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비열함을 감추는 ‘화이트마치’
민주주의는 흡사 개구리와 비슷하다. 개구리는 펄펄 끓는 물속에 던져 넣으면 화들짝 놀라 금세 냄비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러나 차가운 물속에 넣고 은근한 불에 끓이면 점점 물이 뜨거워지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간다. 오늘날 다양한 현상들이 민주주의를 ‘서서히 끓여’ 죽이고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차갑던 물이 조금씩 끓어오르듯,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충분히 축적된 후에야 비로소 각종 피해를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냄비를 달구는 연료에 대해서라면, 이미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1) 그러나 사회적 영역에 침입한 감정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하는 이가 없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시민의 사고력을 저해할 수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감정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데는 미디어도 한몫했다.
가령 검색창에 “깊은 감정의 물결에 잠기다”라는 문장을 한 번 쳐보라. 일반 사회면 기사에서, 최근 프랑스, 레바논 사회를 핏빛으로 불들인 온갖 유혈 테러 사건에 이르기까지, 각종 뉴스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질 것이다. 가령 11월13일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이후 전 세계는 ‘깊은 감정의 물결에 잠겼다’이다. 파리 테러가 일어나기 수일 전에도 43명의 목숨을 앗아간 버스 사고로 프티팔레에코르낭 지역 사회가 깊은 감정의 물결에 잠겼다(<프랑스TV앵포>, 2015년 10월24일). 낙후된 낡은 병원 건물에 대한 해체 작업이 실시된 칼레(<프랑스3>, 2015년 11월20일)에서도, 2015년 초 중앙아프리카에서 납치된 클로디아 프리에스트의 고향 에미낙(<주르날 드 소네루아르>, 2015년 1월21일)에서도 시민들은 깊은 감정의 물결에 잠겼다. 연말에는 “마침내 몸을 뉘일 보금자리를 얻고, 몽도레 지역 봉사단체들이 베푼 온정의 손길 덕에 집을 채울 세간살이까지 마련할 수 있게 된 브리지트의 소식에” 지역민들이 깊은 감정의 물결에 잠겼다(<레누벨칼레도니엔>, 2016년 1월6일).
비슷한 예는 무수히 많다. 기껏 차이라고 해봐야 그것이 어떤 사건을 겪은 당사자의 감정인지, 혹은 그것을 관찰하는 자의 감정인지 하는 정도다. 사실 이렇듯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은 비단 언론매체만이 아니다. 틈만 나면 감정에 호소하기는 정치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자신의 무능력을 은폐하고 싶을 때, 혹은 서둘러 어떤 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마치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도 되는 양 포장할 때 그들은 흔히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쓰곤 한다. 가령 난민사태와 관련한 문제가 대표적이다. 유럽의 정치인들은 결국 유럽의 무능력을 복잡한 말로 설명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최대한 구설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가령 프랑수아 피용 공화당 의원에서 마뉘엘 발스 총리까지 말할 것 없이, 2015년 9월2일 터키 해안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 꼬마 알란 쿠르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용어는 ‘참을 수 없는’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이후 이 난민사태의 근원을 해결하기 위해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보다 조금은 비극성이 배제된 유사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1) 폐막 당일 미흡하기 그지없는 합의문에 조인하며 ‘격한 감정’에 잠겨 눈물을 글썽이던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부 장관의 모습 역시 언론 매체들에 앞 다퉈 보도됐다.(2) 마지막으로 2015년 11월18일 프랑스 각 도시의 시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를 피로 물들인(Ensanglanter) 테러”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 그만 “프랑스를 오열하게 만든(Ensangloter) 테러”라는 말실수를 저질렀다.
무능력과 정치적 비열함을 가리는 방패막이로 간주되는, 감정에 대한 호소는 매우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가령 로익 세셰의 변호사 에릭 뒤퐁 모레티는 자신의 고객이 당했던 오심 사건을 “감정의 지배가 빚은 실패작”이라고 표현했다(그는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희생자가 뒤늦게 진실을 밝히면서 무죄가 인정돼 풀려났다-역주). 우트로 사건(프랑스 북부 우트로 마을에서 일어난 어린이 성추행 사건에서 수사판사가 마을의 어른 수십 명을 법정에 세웠는데, 결국 피의자 대부분이 무고한 것으로 판명됐다-역주)의 경우처럼, 이 사건 역시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펙타클한 스토리의 힘과 어린이들을 학대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합법적인 책임감이 결합돼, 결국 법정이 잘못된 판결을 뒤집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언론매체에 의해 단순화되는 사건 보도, ‘실시간’ 정보에 대한 열광,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도 이런 종류의 민감한 사건에서 공정한 판결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해왔다.(3)
한편 정치·미디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면, 감정은 사회적인 의사 표명과 한 사건의 해석을 추동하는 주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가령 이제는 기업 경영자조차 ‘감성지수(EQ)’를 경영수단으로 삼아야 하고, 노동자도 인금인상을 관철시키기 위해 감정에 호소해야 하는 세상이 아니던가.(4)
민주주의에 가공할 위협이 되는 감정 노출
사실 감정이 공공의 장에 침투하게 된 현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화이트마치(White march, 침묵시위)’의 증가다. 화이트마치는 대개 매우 끔직한 범죄나 사고가 일어난 직후 자연발생적으로 해당지역에서 엄청난 인파가 운집해 결성된다. 최초의 화이트마치는 희대의 소아성애자 마르크 뒤트루의 체포와 관련해 1996년 벨기에에서 등장했다. 여기서 ‘화이트’라는 말이 붙는 것은 그것이 비폭력과 평화를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화이트마치는 도저히 참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행위에 대한 분노감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화이트마치에는 어떤 구호나 요구가 뒤따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침묵을 고수한 시위대는 그저 조용히 행진만 할 뿐이다. 행렬 선두에는 흔히 순수와 믿음의 상징인 어린이를 세우곤 한다. 때로는 촛불을 들고 행진하기도 한다. 철학자 크리스토프 고댕은 화이트마치를 “이 사회의 위기를 표현하는 현상”으로 인식한다. 그는 “이 사회의 위기가 감정의 지배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며, 화이트마치는 이런 감정의 지배를 더욱 증폭시킨다”고 지적했다.(5) 이 신식 시위는 흔히 희생자를 온갖 미덕으로 포장해 무조건적으로 숭배한다. 또한 객관적인 성찰 없이 공감 메커니즘에 따라 절대적으로 희생자를 추앙한다. “나 역시 희생자가 됐을 수도 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어떤 비극적 사고나 추악한 범죄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의미심장하게도 모든 이들이 똑같이 대답한다. 그러니 어떤 재앙이 일어나든 심리상담실부터 설치하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소송 과정 중에 해당 사건의 진실 규명과는 전혀 무관하게 무조건적으로 희생자에게 발언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화려한 볼거리만 제공할 뿐, 재판과정에는 불필요하기 그지없는 이 증언들이 공정한 심리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 따위는 무시된다.
프랑스에서 희생자를 숭배하는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하나 있다. 과거 프랑스에서 결국 백지화되기는 했지만, 1890년대 극심한 반유대주의 선전의 희생양이 됐던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유해를 팡테옹(프랑스 위인들이 안치된 국립묘지-역주)에 안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는 희생자를 영웅과 혼동하는 행태가 아니고 무엇일까? 드레퓌스 대위가 한 일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견뎌낸 것이 전부였다. 단 한 순간도 그가 어떤 특별한 영웅적 행위에 나선 적은 없었다. 오히려 드레퓌스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려다, 국방부 산하 정보부에서 쫓겨나고 군적을 박탈당한 조르주 피카르 중령이야말로 에밀 졸라의 뒤를 이어 팡테옹에 묻힐 만한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희생자와 영웅을 혼동한 예는 또 있다. 루이 14세가 상이용사들을 위해 마련한 요양시설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앵발리드에서 파리 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려고 한 계획이 대표적이다. 추모식의 상당부분은 수많은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격한 감정의 장면을 연출하는 데 할애됐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자크 코스니에는 “병적으로 감동을 좋아하는 사회”(6)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철학자 카트린 캥즐레르도 “인간을 비천하게 만드는 감정의 지배”(7)에 대해 깊은 우려감을 나타냈다.
감정은 민주주의에 가공할 위협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본질적으로 시민을 수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감정에 지배된 시민은 행동하지 않고 반응한다. 이성보다 감정에 기댄다. 시민을 추동하는 것은 생각이 아닌 사건이다. 화이트마치는 실질적인 차원에서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정의만 있지 정의를 실현할 수단은 없다. 사회가 해체되는 것을 멈출 힘이 없다. 더욱이 아직까지 실업자의 자살, 근로감독관의 살해 등과 관련해 화이트마치가 조직된 예는 단 한 건도 찾아볼 수 없다. 장폴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썼다. “감정은 그냥 겪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한다고 어떤 감정 상태에서 바로 벗어날 수는 없다. 감정은 자연적으로 수그러드는 것이지, 억지로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길이 막혀버릴 때 의식은 감정이라는 마술적 세계로 돌진한다. 감동한 의식은 가히 잠든 의식에 버금간다.”(8)
이제 나오미 클라인이 분석한 ‘충격전술’(9)에 더해 ‘감정전술’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말해야만 할까? 가령 지배계급은 모든 논쟁을 탈정치화하고, 시민을 감정의 지배를 받는 어린아이로 만들기 위해 감정전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일까? 감정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거리를 없애버린다. 잠시 뒤로 물러나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여지를 내어주지 않는다. 감정은 시민에게서 성찰이나 논쟁에 필요한 시간을 박탈해버린다. 페르네볼테르 지역 콩도르세회(교육관련 시민단체-역주)의 전 회장 클로드 장 르느와르는 취재진에게 설명했다. “감정은 즉석에서 덩그러니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의식이 감정 그 자체가 돼 버릴 지경이 된다. 감정은 근본적으로 이성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은 이해하려는 대신, 그냥 ‘느끼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대적 현상이 등장한 것은 어느 정도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출현, 그리고 그것이 미친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거리감은 세상 어디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트윗’을 날리고, ‘재잘재잘 수다’를 쏟아낸다. 비평정신, 교양, 진리 추구 따위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사람들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을 즉석에서 폭로한다. 정작 그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한 채로.”
감정의 지배는 언제나 ‘인도주의’ 전쟁을 지지할 만반의 태세가 된 유명 철학자들의 활약에 유리한 토양을 제공한다. 대표적인 예가 2011년 리비아 파병을 부르짖었던 베르나르 앙리 레비다. 그런가 하면 좀 더 일상적인 측면에서는 ‘스토리텔링’(10)의 작동이나 포퓰리즘의 기만적 주장이 번성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가령 2008년 다카르에서 한 유명한 연설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이해하기보다는 믿고, 이성적으로 따지기보다는 마음으로 느끼고, 정복하기보다는 조화를 이루어야 할 필요성을 스스로 절감하고 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경제부장관도 프랑스 국민들에게 “생각보다는 행동에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화이트마치가 조합의 활동이나 정치투쟁과 같은 집단행동이 남긴 빈자리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실 화이트마치의 출생지가 탈산업화로 사회조직이 파괴된 프랑스 북부나 중앙정부가 해체된 벨기에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고통과 미래를 향한 두려움 앞에서, 감정은 다시 인간적인 것을 되살리고, 냉소적 태도에 반기를 든다. 때로는 감정은 유익한 효과를 낳기도 한다. 가령 여느 화이트마치나 앵발리드 추모식에서 볼 수 있듯이 감정이 공유는 비로소 안도감을 가져다준다. 간단히 말해 그동안 그들 내면을 짓누르던 무력감을 몰아내고, 비록 원초적 수준에 불과할지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려움을 함께 교감할 수 있게 된다. “<샤를리 엡도> 테러나 범죄 사건을 집에서 TV화면으로 지켜보는 이는 혼자서 눈시울을 적실뿐이다. 그러나 화이트마치에 참여하면 감정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 화이트마치 현상은 분명 사회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모호한 성격을 띠는 현상이기도 하다.”(11)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결국 화이트마치를 통해 표출된 감정은 다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사회적 관계를 재구축하고 싶다는 모호한 열망의 다른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 정치적 퇴행이 한창인 프랑스에서는 어찌하여 혁명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역사학자 소피 바흐니슈는 1789년 프랑스혁명 역시 사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정치화 과정을 겪은 끝에 성취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령 처음 정치화 과정의 출발점이 된 것은 구체제(앙시앵레짐) 지방의회였다. 프랑스인들은 지방의회에서 각종 지역 현안들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는 데 익숙해졌다.
이러한 전통은 1789년 삼부회 소집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유지됐다.(12) 현 정치의 위기는 이런 공공의 영역이 사라진 현상과도 맥을 같이 한다. 공공의 장이 사라지면서 좌파를 조직적으로 재건하려는 시도도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화이트마치가 정치조직을 재건하기 위한 첫 수순이 될 수 있다면, 다른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가령 고댕은 화이트마치가 더 이상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공권력에 대한 무언의 항의라고 보며, 이 현상이 ‘은연중에 정치성’을 띤다고 해석했다. 사실 벨기에에서 처음으로 화이트마치가 조직된 것도 미흡한 경계로 인해 흉악범을 놓쳐버린 경찰과 사법부의 태만에 항의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따라서 이 현상이 민주주의 재건에 기여하려면, 감정을 기반으로 조직된 이 네트워크를 오래도록 지속하되, 정치화 과정을 점진적으로 지속시켜야만 할 것이다.
개구리에 관한 일화는 볼테르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개구리들이 떨어진 곳은 우유 통이었다. 우유 통에 떨어진 두 마리 개구리 중 한 마리는 아무 대책 없이 그저 하염없이 기도만 하다 우유 통 속에 가라앉아 죽었다. 그러나 다른 한 마리는 네 발을 힘껏 휘저으며 저항했다. 결국 우유는 버터로 변했고, 덕분에 개구리는 이 단단한 물질을 밟고 통 밖으로 훌쩍 뛰어나올 수 있었다.
글·안세실 로베르 Anne-Cécile Ro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Jean-Jacques Gandini, ‘기본적 자유를 경찰에 위임한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16년 1월. ‘자유주의 대 자유’, <마니에르 드 부아>, 제2호, 1988년 4월.
(2) Philippe Descamps, ‘모호한 기후협력 게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 웹사이트 블로그 <La valise diplomatique>, 2015년 12월19일, www.monde-diplomatique.fr
(3) Gilles Balbastre, ‘사회면 기사 혹은 미디어의 무자비한 재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04년 12월.
(4) David Goleman, ‘감성지수’, Bien-être 총서, 파리, 2003년. ‘순응주의 제작소’도 참조할 것. <마니에르 드 부아>, 제96호, 2007년 12월~2008년 1월.
(5) Christophe Godin, ‘화이트마치, 일종의 사회현상’, <롭스>, 파리, 2015년 4월26일.
(6) Jacques Cosnier, <감정과 기분의 심리학>, Retz 출판사, 파리, 1994년.
(7) Catherine Kinzler, ‘콩도르세, 자유의 교수’, <마리안느>, 파리, 2015년 11월6일.
(8) Jean-Paul Sartre, ‘감정 이론에 관한 스케치. 심리학, 현상학, 감정의 현상학적 심리학>, Hermann, 파리, 1938년.
(9) Naomi Klein, <쇼크 독트린>, ActesSud 출판사, 아를르, 2008년.
(10) Christan Salmon, ‘역사 제조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06년 11월.
(11) Christophe Godin, 위의 책.
(12) 공개강연, 낭시대학, 2015년 10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