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에 매혹된 오바마

2016-02-29     토마스 프랭크

2008년 이후, 미국 사회의 사회적 불평등은 멈추지 않고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오바마 정부는 실업률 저하를 자화자찬하며 실리콘 밸리의 혁신정신을 찬양할 뿐,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해선 별반 관심이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국정연설에서 미국 노동자층, 특히 과거 대학 졸업장 없이도 ‘평생직장'을 얻을 수 있었던 미국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언급했다. 그는 탈산업화가 몰고 온 도시들의 붕괴, 황폐화된 삶, 그리고 빈약한 급여 등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상황을 인상 깊게 설명했다. 여느 민주당 출신의 인사라면 보통 이즈음에서 이러한 불행을 타개하기 위한 계획들, 예를 들면 공공사업 프로그램이라든가 제조업의 해외유출 방지 방안 등을 늘어놓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계획을 말하는 대신, 그는 노동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일자리 경쟁은 현실입니다.” 노동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저 실제현상이고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할 일은 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이에 익숙해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오바마는 이보다 행복한 주제로 돌아갔다. 때는 2011년, 엄밀히 말해 경기침체가 끝난 시기였다. 따라서 그의 남은 대통령 임기를 규정지을 긍정적인 경제계획을 설명할 타이밍이었다.
짐작했겠지만, 주제는 ‘혁신’, 즉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혁신이라는 이야기였다. 오바마는 “미래를 쟁취하기 위한 첫 단계는 미국의 혁신을 장려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사안과 관련해서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 일말의 체념이나 포기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혁신가들에게 아낌없이 보조금을 지급해주어야 한다. 이는 더 많은 성공 사례들을 일구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혁신이 고등교육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학생들에게 공부에 더욱 매진할 것과 대학에 진학할 것을 촉구했다. 혁신 장려책은 그의 장대한 경제 비전이자, 진보적 유토피아였다. 국정연설을 마치고 한 달 후, 백악관은 정책 문서를 통해 연설 내용을 다음과 같이 공식화했다. “미국의 향후 경제성장 및 국제 경쟁력은 우리의 혁신 능력에 달려있다. 미래의 승리를 위해서 우리는 혁신, 교육 그리고 세계를 건설하는 분야에서 앞서나가야 한다.”
그렇게 민주당 인사들의 인식 속에 수십억 달러의 선거 기부금을 낼 수 있는 실리콘 밸리가 큼지막하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 인사의 변동은 돈 문제와 맥락을 같이한다. 그 예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던 오바마의 첫 대선 캠페인 설계자 데이비드 플러프는 2014년 실리콘 밸리의 벤처기업인 우버(Uber)에서 정치적 마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백악관 전 대변인 제이 카니는 그 다음 해부터 아마존으로 영입돼 일하고 있다. 그 사이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관련 웹 페이지들을 혁신하기 위해 실리콘 밸리의 기술과 인력들을 사용하는 특별연방부서를 창설했는데, 이에 반한 IT 전문 기자들은 이를 ‘오바마의 스텔스(Stealth) 스타트업’이라고 부른다.
오바마 대통령과 실리콘 밸리가 서로 호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오바마가 젊은 층과 소통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이용한 첫 대선 캠페인 기간 중이었다. 오바마의 재선 캠페인에서는 부동표를 찾아내기 위해 최초로 빅데이터와 마이크로 타겟팅을 사용하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와 실리콘 밸리의 관계는 이전 행정부들과 월 스트리트간의 밀월관계가 일으켰던 종류의 논란들을 일으키지 않는다. 실리콘 밸리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업계를 미워하기는 어렵다. 대통령과 정보기술 전문가들 간의 모든 상호작용에는 젊고 명랑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번영은 진보계층이 가치가 있음을 궁극적으로 보여준다. 산업화 이후의 사회는 교육받고 창의적인 사람들, 엔지니어 및 과학자들을 발탁해 이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보상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이 정보기술산업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올라서면서, 민주당 측도 함께 번영해왔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자신들을 현대사회 승자들의 당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민주당인사들이 테크놀로지에 대해 대화할 때면, 항상 거대 검색엔진 구글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바마는 그의 저서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에서, 상원의원 시절 어떻게 구글 본사를 방문하게 됐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국정연설의 절반에 달하는 분량을 구글에 대한 언급으로 채워왔다. 구글 직원들은 2012년 오바마 대선 캠페인 기부단체 중 세 번째로 규모가 컸으며, CEO 에릭 슈미트는 현대 진보주의 연대기에 의아할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오바마의 대통령직 인수팀 경제자문 위원회에 몸담았으며, 2008년 대선 종료 3일 후 열린 오바마의 기자회견에서는 당시 여타 경제 자문위원들과 무대에 함께 오르기도 했다. 2012년 선거기간 중에는 오바마 캠프에 빅데이터 전략에 대한 자문을 제공했다. 2015년, 슈미트는 ‘정치공학 스타트업’을 런칭했는데, 이를 통해 디지털 유권자를 파악하는 최신기술을 힐러리 클린턴 대선 캠페인에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진보계층이 사랑하는 억만장자다. 
오바마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았던 데이비드 플러프는 경기후퇴에 대한 해결사, 오바마를 홍보했듯이 지금은 프리랜서 택시 앱인 우버(Uber)를 세일즈하고 있다. 그는 2015년 워싱턴의 한 신생기업에서 했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우버를 언급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경기회복의 효과를 누리지 못한 채,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버는 누구든 가입만 하면 택시운전을 할 수 있다. 우버야말로, 임금정체와 고용정체를 실질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
2014년 에릭 슈미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생활비가 오른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들에서 불평등 심화가 가져오는 영향에 대해 개탄했다. 그리고 이어 “해결책은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들을 더 많이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해답은 사회 전반적으로 혁신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 명도 빠짐없이 교육, 이민, 자본형성, 창의적 분야에 걸쳐 규제를 더욱 완화함으로써, 실제로 스타트업들이 번창하고 우리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대단한 ‘혁신’들은 실상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경제방식을 비켜가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우버가 가장 확실한 사례인데, 우버의 가치 대부분은 택시잡기의 효율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전 및 보험과 관련된 규정들을 회피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에어비엔비(Airbnb) 또한 소비자와 숙소 제공자들은 기존의 호텔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다양한 안전 및 구역 규칙들을 회피할 수 있다. 아마존도 다수 지역의 고객들로 하여금 판매세 납부를 회피하게 해준다. 
이 거대 온라인 소매기업은 미국 내 지배적인 서점의 지위를 악용해 출판사들에게 조건을 제시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었다. 다정하고 친근한 구글도 이와 유사한 관행으로 2012년 연방통상위원회(FTC)의 조사를 받았다. FTC 는 구글의 행위가 “소비자들 및 온라인 검색 광고 시장의 혁신에 실질적으로 해를 입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두 사례 모두 처벌 없이 끝났다. 혁신에 대한 말들을 쏟아내는 산업 중 하나인 제약업계는 약간 변형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허약품에 대해 원하는 대로 가격을 책정할 권한을 부여해주지 않으면, 혁신이 멈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독점이 혁신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즉 독점권한을 앗아가면 자신들의 특별한 공장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마존은 임시고용을 위해 ‘메커니컬 터크(Mechanical Turk)’라고 불리는 실용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는 컴퓨터로는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을 수백만 명의 등록된 예비인원들에게 넘겨, 푼돈을 주고 일 처리를 하는 식이다. 이 마지막 예는 소위 ‘공유경제’라는 개념을 잘 소개하고 있다.(1) 공유경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동안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고용기회 중 하나다. 이 마법의 원천은 누구나 이런 공유회사에 가입만 하면 임시직원이 될 수 있는 방식에 있다. 소프트웨어를 통해 고객 및 고용주와 연결됨으로써 모든 것이 디지털화돼 획기적이며 편리하다. 그러나 그 밖의 다른 모든 측면에서 볼 때, 공유경제는 수년간 등장한 고용제도 중 가장 편파적이고 반노동자 성격을 지닌 제도 중 하나다. 이 산업과 연계된 비용 및 위험요소들, 예를 들어 보험, 자동차 소유, 질병 및 은퇴대비 저축 등은 모두 노동자가 부담하게 되는 반면, 해당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캘리포니아의 혁신가는 당신의 노동대가와 무관하게 상당부분을 마음껏 가져간다. 실로 ‘제 일은 제가 알아서'하는 대국민 고용전략이 아닐 수 없다. 
조직화된 노동이 루즈벨트 대통령의 재임 당시 큰 영향력을 가졌다면, 플러프 같은 민주당원들이 지지하고 추진하는 세분화된 노동은 오바마 시절을 떠올릴 미국인들의 기억에 영원히 자리 잡을 것이다. 앞으로 도래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이익을 챙길 준비가 된 기업 중에는 우버가 가장 유명하다. 우버는 우리에게 우리의 여가를 고용된 일꾼의 상태로 대기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의 마술은, 모든 분야에서 하향 출혈경쟁을 가능하게 한다. 변호사들의 우버인 로트레이드(LawTrades), 가사노동자들의 우버인 하우스콜(HouseCall) 등이 있다.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태스크래빗(TaskRabbit)이라는 회사도 있는데, 특이한 일들을 임의의 날품팔이 노동자들에게 맡길 수 있다. 크라우드 워킹(Crowd-working)의 CEO, 크라우드 플라워(Crowd Flower)는 마법이 구현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는 일할 사람을 찾고, 10분 간 일을 시킨 뒤 바로 해고하기가 정말로 어려웠다. 하지만 기술이 생긴 지금, 사람들을 찾아서 적은 돈을 지불하고, 필요 없을 때 즉시 해고하는 것이 가능해졌다.”이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진 CEO는 루카스 비월드(Lukas Biewald)라는 젊은 신사로 오바마 선거캠프 기부자다. 
여기서 언급된 혁신사례 중 칭송받을 만한 것은 거의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느 것도 필연적인 혁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혁신들을 모두 예방하거나 적어도 완화시킬 수 있었다. 전적으로 워싱턴이나 주정부의 권한 영역 내의 문제였다.
2010년, 미 법무부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IT기업들이 담합한 정황을 포착했을 때, 법무부는 과거 은행에 대해 취했던 “Too Big to Jail”(2)의 태도를 유지했다. 이들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문제의 IT기업들로부터 “앞으로 5년 간은 그런 행동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말도 안되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으로 끝낸 것이다.
주요 민주당인사들은 우리가 진보적 혁신가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안다. 그들은 청정산업, 덕망있는 산업, 지식 산업들을 이끌고 있으며 지식층, 창조적 계층을 대변한다. 그들은 미래이며, 미래에 대해 할 일은 이를 쟁취하는 것이다. 
로버트 라이시가 기술한 바와 같이, “이 모든 상황들은 기업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프리랜서, 컨설턴트 등의 형태로 바꾸면서 시작된 프로세스가 정점에 이른 것이다.” 이는 격세유전이지 혁신이 아니다. 지난 30년 간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켜 온 것이다.  
 
글·토마스 프랭크 Thomas Frank
언론인이자 역사학자. 1965년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서 출생, 캔자스 주 미션힐스에서 성장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한 <하늘 아래 유일한 시장(One Market under God)>, 보수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분석한 <난파선의 선원들(The Wrecking Crew)>등의 베스트셀러를 낸 저술가이기도 하다. <왜 가난한 자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는 2004년 출간되자마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지난 8년간 미국과 유럽에서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올바른 선거를 위해 정치인과 언론이 취해야 할 자세, 유권자는 정당과 정치인을 평가하는 방법 등에 대해 각성하게 하는 참고서의 역할을 해왔다. 또한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됐나>를 통해 보수우파의 교묘하고도 변화무쌍한 집권전략과 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민주당의 무능을 그려냈다.
 
번역·오정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여기서의 ‘공유’는, 고용주의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의 소유물을 사용하는 것에 해당된다.
(2) 대마불옥(大馬不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대기업 총수에게 실형을 선고하기 어렵다는 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