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신화 덮어쓴 제국의 욕망

[독자 에세이] ‘발칸반도의 새 불씨, 알바니아 민족주의’를 읽고

2009-11-06     임경아 | 대학생

 

 <알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이 지면을 통한 독자와의 만남을 넓혀갑니다. <르 디플로> 한국판은 지난 10월 창간 1주년을 맞아 독자 3명의 인터뷰를 실은 데 이어, 11월호부터 ‘내가 읽은 르 디플로’를 싣습니다. <르 디플로>에 실린 글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보내주시면, 매달 한 편씩 골라 지면에 싣겠습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10매 안팎이며, 마감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입니다. 또한 <르 디플로>는 전국에서 독자들이 꾸리고 운영하는 지역별 ‘읽기 모임’ 소식을 전국의 독자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현재 읽기 모임은 서울·경기와 광주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부산·경북·전북 지역에서도 출범을 앞두고 있습니다. <르 디플로>(editor@ilemonde.com)로 문의하시면 모임 준비와 가입을 중개해드리겠습니다. <르 디플로>의 주인은 독자 여러분입니다.

 

발칸반도를 피로 물들였던 인종 갈등의 마지막 화약고는 코소보였다. 세르비아의 무자비한 ‘인종청소’가 미국의 사주를 받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습으로 막을 내리자 알바니아계 자치구 코소보는 마침내 독립을 선언한다. 코소보와 한 민족국가인 알바니아는 이에 화답하듯 양국의 수도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게 된다. 막대한 차관으로 건설된 이 도로 위에서 서로를 향해 질주하는 러닝메이트, 알바니아와 코소보엔 마치 새로운 민족주의의 열망이 불어닥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그들의 고속도로를 지배하려는 일련의 질주관(1)을 목격할 수 있다. 어쩌면 알바니아인들의 순수한 열망과 질주는 사실 제국의 욕망일 것이다. 필자는 이 점을 말하고자 한다. 사실 이것은 폴 비릴리오(2)의 탁월한 통찰이기도 하다.

속도에 중독된 제국의 욕망

 

코소보 사태는 현대적 전쟁의 본성을 극명히 드러내왔다. 기실 냉전 이후 억지력의 등장으로 핵은 ‘총력적 평화’와 동격이 돼왔다. 이에 따라 미국은 NATO라는 습격 기계를 새로이 준비했다. 전쟁의 주체마저 스텔스화한 적 앞에서 세르비아는 대응 방향을 상실한 채 무력하게 패배했고,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코소보에 사상 최대 규모의 요새 본드스틸을 건설한다. 그들은 이제 군사 형태로 가속화한 경제력을 유럽 대륙에 안착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해 국가들의 반대 속에 코소보의 독립은 정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발칸의 지배력을 둘러싼 이같은 감속 장치의 등장은 이미 자본과 자본이 낳은 군사력의 속도에 중독된 제국에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비릴리오가 말했듯, 제국은 ‘정지는 죽음이다’(3)라는 명제에 고착돼 있다. 이 때문에 ‘부동의 전투 기계’ 본드스틸을 지닌 코소보의 관성을 파괴하기 위해 미국이 그 대리자로 선동한 질주광이 바로 알바니아다. 옛 부시 정부와 긴밀한 관계의 벡텔사가 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교통로는 본드스틸과 미 제5함대를 이어 제국의 파괴적 속도를 유럽 중심부에 완전히 전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미 질주정의 본질을 파악한다면 이 고속도로는 대알바니아 건설 그 이상을 함의하며, 사실 미 제국의 야욕의 등가물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알바니아-코소보 간 고속도로 건설의 의미

알바니아-코소보 간 고속도로 건설(4)은 전통적 의미의 교통로 건설이 아니라 세계를 놓고 질주정들이 벌이는 침투와 교통로 감시, 즉 속도 전쟁의 체현물이다. 따라서 발칸의 민족주의 역사를 이어 쓸 것으로 우려되는 알바니아인들의 열망은 국지적 부분을 제외하고선 큰 우환거리가 되지 못한다. 발칸의 지배자가 되고 싶어하는 알바니아인들의 열망이 고속도로 위에서 난폭히 질주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그들에게 적록의 신호를 내리는 제국에 의해 관리·감시되고 있을 뿐이기에. 그리고 그들 자신도 서서히 깨닫게 된 것처럼 자신의 과속은 실은 제국에 의해 고스란히 착취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 속도 전쟁의 체현물

비릴리오에 따르면, 모든 질주를 선동한 권력의 생성과 과속의 혁명은 교통로 위에서 완성되었다. 또한 인간 질주의 본능이 점차 공간 축소와 시간의 지배에 몰두함에 따라 현대의 전쟁은 단연 ‘속도’에 결부되고 있다. 21세기 전쟁에서 약탈당하는 것은 속도이며 질주광들을 통제할 수 있는 교통로에 대한 감시는 전쟁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전략이 되었다. 이 국면에서 ‘절대적 속도’의 현대적 대체물이 바로 자본이다. 이제 자본은 속도 전쟁의 필승법으로 지축을 울리는 ‘화염’이 아닌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게릴라식 ‘잠행·습격’을 선택했다. 그들의 은밀한 침투는 모든 흐름에 대한 완벽한 감시·정복으로 이행돼왔다.

자본의 속도가 감시와 침투, 파괴를 하나의 의미로 만들어버린 지금, 제국이라는 괴물의 광폭한 질주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물질적 공간의 구획이 사라지고 오직 시간의 통치만이 절대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이 속도 전쟁의 공포를 발칸의 한 고속도로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글·임경아 


<각주>  

(1) 프롤레타리아트의 속도를 착취하는 정부 시스템 혹은 거대한 군사 기계들. 지난 세기 역사의 증언대로, 히틀러를 위시한 독재자들의 시대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2) 프랑스 68혁명이 낳은 독창적 사상가. 속도학(드로몰로지)을 바탕으로 문명을 다각도로 해석해 우리 시대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3) Paul Virilio, <속도와 정치>, p.148

(4) ‘발칸반도의 새 불씨, 알바니아 민족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