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그 참을 수없는 유혹

포퓰리즘적 경기부양을 위한

2008-09-29     김동열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미·일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 재정적자 초래
감세의 '달콤함', '이카로스 날개'의 촛농과 같아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한 이후 정부와 여당은 물론 민주당까지 경쟁적으로 감세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급증한 부동산 관련 세금과 4대 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관련 부담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에 더해서 지속되는 고유가와 경기침체가 세금에 대해 민감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여야를 막론한 경쟁적 감세에 대해 인기 영합적('포퓰리즘')이라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감세 및 규제완화, 작은 정부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감세 사례를 살펴보자.

레이건 대통령이 1980년에 취임했을 당시 소득세 최고세율은 70%였다. 우리나라는 현재 35%인데도 감세를 추진 중이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70년대의 1,2차 석유위기로 초래된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세율을 낮춰서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보수주의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작은 정부'와 '규제완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아울러 '세율을 낮추면 처음에는 세수가 감소하겠지만, 점차 노동의 공급과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활성화되고 결국 세수가 더 늘어난다'는 공급측 경제학의 도움을 받아 과감한 '감세 정책'을 추진했다.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28%로, 법인세율은 48%에서 34%로 대폭 인하하여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인기를 누렸던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 정책으로 인한 대가는 혹독했다. 1980년도 말에 미국의 누적 재정적자는 7,100억불로서 미국의 총생산액(GDP)대비 26% 정도였으나, 1993년도 말에는 3조2,500억불로서 GDP대비 50%에 달했다. 레이건의 감세가 초래한 막대한 재정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후임인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세율을 다시 올릴 수 밖에 없었고 1998년이 되어서야 재정수지는 다시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2001년에 취임한 (아들) 부시 대통령도 '레이거노믹스'를 답습하면서,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39.6%에서 35%로 인하했고 2010년까지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2번에 걸친 대대적인 감세정책에 대해 미국 경제전문가들의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맨큐와 서머스의 공동 연구결과(1984)에 따르면, 레이건의 감세정책은 소득증가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으며 대규모 재정적자만 기록했다. 미국 의회예산처(CBO)의 연구('04년8월)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의 감세혜택은 고소득층에 집중되어 소득분배를 악화시켰다고 한다. 또한,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의 보고서('04년9월)에 따르면 2003년의 감세안 통과 후 2004년8월까지 430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160만개(38%)의 일자리만 창출되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감세보다는 재정지출 확대를 선호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의 구조적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94년, '98년, '99년 3회에 걸쳐 법인세 최고세율을 50%에서 37.5%로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의 높은 저축 선호도로 인해, 감세로 인한 가처분 소득의 증가는 소비 확대로 연결되지 않았고 대부분 저축으로 흡수되어 재정적자만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2000년에는 재정적자가 GDP의 7%에 달했으며, 2001년도에 국채이자를 지급하기 위한 지출만 10.4조 엔에 달했다. 이처럼 일본에서도 감세는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보다는 재정적자만 확대시켰다. 최근에는 일본의 신임 경제장관들이 세계적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에 소요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소비세율(5%)을 2배(10%) 정도로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에서도 감세는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엄정한 평가다. 감세를 옹호했던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미국 경제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혹하며, 아랫목이 따뜻하면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트리클다운'(trickle-down; 연쇄적 파급)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요즘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중론이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나라에서 감세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가? 감세는 소득분배를 개선시키기 보다는 악화시키며, 현재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선진국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데 왜 감세인가? 감세에 대한 위와 같은 논리적인 비판이 우리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년에 우리 정부는 14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세금을 예산에 비해 더 걷었고, 올해도 10조원 이상을 더 걷으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경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데 세수 증가율은 높아서,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4대 보험을 포함한 부담률)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표를 생각해야 하는 정치권의 상황 논리로 따져보면 지금 여야의 '감세 경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감세 경쟁의 득실을 따져보면, 한나라당은 흑자고 민주당은 적자다. 한나라당은 야당 시절부터 줄기차게 감세를 주장해 왔고, 민주당은 밀려서 마지못해 따라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상황은 역전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여야의 상황논리에 밀려 대규모 감세 정책은 올해 말 국회를 통과하여 내년부터 현실화될 예정이다. 

 지난 9월1일 정부와 여당은 법인세율 5%p 인하<현행 25%(과표1억 이하 13%)→ 20%(과표2억 이하 10%)>와 소득세율 2%p 인하, 상속세율 대폭 인하(10~50%를 6~33%로), 양도소득세 인하를 중심으로 연간 21조3천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종합감세안을 제시했으며, 야당인 민주당은 지난 8월27일 부가세(10%)를 7%로 인하(세수 12조원 감소)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감세안을 발표한 바 있다.

 논리적으로만 따져본다면, 위와 같은 여야의 감세안은 '부동산 거래세 인하'를 제외하고는 시급하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

 아래 <표>에서와 같이 '06년 기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21.1%) 및 국민부담률(26.8%)이 OECD 평균(각각 27.4%, 36.6%)에 비하여 높지 않다. 미국과 일본이 우리보다 낮은 편이지만, 이 두 나라는 세금을 걷어서 쓰지 않고, 쓸 돈을 재정적자로 메우는 바람에 큰 폭의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6년간 다른 선진국은 조세부담률이 소폭이나마 감소한데 비해, 우리는 거꾸로 증가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부담률'은 낮지 않은 편이다.

  <표 >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의 국가 비교 및 증감 추이  (단위: %, %p)

구 분

한국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태리

영국

OECD

EU15

조세부담률

21.1

21.5

17.3

22.3

22.0

29.9

30.6

27.4

28.8

(‘00→’06증가폭)

(1.5)

(△1.5)

(△0.3)

(△6.1)

(△0.7)

(△0.3)

(△0.3)

(△0.1)

(△0.9)

국민부담률

26.8

28.2

27.4

44.5

35.7

42.7

37.4

36.6

39.8

(‘00→’06증가폭)

(3.2)

(△1.7)

(0.3)

(0.1)

(△1.5)

(0.4)

(0.2)

(0.0)

(△1.2)

               주: * 일본은 ’05년 기준, 나머지 국가는 ‘06년 기준.


아울러, 과세형평성 차원에서도 감세의 환경은 좋지 않다.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과세 미달자'가 1997년 29.8%에서 2007년 47.4%로 두 배 가량 늘었으며, 자영업자의 경우에도 40% 이상이다. 이에 따라, 근로소득세를 내는 근로자는 1997년 695만8천명(70.2%)에서 2007년 662만1천명(52.6%)으로 줄었으며, 전체 근로자의 1인당 연간 납세액은 1997년 48만8천원에서 2007년 91만8천원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

  먼저, 법인세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법인세 세율(25%)은 경쟁국(중국 30%)이나 선진국(OECD 26.7%)에 비해 높지 않으며, 실효세율도 19.9%에 불과하다. 소득세의 경우에도 최고세율(35%)과 평균 실효세율(1억 이상 고액연봉자 26.4%, 전체 평균 12.1%) 역시 경쟁국에 비해 모두 높지 않으며, 감세효과는 고소득층에 집중된다. 간접세인 부가가치세의 명목세율(10%)도 일본(5%)을 제외한 OECD선진국(17.7%) 보다 높지 않으며, 최근 부가세를 16%에서 19%로 인상한 독일 등 유럽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부가세를 올리고 다른 세제를 간소화하는 방안과 지방소비세제로 전환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제고하는 방안을 검토해야할 시점이다.

  부동산 관련 세금은 위에서 살펴본 다른 세금들과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최근 5년간 양도세와 재산세, 종부세 등 부동산 관련 3가지 세금의 증가폭이 4.58배에 달하여 같은 기간 국세 세입의 증가폭 1.38배 보다 훨씬 컸다. 따라서, 양도세와 취득세, 등록세 등 '부동산 거래세'를 추가로 완화하여 기존 주택의 거래를 활성화시켜 공급이 확대되는 효과를 거둬야 한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성과는 거리가 먼 고통의 외침"(경제적 포퓰리즘)에서 멀어져야 하며, 감세 경쟁이 아닌 정책조합(policy-mix) 경쟁을 해야 한다.

  여당은 감세를 통한 내수 확대(소비 진작과 투자 활성화)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조합으로, 야당은 양극화와 경기활성화를 지원하는 대규모 재정지출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조합으로 경쟁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감세'가 달지만, '침묵하는 합리적 다수'를 바라보면서 고민해야 국민의 사랑도 오래간다.

 아울러, 최근의 내수 부진은 '세금'이 아니라 '높은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즉, 소비의 부진은 주로 '고용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기인하며, 투자의 부진은 '수익과 지배구조에 대한 불확실성'에 기인하다. 따라서, 비정규직 대책을 다시 검토하고, 전직훈련과 실업보험 내실화로 고용안전망을 강화하고, 기업경영과 관련된 규제품질을 개선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대책이다.

  감세는 '이카로스의 날개'와 같다. 감세라는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고 너무 높이 날아올라 '포퓰리즘'이라는 햇볕에 다가간다면, 밀납으로 만든 그 날개는 녹아버리기 쉽다. 매우 위험하다. 이성과는 거리가 먼 고통 속의 외침('경제적 포퓰리즘')에 부응하기 위해, 높이 날아오르면 오를수록 '감세'라는 날개는 녹아버린다. 감세를 하면 할수록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는 스스로의 기반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감세는 참을 수없는 달콤한 유혹이다. 날카로운 칼날 위에 묻어있는 꿀과 같은 유혹이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며, 너무 많이 먹으려고 하면 혀를 다치게 된다. 우리는 그 사례를 미국에서도 두 번이나 봤으며, 일본에서도 같은 일을 겪었다. 참을 수 없는 감세의 유혹, 그 달콤함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