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평

2015-12-31     르몽드디플로마티크

 

<분단의 행위자-네트워크와 수행성>(동국대학교 분단/탈분단연구센터, 한울)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이용해 한반도 분단연구를 새롭게 조망하고 있다. 또한 분단을 존재가 아닌 행위로 파악하는 인식론적 전환을 통해, 분단의 실재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가 수행되는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분단의 수행성 차원을 주목한다. 이 책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라는 새로운 관점과 분단의 수행성이라는 전환적 인식으로 한반도 분단연구를 새롭게 해석하는 동시에, 구체적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탈분단 패러다임을 모색하고자 한다.

<기록시스템 1800·1900>(프리드리히 키틀러, 문학동네)은 동시대 가장 경이로운 미디어학자이자 이단적 문학자 키틀러의 대표작이다. 문학의 역사를 정보시스템의 변천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한 이 책은, 발표 당시 문학 연구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교체를 이뤄냈다는 찬사를 받은 한편, 동시대 문학자들에게 격렬한 반발을 사며 학계에 파란을 일으킨 저서다. 묻혀졌던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적 관점에서 엮는 사유의 독창성과 언어의 향연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오늘날 우리가 거주하는 ‘존재의 집’을 밝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젠더 허물기>(주디스 버틀러, 문학과지성사)는 전작 <젠더 트러블>로 철학과 페미니즘 학계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 저자 버틀러가 퀴어, 여성, 유대인, 철학자로 스스로를 전면화하고 개인의 역사를 드러내며 써 내려간 작품이다. 남자와 여자라는 규범적 젠더 개념을 허물고, 개별적이고 단독적 주체인 '나' 대신 '우리'라는 주체를 호명해낸다. 또한 차이를 수용하는 올바른 방식으로서 문화 번역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등 소수자들의 삶의 문제를 마주하면서 슬픔, 애도의 정치학을 구사하는 버틀러의 급진적인 논제들은 독자들에게 공감과 대화, 비평과 생각의 전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공부 중독>(엄기호·하지현, 위고)은 이 시대의 성공 판타지, 공부라는 만능키를 두고 사회학자 엄기호와 정신과의사 하지현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강의실과 진료실, 각자 다른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만나온 저자들은 현재 대한민국 청소년들에 대한 걱정과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 사회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교육뿐 아니라 취업, 부동산, 노후, 경제 불평등까지 거의 모든 영역의 사회문제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공부라는 블랙홀이 2015년 현재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게걸스럽게 잠식하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아나키스트의 애인>(김혜영, 푸른사상)은 사회와 정치, 문학과 예술 등의 주제에 대해 고민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소소한 일상까지 자연스럽게 담아낸 김혜영 시인의 산문집이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 문학과 예술에 대한 다채로운 미각, 일상적인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 담겨있다. 긴 시간에 걸쳐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것으로,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구성돼있지만 그 모두가 김혜영 시인이 추구하는 문학의 지평에 닿아 있다. 오랜 친구와 커피 향 그윽한 카페에서 대화하는 듯, 자연스럽고 소탈한 문체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의 피>(카트린 클레망, 작가정신)는 고모와 함께 종교의 세계를 둘러보며 난치병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전작 <테오의 여행>에서 테오의 12년 후를 그린 책이다. 호기심 많던 열네 살 소년 테오가 인도주의 의사이자 환경운동가가 되어 아픈 고모와 함께 다시 여행을 떠나 병든 지구를 둘러보는 내용으로, 마치 환경 문제 보고서와도 같은 소설이다. 테오는 고모와 함께한 여정에서 정신분석학자 프렘, 대승려 마한트지, 민족학자 발랑탱 장비에, 코제마 원자력 발전소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과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며, 점차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