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여성들이 유술(柔術)을 배운 이유

2016-01-28     다니엘 파리클라벨


20세기 초, 시민적 평등을 위한 영국의 여성참정권 투사들의 투쟁은 유럽에 일본의 무술이 도입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역사가 흔히 허구를 뛰어넘듯, 말 그대로 우연의 일치가 가부장제 사회를 뒤흔들게 된다.


애비 모건이 시나리오를 쓰고, 사라 가브론이 감독한 장편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 여성참정권 운동가)>가 작년 1월 개봉했다.(1) 이 영화가 많은 장점이 있고 해석도 적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역동적인 주제를 다루는 영화라면 더 역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다. 젊은 여성 노동자가 정치화되는 과정을 통해, 이 영화는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1913년 무렵에 수행한 몇 가지 행동들을 점검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영화장르의 혼합을 확실히 금기시했기 때문인지, ‘사회 드라마’의 눈물을 쥐어짜는 신중함이 두드러진 나머지 액션 영화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역사적 상황의 생동감이 억눌려진 측면이 있다.
70년대 여성해방운동(MLF)의 선구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곳을 적절하게 타격할 줄 알았다. 이런 적절한 타격을 통해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들은 1918년 30세 이상 영국여성 8백만 명의 투표권을, 1928년에는 모든 성인들에 대한 투표권을 얻어냈다. 뿐만 아니라, 정치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여성들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종합이종격투기(MMA) 대회 여자 챔피언들이며 여배우들인 지나 카라노(Gina Carano) 및 론다 로우지(Ronda Rousey)가 등장한 상황과 어울려, 실제로 전투적이었던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단초를 제공한다.
몇 가지 사실을 상기해 보자. 1903년, 여성참정권 운동가 조직의 비폭력적 무력함에 진저리가 난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 1858~1928)는 자신의 두 딸인 크리스타벨(Christabel, 1880~1958), 실비아(Sylvia, 1882~1960)와 더불어 ‘여성사회정치동맹(WSPU)’을 결성한다. 크리스타벨은 경찰에게 침을 뱉음으로써 1905년부터 연속적으로 임의구금 되고, 임의구금은 팽크허스트 가족과 WSPU의 투사들을 구속하는 수단이 된다. WSPU는 곧바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그것은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1910년부터 특히 ‘블랙프라이데이’에 주의를 끌기 위해 자신의 동료 투사들과 더불어 시위에 직접적으로 참여했고, 이 페미니스트 시위를 경찰이 유례없는 폭력을 동원해 진압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라고 명명하게 될 여성들은 당시에 유리창을 부수고 부자들의 전원주택에 불을 지르고, 골프장들과 왕립식물원을 파괴하면서 신성한 사유재산을 공격하게 된다.
시민불복종과 파손을 결합한 문화파괴행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남성폭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정과 일터에서 배척당한 여성투사들은 길거리에서도 모욕을 당했다. 시위하는 여성투사에게 사람들은 돌을 던지고, 남성들은 여성 연사들을 구타하려고 모임의 연단 위에 올라간다. 뒤를 이어 등장할 경찰들은 조롱하는 시선으로 여성투사들을 쳐다본다. 여성투사들이 정치범의 지위를 요구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단식투쟁을 하면서부터 그들은 감옥에서 힘을 얻게 됐다.
가혹한 고통에 공감하는 남성시민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가는 것을 염려한 당국은 1913년 ‘캣 앤 마우스법(Cat and Mouse Act)’을 제정한다. 이 법에 의하면 단식 투쟁 수감자들의 상태가 심하게 나쁠 경우 석방되고, 상태가 호전되면 다시 수감된다.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에게는, 이 잔인한 고양이와 쥐 놀이를 방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사안이 된다. 이 법의 목표가 공개적으로 여성참정권 운동을 박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순간에 사무라이들이 개입한다.

유술을 사용하는 여성참정권 운동가들

문자 그대로 ‘유연함의 기술’이라는 유술(柔術)은 상대방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육체적으로 훨씬 센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것이 가능하다. 일본 봉건시대의 사무라이들이 맨손 전투기술로 발전시킨 유술은 유도, 합기도 및 최근의 브라질 유술을 낳게 된다. 1898년 에드워드 윌리엄 바튼라이트(Edward William Baton-Wright, 1860~1951)가 일본에서 배워온 유술을 영국에 도입한다. 그는 자신의 성을 딴 ‘바티추(Bartitsu)’라 불리는 무술을 창설하고 그 기본으로 유술을 사용한다. 바티추는 현대 종합이종격투기의 전신으로 유술, 영국복싱, 발차기와 레슬링을 혼합한 무술이다. 1900년 뉴욕 맨허튼 가(街) 남쪽의 소호(Soho)에 문을 연 그의 도장은 군인들, 귀족들 등의 수많은 수련생들을 끌어 모은다. 이 도장은 발차기와 막대기 무술을 가르치는 프랑스인 피에르 비니이(Pierre Vigny) 같은 유명한 사범들을 고용한다. 훗날 그의 부인이 된 마르그리트는 몇 년 후 우산을 이용한 놀라운 방어기술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이 도장은 특히 유키오 타니(Yukio Tani, 1881~1950)와 사다카주 우예니시(Sadakazu Uyenishi, 1880~?)라는 뛰어난 일본인 무술사범들의 덕을 본다.
공개 실연을 보고 매료된 체육교사 부부 이디스 가루드(Edith Garrud, 1872~1971)와 윌리엄 가루드는 즉석에서 바튼라이트 도장에 등록한다. 1903년 바튼라이트 도장이 문을 닫자, 그들은 ‘일본 자기방어 도장(School of japanese Self-Defense)’을 개설한 우예니시를 따라간다. 그들은 스승이 일본으로 되돌아가자 도장을 맡게 된다. 이디스 가루드는 이 도장에서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유술을 가르친다. 그리고 WSPU와 함께 1907년 탄생한 ‘여성자유연맹(Women’s Freedom League)’의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을 위한 전용 도장도 런던의 이스트앤드에 개설한다.
이 시기에는 여성이 스포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간주됐다. 게다가 이디스 가루드는 페미니스트 전사다. 키가 150cm에 불과한 그는 우스꽝스럽게 경찰로 변장한 인물과 대결하는 시범 경기를 통해 민첩성이 난폭한 폭력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디스 가루드는 강의를 통해 여성의 자기방어 기술을 권장할 뿐만 아니라 영국 최초의 무술영화 <유술이 노상강도를 때려눕히다>(1907)에 출현했다. 이어 가정폭력에 반대하는 희극 <모든 여성이 알아야 하는 것>(1911)을 만들고, WSPU의 잡지인 <여성을 위한 투표>에 기고하며 자기방어 기술을 권장한다. 또한 그는 투옥된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을 소리 높여 지지하기 위해 할러웨이(Holloway, 영국최대의 여성교도소) 감옥 벽을 개의치 않고 기어오른다.
1913년 캣 앤 마우스법으로 상징되는 당국의 압력이 거세지자, 실비아 팽크허스트는 시위대를 경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WSPU를 설득해 ‘보안부서’를 창설한다. 이렇게 이디스 가루드에게 훈련을 받은 40여 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보디가드 그룹이 탄생한다. 가루드는 자신의 도장 다다미 밑에 비밀무기 저장소를 만든다. 보디가드의 우두머리는 1912년 런던에 도착한 캐나다 여성 거트루드 하딩(Gertrude Harding, 1889~1977)이다. 하딩은 영국 왕립식물원의 희귀 난초들을 뽑아버린 것으로 유명해졌다. 여성이 왕립식물원의 6피트 담을 기어오를 수 없다고 간주한 당국은 이 사건이 남성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단정했다.
치마 속에 벽돌, 체조곤봉 혹은 경찰에게서 훔친 곤봉을 숨긴 보디가드들은 자신들의 수적 열세에 대처하기 위해 용기와 기량을 서로 북돋우며, 시위와 모임을 보호한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부상을 입는다. 여성 보디가드들은 일정과 퇴각방법을 기획한다. 예를 들어 여성 보디가드들 중 상당수가, 모임이 끝날 무렵 경찰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에머린 팽크허스트 등 경찰의 추적을 받는 여성참정권 운동가와 꼭 닮은 모습으로 변장한다.
언론은 여성 보디가드들의 쾌거를 중계하면서 이들을 ‘아마존의 여전사’ 혹은 ‘서프라지추(유술을 배운 여성참정권 운동가)’라는 별명을 부여한다. 반면에 경찰들은 자신들의 멜빵을 잡아채고 반바지를 벗기는 여성들과 마주치자, 이들의 머리카락을 잡아챈다. “우리의 여전사들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고, 자신들의 위업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머리가 터진 우리 동료는, 자신의 상처를 아주 선명하게 간직하기 위해, 상처를 꿰매는 것을 거절했다. 진정한 여전사의 패기인 것이다!”라고(2) 팽크허스트가 자신의 보호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글을 쓴다.
경찰도 때로 술책을 썼다. 1913년 경찰은, 부두에서 기다리는 여성 보디가드들을 따돌리기 위해, 미국 여행에서 돌아오던 에멀린 팽크허스트를 배 위에서 체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경찰들은 자신들의 숫자와 폭력을 믿고 곤봉을 들고 경계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1914년 ‘글래스고우의 전투’라는 모임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스코틀랜드에서 WSPU의 모임이 있었을 때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단순 구경꾼으로 행세함으로써 경찰의 감시를 따돌린다. 그러나 그가 연단에까지 교묘하게 올라가자 50여 명의 경찰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30여 명의 여성 보디가드의 보호를 받고 있었으며 4천 명의 관객이 충격을 받은 채 그 장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국의 허가를 받은 모임에서 폭력을 사용해 불법적으로 팽크허스트를 체포하는 모습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여성참정권 운동가의 대의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독일과 전쟁을 시작한 후,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WSPU의 활동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보디가드를 해체한다. 그리고 영국여성들에게 국가적 전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여성시민으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 이런 결정은 1918년에 그 결실을 맺게 된다. 그러나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전쟁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위원들 그룹에 합류한 자신의 딸 실비아 팽크허스트와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다. 공산주의 혁명의 미래에 대해 점점 두려움을 느낀 실비아는 결국 보수당에 합류한다. 반면 무술을 가르치는 최초의 서양 여성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큰 이디스 가루드는 1925년까지 남편과 함께 유술을 계속해서 가르친다.
‘유술을 사용하는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은 영불해협의 맞은편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그 중에는 최초의 정신과 의사이며 무정부 사회주의 여성투사인 마들렌느 펠르티에(Madeleine Pelletier, 1874~1939)도 포함된다. 1908년 런던의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의 시위에 참석한 후, 펠르티에는 자신의 잡지에서 ‘여성참정권 운동’이라 불리는 여성 동료들이 타격을 가하는 행동주의를 옹호한다. “보도블록을 깨는 자체가 중요 논점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이 우리의 중요 논점에 대해서는 귀를 닫고, 깨진 보도블록에만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당연히 보도블록을 깨야한다.”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중국 최초의 페미니스트’이며 시인인 추근(Qiu Jin, 1875~1907)은 놀라운 방식으로 새로운 정신을 구현해 냈다. 추근은 특히 전족(纏足)이라는 전통에 대항해 싸웠다. 만주왕조에 항거하는 폭동을 준비할 목적으로 중국 무술과 일본 무술을 배운 그는 소녀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고, 소녀들에게 무기 사용법을 훈련시켰다. 이어서 그 제자들에게 일을 배우라고 권고함으로써 물의를 일으켰다. 1907년 그는 쿠데타 혐의로 참수됐다.(3)
사회적 자기방어와 여성의 자기방어를 주장한 여성 개척자들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항상 먼저 손해를 배상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여성들의 실제적 필요에 따라 여성성을 재정의하려고 노력했다. 유술을 실천한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은, 자신의 저서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무시당하는 것에 진저리가 난 모든 여성들을 위한 자기 방어 매뉴얼, “싸움을 건 사람은 폭력을 발생시키려고 결심한 것이다. 폭력을 일으킨 사람에게 그 폭력을 되돌려줄 결정을 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다”라고 주장한 사회학자이며 교육가인 이렌느 제렝제(4)보다 더 앞서간 사람들이었다.

 


글·다니엘 파리클라벨 Daniel Paris-Clavel
대중문화를 표방하는 잡지 <셰리비비(Chéribibi)>의 설립자이며 운영자다. www.cheribibi.net


번역·고광식
파리8대학 언어학박사. 주요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3> 등이 있다.

 

 

(1) 2016년 3월 DVD로 출시 예정.
(2) 토니 울프(Tony Wolf), “유술을 아는 여성참정권 운동가”, Lulu.com, 2009년. 그래픽노블(만화소설), <팽크허스트 부인의 아마존 전사들>, 토니 울프와 주아오 비에이라(Joao Vieira), 제트 시티 코믹스(Jet city Comics), 타코마(워싱턴), 2015년.
(3) 수잔 베르나르(Suzanne Bernard), <페미니스트이며 시인이며 혁명가인 추근>, 르탕 데 스리즈, 몽트뢰이으, 2006년.
(4) Irene Zeilinger, <아니야, 그것은 아니야> 존느, 파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