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제한적인 거주권

2016-03-02     줄리아 뵈르크

니콜라이 차우체스쿠가 퇴진한 지 25년이 지났건만, 국유화된 주거지 반환 문제는 아직도 말끔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집주인에게 보상을 하는 대신 재산을 되돌려주는 방식을 선택한 루마니아 정부는 임차인을 내쫒고 있다. 길거리로 내몰리는 임차인들의 선두는 롬족(집시)들이다. 태만한 정부와 부동산 마피아에 맞서기 위해 사회운동가들은 거주권 문제를 공론화시키고자 한다. 

 
이웃사람들처럼, 임대한 집에서 살고 있는 58세의 마리아 우르수는 퇴거 명령에 망연자실해 있다. 2014년 9월 15일 불투릴로르 50번가에 살던 25가구가 국가로부터 임대해 20년 가까이 살던 낡은 건물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작은 골목 입구에는 대형 알루미늄 플레이트가 놓여 이들 롬족 가족의 추억이 서린 곳으로 접근도 못하게 막고 있다. 도심에서 가까운 서민주택지에, 나지막하고 상태도 안 좋은 작은 집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옛 집주인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우르수는 언젠가는 살던 곳을 떠나야 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 갈 것인가? 월 800레우(약 24만 원)의 양로원 사회복지사 급여로는 아파트 구입은 고사하고 월세도 구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와 이웃들은 1년 넘게 살던 집 앞 보도에서 노숙하고 있다. 그들의 천막집은, “민족과 관계없이 살 곳을 보장하라”, “부동산 마피아는 물러가라”는 생생한 슬로건으로 뒤덮였다. 
불투릴로르가 주민의 운명은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정권을 잡았던 책임자들이 추진한 ‘모두가 주인’ 정책의 명암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루마니아는 유럽에서 주거보유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1) 이는 시골의 자가 보유주택의 비율이 높고, 국가 소유의 아파트를 거주 중인 임차인에게 대거 매도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공산주의정권 퇴각 후 첫 번째 대통령이었던 이온 일리에스쿠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당시 국가 소유였던 아파트를 매력적인 가격으로 매매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부쿠레슈티 주정부는 95%의 아파트를 당시 거주 중인 사람들이 매입했다고 확언했다. 그렇지만 가장 가난한 이들, 특히 롬족들은 아파트를 살 돈이 없었고 결국 길거리로 내몰렸다.
1948년 공산주의정부는 대기업과 은행은 물론, 집까지 대상으로 하는 국유화 프로젝트를 단행했다. 1950년에서 1989년 사이에 약 40만 채 이상의 부동산이 국가의 소유로 편입됐다.(2) 니콜라이 차우체스쿠의 실각 이후, 1989년에 정부가 어마어마한 자산을 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쿠레슈티에서 ‘거주지 신축, 개축, 관리담당 회사(ICRAL)’(3)는 약 45만 채의 주택을 관리해야 했다. 대부분은 국유화된 집이지만 1975년 정부가 신축한 차우체스쿠 정권을 상징하는 건축양식의 거대한 아파트단지도 포함된다. 그 후 국유화 프로젝트로 재산을 빼앗긴 집주인들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반환요구를 이어갔다. 이 문제를 지난하게 회피하던 국회는 유럽연합(EU)의 압박에 밀려 2001년 ‘법10’을 채택했다. 금전적 보상 방식을 채택한 다른 중앙유럽국가들과는(박스기사 참조) 달리, 루마니아는 자산을 기존 소유주나 권리권자에게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보상은 반환이 더 이상 불가능한 경우로 제한했다. 
‘법10’에는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산을 되찾은 소유자가 현재 임차인과 5년 임대 계약을 맺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 조항을 통해 정부는 임차인이 거주할 곳을 찾는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이 법은 또한 부동산자산관리청(AFI)이 퇴거 조치가 내려진 이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정부는 반환 요청을 예상하고 대처하지 못한 관계로 밀려있는 업무가 상당하다. 이 임차인들은 공산주의 이후 전환기에서 모두에게 잊힌 존재가 돼버렸다. 사회운동가들에 따르면 루마니아 수도에서만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던 곳을 잃고 쫓겨났을 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집주인이 될 수 있다, 집시만 제외하고
 
공공주택을 구하기 위한 대기시간을 보면 이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부쿠레슈티에서는 1만 건이 넘는 신청서가 대기 중이다. 쫓겨난 이들과 쫓겨나기 직전의 사람들만 3,442건이다.(4) 루마니아 수도의 주민은 190만 명인데, 2015년 공공주택은 1,516채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전부 입주민이 있는 상태였다. 부쿠레슈티 주정부는 공공주택을 추가로 건설할 여력이 없다고 반박한다. 2014년 3월 ‘거주권을 위한 공동전선(FCDL)’을 공동 설립한 베다 포포치비는 “재정적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다. 구청은 표를 얻기 위해 최저빈곤층을 위한 주택 건설 대신, 기존 주택단지의 단열설비 재정비를 선택했다. 구청은 민중을 선동하거나 불가항력일 때만 주택을 구입했다”고 비난했다. 구청은 관광목적의 역사원을 리노베이션하면서 한때 활기찬 서민거주 지역이었던 이곳 주민 1백여 명을 부쿠레슈티 근교 공공주택으로 이주시켰다. 
지역개발공공행정부의 체자르 소아레 정무차관은 정부가 2015년 주택 2,800채를 공급한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정부의 자평에 사회운동가들은 경악했다. FCDL의 빅토르 보지안은 “국가적인 수요에 비하면 턱도 없이 부족하다”라고 반박했다. 
불투릴로르 공동체의 지속적인 거주지 요청에 대해 3구 구청은 임시방편 밖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개인에게 집을 빌릴 경우 6개월 치 임대료에 해당하는 900레우(약 27만 원)를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이 보조금을 거절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런 거절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카르멘 이바노우이 AFI 청장은 비공식회담에서 그들에게 “정말 거리에 남길 바라시나?”라고 물었다. 32세 마리아나 오테스트는 이런 비난에 대해 “아파트를 찾아봤지만 내가 롬족이라고 밝히는 순간, 어떤 집도 구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들은 모두 공공연한 인종차별을 감내하고 있다. 이런 인종차별 문제는 특히 주거 문제에서 두드러진다. 
퇴거 조치에 맞서는 운동에서 또 다른 뜨거운 감자는 의사당 뒤에 있는 라호바-우라누스 지역이다. 꽃시장과 버려진 맥주공장, 그리고 예술창작 공간으로 탈바꿈한, 붉은 벽돌로 된 창고 사이에 있는 이곳에서 20세기 초 세워진 부르주아풍 아름다운 고택 여러 채가 반환 대상이 됐다. 크리스티나 에레미아가 롬족 공동체의 대변인으로 나섰다. 이미 수많은 이웃이 내쫓기는 모습을 본 이 젊은 여성은 정부를 비난했다. “왜 집시들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이 집을 빼앗아가나요? 어떤 의미에서는 정부가 문제아들을 만드는 겁니다.”
기회주의자 건축업자들은 자산반환 사안에 관련된 법률적 결함을 이용한다. 에레미아와 그의 남편은 이로 인한 피해자다. 2011년 그들은 그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던 사회문화공간 ‘라 봄바’를 잃었다. 이제는 다른 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이 위협 받고 있다. 이들 모두 옛 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하면 최종판결까지 그 집에 머무를 수 있다. 에레미아는 “문제는 옛 주인들이 아니라 부동산 마피아 때문이다. 구청이 가짜 소유 권리증을 발급하는데도 판사와 검사는 협잡꾼의 손을 들어준다”고 설명했다. 에레미아의 집처럼 도심지와 인접한 주택과 토지는 종종 그 가치가 수백만 유로에 달해, 부동산 개발업자의 입맛을 자극한다. 그래서 옛 주인의 소유권 구매에 특화된 변호사 사무소도 등장했다. 반환절차가 오래 걸리는 만큼, 옛 주인들은 재산을 환수해 임차인들을 상대하느니 브로커가 제시하는 금액을 받아들인다. 불투릴로르 50번가의 아파트도 임차인들이 내쫓기기 전에 노르웨이 사업가가 인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전 집주인들도 이 ‘부동산 마피아’에게 불만이 많다. 루마니아 지식층 출신 가족을 둔 마리나 젤베르가 그런 경우다. 1976년부터 파리에서 프랑스어 교수로 일하는 그는 부쿠레슈티에 있는 어머니 집의 소유권을 되찾는 데 계속 실패했다. 사실, 반환에 관한 법은 이전의 모든 관련 법령, 특히 임차인이 거주 중인 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허용한 1995년 ‘법112’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결과 루마니아 법원에서는 자산반환으로 인한 잠재적 수혜자와 매입을 통해 거주권을 취득한 임차인 간의 분쟁이 넘쳐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젤베르는 엉뚱한 사람과 다투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의 집을 매입했다는 가족은 사실상 비오렐 흐레벤치욱에게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이었다. 사회민주당 지도부인 그는 일리에스쿠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법112’를 우회해 불법으로 많은 자산을 취득했다. 많은 이들은 당시 일리에스쿠 전 대통령이 정치적 동지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그들이 지내던 호화빌라를 구입할 수 있도록 승인하면서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흐레벤치욱은 피해액이 3억 3백만 유로인 삼림 불법반환 건에 연루돼 있다. 
흐레벤치욱 뿐만이 아니다. 국가반부패검사국이 조사 중인 여러 사건은 국가재산반환청(ANRP) 소속 공무원과 연관돼 있다. 전 반테러검사국장이자 ANRP 일원인 알리나 비카는 토지가치를 과대평가해 6,200만 유로의 보상금을 권력과 친밀한 사업가에게 지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렇듯 예전 집주인들도 현 상황의 피해자가 됐다. 부쿠레슈티에서 2001년 접수된 43,155건의 반환요청 중에서 16,548건이 대기 중에 있다.  
 
 
 
글·줄리아 뵈르크 Julia Beurq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1) Eurostat의 통계에 의하면, 2013년 기준 95.6%의 가구가 자기 집을 보유하고 있다. 
(2) 하원의회 소속 국가권력남용감시위원회, 2000년.
(3) 이 기관은 공산주의 시절에 국유화된 재산을 관리했다. 1989년에 기관명을 부동산자산관리청(AFI)으로 변경했다. 
(4) 출처: 부쿠레슈티 주 소속 구청과 AFI
 
 

박스기사

동유럽의 고질적인 문제
 
 
1990년대 초반부터 구소비에트연방 소속이었던 모든 국가들은 전쟁 이후 국유화된 자산의 반환여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썼다. 이에 세 가지 유형의 해법이 등장했다. 루마니아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가능한 경우 일정 조건 하에 직접 자산을 반환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불가리아는 공공자산에 속한 주택만 반환하고 공산주의 붕괴 이전에 입주민에게 재매도한 주택은 반환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을 제정했다. 몰도바의 경우 정치적 억압의 희생자만 자산 환수를 신청할 수 있다. 
자산반환이 불가능할 경우 법은 보상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그 형태는 다양하다. 보상금(불가리아, 몰도바)을 제공하거나, 국채나 공공채권(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또는 공기업의 지분(알바니아, 불가리아)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이전 소유주에게 일정 상한선 이내에서 변상하는 방식을 선택해 현재 입주민을 보호했다. 아제르바이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루지야는 이 문제에 관한 어떠한 법령도 제정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자산 국유화가 당시 법제를 위반하지 않았다면 어떤 배상이나 반환도 하지 않기로 했다.  
 
 
글·줄리아 뵈르크 Julia Beur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