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극우파가 열광하는 ‘도니폴로’ 운동

2016-01-28     클레아 샤크라베르티


인도 북동부 산악지대 아디 부족민 영토에서는 힌두 극우민족주의 단체들이 지역토착종교인 도니폴로 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악마’와 맞서 싸우는 시점에서 이런 관심은 심상치 않다.

라티란 씨는 혀를 차며 짧은 부엉이 울음소리를 세 번 냈다.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사냥꾼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도착을 알린다. 대나무로 만든 부대자루는 사냥감으로 가득 찼고, 그가 신은 ‘메이드 인 차이나’ 플라스틱 샌들은 기둥이나 말뚝 위에 지어진 집들 사이의 진흙길과 조약돌 위를 편안하게 미끄러져 간다. 이 젊은 아디 족은, 아루나찰프라데시 주의 고원지대 해발 800m에 자리 잡은 마을 다마루에 주민 1천 명과 함께 살고 있다. 아루나찰프라데시는 중국, 부탄, 버마와 국경을 접한 인도의 주(州)로, 대부분 티베트-버마 어를 사용하는 ‘지정 부족민’(1)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것 외에는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과 강, 산들이 펼쳐진 곳이다. 다마루는 이 주의 주요 도시인 파시가트(시안 계곡에 위치한 예전 영국 관리 구역)에서 자동차로 6시간 거리에 있다.
2000년대까지 잘 보존됐던 계곡 마을의 생활은 광고판, 민간은행, 중국과 인도의 저렴한 소비재 등이 들어오면서 세계경제에 장단을 맞춰 급속히 변화했다. 다마루에 전기는 간헐적으로 들어오지만 휴대폰은 모두 한 대씩 가지고 있다.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TV 수상기에서는 시끄러운 인도 시트콤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현혹한다. 농사와 사냥으로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아직 농경 축제나 제사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아디 족은 오랫동안 제도화‧법제화되지 않은 자신들의 주술적·사회적 관습과 신화를 혼합한 종교를 믿고 있다.
이 부족의 연장자 샤르미르는 “젊은이들이 마을의 평안보다 발리우드 영화(헐리우드에 비견되는 인도영화-역주)나 서구식 생활방식과 유행에 관심이 많다. 도시로 떠나버리고 부족들 사이의 연대감은 퇴색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최근 2001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1971년 3.7%에 불과했던 도시주민 비율이 21.34%까지 증가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도시 이주의 주 원인을 기독교화로 인한 이질문화 수용으로 보고 있다. 이런 기독교화는 특히 1980년대에 시작된 중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파시가트의 아디 전통문화 및 여성운동단체 회장으로 일하는 애니 탈로하 부인은 “모든 부족에게 기독교화라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의 축제나 제사를 따르지 않는다”고 유감스러워 한다. 이곳에는 10년 사이에 10개 이상의 교회가 들어섰다.(2)

기독교 문화 침투로 인해 전통문화 퇴색

한 젊은 침례교 지도자는 “우리 선조들은 어린아이 같았다. 사람들은 자연의 정령들을 숭배하고 그것들에 절하지만, 그것들은 사탄이고 악마다! 우리는 제물을 바치는 것과 음주를 단죄한다”고 주장한다. 조직적이고 강력한 교구에 연결된 이 교회들은 새로운 신도를 확보하기 위해 근대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동시에 지역색이 강한 민속음악이나 춤 등을 예배에 도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기도와 치료 캠프를 개최한다. 육체적 정신적 의미에서의 ‘힐링 십자군’격인 기도치료 캠프가 참가자들 간에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치료사들을 찾아가면 돈이 많이 들고, 정부의 병원시설은 병원인력의 잦은 결근으로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3)
파시가트의 공무원으로 1970년대 원주민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칼링보링은 “목회자들이 대량 개종을 시작했고, 우리 부족시스템보다 더 매력적이고 더 현대적인 무엇인가를 제안했다. 기독교로의 개종은 우리 문화를 위협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적 관습과 믿음을 개혁하면서 우리 고유의 종교운동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실제로 교육을 받았고 영어가 가능한 일부 아디 부족민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인도 동북부의 다른 주들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데 전념 중이다.(4)
“인도의 나머지 다른 지역과 접촉하기 시작하면, 학교나 행정서류 상으로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의 종교를 통해서만 확인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다른 인도인들이 알고 있는 우리의 종교는 없었다. 우리는 그래서 우리의 가치가 절하된다고 느꼈다”고 칼링보링은 말한다. 그래서 이 지역의 열성활동가들은 아디 부족의 우주론과 신앙을 반영하는 용어인 도니폴로(Donyi-Polo, ‘태양-달’의 뜻)라는 이름 아래 그들의 믿음과 종교 관례를 통일하기로 결정하고, 1986년에 공식위원회를 창설했다. 기독교와 힌두교의 종교관행에 영감을 얻어서 ‘강긴(Ganggin)’이라 불리는 예배당을 혁신하고, 그들이 섬길 신들과 상징(물)들, 그리고 신전을 지정했다. 이 그룹을 이끌고 있는 탈림 루크보는 찬송가와 기도문을 문자로 기록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구술성을 존중해온 부족들에게는 가히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아루나찰프라데시에서 도니폴로 교를 믿고 따르는 가정들은 흰색 바탕에 붉은 색 태양이 그려진 깃발을 내건다. 예배당은 큰 사각형의 집인데, 주로 예배일인 일요일 아침에 사람들이 모인다. 제단에는 부족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힌두교 신들의 모습을 본뜬 도안으로 그려져 있다.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그림은 도니폴로를 상징한다. 촛불, 향, 작은 청동 종들도 놓여있다. 혁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파시가트 예배당 사무총장 타좀타숨은 “우리는 명상과 요가를 도입했고, 힌두교도들의 옴(5)과 유사한 케윰이라는 단어 낭송도 도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종교의식이 모든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것은 아니다.
파시가트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칼린 탈로는 “30년 전만해도 그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개혁은 기독교화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힌두 단체들이 우리 종교에 개입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언급한 단체들은 사실 원주민의 권리 옹호운동을 굳건하게 지지해왔던 단체들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이들의 지원이 물류 지원에 불과했다는 것이 보랑의 생각이다. “우리는 어떻게 시작할지, 운동을 어떻게 조직할지 몰랐다. 그때 그 단체들이 우리에게 인력, 교육, 자문 등의 구체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도움을 주었다는 그 단체들은 인도의 극우 힌두민족단체인 인도민족봉사단(RSS)에 속해 있거나, RSS와 유사한 성격을 지녔다. RSS의 대표적 이념인 ‘힌두트바(Hindutva)’는 힌두 우월주의와 힌두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적 비전을 근간으로 한다. 오늘날, 도니폴로 예배당에는 RSS 지도자들의 초상화를 찾아볼 수 있다. 원주민운동의 공동제창자였던 탈롬 루크보는 2002년 사망하면서 RSS에 의해 성상 반열에 올랐다.
1962년 중국-인도 전쟁 이래 아루나찰프라데시에서 상당히 많아진 이 단체들은 민족정체성을 강화할 목적을 가진 사회·교육망을 통해 활동한다. 이곳에는 RSS 비디야 바르티 스쿨 체인(6)의 14개 교육시설이 있고, 파시가트 도니폴로 비디야 니키탄 초등학교 또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노래인 바르티 마타(어머니 인도)를 찬양하고, 산스크리트어 성가(聖歌) 등을 가르치며 인도의 공교육을 보충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디 족과 같은 지정부족민 출신으로 산스크리트어나 힌두의 신들에 익숙하지 않다.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힌두교도다. 도니폴로 교는 힌두 다원주의에 속한다. 현지 지역민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도니폴로 교는 토착원주민 종교이면서 힌두교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힌두교도들은 수리야(힌두교의 태양신들 중 최고위의 태양신)를 숭배하는데, 우리가 섬기는 라마 신 역시 태양신의 후손이다. 힌두교도들은 도니폴로 교도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숭배한다. 그렇다면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이 조직의 교육 코디네이터인 K.V. 아쇼칸의 반문이다. 아쇼칸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RSS가 기독교 개종을 악마처럼 여기는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아쇼칸의 입장은 단호하다. “국민의 충성심을 확보해야 한다. 무슬림이나 기독교인들은 충성스러울 수 없다. 그들의 충성심이란 것은 로마나 메카를 향한 것인데 어떻게 인도에 충성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스스로를 힌두교도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과 우리 본래의 상태에 대한 위협이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은 힌디어를 일상어로 사용한다. 구와하티 소재 인도 기술연구소의 인문사회과학 연구원인 미즈라 줄피카르 라만은 “1962년 이후 정부는 힌디어를 모든 주에 보급하기 위해 힌두교 미션스쿨에 권한을 일임했다”면서 “그 덕택에 정부는 이 지역에 대한 권한을 내세울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
RSS 단체 중 하나인 아룬 죠티는 영어 책자를 통해 “외부의 위협에 맞서 민족 감정을 강화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특히 청소년들을 위한 “자기개발 및 진로설정 캠프”에서는 이 필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이 단체는 인도 국민이 고통 받고 있는 사회 경제적 해악들이 ‘뒤처진’ 부족민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인류학자 난디니 순다르에 의하면 RSS 단체들과 인도 교육 시스템은 이와 같은 공통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7)
RSS의 또 다른 현지단체인 아루나찰프라데시 비카스 파리차의 부사무국장 오마르 타틴은 “부족민 담당부처는 아무 소용이 없다”면서, “우리가 우리의 종교를 통일하고 형식화하려 했을 때 RSS만이 우리를 지원했기에, 우리는 RSS쪽으로 돌아섰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다른 아디 부족민들처럼 그 또한 부족민들은 “발전 내지 개발돼야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1940년대에 고빈 사다시브 구리예가 추진했던 인도사회학의 한 계파의 담론을 그들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했다. “뒤처진 힌두교인인 부족민들을 (힌두주의)문화 및 경제개발로 동화시켜야한다”는 것이 그 사상이다. 그런 생각이 최고 지도층에도 퍼져 있어서 대대적인 산업화 계획이 수용되기에 이르렀다. 2005년~2014년 브라마푸트라 강 댐 건설과 관련된 162개의 사전계획은 해당 주민들과의 실질적인 합의 없이, 투자받은 기금 사용처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채 민-관 파트너들 사이에 체결됐다.

 


글·클레아 샤크라베르티 Clea Chakraverty
인도 뭄바이 언론인.

번역·김계영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학사> (2006), <르몽드 세계사3>(2013),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1) 인도에서 교육 및 고용부문 특별지원 대상으로 지정된 부족, 인도 주민들을 관리하는 행정 카테고리의 일종으로, 2015년에 지정부족민은 411개로 집계됐다.
(2) 아루나찰프라데시 주민의 30%가 기독교인이며, 인도 전체로는 2.3%에 해당한다.
(3) 비바 조시, <믿음의 문제. 기독교 개종과 인도 북동부의 힐링>, Berghahn Books, 뉴델리, 2012년 참조.
(4) 나갈랜드, 메갈라야, 마니푸르 주는 70%, 미조람 주는 99%가 기독교인이다.
(5) ‘옴’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단어이자 소리(깨닫는 소리)로, 단숨에 발음한다.
(6) 비디야 바르티 스쿨 체인은 1952년에 RSS의 사상가인 마다브 사다시 골왈카르(Madhav Sadashiv Golwalkar)가 고안한 것으로 아돌프 히틀러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7) 난디니 순다르, “평등을 위한 교육 : 인도 ‘토착’ 시민의 경험”, <Asian Anthropology> 9권, 홍콩, 201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