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모델 수출하기

2016-03-02     프랜시스 후쿠야마

 

 2016년의 초입에도 성장 모델, 즉 경제성장 촉진 전략을 둘러싼 유서 깊은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 편에 중국이 서 있다면 반대편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있다. 이 경쟁은 대중의 시야에는 대충 가려져 있지만, 그 결과만큼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유라시아 대다수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
대부분의 서구인은 중국의 성장이 현저히 둔화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수십 년간 10%를 상회하던 성장률이 7%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아마도 더 하락할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도 중공업에 기반을 둔 수출 지향의 환경 파괴적 성장 모델에서 내수 소비와 서비스 산업에 기반을 둔 모델로의 이동을 가속화할 방법을 찾으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중국은 엄청난 규모의 대외 계획도 세워두었다.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유라시아 경제의 핵심을 바꿔놓을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거대계획을 발표했다. ‘일대(一帶)’는 중국 서부에서 중앙아시아를 통과해 유럽·중동·남아시아까지 이어지는 철도로 이루어져 있다. ‘일로(一路)’는 동아시아의 상품이 지금처럼 두 대양을 가로지르는 대신 ‘일대’의 육상 수송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거점 항구와 항만 시설들로 구성된다.
미국이 지난해 초 가입을 거부한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부분적으로 ‘일대일로’의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됐다. 하지만 이 새 기관의 재원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요구하는 투자 규모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실로 ‘일대일로’는 중국 정책에서 눈에 띄는 출발점이다. 처음으로 자신들의 성장 모델을 다른 국가로 수출하려 하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이미 라틴아메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과거 수십 년 동안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원자재와 채굴 산업에 투자하고, 이것들을 중국으로 실어 나르는데 필요한 인프라 시설에도 투자했다. 
하지만 ‘일대일로’는 다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중국 외부에서 산업의 생산능력과 소비수요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원자재를 채굴하기보다 자신들의 중공업을 미개발국가로 이식함으로써 해당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중국 제품의 수요도 진작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의 성장 모델은 현재 서구에서 유행하고 있는 모델과는 다르다. 그것은 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도로·항구·전기·철도·공항 등 인프라 시설에 대한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국가가 깊이 관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패와 자기내부거래(self-dealing)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 “지어놓으면 수요가 뒤따른다(build-it-and-they-will-come)”식의 모델을 포기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성장 전략은 이와 대조적으로 공중보건과 여성 권리 신장, 세계시민 사회 지지와 부패방지 방안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서방 국가들의 이 같은 목표는 경탄할 만하지만 이에 대한 투자만으로 부유해진 국가는 없다. 공중보건은 지속적인 성장에 매우 중요한 환경조건이지만, 만일 깨끗한 물과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거나 도로망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면 병원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의 인프라 기반 전략은 중국 안에선 매우 잘 작동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한국·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이 추구했던 전략의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세계 정치의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어떤 모델이 승리할 것인가?’ 만일 ‘일대일로’가 중국 지도부의 기대대로 진행된다면 인도네시아에서 폴란드에 이르는 유라시아 전체가 다음 세대로 진전할 것이다. 중국의 모델은 중국 밖에서 꽃을 피울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중국 제품에 대한 수요도 증가해 세계 다른 부분의 침체된 시장을 대체할 것이다. 공해산업 역시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것이다.
 
 
중앙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가 될 것이다. 중국의 권위주의 정부 체제는 어마어마한 명성을 얻을 것이며, 이는 전 세계 민주주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대일로’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된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인프라 주도의 경제 성장은 중국 정부가 정치 환경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잘 작동해 왔다. 그러나 이는 불안정·갈등·부패가 중국의 계획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은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분노한 주주들, 국수주의적인 의회 의원들, 중국의 거대 투자가 이루어진 에콰도르나 베네수엘라의 변덕스러운 친구들과 맞닥뜨리고 있다. 중국이 신장자치구에서 주로 탄압으로 무슬림들의 소요를 다루던 방식이 파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무슬림들에게 통할 리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앉아 중국이 실패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거대 인프라 건설 성장 전략은 중국 내부에서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인프라는 글로벌 경제 성장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미국은 과거 1950년대와 1960년대 관련 프로젝트들의 붐이 사그라들기 전까지 거대 댐과 도로망을 건설하곤 했다. 오늘날 미국은 개발도상국들로부터 많은 건설 오퍼를 받고 있지는 못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파워 아프리카 이니셔티브(Power Africa initiative)’는 긍정적 사례지만 진척이 많이 더딘 상황이다. 아이티의 포르리베르테(Fort Liberte)에 항구를 지으려는 노력도 대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은 AIIB의 창설 멤버가 됐어야 했다. 미국이 결국 참여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중국이 국제적 환경·안전·노동 기준을 충족시키도록 이끌 것이다. 동시에 미국과 여러 서방국가는 개발도상국에서뿐 아니라 자국 내에서도 왜 인프라 건설이 어려워졌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유라시아와 전 세계 중요 지역들의 미래를 중국의 성장 모델에 양보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글·프랜시스 후쿠야마 Francis Fukuyama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의 저자이며, 가장 최근 저서로 <정치질서와 정치쇠퇴(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가 있다.
 
번역·박계영
포스코경영연구원
 
* 해당 글은 본지와 제휴한 <친디아 플러스> 2월호에 실린 것으로, 상호협약에 따라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