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팽개쳐진 미국의 트레일러 족

2016-01-28     브누아 브레빌

 

미국에서는 저소득층도 집을 살 수 있다. 자동차보다 약간 비싼 트레일러 주택을 구입한 후 임대부지만 찾으면 된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프랜시스코 구즈만은 자신의 집을 둘러싼 작은 마당에 아무것도 내놓을 수가 없다. 그는 쓰레기 수거일 외에는 쓰레기를 내다 놓지도 못하며, 음악을 들을 권리도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지만 키가 40cm를 넘는 반려동물은 금지됩니다. 어머니나 남동생을 묵게할 때에도 관리인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믿겨지세요? 어쨌든 내 집에서 사는 건데 말입니다!” 구즈만과 그의 아내는 방이 두 개 딸린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콜로라도 주 오로라 시의 트레일러 파크에서 부지를 임대해야만 한다.
이 젊은 부부는 트레일러 파크 내 440개의 트레일러 주택용 부지 중 하나를 임대하며 매달 500달러를 내고 있다. 평평한 지붕과 알루미늄 소재의 외벽에, 세월에 따라 노랗게 바랜 1970년대 풍의 이 트레일러 주택의 규모는 75㎡ 이며 방이 2개 있다. 부부는 매달 250달러씩 추가로 부담해, 8년 간의 할부 계약으로 이 트레일러 주택을 구매했다.

“부지 임대료에는 수도세, 하수비, 쓰레기 수거비가 포함돼 있습니다. 또 공동 수영장도 있습니다. 물론 저도 5m 옆에서 다른 가족이 사는 이런 집이 아니라, 정원다운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지만 이 가격으로 오로라 시에서 집을 얻는 건 불가능합니다”라고 구즈만은 말한다. 이들 부부의 한 달 수입은 2천 달러 정도로 빈약하다. 남편은 주유소에 일하고, 아내는 가사도우미 회사에서 대타로 일한다.

도시에서 배척당하는 2천만 명의 미국인

주거지로서의 이점도, 편의시설도 없는 도시 외곽에서 거주하는 비용은 저렴하다. 그러나 바로 인근에 위치한 콜로라도 주의 수도, 덴버 시에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덴버 시의 부동산 가격은 2012년 이후 50% 상승했다. 2015년 10월, 오로라 시에서 한 달에 1천 달러 이하로 빌릴 수 있는 주택은 없었다. 전체 수리가 필요한 가장 저렴한 집도 13만 달러였다. 하지만 1973년에 제작된 것과 비슷한 외형을 한 트레일러 주택은 1만4,500달러에 불과했다. 그리고 트레일러 파크 부지 임대료는 한 달에 400~600달러였다. “현재는 모든 부지가 다 임대중입니다. 대기 명단에 등록하세요. 임대차 계약 회전이 빨라서 금방 자리가 날 겁니다”라고 프랜들리 빌리지 파크 관리인이 말했다.
오로라 시에는 9개의 큰 트레일러 파크와 2,500개의 트레일러 주택용 부지가 있다. 대부분의 파크는 편의시설이 없는 도시 외곽의 콜팩스 대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이자, 미국 내 14만 개의 트레일러 주택용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에퀴티 라이프스타일 프로퍼티(Equity Lifestyle Property)사가 힐크레스트 빌리지 파크를 운영한다. 그린 에이커스 파크는 노인만 임대가 가능하다. 그 밖에도 오로라 시에는 폭스리지 팜, 시더 빌리지, 메도스 등의 트레일러 파크가 있다. 파크의 이름은 전원적이다.(1) 하지만 주민들이 국기나 성모마리아상, 꽃등으로 치장을 해도 삭막한 분위기는 덮여지지 않는다.
저소득층 공영주택과 마찬가지로 오로라의 트레일러 파크도 외부와 단절돼 있다. 깨끗한 도로와 신호 체계도, 개발계획도 없다. 직사각형 모양의 트레일러 파크 주변에 아스팔트가 드문드문 깔린 작은 길들이 파크 경계를 구분해준다. 그리고 파크 내에서는 작은 울타리, 사슬을 걸쳐놓거나 땅에 선을 그어 부지를 구별한다. 각 거주민은 단지 이름 옆에 쓰인 거주지 주소 번호로 구별된다. 구즈만은 개탄한다.
“트레일러 파크에 산다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들은 주소를 보고 압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트레일러 파크에 사는 사람은 고용하면 안 된다고,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트레일러 주택을 구매하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며, 가격도 저렴하다. 미장공, 전기공, 목수, 배관공 등을 고용해 땅 위에서 건설 작업을 해야 하는 전통주택과는 달리, 트레일러 주택은 자동차처럼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출시되며, 출시 후 곧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가격 또한 저렴하다. 그리고 자동차처럼 감가상각이 되므로 1960년대나 1970년대에 만들어진 모델은 1만 달러 이하에 살 수 있다. 70㎡ 크기의 새 모델의 경우 배송비 포함 최저가가 2만5천 달러다. 오늘날엔 2천만 명의 미국인이 트레일러 주택에 거주한다. 1975년에는 9백만 명에 불과했다.(2) 트레일러 주택 거주자 중 은퇴한 노년층이 23%를 차지한다. 총 860만 채의 트레일러 주택에 거주하는 미국인의 수는, 총 120만 채의 저가주택 거주자의 7배에 달한다. 트레일러 주택 거주자는 2011년 미국 전체 중간 소득 5만2천 달러의 절반인 2만6천 달러(3)에도 못 미치는 저소득층이다. 공영주택을 제공하려는 국가의 개입이나 노력 없이, 트레일러 주택으로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셈이다. 게다가 트레일러 주택 판매자들에게는 큰 소득을 안겨준다.
“문제는 주택 구매가 아니라 부지를 찾는 일입니다” 미국에서 최초로 조립식주택을 판매한 클레이턴 홈스 트레일러 주택 상점의 직원은 말했다. 대다수의 미국 도시에는 사유지 침해를 엄격히 제한하는 상세한 구획정리 규정이 있다. 트레일러 파크가 들어서면 주변 토지 가격이 하락해서 시장들은 트레일러 파크 개발을 기피한다. 따라서 농촌지역 외에는 개인소유 트레일러 파크 밖에 갈 곳이 없다. 이러한 개인소유 트레일러 파크에 1천2백만 명의 미국인이 살고 있다.(4)
전체 주거 형태 중 트레일러 주택 비중이 15%를 넘는 뉴멕시코 주처럼, 콜로라도 주 트리니다드 시에도 수많은 트레일러 주택이 있다. 인적이 드물고, 구획정리 체계가 느슨한 곳, 즉 큰 도로 주변이나 시골의 작은 길 곳곳에 트레일러 주택이 산재한다. 트리니다드 시 외곽의 저렴한 토지에 트레일러 파크가 10여 개 있다. 소규모인 이 파크들은 오로라 시의 트레일러 파크처럼 군대 캠프 같은 형태가 아니며,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없다. 파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는 파크 주인들과 종종 파크 안에서 마주치곤 한다. 뉴멕시코 주와 경계에 있는 콜로라도 주의 산 속에 위치한 트리니다드 시는 인구 8천명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지만, 20세기 초에는 석탄 채굴과 철도 개발로 번성했던 도시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이후 인구의 40%가 감소했고, 영광스러운 과거의 흔적이 이곳저곳에 조금씩 비칠 뿐이다. 도시 중심지에 위치한 옛 대형 호텔과 1904년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 남작 기부로 건설된 큰 도서관도 남아있고, 슈퍼마켓 주차장에는 증기 기관차가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일자리가 없어요. 5년 전부터 살고 있지만, 2개월 이상 근로계약을 맺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재클린 존슨은 말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라스베가스의 병원에서 일했었다. 그러나 2010년도에 이혼하면서 라스베가스를 떠나 트리니나드로 와서 모텔방에서 이복동생과 함께 지냈다. “처음에는 침대 옆에 작은 싱크대 딸린 방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 후 매달 550달러씩 내고 이 트레일러 주택을 임대했어요. 우리에게는 큰 금액이지만 방도 3개나 있고 진짜 주방도 있고, 날씨가 좋을 때에는 밖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답니다.”
생활보조금을 받고 간간히 일하면서 두 자매는 한 달에 약 2천 달러를 번다. “각종 공과금을 내고 식료품을 사면 남는 게 없어요. 게다가 차가 한 대 뿐이라 힘듭니다.” 이곳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은 24시간 영업하는 중국음식점 외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차가 필요한데 여동생이 늦을 때에는 짜증이 나요. 그래도 이 파크 내 거주민들은 모두 친하게 지냅니다. 그래서 필요할 때 데려다주는 이웃들이 있어요. 트레일러 파크는 진정한 공동체입니다”라고 존슨은 말했다.
트레일러 파크는 작은 가족이라고 시더 리지 파크에 거주 중인 퇴직자 해리 벌레이오스는 말했다. 그는 부지 임대료로 매달 250달러를 내고 있다. 그는 병으로 장애를 얻고 거동에 제약이 생긴 이후 파크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거주민들과 친분을 쌓고 있다. 그는 모든 거주민의 일과 시간표, 가족 상황, 정치적인 견해까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91세의 애니 맥대니얼스는 더 이상 운전을 하지 못하고, 주 2회 딸이 방문한다. 85세의 토마슨 부부는 40여 년 전부터 이 파크에 살고 있다는 것 등등.
트레일러 파크에서의 삶은 전통적인 주택처럼 사생활이 보장되지도 않고, 거주자가 익명으로 지내기도 어렵다. 창문 너머로 언뜻 봐도 이웃이 집에 있는지, 일을 하러 갔는지, 또는 손님이 왔는지, 배수구가 막혔는지 다 알 수 있다. 옆집에서 흘러나오는 갑작스런 고함 소리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공동체적인 생활은 이웃 간의 친분을 돈독하게 해주는 동시에 루머나 험담이 퍼지기도 쉽다. 시더 리지 파크에는 20개의 트레일러 주택이 있는데, 대부분 노령자들이 거주 중이다. 드물게도 최근 텍사스에서 이사 온 젊은 가족이 있는데, 남편은 일 년 중 몇 달만 트레일러 주택에서 지내고 있어서 이웃의 의심을 사고 있다.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내 물건들을 조심해야겠어요”라고 벌레이오스는 말했다. 그는 시더 리지 파크가 트리니다드 최고의 공동체 거주지라고 자부했다. 벌레이오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악명 높은 알마르 파크에서 살지는 않겠다고 했다. 2015년 봄, 알마르 파크 안의 버려진 가건물에 숨어있던 흑인 청년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 사건은 지역 TV에서 보도됐고, 벌레이오스는 그 사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반면, 알마르 파크의 관리인은 잠재적인 세입자일지도 모를 기자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저나 제 남편이 늘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이 파크 관리를 하고, 순찰도 돌아요. 아들의 여자 친구도 같이 일합니다. 알마르 파크의 세입자 니키의 아버지는 형사입니다. 우리 형제들도 여기 살아요. 모든 거주민이 서로를 감시합니다. 나쁜 세입자는 바로 추방합니다!”
그는 이어서 “레이크사이드 파크는 꼭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15년 전에 문을 연 레이크사이드 파크는 폭풍우가 쏟아지면 땅이 진흙탕이 된다. 임대료는 한 달에 150달러다. 300달러를 추가로 내면, 방 3개짜리 중고 트레일러 주택을 빌릴 수 있다. 파크 중 임대료가 가장 저렴한데도, 트리니나드 시에서 유일하게 빈자리가 있는 파크다. “다들 레이크사이드 파크에 살기 싫어합니다. 마약, 싸움, 총기 문제가 빈번하거든요. 주민 입장에서는 최악이죠”라고 파크에서 200m 떨어진 작은 주택에 거주 중인 한 주민이 말했다.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해 상세히 말해줄 수 있냐고 묻자 그는 망설이며 “사이렌 소리가 자주 들려요”라고 대답한 후,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우리는 기자를 싫어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레이크사이드 파크에 간적이 한 번도 없으며, 아는 세입자도 없다고 했다.
‘트레일러 쓰레기’라는 경멸적 호칭을 보면 알 수 있듯, 트레일러 주택 거주민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대부분의 거주민이 백인 쓰레기(5)라 불리는 하층 프롤레타리아 백인들이고, 흑인은 8.7%에 불과하지만 미국인들은 트레일러 파크가 할렘가처럼 흑인들의 거주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트레일러 주택이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쯤 시작됐다. 당시 이동상인들, 농촌 일꾼들, 건설 노동자들이 트레일러 주택을 끌고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비윤리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세금도 한 푼 내지 않는 일이 있었기에 나쁜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인 1937년, <포춘> 지는 ‘초라한 이동식 주거지 집단’의 행태에 대한 기사를 썼다.(6)

대중문화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켜

1950년대 너비가 종전의 2.4m에서 3m로 넓어진 트레일러 주택이 시장에 등장하면서, 트레일러 주택 거주민의 인구지형이 바뀌었다. 너비가 넓어지니 다른 방으로 이동할 때 첫 번째 방을 거쳐 갈 필요가 없어졌다. 주거지가 부족한 가운데 사적인 공간까지 생긴 트레일러 주택을 수많은 저소득층 미국인, 특히 노년층과 젊은 노동자 커플들이 영구적인 주거지로 선택하게 됐다. 오늘날 생산되는 트레일러 주택은 너비가 5m에 이른다. 골프장과 마리나가 있는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에는 럭셔리한 모델도 있다. 게다가 공식적인 명칭이 바뀌었다. ‘트레일러 주택’에서 ‘조립식 주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레일러 파크는 여전히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다. TV 지역 뉴스에서는 트레일러 파크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들, 총격, 경찰의 수색, 마약사건 등이 계속 보도된다. 인터넷에서는 미국과 캐나다의 TV에서 15년간 방송된 <트레일러 파크 보이스(Trailer Park Boys)>란 방송을 볼 수 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프로그램은 경범죄로 감옥에 드나들며 간간히 트레일러 주택에 머무는 사람과 말에 관한 이야기이다. 래퍼 에미넴에 대한 영화 <소년은 울지않는다(Boys don‘t cry>(1999)’나 <8 mile>(2002)’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소설가 러셀 뱅크스는 그의 소설 <트레일러 파크>(1981)에서 마약과 알콜로 점철된 뉴헴프셔의 트레일러 파크 이야기를 그렸다.
이렇게 대중문화 속에서 나쁜 이미지로 등장하다보니 사람들이 트레일러 파크에 대해 수군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아무렇게나 떠들어요. 대부분의 파크 거주자들은 정직하게 살며, 힘겹게 일하고 있어요. 이곳은 살기 좋아요. 하지만 개인 소유가 아닌 임대 중인 트레일러 주택도 있어서 계속 세입자가 바뀌어요. 그러면 간혹 나쁜 세입자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종일 환각제를 피우는 청년들이 들어왔어요. 그들은 사람만 보면 짖어대는 무서운 개를 한 마리 키워요”라고 익명의 레이크 사이드 파크 거주민은 개탄했다. 레이크사이드 파크 주인은 전직 초등학교 교사로 트리니나드 시에 살고 있다. 익명의 거주민은 파크 주인이 세입자에게 어떤 보증도 요구하지 않고 너무 쉽게 세입자를 들이는 점을 비판했다. “주인은 단지 빈자리를 채우기를 원할 뿐이에요. 문제가 생겨도 대응하지 않고, 전혀 관리를 하지 않아요.”
‘All Parks Alliance for Change’ 연맹의 행정관리자인 데이브 앤더슨은 트레일러 주택 소유자의 권익을 대변한다. 앤더슨은 지적한다. “주거지가 밀집하고, 토지 가격이 높은 대도시에 사는 트레일러 주택 소유주들은 임대료가 상승하거나, 더 큰 돈벌이를 위한 부동산 프로젝트로 인해 파크에서 쫓겨날 위험이 있습니다. 농촌지역에서는 이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농촌 지역의 파크 주인들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 하수도 설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수리할 능력이 없습니다.”
소도시에 위치한 단란한 분위기의 트레일러 파크에 거주한다 해서, 갑작스러운 임대료 상승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트리니나드의 알마르 파크는 지난 2년간 한 번도 올린 적이 없는 임대료를 작년 11월 특별한 이유도 없이 220달러에서 245달러로 10% 올렸다.
프랭크 롤프가 자신의 ‘트레일러 주택 학교’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바로 임대료 상승이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몇 주 전 사전 통지만 하면 트레일러 파크의 임대료를 올릴 수 있고, 이를 제재할 법이 없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롤프는 데이브 레이놀즈와 함께 트레일러 파크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96년 빈손으로 시작해 오늘날 미국 전역에 170개의 트레일러 파크를 소유한 두 사람은 트레일러 파크 분야의 6번째 부호다. 그러나 파크 거주민에게 너무 관대한 주법이 있는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뉴욕 주에서는 파크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롤프와 레이놀즈는 3일간의 집중 교육 코스를 통해 자신들의 노하우를 2천달러에 제공하고 있다. 이 코스에서는 임대료를 늦게 내는 세입자를 다루는 방법, 규칙을 어길 경우 벌금부과, 세탁소처럼 불필요한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공공 서비스 설치 피하기, 기피 세입자 추방하기 등의 트레일러 파크 운영의 기본을 배울 수 있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50대들이 주를 이룹니다. 몇 해 전부터 경제가 불황이라서 저렴한 주거지의 수요가 높아진 지금이 이 사업에 뛰어들기에는 최적기입니다”라고 롤프는 분석했다. 두 동업자는 도시개발 당시의 부동산개발업자들의 투자방식을 모방했다. 그들은 많은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영세 트레일러 파크들을 사들인 후 전부 수리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추가로 설치한 후 임대료를 올려서 운영했다.

임대료 상승 앞에 무기력한 세입자들

세입자들은 이러한 임대료 상승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트레일러 너비가 최소 3m로 넓어지면서 트레일러 주택을 이동시키기도 힘들어졌다. 자동차 한 대로는 이동이 불가능하고, 일반 도로보다 크고 넓은 트럭을 사용해야만 해서 몇 천 달러의 비용이 들다. 따라서 트레일러 주택을 이동시키느니 차라리 새 주택을 산다. 파크 주인이 임대료를 올리거나, 관리를 엉망으로 해도 세입자들이 항의조차 제대로 못하는 것은, 이동용 트레일러 주택의 이동 불가 상태로 이사하겠다고 위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뉴멕시코 주 북부에 위치한 인구 6천5백 명의 작은 마을 러톤의 트레일러 파크에서 매달 150달러의 임대료를 내며 살고 있는 에밀리 몬토이아는 이사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7)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직업이 없어서 저축해놓은 돈도 없다. 그러나 이 가족은 곧 이사해야만 한다. 공동묘지 근처에 위치한 매혹적인 언덕 파크는 46개의 트레일러 주택 부지를 갖춘 8 헥타르의 규모의 토지로서 현재 매매가 32만 달러에 내놓았다. “어느 날 집에 오는 길에 파크 입구에 있는 ‘판매 중’ 표지판을 봤어요. 누가 이 파크를 살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이사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몬토이아의 이웃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뉴멕시코 주법은 파크 거주자를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대료를 못 내거나, 한 달 간 규칙을 어기거나, 다른 거주민에게 피해를 줄 경우 72시간 안에 추방된다. 그리고 파크가 문 닫을 때도 세입자들은 60일 전 예고만 받을 뿐이다.
“미네소타와 같은 일부 주에서는 거주자가 부득이하게 이사해야 하는 경우나 파크의 관리 상태가 매우 나쁠 경우 파크 주인이 재정적인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다른 트레일러 주택 소유자와 함께 시장가격으로 토지에 대한 선매권을 취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거주민을 위한 보장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트레일러 주택 거주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앤더슨은 말했다. 러톤 시의 파크는 아마도 계속 유지될 것이다. 위치가 나빠서 부동산개발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구획을 세부 분할해서 임대 부지를 더 늘릴 수 있도록 허가된 트레일러 파크가 아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상황은 정반대다. 캘리포니아 주법은 거주자를 잘 보호해주지만 수많은 부동산개발업자들이 성행 중이다. 20년간 부동산 시장 폭등으로 인해 캘리포니아에서는 트레일러 주택용 부지 400개가 사라졌다.(8) 실리콘 밸리, 팔로 알토에 있는 부에노 비스타 파크 거주민 400명은 2012년부터 임대료가 1천 달러(도시 내 최저가 주택은 이보다 3배 높다)로 폭등한 파크 폐쇄를 막기 위해 투쟁 중이다. 파크 폐쇄를 수용한 후 시장은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정책을 바꿨다. 시장은 파크 거주민들을 지원했고, 다른 부지를 사서 제공했다. 3,900만 달러를 들여 117개의 트레일러 주택 부지를 갖춘 1,8헥타르 규모의 토지를 구입했다. 부동산 업자에 의하면, 파크 주인은 5천만 달러에 팔라는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9)
현재 파크의 운명은 법원의 손에 달려있다. 부에노 비스타 파크 거주민들은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래턴(뉴멕시코주의 도시)의 매혹적인 언덕 파크 거주민들처럼 되지는 않을까,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다. 앤더슨은 말한다.
“트레일러 주택의 소유자들은 두 가지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주인인 동시에 세입자입니다. 그들은 일반적인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에 대한 법도, 세입자 보호법도 적용받지 못합니다.”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믿을 것은 자신 밖에 없는 것이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특파원

번역·김영란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공역서로는 <22세기 세계>가 있다.


(1) ‘Hillcrest village'는 말 그대로 ’언덕 꼭대기의 마을‘을 의미한다. ’Meadow'는 ‘목초지’를 ‘Cedar village'는 ’삼나무 마을‘을 뜻한다.
(2) <American housing survey> 미국인구통계청, 2013, <Mobile homes, the low-cost housing hoax>, Center for Auto Safety 보거서, Grossman Publishers, New York, 1975년
(3) <American housing survey> 미국인구통계청, 2013
(4) 게리 리블린Gray Rivlin, <The cold, hard lessons of mobile home U.> The New York Times Magazine, 2014년 3월 16일
(5) Cf. 실비 로랑Sylvie Laurent, <Poor White Trash. 미국 백인의 추악한 가난> Presses de la Sorbonne, Paris, 2011년
(6) 존 프레이저 하트John Fraser Hart 인용, 미셸 로즈Michelle J. Rhodes, 존 모건John T.Morgan, <The Unknown World of the Mobile Hom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Baltimore & London, 2002년
(7) 몬토이아의 남편은 멕시코인으로 합법적인 신분으로 미국에 살고 있으나 파크 임대자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몬토이아는 가명이다.
(8) 케이티 크레이먼Katie Kramon, <California's affordable mobile home parks vanishing> Peninsulapress.com, 2015년 3월 11일
(9) 크리스티나 파사리엘로Christina Passariello, <The fight to save a Silicon Valley trailer park>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15년 8월 14일

 

박스기사

 

여느 주택과 거의 다를 바 없다


트레일러 주택은 비좁고, 어둡고,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클레이턴 홈스 상점에 꼭 방문해라.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경영하는 클레이턴 홈스는 트레일러 주택 분야에서 미국 내 1위 회사다. 덴버 시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져 있는 푸엘로 시 클레이턴 홈스 지점은 견본 트레일러 주택 밖에 없는 작은 땅에 홀로 들어서 있다. 트레일러 주택 내부를 살펴보면 전통적인 주택과 다를 바가 없다. 방음 장치도 잘 돼 있고, 창문도 널찍하고, 전자제품도 최신형이다. “지붕에서부터 냉장고까지 전부 보증기간은 1년입니다. 699달러를 추가로 내시면 보증기간을 4년 더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구매하신다면 10%의 할인을 해드립니다”라고 판매원 라이언 카스텔라노스가 설명했다.
젊은 판매원은 할부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신용사가 여러 곳 있음을 알려주고선, 자료는 신용사 세 군데 것만 보여주었다. 그리고 버핏이 소유한 ‘밴더빌트 모기지 앤 파이넌스(Vanderbilt Mortgaga and Finance)’ 사에 대해서만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서류 몇 개에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대부분의 주에서 트레일러 주택은 부동산이 아니라 제트스키나 TV 같은 개인 자산처럼 간주된다. 따라서 트레일러 주택은 자동차처럼 보증기간이 있고, 할부로 쉽게 구매할 수 있으나,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시애틀 타임즈와 ‘센터 포 퍼블릭 인터그리티(Center for Public Integrity)’의 보고에 의하면, 트레일러 주택 구매자들은 일반 주택 구입자보다 평균 3.8% 높은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클레이턴 상점에서 구매할 경우 7% 높은 이자를 내야 한다.(1)


(1) 다니엘 와그너Daniel Wagner, 마이크 베이커Mike Baker <Warren Buffett's mobile home empire preys on the poor> Publicintegrity.org, 2015년 4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