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의 트랜스섹슈얼리티

2016-01-28     앙헬린 몬토야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몇 년 전 동성애를 ‘질병’에 비유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입장은 달라졌다. 좌파가 집권했던 지난 12년 간(2003~2015년), 아르헨티나에서 시민들의 자기 정체성, 특히 성 정체성에 큰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오늘은 사죄의 날입니다. (···) 이렇게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2012년 7월 2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의 발언이 트랜스 커뮤니티를 뒤흔들었다.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이날 최초로 성별 변경을 인정하는 신분증명서를 수여했다. 출생 당시에는 ‘남성(또는 여성)’이었지만 ‘여성(또는 남성)’으로 기재되길 원하는 이들에게 말이다. 2012년 5월 9일 상원에서 찬성 55표, 기권 1표로 통과된 성 정체성 법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리에는 어떤 반대시위도 없었다. 인구의 약 80%가 가톨릭 신자인 아르헨티나에서 교회는 사실상 아무 논쟁도 벌이지 않았다. 사회발전 담당 여성 공무원 디아나 사카얀(1)은 신분증명서 수여식을 떠올리며 2015년 1월 말했다. “국가가 전에는 우리를 뒤쫓더니, 그 날은 우리에게 사과를 하더군요.” 그는 그로부터 9개월 후 살해당했다.
성 정체성 법 시행으로 모든 사람은 출생 당시 ‘부여된’ 성별과 상관없이 성별을 인정받게 됐다. 호적계에 신고만 하면 이름과 성별, 신분증 사진, 출생증명서를 변경할 수 있다. 프랑스와는 달리 상세 설명이나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외과 수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새로운 법의 수혜자 중 많은 이들이 출생 당시의 생식기를 유지하면서 남성도 여성도 아닌 ‘트랜스’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더욱이 남성, 여성 중 한 가지 성을 의무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성 정체성 법 규정은 트랜스 운동가인 마를렌 와야르(46세)를 위시한 일부 사람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자신을 여성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아요. 언젠가 ‘트랜스’ 외에 진정으로 내 경험을 반영하는 다른 명칭이 나온다면 그 때 신분증을 바꿀 생각입니다.”

“우리가 외출 시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

어떤 이들의 눈에는 미흡하지만, 트랜스 커뮤니티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 정체성 법을 환영한다. 이 법에 따르면, 필요한 경우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에 드는 비용 전부를 정부가 부담한다. 또한 부모의 동의가 있으면 미성년자들의 호적 정정이 허용된다. 이렇게 해서 2013년 10월 9일, 6살 루아나는 새로운 성 정체성으로 신분증을 발급받은 첫 번째 아동이 됐다. 이 법의 공포 후 3년이 지난 지금 일상생활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출생시 이름으로 호명 당하고 휴대폰을 구입하고, 응급실에 가고 행정절차를 밟는 그 모든 순간이 끔찍했어요. 이제는 신분증만 제시하면 돼요.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이 모든 일상적인 행동이 삶의 기본이 됐어요. 이제 우리도 아르헨티나 시민이자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느껴져요.” 트랜스베스타이트 및 트랜스섹슈얼 정체성 투쟁 연합(ALITT)의 로아나 베르킨스는 설명한다.
“트랜스포비아(성전환과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와 감정-역주)를 일상적으로 겪어보지 않았을 젊은 세대는 우리가 못 가져본 엄청난 가능성들을 누리게 됐어요.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트랜스들을 보면 너무나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가 외출할 때 부르카(이슬람 여성들이 입는 머리부터 발목까지 덮는 전통 복식-역주)를 쓰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승리를 거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성 정체성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의 역사를 걸어온 그들은 이제 판사의 선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성과로 자부한다. 2012년 이후 인구 4천1백만 명 중 6천 명이 호적을 정정했다.
성 정체성 법의 시행만으로 트랜스들의 상황이 나아질까? 2006년 발간된 ALITT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트랜스의 평균 수명이 35세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첫 번째 사망 원인은 에이즈. 두 번째 원인은 실리콘 주입 등 불법 의료 행위(의학적 처치의 90%). 게다가 트랜스의 80% 이상은 생계수단이 매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이 수치는 낮아진다. 대학 졸업장이 있는 트랜스 중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33%다. 그러나 이들이 트랜스 커뮤니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다. 대학입학시험을 치를 때까지 학교를 다니는 트랜스가 1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랜스의 76%가 경찰폭력에 시달린다. 이것이 세 번째 사망 원인이다.
살해되기 전 사카얀이 남긴 말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40세가 됐어요. 13세에 집을 나온 후 15년 간 매춘을 하면서 5년은 감옥에서 보냈고요. 2주 동안 갇혀 있기도 했어요. 풀려난 다음날 이제는 폐지된 트랜스베스티즘(이성복장 착용-역주) 금지규정을 들먹이며 경찰이 다시 잡아가기도 했어요.” 그는 감옥에서의 가혹 행위나 구타, 강간에 대해서 얘기하려 하기보다는, 성 정체성 법 시행 후 달라진 점에 대해 얘기하기를 원했다. “이제야 이 나라가 내 조국이구나 싶어요. 아르헨티나의 국기가 나를 감싸고 보호해줍니다.” 2015년 10월 13일 사카얀은 칼에 찔려 생을 마감했다.
성 정체성 법 통과 이후 수많은 제도 개선이 뒤따랐다. 모든 정부 부처에 젠더·성 다양성을 담당하는 부서가 생기고, LGBTQI에 대한 ‘행동 규범 가이드’가 도입됐다. 예를 들어 노동부는 트랜스들을 사회로 편입시키기 위한 교육센터와 협약을 체결했다. 노동부는 교육 보조금을 지급하고, 교육생이 고용되면 일정 기간 임금이나 사회보장금의 일부를 부담한다. 또한 단체협약에 차별금지 조항을 도입하기 위해 80개 노조단체가 함께 모인 협의회와 일한다. 작년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방 의회는 공무원 쿼터제(1% 트랜스 할당) 도입을 위한 법안을 채택했다.
트랜스의 중등교육 이수비율은 15% 미만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2012년 민간 주도로 대학입학자격시험 준비 학교가 설립됐다. 프란시스코 키뇨네스 교장은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우리는 다른 교육기관에서 차별 받아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치룰 수 없었던 트랜스들을 위한 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키뇨네스 교장은 전체 학생들 중 트랜스는 40%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모차-셀리스 학교의 첫 번째 입학생 20명은 2014년 12월 5일 졸업장을 받았다. 파블로 가솔도 그중 한 명이다. “학교에서 저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30세인 그는 작가이자 연출가로 성장했다.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진다. 아베야네다 국립대학교는 트랜스들이 초등, 중등교육을 이수 후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어떻게 가톨릭 국가에서 큰 잡음 없이 동성결혼 합법화(2010), 성 정체성 인정(2012), 모든 여성에 대한 의학적 임신지원 법제화(2013)가 가능했을까? ‘성 정체성 법을 위한 국민전선’ 회원인 에밀리아노 리타르도 변호사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난 30년 간 아르헨티나의 인권단체 ‘마요광장 할머니들’에 의해 정체성은 인권이라는 생각이 확립됐습니다. 성적 다양성을 위한 운동은 그분들의 투쟁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마요광장 할머니들은 정체성을 본질주의적, 생물학적 의미로 해석했고, 트랜스들은 정체성을 사회적 구조, 개인적 선택으로 보았습니다.”
군부통치시대(1976~1983)가 끝난 후, ‘마요광장 할머니들’은 독재정권에 의해 강제로 엄마의 품을 떠나 자신의 정체성을 모른 채 성장한 500여 명의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제도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군정 이후의 대통령들은 군부가 저지른 만행을 밝히기 보다는, 사면법 제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마요광장 할머니들은 전략을 수정했다. 1990년대 초반, 포스터와 스폿광고를 통해 성인으로 자란, 납치된 아이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정체성에 의문이 있다면 우리를 찾아오세요.” 1992년 정체성에 관한 권리 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렇게 해서 정체성은 권리라는 생각이 자리 잡혔고, 점차 원주민 단체 등 여러 단체에 의해 다뤄졌다. 네스토르 키르츠네르(2)는 2003년 대통령에 선출되자마자 인권 옹호와 군사독재정권의 범죄행위 처벌을 주요 정책목표로 삼았다. 사면법은 폐지됐고, 수백 명의 군사정권 관계자들이 법정에 섰다.
그 뒤를 이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 대통령이 트랜스포비아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이는 남편인 키르츠네르 전 대통령이 했던, 군부독재시대의 폭력에 대한 사죄의 후속 조치였다. 그리고 권리로서의 정체성에 호소하는 이 전략은 의회 내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요광장 할머니들은 법적 차원을 넘어 도덕적 차원에서도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아르헨티나의 정상적인 규범 체계의 중심에 올려놓았다”고 마우로 카브랄 ‘트랜스 평등을 위한 글로벌 액션(GATE)’ 공동 의장은 평가한다.
카브랄 의장은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인식하는 방식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경험을 외국으로 전파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노르웨이나 네덜란드는 LGBT 권리에 있어 가장 앞선 나라입니다. 그러나 여타 20여 유럽 국가는 트랜스들에게 불임수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을 권리로’라는 구호가 퍼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들 유럽 국가는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른 개념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서슴없이 남유럽국가들을 비난하면서 자국 정책이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다음 대규모 투쟁 목표는 낙태 합법화

성소수자의 권리 신장이 가능했던 것은, 남성 지배를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낙태는 여전히 불법이다.(3) “아르헨티나의 권위적인 남자들은 여전히 우리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들은 숨어있을 뿐, 낙태처럼 여성인권이 관계되는 문제 앞에는 즉각 모습을 드러내 발톱을 날리지요.” 사카얀이 지적한 바 있다. 사회학자 에릭 파생은 낙태를 금지하는 나라들이 추진한 인권 개선 정책(지난 4월 몰타가 비슷한 법을 채택했다)이 ‘현대적인 국가로 보이는 값싼 방식’을 차용한 것이라고 본다.(4)
뿐만 아니라, 키르츠네르 전 대통령(2010년 타계)은 LGBTQI 권리 옹호자였던 반면,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는 낙태 합법화에 단호히 반대했다. 바로 이것이 가톨릭교회와 정부 간의 거래였지 않았을까. 성소수자나 임신 관련 권리에 진전이 있을 때마다 낙태금지법은 존속할 것이라는 행정부의 발언이 교회를 달래듯 나오곤 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낙태금지법은 민심을 잃게 하는 요인으로 여기지만, 성소수자 권리 옹호에 있어서는 완전히 그 반대 모습을 보인다. 남·여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 관해 경쟁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트랜스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벌이는 투쟁에는 끝이 없다. 트랜스포비아와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성 차이에 기반을 둔 수많은 법들이 여전히 개정을 요한다. “호적에 적힌 대로의 트랜스 남성에게 출산휴가 혜택을 줄 것인가?” 베르킨스는 자문한다. 실제로 지난 2월, 여성 생식기를 간직하고 있는 한 트랜스가 새로운 신분증 상으로는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임신 보조금을 받았다. 또한 성 정체성을 이유로 경찰 폭력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법안이 준비 중에 있다. 이 또한 트랜스 운동가들이 독재정권 하에 수감됐던 사람들에게 지급되는 연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트랜스들은 계속해서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르헨티나에서 낙태 합법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의 권리 향상을 지지해왔어요.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편에 나설 때”라고 사카얀은 말했었다. 이제는 임신중절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법이 ‘임신한 여성’이 아니라 ‘가임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확대 적용돼 트랜스 남성을 아울러야 한다. 보건부가 지난 4월 발간한 보고서에 쓰여 있는 문구다.

 


글·앙헬린 몬토야 Angeline Montoya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면서 진보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기사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그들이 선택한 성별로 지칭됨.
(2)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가 2007년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음.
(3) 임신한 여성의 생명과 건강이 위태롭거나, 성폭행으로 임신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음.
(4) Carlos Bonfil, <현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동거하기. 에릭 파생과의 인터뷰 La convivencia en la modernidad. Entrevista con Eric Fassin>, <La Jornada>, Mexico, 2008년 1월 10일.

<용어 설명>
(1) 트랜스베스타이트(Transvestite): 이성복장 착용자(역주), 전통적으로 자신과는 다른 성별에 속하는 의복과 외모를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프랑수아 오종(Francois Ozon) 감독의 <Une nouvelle amie(국내에는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라는 제목으로 개봉됨)>에서도 트렌스베스타이트가 등장한다.
(2) 트랜스(Trans): 출생 당시 ‘부여된’ 그리고 호적에 기록된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 예전에는 ‘트랜스섹슈얼’이라고 불렸으나, 이들은 이 명칭을 거부한다. 이들은 성별이 아니라 정체성이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트랜스’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3) 성 정체성: 한 개인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인식되길 바라는 방식. 성 정체성은 남성, 여성에 국한되지 않고, LGBTQI(레즈비언, 게이, 바이, 트랜스, 퀴어(‘이상한’, ‘기묘한’, 이분법적 성별 안에서 구별되지 않음), 인터섹스(남성도 여성도 아닌 생식기(성기)를 가진 사람)라는 이니셜로 다양하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