2006~2008년) 싸이월드 페이퍼와 올리브TV홈페이지 등에 미술에세이를 연재했다.
(1) Kassel Documenta, 독일 카셀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미술행사. 회화·사진·조각은 물론 퍼포먼스·설치·아카이브·필름 등 장르의 경계가 없는 실험적인 예술로 현대미술의 미래상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권위 있는 행사 중 하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