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재라는 골칫거리

2016-01-28     모드 벌로&라울 마크 제나

 


투기꾼 베르나르 타피(1)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던 중재사건은 결국 사기로 판결나면서, 통상적 법적절차를 벗어난 예외 장치인 ‘중재제도’에 의심의 눈길이 쏟아졌다. 하지만 국제무역 차원에서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규정된 이 중재 장치는 전 세계 도처에 자리 잡고, 다국적기업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MMT(메틸시클로펜타디엔일 망간 트리카르보닐니스, 망간 화합물의 일종-역주)’는 석유산업 분야에서 내연기관의 성능 향상을 위해 무연휘발유에 사용하는 첨가제다. 미국기업 에틸(Ethyl, 2004년 Afton Chemical로 개명)은 미국에서 생산한 MMT를 캐나다에 있는 자사 공장에 가져가 혼합한 후, 캐나다 정유기업들에 판매하고 그 나머지를 전 세계로 수출한다. 1997년 4월 초, 오타와에서 캐나다 국회는 미국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에서 사용을 금지한 신경독성물질인 이 제품의 수입 및 유통을 금지하는 법안을 검토했다. 전문가들은 뇌에 축적된 망간이 중증 퇴행성신경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으며, 자동차제조업체들에서는 MMT가 슬러지를 발생시켜 엔진 손상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캐나다 국회 내 논의가 자사의 명성을 손상시켰다고 여긴 에틸은 1994년부터 시행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근거로 캐나다 정부를 제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NAFTA에 의하면, 정부 규제로 투자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투자자는 해당 정부를 민간중재소송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캐나다 국회는 위협을 무시하고 1997년 6월에 법을 도입했다. 나흘 후, 에틸은 ‘간접수용(정부 규제에 의해 자산가치 하락이 발생할 경우, 투자자는 해당 정부를 상대로 제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역주)’을 근거로 2억 5천1백만 달러를 요구한다. 1998년 7월, 캐나다 정부는 화해하는 편을 택하고 에틸에 1천3백만 달러를 지급한 후, 첨가물 MMT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법을 폐지한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와 행정부의 의지가, 일개 민간기업에 의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근본도 없는’ 재판관들에게 위임된, 보통법의 차원을 초월한 절차를 통해서 말이다.
어떻게 이런 기막힌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중재란 공식재판을 통하지 않고 개인 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중재인은 세 명인데 한 명은 신청인을, 다른 한 명은 피신청인을 대변하며, 나머지 한 명은 쌍방이 합의해 선임한다. 보통은 스톡홀름상공회의소나, 세계은행 산하 기관인 워싱턴 DC에 위치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파리 소재 국제상공회의소(ICC)처럼 이 중재절차를 수용하는 민간, 공공, 국제적 중재기관 중 하나가 이 세 번째 중재인을 제안한다. 심지어는 단 한 명의 중재인이 세 가지 역할을 연달아 담당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중재는 항소가 불가능하다.
곧이어 프랑스나 독일의 지자체들 또한 에틸만큼이나 지극히 ‘인도적인’ 의도로 움직이는 미국기업들의 표적이 될까? 어쨌든 이는 현재 논의 중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의 교섭위원들이 바라는 바다.(2) 유럽연합의 각국 정부들이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에게 부여한 TTIP 교섭위임사항의 제23조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돼 있다. “본 조약은 투자자-국가 간의 효과적이고 보다 현대적이며, 중재인의 투명성과 독립성, 그리고 이 조약이 강제하는 해석을 쌍방이 적용할 수 있음을 비롯해, 본 조약으로 규정된 사항을 보장하는 분쟁 해결 장치를 포함시키는 것을 목표한다.” 제32조는 이러한 장치의 권한을 사회적, 환경적 분야로, 제45조는 본 교섭지침이 다루는 분야 전반으로 확장한다. 한술 더 떠서 제27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본 조약은 규제 권한을 지닌 모든 기관, 그리고 쌍방의 관할당국에 있어 필수다.” 즉, 프랑스 헌법 제72조에 의해 그 규제 권한을 보장받는 프랑스 지자체가 내린 결정이 중재회의소의 결정 앞에서 부인될 수 있다는 얘기다.
민간자본의 힘으로 공적재판권을 분쇄하려는 이토록 노골적인 의지가 눈에 띄지 않고 넘어갈리 만무하다. 그리고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에 대해 재판권을 대신하는 권리로 보는 관점은 전 유럽을 대대적으로 결집시켰다.(3) TTIP의 지지층조차 의혹을 품었으며, 여러 국가들은 법적 효과가 없는 국회결의안을 통해 교섭 과정에서 ISDS의 철회를 요구했다. 중재제도를 피하고자 각국 의회가 조약 비준을 거부할 것이 두려웠던 유럽 진행위원회는 지난 9월 새로운 장치를 제안했다.(4) 이 제도는 1심법원과 상고법원으로 구성된다. 판결 또한 중재인이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재판관들처럼 ‘고도의 자격을 갖춘’ 판사들에 의해 내려진다. 이러한 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투자자의 자격은 구체적인 결정의 대상이 될 것이고, 법규를 제정할 권한이 각국 정부에 할애되며 이 권한은 보호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편차가 여전히 존재한다. 오직 투자자만이 제소할 수 있으며 지자체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 ISDS 관련 조항을 유럽 지침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던 것은 집행위원회 자신이다. 그것이 독소조항임을 알아차리기 전에는, 애당초 ISDS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던 캐나다-EU FTA 교섭 과정에서 집행위원회가 이 중재원칙을 강요할 정도로 이 중재장치에 열광했었다. 그리고 집행위원회는 비밀리에 진행 중인 다자간 서비스 협정(TISA)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행보를 보였다.(5) 이처럼 급변한 태도는 여론 동원 덕분에 가능해진, TTIP의 세부사항 공개가 유럽연합 기관들을 얼마나 난처하게 했는지 잘 보여준다.
공식적 수정 단계를 통과하려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세실리아 말름스트룀이 발표한 제안은 그저 요원하기만 한 미국의 지지뿐 아니라 이 제도에 참여하는 모든 민간단체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는 모든 중재 당사자들이 자리한 국제회담의 소집을 요한다. 이 중재제도라는 사적장치는 TTIP뿐 아니라 캐나다와 조인했으며 아직 비준은 하지 않은 FTA부터 시작해 EU가 제3국과 체결한 통상투자 관련 조약 전체에 해당된다.

국가법을 넘어서는 중재재판

국제중재제도 자체를 전면개혁하자고 주장하는 논거도 다양하다. 우선 이 중재 ‘재판소’의 결정은 국가법원에 보통 적용되는 국가법을 준수할 의무가 없다. 이는 단지 국가법원을 피하려는 의지로, 민간재판소 이용을 정당화하기 위함이다. 법학교수 엠마뉘엘 가이야르에 의하면, 중재절차는 쌍방에 “국가법원보다 민간 분쟁 해결 절차를 선호하고, 재판관을 직접 선임하며, 본인에게 더 적합해 보이는 절차를 꾸며내고, 설령 그것이 정해진 법제도의 규범과 다르다 해도 분쟁에 적용되는 규정을 직접 결정할 자유를 준다. 또, 중재인들에게는 자신의 고유권한에 관해 의사를 표명하고, 절차 진행과정을 결정하며, 쌍방이 묵인한다면 분쟁 내용에 적용할 기준까지 선택할 자유를 준다.”(6) 그러니 투자대상을 보호하길 바라는 민간기업들의 선호수단이 곧 중재절차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재절차는 1923년 이후 각국 정부에 의해 가결된 여러 국제협약, 특히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나 런던 국제중재재판소, 국제상공회의소 혹은 여타 국내 상공회의소 같은 민간기관 내부에서 구상된 일련의 법규들을 골조로 한다.(7)

민간기업만을 위한 국제중재제도

20세기 후반 이전에는 거의 이용된 적 없는 이 민간재판소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거대한 탈식민 운동 이후, 서구 국가들이 그들의 예전 피식민국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성장해나간다. 자크 들로르 연구소에 의하면, 2013년까지 확인된 1심 중재재판소의 제소 568건 중 300건이 유럽국가에서 유래한 것이다.(8) 그리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창설과 함께 차세대 FTA가 등장한다. WTO 규정에 근거한 이 차세대 FTA는 단지 관세를 폐지할 뿐 아니라 ‘비관세장벽(한 국가의 헌법이나 법제 안에서 경쟁에 불필요한 장애물처럼 보일 수 있는 모든 것)’마저 철폐한다.
1994년 이후 모든 FTA에서 되풀이된 WTO 규정은 어느 국가가 새로운 외국 투자자를 유치할 경우,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존 최혜고객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기를 강요한다. 이는 결국 민간투자자와 공기업 혹은 공공서비스를 동등한 선에 놓는 결과로 이어진다. 예컨대 모든 민간기업은 보건 및 교육, 문화, 농업, 환경 분야에서 활동하는 공공사업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잠재적 분쟁의 해결에 있어 공공법원은 재판권한을 ISDS에 빼앗기는데, 시행 중인 양자투자조약 3,200개 중 93%가 민간재판을 허용하는 항목을 담고 있다.(9)
국제중재를 장려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중재는 독립성, 비밀보장성, 신속성, 저비용, 강제성, 완결성을 지닌 절차다. 이렇게 투자자들에게 보호정책이 부여됨으로써 자본의 ‘유인 가능성’이 상당히 강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먼저, 중재재판소의 결정은 강력한 이해충돌의 의혹으로 얼룩져 있다. 이는 중재절차가 그 어떤 직업윤리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절차의 비밀보장성을 보면, 특히 공익과 직접 연관된 사건인 경우 차라리 불투명성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 것이다.(10) 결정의 신속성은 사실상 찾아볼 수 없다. 2011년 필립 모리스가 호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중재소송, 2012년 바텐폴 대 독일 정부, 2012년 론파인리소스 대 캐나다 정부 혹은 2012년 베올리아 대 이집트 정부의 중재소송 같은 경우 2015년 10월에도 여전히 결정되지 않았다.(11) 그리고 최소 몇 년은 있어야 중재결정이 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중재절차가 기존 재판보다 경제적이라는 주장은, 시간당 평균 1천달러에 달하는 중재 사례금과 비싼 절차비용을 볼 때 농담에 불과하다. 바로 이 점이 중재장치를 거대다국적기업 전용으로 한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마지막으로, 중재결정이 지닌 최종적 성격은 이 ISDS를 정당성 없는 제도로 만드는데, 법적 오류도 사실적 오류도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재절차가 각국 정부에 이득이 될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ISDS 차원에서 이루어진 (재판권한에 대한 것이 아닌) 본안에 대한 중재사건 중 60%는 민간기업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졌다. “수많은 목격자들이 인정하듯이, 정부는 절대 이기지 못한다. 단지 패소하지 않는 것만이 가능하다. 손해배상을 받는 것은 투자자뿐이며, 정부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비용 환불이다.”(12)
마지막으로, 세계은행과 국제연합 무역개발협의회(UNCTAD)의 연구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들은 민간중재장치를 갖춘 양자조약과 투자규모 증대 사이에 통계적 연관성을 확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말인즉, 중재장치가 없는 나라에서 중재장치가 있는 나라로 투자의 이동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13) 외국 투자자들에게 있어 중재절차가 한 국가의 투자 유인 가능성을 강화해준다는 자유주의적 논거도 이렇게 무너져 내렸다.

 

 

 

글·모드 벌로Maude Barlow
캐나다 시민 평의회(The Council of Canadians, Canadians.org) 회장이자 보고서 <TTIP, CETA, ISDS에 대항하라 : 캐나다의 예에서 얻은 교훈>(Fighting TTIP, CETA and ISDS : Lessons from Canada)의 저자

라울 마크 제나Raoul Marc Jennar
에세이작가이자 <범대서양자유무역지대 : 유럽국민을 향한 위협(Le Grand Marché transatlantique. La menace sur les peuples d’Europe)>(Cap Bear Editions, Perpignan, 2014)의 저자


번역·김세미 sem2100@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아디다스의 전 소유주, 2007년 아디다스와 국영 크레디리요네은행 간 분쟁 중재에서 타피는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다.
(2)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4년 6월호 자료 ‘범대서양자유무역지대’ 참조.
(3) Amélie Canonne, Johan Tyszler, ‘자유무역에 대항하는 유럽인들(Ces Européens qui défient le libre-échang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5년 10월.
(4) ‘집행위원회가 TTIP와 여타 EU 통상투자교섭에 대해 새로운 투자 재판제도를 제안하다(Commission proposes new Investment Court System for TTIP and other EU trade and investment negotiations)’,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Bruxelles, 2015년 9월 16일.
(5) 라울 마크 제나, ‘오십 개 정부가 서비스업의 자유화를 비밀리에 교섭하다(Cinquante Etats négocient en secret la libéralisation des servic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4년 9월.
(6) 엠마뉘엘 가이야르, <국제중재법의 철학적 측면(Aspects philosophiques du droit de l’arbitrage international, Académie de droit international)>, La Haye, 2008.
(7) 1923년 제네바 의정서, 1958년 뉴욕 협약, 1961년 제네바 협약.
(8) Elvire Fabry, Giorgio Garbasso, <TTIP 속의 ISDS : 세부사항 속에 숨은 악마(L’ISDS dans le TTIP. Le diable se cache dans les détails)>, 자크 들로르 연구소, Paris-Berlin, 2015년 1월 13일.
(9) Ibid.
(10) 이 모든 점들에 관련해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투자 정책 프레임워크(Investment policy framework for sustainable development)>, (UNCTAD, Genève, 2012)를 참조.
(11) Benoit Bréville, Martine Bulard, ‘정부를 강탈하기 위한 재판소들(Des tribunaux pour détrousser les Etat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4년 6월.
(12) Howard Mann, <ISDS : 투자자와 국가 중 누가 더 많이 승소할까?(ISDS : Who wins more, investors or states?)>, UNCTAD, 2015년 6월 24일.
(13) Elvire Fabry, Giorgio Garbasso, <TTIP 속의 ISDS : 세부사항 속에 숨은 악마(L’ISDS dans le TTIP. Le diable se cache dans les détails)>,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