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의 종말을 향해서?

2015-12-31     닐스 안데르손

대학과 외교 분야에 몸을 담았던 장 프랑수아 드 레이몽이 외교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이다. 드 레이몽은 “외교의 본질은 인류의 생존과 존속을 위한 상호 이해 필요성을 상징한다”(1)고 주장한다. 그의 정교하고 풍부한 예시가 담겨있는 성찰은 철학, 역사, 인류학의 합작이다. 드 레이몽은 이상주의적인 방식으로 성찰하는데, 그의 성찰을 잘 보여주는 구절을 소개한다. “말이 폭력을 없애주기 때문에 외교 활동은 본질적으로 언어 영역에 속한다.”

세계화로 인해 나타난 새로운 힘의 균형을 생각하면, “외교 임무는 초국가적인 명령과 주권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거나, 신뢰할 수 없는 세상의 권력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계급을 타파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대서양 조약에는 ‘민주적인 평화’라는 개념이 있다. 하지만 레이몽은 인본주의를 통해 저서에 윤리적인 성격을 심어 권력 관계에서 타인의 위치를 정의한다.

한편, 프랑스 대사 미셸 졸리베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을 써 외교관에 대한 환상을 박살낸다.(2) 브룬디, 뉴질랜드, 네팔, 그 외 여러 나라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졸리베는 ‘가식적이고 네트워크가 중요한 세계’인 외교가 권력자들과 가깝다는 야심과 오만이 가득찬 영역이라고 말한다. 졸리베의 여정은 외교관이 걸어 온 길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외교관이란 자국의 기업들을 위해 일하는 ‘비즈니스맨’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교훈적인 에피소드로 가득한 졸리베의 이야기는 다양한 만남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윤리와 실용주의 사이. 의도와 형식이 전혀 다른 두 저서는 공통적으로 “외교가 종말을 맞이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암시한다. 이는 역사가 피에르 그로세의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그로세는 가정을 뒷받침하는 여섯 가지 요소를 말하는데 그 중 한 가지는 미디어가 특정 대상을 악마처럼 만드는 수법이다. 1990년대 초에는 냉전이라는 장애물에서 해방된 유엔이 설립자들의 역사적인 비전을 실현해 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 리비아에 이르기까지 현실은 외교보다 야만적인 폭력이 앞섰다. 이러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적이 더 이상 정치력을 가질 수 없도록 짓밟는 것이 목적이기에, “협상 따위는 필요 없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이다.

하지만 갈갈이 찢어진 중동 지역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해결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외교가 절실하다. 그로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익을 추구하는 외교’란 ‘피해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방관’의 태도와 ‘방화범’의 태도를 적절히 조화시키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닐스 안데르손 Nils Andersson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1) Odile Goerg, <Fantômas sous les tropiques>, Vendémiaire, 파리, 2005년
(1)Jean-François de Raymond, <L'Esprit de la diplomatie>(외교의 정신), Manitoba-Les Belles Lettres, 파리, 2015년
(2)Mich디 Jolivet, <Un ambassadeur se rebiffe>(어느 대사의 반항), Les Editions du Net, 쉬르슨, 2013년
(3)Pierre Grosser, <L'Avenir de la diplomatie>(외교의 미래), Institut Diderot, 2015년 7월.
홈페이지 : www.institdiderot.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