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에 만연한 유독물 위기

2016-02-29     제럴드 마르코비츠 & 데이비드 로스너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미시간 주를 방문해, “만약 내가 저 위쪽에 사는 부모라면, 내 아이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 정신이 나갔을 것”이라고 했다. ‘저 위쪽’이라 함은 플린트 시를 말한다. 정부의 긴축정책이 초래한 ‘수돗물 사태’에 시달리는 낙후된 공업도시다. 플린트 시는 몇백만 달러를 아끼기 위해 수원지를 휴론 호수에서 플린트 강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 강은 과거 강둑을 따라 세워졌던 유독물 산업체들의 산업폐기물 매립지로 오랫동안 사용된 바 있다.
현재 플린트에는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이 도시 수돗물과 아동들의 혈액에서 높은 납 수치가 검출됐다. 플린트 강에서 부식성 독극물이 검출된 덕에, 플린트 시의 식수를 오염시킨 납 수도관을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은 최대 15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 비용을 언제, 어디서 충당할지는 확실치 않다. 해결되기 전까지, 플린트의 아동들이 감내할 희생은 막대할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동들이 마시는 물, 낡은 집 벽에서 떨어져 나온 페인트 조각에 섞인 납 분진이 미미한 양이나마 체내에 유입된다면, 삶이 파괴당할 수 있다. 특히 아동의 경우, 손톱만한 납 분진으로도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심한 경련을 일으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또한 이것의 1/10에 불과한 양의 납으로도 지능저하, 청력상실,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ADHD)와 난독증 등의 행동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미 국민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정부기관,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아동들에게 있어, 안전한 혈중 납 농도라는 것은 확인된 바 없다”고 말할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내 자녀가 플린트 시에 살고 있다면 당연히 걱정하고도 남을 만한 이유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에 처한 것은 플린트의 아동들뿐이 아니다.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미주리 주 허큘라니움, 오하이오 주 세브링, 심지어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의 아동들까지 납 중독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이 목록은 시작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주 정부 보고서는 “펜실베이니아 주 18개 도시와 뉴저지 주 11개 도시의 경우 위험한 수준의 납 수치를 보이는 아동의 비율이 플린트보다 높을 수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아동들에게 있어서 안전한 혈중 납 농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적어도 미국 아동들의 절반이 어느 정도의 혈중 납 수치를 보인다고 한다. CDC는 상당히 높은 납 수치를 보이는 50만 명 이상의 아동들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지난 세기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아동들이 지능저하, 학업성적부진, 행동장애 및 신경발달 저하를 겪었다. 태평양 연안부터 대서양 연안까지, 그리고 선 벨트(Sun Belt)에서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이르는 미국 전역의 아동들이 지난 세기의 산업과 상업적 탐욕, 그리고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지방·주·연방 정부의 직무유기에 희생돼 왔다. 직무유기와 희생은 계속될 것이다. 플린트의 경우와는 달리, 이 ‘위기’는 대중의 관심 밖이다.

미국 내의 수많은 ‘플린트 시’들
 
플린트가 현재 처한 위기는 거대 자동차기업 제너럴모터스(GM)의 역사, 이 기업이 20세기 중반부터 수십 년 간 세계 최대기업으로 성장해온 과정에 기인한다.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에 의하면, 한 때 GM의 모델 중 하나인 뷰익(Buick) 공장 하나가 “길이 1.5마일, 너비 1마일”의 규모였고, 일부 쉐보레(Chevrolet) 및 기타 GM 공장들은 이 자동차 도시의 해안가를 말 그대로 뒤덮고 있었다. 현대식 자동차의 생산원료였던 배터리, 페인트, 땜납, 유리, 섬유, 유류, 윤활유 및 기타 수많은 물질들을 한 때 납품하던 공장들은 유독성 폐기물을 플린트 강으로 흘려보냈다. 플린트 강과 새기노(Saginaw) 강둑을 따라 줄지어 있던 공장들과 이 폐기물이 현재 공중보건 비상사태의 시발점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위기는 끔찍한 것이 틀림없다. 플린트의 아동들은 어떤 식으로든 80년 이상 중독돼왔다. 도시의 오랜 공업 중심지에 위치한 쉐보레 애비뉴 인근 거주민들은 아동들에게는 신경질환을, 성인에게는 심혈관질환을 야기하는 중금속 유해물질로 가득한 환경에서 삼대에 걸쳐 살아온 것이다.
마이클 무어가 그의 영화 <로저와 나(Roger and Me)>에서 다루고 있듯, GM은 재정파탄을 피하고자 플린트 시를 버렸다. 플린트 주민들의 단물을 다 빨아먹은 후 도시를 내팽개친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단도 없는 플린트 시를 오염 지옥 속에 빠뜨린 것이다. 비슷하게 버림받은 기타 공업도시처럼, 플린트 시 거주민의 대부분은 흑인과 라틴계(65%)이며, 상당수 가정(42%)이 빈곤층이다. 
대통령은 플린트의 아동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지방·주·연방 정부 당국은 플린트의 수도관, 하수관 및 수도공급 체계를 고쳐야 한다. 비용이 많이 들 수는 있어도, 기술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 한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에 조차 정치적 의지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지나 맥카시 미 환경보호국장은 플린트의 수도관을 교체하고 안전한 수돗물을 공급하는 예상일정을 플린트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러나 해결하기 더욱 어려운 심각한 문제는 수백만 미국 가정에 납 등 오염물질들을 유입시킨 인종차별과 기업탐욕의 요소가 혼재돼 있는 것이다. 위험에 처한 플린트의 많은 아동들이 처한 환경은 방대한 유독물로 뒤덮인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1930년대 납 중독이 도시에 만연해 있음을 처음 파악했던 볼티모어도 예외가 아니다. 여전히 (특히 흑인들의 거주지에 많은) 낙후된 주택에 사용된 납 성분 페인트로 인한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케네스 홀트 메릴랜드 주 주택지역개발부 장관은 “이 모든 것이 다 쓸데없는 일일 수도 있다”며, 끝이 보이지 않는 볼티모어의 납 위기에 대해 태연하게 일축했다. 그는 “엄마가 아기 입에 낚시용 납추를 집어넣고 아이를 데려가 검사받게 해, 납중독이라고 위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홀트 장관은 아무런 입증 없이, “이는 주택 임대업자에게 더 나은 집을 아동에게 변상할 책임을 지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불행히도 홀트 장관이나 미시간 주 릭 스나이더 주지사의 태도는 납 등 유해물질과 관련해 흑인과 라틴계 아동들에게 더욱 치명적인 고통을 무시하고 부정해온 미국의 주 정부와 지도자들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
실제로 미국은 암울하고 광범위한 납 중독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아마도 납은 미국아동들을 가장 폭넓게 위협한 환경독소일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20세기 중반부터 수 십 년간 납이 공업사회에서 필수적인 원ㄹ로 알려졌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유산 중 플린트의 독성 수도관이 아동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유일한, 또는 1차적인 원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1920년대에는 테트라에틸납이 휘발유 첨가제로 도입됐다. 그 당시 테트라에틸납을 발명하고 생산하며 광고했던 GM의 에틸 사(Ethyl Corporation), 스탠다드 오일(Standard Oil), 듀퐁(Dupont) 등의 회사들은 에틸납을 “신의 선물”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 산업독소는 지구를 오염시켰고, 당시에도 오염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휘발유에 사용이 금지될 때까지 약 3/4세기 동안 사용됐다. 그 동안 수억 대의 자동차와 트럭의 배기관에서 뿜어져 나온 테트라에틸납은 아동들이 뛰어노는 땅을 오염시키고, 아기들이 만지는 바닥재에 들어갔다. 1980년대부터 사용이 금지됐음에도 오늘날까지 주변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 
그 사이, 전국 가정들은 상당히 다른 경로로 납에 오염됐다. 백색 가루인 탄산납이 아마인유(Linseed oil)와 섞여 페인트의 원료로 사용됐고, 이 페인트가 1978년까지 미국의 주거용 건물 및 병원·학교 건물 등에 사용된 것이다. 납 페인트칠이 된 창틀, 장난감, 아기침대, 목공품 등을 아동들이 만지고 빨 수 있고,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는 1978년이 돼서야 가정용 페인트에 탄산납의 사용을 금지한 것이다.
그 후 거의 40년이 지났지만 미국 전역에 주거용 건물의 집, 아파트 건물 및 사무실의 벽에 칠해진 납 성분 페인트 수 백 톤이, 주로 수백만 명의 흑인과 라틴계 아동들이 사는 빈민가에 그대로 남아 있다. 대부분의 백인 중산층 가정들은 납의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낙후지역의 개발 및 낡은 주택의 수리 등으로 오래된 벽 페인트에서 떨어져 나오는 위험한 수준의 납 분진에 그들의 자녀도 노출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낡고 오래된 집에 살고 있는 이들, 특히 흑인과 라틴계 아동들이 유해물질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다. 이것이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제도적 인종차별이다. 플린트의 수도배관을 통해 가정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의 처럼, 디트로이트, 볼티모어, 워싱턴, 그리고 미국 내 대부분의 낙후된 도심 빈민가를 비롯해 플린트 시의 건물 벽에서 나오는 납에 오염된 분진, 부스러기, 흙, 공기 등에 노출된 아동들이 계속 중독되고 있다. 
지난 세기 수천만 명의 아동들이 납에 중독됐고, 오늘날 수백만 명의 아동들이 여전히 납 중독의 위험에 처해 있다. 이에 더해, 이 아동들을 위협하고 있는 수은, 석면, 폴리염화비페닐(PCB) 등의 산업 유해물질들은, 플린트 시에서 비롯됐지만 전국적인 재앙을 초래할 규모를 갖추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전역에 수많은 ‘플린트 시’들이 있다. 재깍거리는 독성 시한폭탄, 재정감축계획이나 일부 관료의 그릇된 결정 한 방에 폭파돼 공중보건 참사를 초래할 폭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그토록 무심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미래 세대인 아동들이 플린트 시와 같은 고통을 받지 않도록 책임지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미국의 세기가 야기한 유독 물질   
 
지방 정부, 주 정부 관리들이 내린 일련의 결정들로 인해 플린트 시의 만성적 탈공업화 위기가 총체적인 공중보건 참사가 됐다. 이에 대해, 정부 관리들의 무능과 부패, 무관심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비난을 그들에게만 돌린다면, 더 중요한 사항을 놓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플린트 시처럼 언론을 장식하게 될 다른 탈공업화 도시들, 미국의 아동들을 향한 수많은 드러나지 않은 비극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플린트 시를 이례적인 상황으로 다룬다면, 한 세기 묵은 산업공해를 정화하는 데 투자하거나, 이와 관련한 부조리를 인정도 하지 않으려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전국의 가정들과 자녀들이 입은 피해를 알아서 감내하라고 하는 셈이다.
플린트 시 사태의 해결책을 찾는 데에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 내 일부 도시들에서는 독성물질이 만연한 과거를 청산하는 데 희망이 조금씩 보인다. 샌프란시스코, 샌디에고, 로스앤젤레스 및 오클랜드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주 10개 도시와 자치 주들은 3개의 납 연료 제조사를 상대로 11억 5천만 달러의 소송을 했고, 1심 재판에서 승소했다. 이 돈은 해당 도시들의 주택 벽에 칠해진 납 페인트를 제거하는데 투자될 예정이다. 항소심에서도 이 결정이 받아들여지면, 이는 과거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환경을 오염시킨 기업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게 한다는데 있어서 전례 없는 선구적 승리가 될 것이다. 
부분적으로 승리한 이야기도 들린다. 미주리 주 허큘라니움에서는 미국의 최대 납 제련소 반경 1마일 내 거주 아동의 절반이 납에 중독됐는데, 배심원들은 세계최대 건설회사 중 하나인 플루오르 사(Fluor Corporation)에게 3억 2천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이 평결도 항소 중이지만, 그 사이 플루오르 사는 납 제련소를 페루로 이전했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새로운 인구가 납에 중독돼 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플린트 시 언급이 정곡을 찌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큰 그림은 보지 못했다. 대통령이 연설한 곳은 플린트의 오염된 수도시스템에서 불과 몇 십 마일 떨어지지 않은 디트로이트였는데, 디트로이트 역시  기업들의 버림을 받고 암울한 유독물질 유산을 떠안고 있는 곳이다. 과거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의 수천 가구가 아직도 재난 수준의 납 페인트가 가득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제 미국 아동들의 중독문제에 관해서는 시야를 더 넓히고, ‘미국의 세기(American century)’가 야기한 끔찍한 희생에 직면할 때다.  
 
 
 
글·제럴드 마르코비츠 & 데이비드 로스너 
Gerald Markowitz & David Rosner
<톰 디스패치(Tom Dispatch)>의 고정 기고가인 두 필자는 <기만과 부정: 산업공해의 치명적 정치학(Deceit and Denial: The Deadly Politics of Industrial Pollution)>및 최근 저서 <납 전쟁: 과학의 정치와 미국 아동들의 운명(Lead Wars: The Politics of Science and the Fate of America’s Children)>을 포함해 다양한 산업 및 직업 재해에 관해, 7권의 저서와 85개 논문의 공동 저자이자 공동 편집자이기도 하다. 로스너는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의학 과학 및 역사학 교수다. 또한 컬럼비아대학 공공보건대학원 공중보건역사센터장을 공동 역임하고 있다. 마르코비츠는 뉴욕시립대 존 제이 칼리지와 대학원 센터의 역사학 교수다. 
 
 
번역·오정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