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시대, 어떻게 바꿔야 하나

2016-02-29     세르주 알리미

 

 대부분의 서구국가들에서는 경제위기가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반체제 기조를 가진 새로운 세력의 부상은 걷잡을 수 없어진 정치적 불안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이는 종종 분노로 표출되는데, 이제 좌파 정부가 주요 타깃이 됐다. 

 

프랑스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없는 것은, 프랑스만의 특수한 상황 때문은 아니다. 프랑스의 높은 실업률이나 좌파의 핵심 이상향들에 대한 포기가 이유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존 사회주의 좌파의 이념적 고갈은 미국이나 대부분의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20년 전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 펠리페 곤살레스, 도미니크 스토로스칸,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의 지도자들이 선택한 ‘제3의 길’이라는 이념 노선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오래도록 승리를 거두어 온 ‘사회적 자유주의(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추구함-역주)’의 파국은 이보다 좀 더 우측에 자리한 세력들에게 더 이상 이익만 가져다주지 않는다. 세계화와 노동 유연성, 신기술 등으로 인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사상들이라고 여겨지며 밀려났던 반체제 기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토마스 프랭크 기사 10면 참조). 
미국 대학교 캠퍼스에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지나 런던의 교외지역까지, 좌파가 열등감에서 벗어나 이제 정치의 바톤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이들은 과감히 자신들의 적을 규정하기도 한다.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자본(프레데리크 로르동 기사 8면 참조), 권력을 가진 언론, 강력한 힘을 가진 금융계 등이다. 물론, ‘반군’들은 아직 봄을 기다리며 웅크린 한 겨울의 제비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극우파가 종종 분노의 관리자 역할을 하는 시대에는, 이 한 줄기 희망이 다가오는 계절을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은 확실히 운이 없다. 2015년 여름, 이들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지원을 받아 그리스 시리자당의 지도자들에게 집중포격을 퍼부어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왼쪽에 있는 경쟁자들을 청산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영국의 제레미 코빈과 미국의 버니 샌더스가 부상했다. 이 두 사람은 자국의 젊은 층들을 결집시키며 ‘제3의 길(무늬만 좌파인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의 정치노선-역주)’이 매장시키려 했던 정치적 투쟁과 몇몇 반자본주의적 열망을 회복시켰다.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에게 실망스러운 점은 또 있다. 이들은 경영자들의 요구 사항을 이용해 고용 창출과 새로운 권력 쟁취가 가능할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가졌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완강하고 단호한 자세를 고수하며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또 실패했다. 경영자들만 이득을 얻었으며, 경기는 악화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계 경제와 금융이 다시 멈췄다는 것이다. 유럽의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처럼 30년 간 채택해왔던 주요 신자유주의의 교조가 얼마 전 원래의 주창자들에 의해 부정된 것이다.
모든 일들은 소리 없이 벌어지고 있다. 우파와 자유주의적 좌파, 그리고 거대 미디어들은 벌어지는 일들을 묵인하며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을 따라 갈 수도 있다. 그 별이 주위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갈 길을 인도해주었듯이. 일례로, 시장의 위기에는 시장이라는 치유책(1)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부적, 이를테면 세금과 사회 분담금 인하는 불안정성을 키웠고, 자유무역 확대는 효과가 없음이 명백해졌다. 이에 대한 ‘각성’은 내부의 적들을 만들어냈다.  
“노조를 약화시키고 노동법을 와해시킴으로써, 기업활동을 자유롭게 해 기업의 유연성을 높여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오랫동안 고수해온 정책이다. IMF의 경제학자 두 명은 이 정책이 결국 불평등을 심화시켰음을 인정했다.(2) 참으로 난처한 타이밍이다. 서방국가 지도자들이 주기적으로 사회적 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념하는 시늉을 할 만큼, 불평등문제가 주목받고 있는 시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자유주의자들은 “불평등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그들에게 있어 ‘소득 분산’은 자주적 행동, 혁신, 위험, 일자리를 장려하는 것이다. 어느 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산업부 장관이 “프랑스 젊은이들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밀물이 모든 배를 띄운다”는 옛날 레이건식 약속을 되새겼다. 은유로 포장할 것도 없다. 그 유명한 ‘낙수경제’ 가설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은 운이 없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상위 부유층의 재산 증가가 빈곤층의 수입 증가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3) 
로널드 레이건, 프랑수아 미테랑 등 전 대통령들은 경제를 다시 활성화하려면,  세금을 줄여야한다고 권고했었다.(4) 2012년 1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올랑드 대통령이 공식 요구했던 이른바 ‘공급 경제정책’은 원래대로라면 경제회복을 촉진해야 했다. 하지만, ‘세계 자유주의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마저 다소 처량한 목소리로 인정했다. “세금 인하로 인해 자력 출자가 가능할 만큼, 성장이 독려될 것이라는 예측은 요즘은 좀 무책임하게 들린다.”(5) 신자유주의에 대한 30년에 걸친 집중 선전이 내팽개쳐지는 순간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다음 선거에서 우파성향의 후보가 자기 신념을 포기할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는다. 올랑드 대통령도 기업 총수들에게 달콤한 사탕만 주고 있다. 여기에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소득세 10%인하와 부유세(ISF) 폐지를 포함하는 ‘조세 충격요법’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대규모 공공지출 감소계획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르코지 정부시절에 총리를 지낸 프랑수와 피용과 알랭 쥐페가 이 계획에 대한 책임을 떠맡았다. 대규모 실업상황이 빚어지고, 일드프랑스 지역의 철로 교통망에 대한 설비가 추가로 요구됐다(선로의 40%와 선로 변경장치의 30%가 30년 이상 사용됐음). 그리고 금리는 제로에 가까운 경제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 공무원 일자리를 없애고, 실업 수당을 줄이고, 외국인에 대한 일부 의료비 환급을 중단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특권층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사회적 자유주의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자,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한 반성이 시작됐다.  
전문가들이 기존 체제의 핵심, 즉  좌·우파 자유주의자들의 극단적인 일치점이라 할 자유무역의 이념에 대해 저주를 퍼붓는 상황이 됐다. 그러자, 이런 이단적인 이념을 강하게 거부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예전에는 어떤 분야에서 국제 무역으로 인한 실업이 발생하면, 보다 생산성 높은 다른 활동의 부상(또는 성장)으로 상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비교 우위 및 국제 분업 이론)마저 차례로 흔들리는 상황이다. 미국 시장에 수입된 중국 물품의 경쟁으로, 미국에서 25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샌더스는, 클린턴과 부시 전 대통령이 연달아 추진해 1993년 비준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지난 2월 4일 오바마 대통령이 미 의회 공화당의원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조인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강력히 규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은 미국인들이 이미 NAFTA의 거짓 약속을 잊었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TPP 덕분에 미국에 65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6)
하지만 세계 경기전선의 전망이 흐려지고 있어, 지도자들은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2007년과 2008년, 부동산 자산의 붕괴로 추락했던 은행들은, 현재 원유분야로 과도하게 진출해 과거와 비슷한 위험에 노출됐다. 이들 은행이 볼모로 잡고 있는 국가들 역시 이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다. 
2012년 올랑드 대통령을 믿었던 이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얘기겠지만, 이렇게 된 이유는 정부 지도층에 금융계의 ‘진정한 적수’가 없고, 금융계의 환심을 사려고 안달난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파는 주요 정부부처들을 장악하기 위해 권력을 잡으려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마크롱). 게다가 은행이나 투기 자본 세력들은 자신들의 이사회에 옛 사회주의 지도자들(블레어, 슈뢰더, 스트로스칸)을 앉혔고,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후보들의 선거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현재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운동에 대한 지원처럼 말이다.
이러한 정치적 기만과, 잘못된 것에 대한 악착스러운 고집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말하는가?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이 지지자들이 실어준 힘을,  지도층들과 함께 소진해버렸다는 것이다. 정치 지도층들은 자신들의 힘이 강력해질수록,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전할 지지자들이 필요 없게 됐다. 동시에, 옛 사회주의자들과 새로운 부유층 사이의 은밀한 합의는 눈에 밟힐 정도가 됐다. 그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하게 될 국민들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의 남편이 시행해 2007년과 2008년 금융위기에 크게 기여했던, 금융활동과 투기활동의 경계를 폐지하는 결정을 옹호하고 있다.(7) 하지만 샌더스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힐러리의 얼굴에는 평소의 환한 미소가 없었다. “아동들이 마리화나를 소지한 채 잡히면 전과가 생긴다. 그런데 월스트리트의 고위 간부가 경제를 파괴해도,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권력이고 부패다. 그리고 미국에서 바뀌어야 하는 점이다. 미국의 4개 주요 은행 중 3개가 이미 너무 커져서 죽어가는 상태다. 그들을 해체해야 한다! 은행들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너무 강력하다.”(8)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를 거둔 뉴햄프셔 경연 다음 날, 한 금융분석가는 이렇게 우려를 표했다. 
“어제 저녁에 일어난 일 이후 투자가들은, 주식시장에 큰 위험을 야기할 수도 있는 극단적인 선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더 이상 배제할 수 없게 됐다.”(9)
“은행을 해체 하겠다”는 민주당 후보와 무역 전쟁으로 중국과 멕시코를 위협하고 있는 공화당 후보야말로 ‘극단주의자’에 가장 가깝지 않은가. 산업부문의 해외 이전, 구매력 하락, 고등교육 비용 증가 등을 직접 경험한 미국 국민의 상당수는 이제 30년에 걸쳐 ‘신뢰’를 받아온 세계화에 급격하게 등을 돌리고 있다. 냉전으로 인한 주입식 과대 선전을 경험하지 못한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이들 미국 국민들은, ‘백만장자 계급’을 가차없이 공격하며 정치 캠페인의 재정 지원방식을 파괴하겠다고 단언하고,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칭하는 한 후보에 대해 열광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다.(10)
거의 모든 것에 대해 타협한 ‘좌파’와 싸우겠다는 열망은 유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부패 스캔들과 지역 정치지도자들의 자질 문제로 신뢰를 잃은 스페인의 사회당은 포데모스당의 반체제 인사들이 사회 및 정치 무대에 급작스럽게 등장한 이래, 역사상 최악의 선거 결과를 기록했다. 양당 체제는 무너졌고, 새로운 주사위는 던져졌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사라고사 등 정치적 상상력으로 넘쳐나는 도시들에서 이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은행 책임을 거론하며 은행의 업무들을 다시금 시의 통제 하에 두고 부채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지난 5월, 영국 노동당이 선거에 패배했다고 해서 정치적 주도권이 우파로 급선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동당 지지자들의 수는 두 배가 됐다. 그렇게 다른 모든 정당 지지자들을 합한 만큼 늘어난 노동당 지지자들은 블레어주의를 거부했다. 코빈이 노동당의 당수로 선출된 것은 그동안 완전히 분리돼 있었던 하나의 조직인 노동당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열망을 보여준 것이다.(11) 샌더스와 마찬가지로, 영국 노동당의 새로운 당수에게 커뮤니케이션의 기교는 없다. 회의에서도 옛날 방식으로 길게 말하며, 자신을 미워하는 거대 언론들을 서슴없이 비난한다. 무슨 대가를 치르든 다음 선거에서 꼭 이기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코빈이 자국의 정치 문제들을 염려하고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상세히 설명할 때, 아무도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없다.
프랑스 중앙은행과 유럽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장클로드 트리셰는 “오늘, 우리는 정부의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 적어도 세 가지 부분에서 준(準) 합의를 이뤘다. 공공지출을 줄어야 하고, 경제가 아직 너무 엄격한 규제에 갇혀 있으며, 우리의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12)라고 말하며 만족스러워 했다. 지도자들의 ‘준 합의’가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면, 그 결과도 그러하다. 트리셰 전 총재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런 식의 합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다. 누구도 트리셰에게 그런 특권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그리스를 굴복시킨 유럽 연합은 이제 포르투갈을 조준하고 있다. <르피가로>의 지적에 따르면, “힘없는 동맹의 선두에 선 사회주의 정부 수반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는, 공산주의 동맹세력과 수년간 지속된 경기 후퇴에 지친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긴축정책의 고삐를 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안정협정 관리국가들은 이 말을 같은 식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유럽의 압박, 특히 독일 여장부(메르켈 총리)의 압박과 시장의 압박에 못 이겨 포르투갈 정부는 답안지를 고쳐야 했다.”(13)
반면 데이비드 캐머룬의 보수 정부가 ‘유럽 파트너들’이 단일통화의 영향에서 영국 금융계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EU국가의 이민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보장 지원금 삭감을 요구했을 때, 이에 대한 검토조차 필요 없었다. 올랑드 대통령을 필두로 하는 EU의 사민주의자들은 ‘국가에 따른 우선권’, 즉 공식적인 공통규칙 위반을 받아들였다. 30년도 더 전부터, 모두가 “우선순위는 사회적 유럽(단순한 경제통합이 아니라, 유럽의 사회적 가치를 내포한 통합-역주)”이라고 부르짖지 않았던가.(14)
이러한 통치자들과 좌파 간의 결별은 이미 시작됐다. 투표소에서, 길거리에서 이들의 결별을 볼 수 있다. 또한 기존 좌파체제와 인사들은 거부되고, 이들의 정치적 기반은 축소된다. 지금 사회에선 현 체제가 고칠 수 없는 상태라는 확신,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확신, 정치인들이 위기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주입되고 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정치적 배신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프랑스 대통령의 임기는 그 끝을 보여주고 있고, 학습효과까지 낳고 있다. 만일 올랑드 대통령이나 사르코지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선거 다음 날 프랑스를 얼어붙게 만들 ‘실망’을 모두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위험을 감수해볼 만하다. 물론 최악의 적수에게 우위를 뺏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테러리즘과 전쟁 때문에 국가적 연대라는 겉치레가 유지되고 있지만, 정치적 안정을 위해 사회적 계급 추락이나 미래에 대한 포기를 계속 받아들일 수는 없다. 바로 이 모든 것을 새로운 형태의 좌파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발걸음은 확신에 차있다. 하지만 목적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분명한 것은, 변화의 순간들은 복종보다는 행동에서, 기다림보다는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주요 저서로 <새로운 감시견(Les nouveaux Chiens de garde)>(1997) 등이 있다.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자유주의 교조의 침몰Le naufrage des dogmes libéraux」 및 「시장의 위기에는 시장이라는 치유책A crise du marché, remèdes de marché」, 각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1998년 10월 호, 2002년 9월호 참조.
(2) Cf. Florence Jaumotte & Carolina Osorio Buitron, 「권력과 국민Le pouvoir et le peuple」, <Finances & Développement>, Washington, DC, 2015.3.
(3) 「In It Together :Why Less Inequality Benefits All」, OECD, Paris, 2015.
(4) François Mitterrand, 1983.9.15 : “너무 많은 세금은 세금을 하나도 안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제를 억압하며 생산을 제한하고 에너지를 제한한다. 반드시 세금 인하가 시작되기를 원한다.”
(5) 「Be serious」, <The Economist>, London, 2016.1.2.
(6)  Lori Wallach, 「‘자유무역’이라는 깨진 환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5년 7월호 참조. 
(7) 「은행가에 의한, 은행가를 위한, 은행가의 정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0년 6월호 참조.
(8) 뉴햄프셔 텔레비전 토론, 2016.2.4.
(9)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16.2.16.
(10) Bhaskar Sunkara, 「백악관 문 두드리는 사회주의자 샌더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6년 1월호 참조.
(11) Alex Nunns, 「정통 좌파로 돌아온 코빈의 영 노동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5년 10월호 참조.
(12) <Le Journal du dimanche>, Paris, 2016.2.14. 
(13) <Le Figaro>, Paris, 2016.2.15.
(14) 이와 관련한 선언 내용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떠올려 보기 위해 다음을 참고. 「한 눈에 보는 유럽 사회주의 35년간의 약속」, Youtube.com, 201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