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간, 거기 남아 있습니까?
커피 1잔은 4분, 쌀 한 가마는 3시간, 스포츠카는 59년. 세상의 모든 재화가 시간으로 환산돼 거래된다면 어떨까? 영화 <인 타임>(1)의 이야기다. 가까운 미래, 모든 사람들은 25세가 되면 1년의 시간을 제공받고, 이 시간은 화폐처럼 이용되는데, 남은 시간이 0이 되는 순간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때문에 시간이 모두 소진되기 전에 노동으로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이 노동의 대가는 하루를 버틸 만큼일 때도 있고, 그보다 부족해 가진 시간을 덜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가난한 자들은 타인에게 시간을 빌리거나 훔치기도 한다. 반면 시간을 많이 가진 부자들은 그 시간으로 다시 시간을 불리고, 영생을 누린다. 이 영화는 SF지만, 사실 ‘시간’을 ‘돈’으로 치환하면 자본주의 사회와 같다. 실제로 그 ‘돈’이 다시 ‘시간’으로 치환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영화 속 세계는 더욱 현실적이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사회초년생 A의 하루를 들여다보자. 아침 7시 전에 출근해 약 1시간 만에 삼성역 근처의 회사에 도착한다. 출근시간은 9시지만 팀의 막내라 먼저 출근해 업무준비를 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 회식이 너무 늦게 끝났던 탓에 아침부터 피곤하다. 술이 친목을 다지는 방법이라고 믿는 부장님과, 부장님 없을 때 ‘우리끼리’ 한 잔을 원하는 과장님 덕택에 요일을 가리지 않고 술자리가 이어진다. 오전에 받은 사내교육에선 언제나 업무시간 외의 자기계발과 자격증 취득을 하도록 권유한다. 이번 주 내내 회식에, 주말엔 부서 친목 등산까지 있지만, 그래도 내일부터는 더 일찍 출근해 중국어 공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점심시간에는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인 ‘점심 소개팅’을 한다.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탓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모자라는 시간 자원을 별로인 상대에게 오래 투자하고 싶지는 않다. 만일 성사되면, 직장이 가까우니 연애하는데 시간도 많이 안 들 것이다. 잠이 부족해 근처 ‘낮잠 카페’의 해먹에 누워 30분만 자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지만, 그래도 이번 소개팅이 잘 되면 연애에 대한 주변의 독촉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잠보다 소개팅을 택했다. 저녁에는 자동 야근, 일이 끝나곤 부장님의 권유로 ‘가볍게’ 맥주를 마시고 귀가한다. 시간이 늦어 환승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1시간 반 걸려 집에 도착했다.
주말에는 겨우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러 간다. 상영시간에 맞춰 갔더니 10분 넘게 광고를 하는 것이 영 짜증나지만, 참는다. 집에 돌아와 주중에 하지 못한 가족과의 식사 한 끼, 밀린 집안일을 해결하고 남은 시간은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 일요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부서 사람들과 등산을 다녀오고 뒤풀이까지 하고 나니 이미 저녁이다. 새해에는 꼭 얼굴 보자고 했던 친구가 생각나지만, 도저히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열심히 시간을 쪼개며 살지만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은 도무지 나지 않는다.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일단 자고 다음 주에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렇게 또 주말이 간다.
열심히 살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A는 현대 사회가 말하는 ‘시간 빈민’이다. A의 일주일은 24시간×7일=168시간이다. 이 중 A가 자신의 의사결정과 무관하게 사용한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자. 왕복 출퇴근 10시간, 막내라서 일찍 출근하는 5시간, 회사의 자기계발 요구에 부응해 중국어를 공부할 2.5시간, 주3일 각 4시간의 야근 및 그로 인해 추가되는 퇴근 소요시간 약 13.5시간, 야근 후 맥주 약 6시간, 회식 2회 12시간, 일요일 친목 등산 및 뒤풀이 8시간, 이것만 더하더라도 57시간이다. A가 하루 6시간 잔다고 가정하면 168시간 중 남는 시간은 69시간, 이 중 정규 노동시간을 제외하면 29시간, 하루 평균 4.14시간이 남는다. 물론 이 시간에는 하루 세 끼 식사하는 시간과 샤워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 공과금 납부, 장보기 등 사소한 생활사를 해결하는 시간, 그리고 A가 영화관에서 관람한 10분의 광고시간 같은 것들이 포함돼 있다. 결국 A가 온전히 스스로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시간이 채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 첫 번째가 여기서 드러나는데, 그것은 실제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래 일하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근면 신화’는 노동자들의 삶을 회사 안에 가두었고, OECD 평균보다 458시간 긴 근로시간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것이 스스로 업무 조절이 가능한 관리자 급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A와 같은 20~30대 사회 초년생들은 기성세대의 근면 신화에 아무런 토를 달지 못하고 회사에 개인의 시간을 납부한다. 이렇게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한 시간들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고, 하루 24시간 중 고용주체 혹은 근면 신화 추종자들에게 먼저 소비되고 남는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쓸 수 있는 젊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욕구나 필요에 의한 일들에 배분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미 하루에 주어진 시간 자체가 24시간이 아닌 것이다. 시간을 벌어도 벌어도 늘 시간이 모자라는 <인 타임>의 주인공들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한편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의 발달은 더 큰 불행을 불러왔다. 회사가 아닌 곳에서도 언제나 업무 지시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자, 노동자는 상시 업무 대기 상태로 전환되었다. 이는 노동시간의 유연성이라는 선택권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일과 여가 사이에 존재하던 벽이 사라졌다는 의미다.(2) 특히 우리나라처럼, 근무시간과 개인시간의 선이 모호한 환경에서는 노동시간에 유연성이 생겼다기보다는 노동시간이 추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 간의 경계의 파괴로 인해, 우리는 이제 저녁 혹은 주말, 어느 때에도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소유하기 어려워졌다. 나의 시간을 모두 저당 잡힌 것이다.(3)퇴근 후 상사가 파일 전송을 독촉하고 핸드폰 배터리는 1% 남은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파일을 전송하는 한 광고를 그저 웃으며 볼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시간 부족의 두 번째 이유는 심리적인 것이다. ‘시간 경험’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2015년 국내 조사에서 소비자의 75%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고, 언제 시간 부족을 경험하느냐는 질문에는, ‘할 일이 많을 때’, ‘쉬는 시간 확보가 어려울 때’, ‘지금 하는 일이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때’, ‘할 일이 있지만 능력이 따르지 않을 때’,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생각될 때’라는 답변들이 줄을 이었다. 이 답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막연한 이유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기며, 그 아래에는 막연하게 ‘무언가 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노력 강박’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4)
이러한 노력 강박은 남들만큼은, 혹은 남들보다 잘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 아래 생겨났을 가능성이 높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도태되고, 남들만큼 하거나 더욱 잘하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계발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남들만큼’이 어디까지인지는 상한선이 정해져 있지 않다. 때문에, 공부나 일을 지속하면서도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해야 할 일과 계발할 능력 리스트를 계속 작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심리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의 문제이다. 이미 여유시간 없이 살아가는 A에게 회사는 자기계발을 권유하는데, 이것이 승진과 관련된 것이라면 권유보다는 요구에 가깝다. 이를 위해서 A는 잠을 줄이고 다른 시간을 쪼개서 중국어 공부시간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흔히 말하는 ‘시테크(時-tech)’, 시간경영이다. 결국 A는 자기계발의 강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간도 일종의 자원으로서 계발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유를 갖기 어려운 환경 자체가 사실은 가장 큰 문제다. 이렇게 타의에 의해 돌아가는 삶, 내 시간을 내가 쓸 권리를 박탈당한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삶을 바꾸기 위해 생각할 힘을 앗아가고, 그저 그 틈새에서 ‘힐링’을 찾을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할 뿐이다.
이는 대학생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남들만큼 갖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으며, 이 사회에서는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라왔다. 매일 3시간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학생과,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어학연수와 토익학원을 다닌 학생의 4년이, 동일한 속도로 흐른 4년이 아닌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졸업 후 노동자로서의 가치를 평가받을 때야말로 이 시간의 빈부격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자본의 차이는 시간의 차이를 불러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만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이라는 자원 역시 돈처럼 쪼개고 아끼고 재테크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일찍이 깨달았다. 이들의 막연한 불안과 욕심은 그들 내부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다. 그들을 재촉하지만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주지는 않는 사회가 제공한 것이다. 이것을 단지 개개인의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기성세대가 만든 구조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시간에 쫓기는 삶을 강요받은 이들에게 그저 여유를 가져보라고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공평하지 않다. 공평하지 않은 시간을 견뎌내고 내 시간의 주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늘의 공허만을 잠시 잊게 해주는 ‘힐링’도 아니고 사치스러운 여유도 아니다. 오로지 현실적인 질문과 그 답에 대한 고민이다. 덴마크의 기자이자 워킹맘인 브리짓 슐츠의 책 <타임푸어>에서 그녀는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덴마크처럼 직장과 가정을 함께 지키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던지, 개인의 삶에서 할 일의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집안일을 가정 구성원들이 합리적으로 분배한다든지 하는 것들인데, 이것은 일하는 여성이 아니라 모두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북유럽에서나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도달하기 어렵다고 해서 이상을 지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 첫 질문은, ‘내가 나의 시간의 주인인가?’이다.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인지, 그것이 온당한 일인지, 무엇부터 바꾸어야 할지 각자, 그리고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가족·친구와의 만남과 작은 취미생활, 피로를 풀 수 있는 수면시간, 온전히 내 것인 주말을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 노력하다가 넘어져도 다시 손잡아 일으켜 줄 사회를 위해서 말이다.
글·김지연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무석사를 받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2006~2008년) 싸이월드 페이퍼와 올리브TV홈페이지 등에 미술에세이를 연재했다.
(1) In Time, 2011 앤드류 니콜 감독, 아만다 사이프리드, 저스틴 팀버레이크 주연
(2) 사라 노게이트, <시간의 심리학>, 갤리온, 2009, pp.59-60
(3) 강수돌 외,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코난북스, 2015, p.55
(4) 최인수 외, <2016 대한민국 트렌드>, 한국경제신문사, 2015, pp.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