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의 정치적 분열증을 넘어

[특집-낯설게 본 변절과 전향]
폭력적 지배와 미학적 저항이 연출한 적대적 공생 관계
‘정치’-‘윤리’ 동시에 상상하는 정치적 개인이 다수돼야

2009-11-05     남재일 | 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

‘전향’(轉向)이란 말의 의미는 ‘방향을 바꾸다’이다. 이 단어 자체에는 가치판단의 단서가 될 만한 방향 전환의 내용에 대한 지시가 없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사에서 ‘전향’은 ‘정치적 신념을 바꾸다’란 의미로 사용돼왔고, 그중에서도 주로 좌익에서 우익으로의 방향 전환을 의미했다. 우에서 좌로 전향한 경우는 ‘포섭’됐거나 ‘세뇌’당한 것으로 불렀다. 이러한 명명은 이데올로기 자체는 좌보다 우가 우월한 이데올로기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전향자 개인을 놓고 보면 ‘전향자’는 정치적 신념이 있던 자이고, ‘포섭당한 자’는 전향할 그 무엇도 없는 상태에서 나쁜 이데올로기로 이제 입문한 자라는 함의가 깔려 있다. 이는 개인적 행위의 차원에서, 전향 직전의 두 인물을 비교하면 ‘전향자’가 ‘포섭당한 자’보다는 낫다는 일종의 고백이다. 즉, 전향자의 좌의 이념의 미적(혹은 도덕적) 가치는 인정하지만, 세뇌당한 자의 우 이념에서 그런 가치를 인정할 순 없다는 것이다. 우의 도그마를 강권하는 정치적 주체가 우의 이념을 은연중에 정치적 신념이라 할 것도 없이 생존을 위한 동물적 전략이었음을 밝히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적을 공격하면서 적을 인정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일종의 자기혐오 내지 자기학대! ‘전향’을 강권하는 우파의 정치적 무의식은 좌의 미적 가치에 대한 뿌리 깊은 도덕적 열등감을 잊으려는 충동으로 꽉 차 있다. 왜 그럴까?

인터넷에선 진보, 직장 가면 보수

한국의 현대사에서 좌와 우의 이념 대립은 두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첫째는 북한과 남한이라는 국가 차원의 제도적 대립이고, 둘째는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전개된 우의 지배 세력과 비판 세력으로서 좌의 대립이다. 전자의 대립은 구조적 수준의 순수한 정치이념의 대립이며, 정치 이념 자체는 도덕적 판단 혹은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1)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대립 양상이 개별적 정치적 활동들, 즉 인간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도덕의 문제가 개입한다. 실제로 남한에서 우와 좌의 대립의 경험적 역사는 ‘우의 이념=생존을 위한 전략’, ‘좌의 이념= 정치적 이념에의 헌신’으로 의식화됐다. 물론 여기서 ‘좌’는 북한 체제를 정치적 신념으로 삼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냉전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한 반공국가인 한국 사회에서 ‘좌’는 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반항하는 정치적 타자를 총칭하는 범주였다. 남파 간첩부터 시장경제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자와 정부 시책을 우의 관점에서 맹렬히 비판하는 자 등이 광범위하게 이 범주에 포함돼왔다. 이 범주를 발명한 정치적 주체인 ‘우’는 물질적 탐욕을 정치적 결의로 포장하는 자부터 도덕적 파탄을 정치적 열정으로 위장하는 자들이 중심이 되고, 좌회전을 하면 필시 신호위반에 걸린다는 사실을 숙지한 다수의 군중이 뒤를 따랐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 ‘좌’란 범주는 줄 서면 밥 먹기 어려운, 그러나 줄 서는 자들은 결기 있는 자들이란 범주로, ‘우’의 범주는 별 소신이 없으면 밥 먹기 위해 자동으로 가는 회사 근처 식당 같은 이미지로 각인됐다. 정치와 도덕의 분열이 내면에 구조화돼서, 정치적으로 이기려면 비도덕적이 돼야 한다는 생존 전략은 현재에도 유용한 처세의 공리로 군림하고 있다. “정당한 방법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에 국민은 감동을 먹고 희망을 보았지만, 결국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탄식만 남았다. ‘지못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곳을 쳐다보면서 경제적으로 짭짤한 곳에 뿌리내린 자들, 인터넷에선 진보, 술자리에선 중도, 직장 가면 보수가 되는 자들의 탄식이다. 자유와 윤리, 정치와 도덕을 통합하는 삶이 쉽지 않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는 그 분열의 정도가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다. 정치는 애당초 윤리적 판단의 영역은 아니지만, 그 어떤 정치도 개별 인간의 정치적 행위로 구성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전향’은 개인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정치적이며 동시에 윤리적인 판단의 문제, 정치의 장에서 일어나는 도덕의 문제다. 이 지점에 전향을 자리매김하고 한국 사회의 전향을 생각하면 세 유형의 전향이 떠오른다. 첫째는 일제강점기의 친일 행위, 둘째는 장기수들의 전향, 셋째는 진보 지식인들의 보수화다. 이 각각의 전향이 갖는 의미에 대한 해석과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또 전향자 개개인이 갖는 심적 동기가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향은 정치적이지만 궁극적으로 개종과 마찬가지로 개인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별 행위가 아닌 사회현상으로 대상화하면 전향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을 읽는 징후가 될 수 있다. 이 글은 세 유형의 전향을 통해 아주 오래된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을 더듬어보려 한다.

전향의 세 가지 유형

먼저 간략한 한국 근대사와 정치적 주체의 구성 과정부터 알아보자. 정치적 주체는 정치적 경험과 대응하면서 형성된다. 한국 근대사에서 민중에게 가장 익숙한 정치적 체험은 민중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더 큰 힘에 의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구한말 자발적인 민중 봉기였던 동학혁명이 일제에 의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일제강점기, 미군에 의한 해방, 냉전 체제의 대리전으로서 한국전쟁, 4·19 혁명에 이은 5·16 군사 쿠데타와 30여 년에 걸친 독재, 1987년 민주화로 이어지는 정치사는 87년 민주화 이전까지 민중의 의사에 따라 정치적 형식을 만든 역사적 경험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 경험 속에서 지배권력은 늘 부당하지만 현실적으로 절대적 위력을 가진 존재, 민중의 저항은 온당하지만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일시적인 분노의 폭발로 자리매김됐다. 이 구도에서 권력은 힘에 호소하고 저항은 도덕에 호소함으로써 지배는 폭력화되고 저항은 미학화됐다. 폭력화된 지배와 미학화된 저항은 일종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시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87년 민주화 이전까지 힘에 의한 지배와 도덕에 의한 저항이라는 분열 구도는 계속됐고, 현재까지도 정치적 집단 무의식의 형태로 잔존한다고 봐야 한다. 이 구도에서 가장 실용적인 처세 전략이 어떠할지 상상해보라. 가장 다수인 중도의 의미가 지배 자리에 뿌리박고 저항의 언어로 대사를 읊어대는 것 아니겠는가.

일제강점기 친일행위의 명분은 탈정치적 실용주의였다. 정치가 민중의 삶에 중립적 위치라면 실용주의가 가장 직접적으로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양반과 평민이라는 과거의 신분제를 조선을 통치하는 전략으로 삼아 양반층을 집중적으로 회유한 당시 정세에서 탈정치적 실용주의는 봉건적 계급재생산의 욕망 총족을 위한 수사학일 뿐이었다. 그러니 친일은 전향의 위치에서 재고할 가치조차 없을 듯하다. 장기수들의 전향은 다르다. 장기수들의 전향을 정치적 신념을 지키느냐 포기하느냐로 보는 것은 삶에 대한 도그마의 폭력이다. 그들의 선택은 삶의 박탈과 정치적 신념의 포기 사이에 있다. 정치적 신념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다. 삶을 박탈당하면서까지 지킬 가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전향 장기수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전향 장기수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헛되이 정치적 신념 때문에 삶을 탕진한다고 폄하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지조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장기수의 전향 거부를 사회주의 신념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전향 강요’라는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정치적 탄압은 정치제도를 통하지만 도덕적인 악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피억압자가 보는 것은 비도덕이며 저항은 악에 대한 보편적 저항의 형태로 나아가며, 저항의 조건이 열악하면 저항의 신념은 종교화된다. 장기수들은 도덕의 문제를 논외로 하고 체제에 순응하라는 ‘귀순’ 권유를 도덕의 지평에서 자기 자신 혹은 인간에 대한 ‘배신’ 혹은 ‘변절’로 해석하는 것이다. 정치적 관점의 선택이 중립적이 되려면, 그래서 정치적 관점을 바꾸는 것이 ‘배신’이나 ‘귀순’이 아니고, 단어 뜻 그대로 단순히 방향을 바꾸는 ‘전향’이 되려면 정치제도를 통한 억압과 착취가 없어야 한다. 이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사회 구성원이 그렇게 느낄 정도의 실질적 민주주의가 성취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한국 사회는 어느 지점에 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최근의 진보 인사와 지식인들의 보수화를 평가하는 데 주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이들의 전향을 가장 우호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은 미학화된 저항의 범주 안에서 도덕적 우월성이란 틈새시장에 만족해온 진보 진영이 현실을 껴안는 품을 넓히는 거로 보는 것이다. 가장 비우호적인 시각은 도덕적 ‘변절’로만 보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간의 비판을 뒤로하고 바로 보수의 권력 중심부에 숟가락을 올려놓는 몇몇 인사들의 행보에 대해서는 기회주의적 탐욕으로 보지만, 진보 진영 자체의 변화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진보 진영의 변화가 보수가 권력을 얻는 방식의 효율성을 모방해 ‘국가주의’를 진보가 활용하자는 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한 접근 방식은 권력의 주체인 시민을 도구화할 뿐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상흔을 자극해서 가장 열등한 힘을 불러모아 권력을 창출하기 때문에 보수 지배의 담당자만 바꿔놓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승리한 도그마 뒤에 숨은 가면의 폭력

좀 엉뚱한 얘기지만 나는 한국 사회가 실질적으로 민주화되려면 매국노 이완용이 구한말의 시민단체라 할 독립협회의 중심 인물이었다는 점(이완용은 독립협회 존속 기간 3분의 2 이상을 위원장, 회장,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친일단체인 일진회의 우두머리인 이용구가 동학혁명 때 농민군 지휘자였다는 점(친일로 변절한 것은 정부의 동학당 탄압에 보호처를 찾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유력하다), 을사조약 당시 ‘시일야방성대곡’을 썼던 장지연이 나중에 친일을 했다는 점, 안중근도 나중에는 일본의 아시아 연대론이 허구임을 깨닫긴 했지만 러일전쟁 당시에는 “황인종 전체를 위한 의로운 싸움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던 점을 기억하는 인간이 많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와 도덕을 동시에 상상하는 정치적 개인이 많아져야 승리한 도그마의 등 뒤에 숨어서 가면의 폭력을 행사하는 사나운 노예 근성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래야 ‘몸은 보수-입은 진보’, ‘생산은 보수-소비는 진보’, ‘광장에서는 진보-밀실에서는 보수’로 분열된 정치적 분열증이 개선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정으로 심각한 정치적 문제는 지식인 몇몇이 보수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이 몸까지는 진보로 전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역사적 상처에서 비롯된 의심이 깊어서 정치적 주체로 나서는 데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이 두려움을 없애주려면 정치와 도덕이 통합되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노무현이 시도했지만 미완으로 남은 길, 진보가 가야 할 길도 이 길이 아닐까 싶다. 


<각주>

(1) 물론 남한과 북한 체제를 두고 민족주의 관점에서 어느 쪽이 민족의 정통성을 물려받았느냐, 혹은 일제강점기에 해방운동의 적자냐는 논쟁이 있어왔지만, 이 문제는 ‘전향’이라는 주제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논외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