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 수상자’ 아라베나의 반 쪽짜리 집
2016-03-02 올리비에 나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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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과 계단. 도움을 요청하기엔 너무 늦다>, 2008-린드로 에를리치 |
2016년 1월 13일 시카고, 기업인 토머스 프리츠커가 자신의 이름을 딴 프리츠커상의 39번째 수상자 이름을 공개했다. 놀랍게도 수상의 영예는 엘레멘탈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칠레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에게 돌아갔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프리츠커가 운영하고 있는 하얏트 호텔 체인 재단에서 제정한 상으로, 이미 검증된 건축가들을 주로 발탁해왔다. 지난해에는 수상자 공식 발표를 며칠 앞두고 9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오토 프라이에게 상이 수여됐다. 48세의 아라베나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의 외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그가 빈곤퇴치를 위한 건축물을 짓고 있으며, 자신의 건축물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라베나의 건축물은 서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좋은 기회를 준다. 자연재해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에너지 소비를 감소시키며, 따뜻한 공공장소를 마련해준다”고 프리츠커는 선정 이유를 밝혔다.(1)
아라베나가 세계 건축계에서 이토록 공감을 얻은 것은 2004년 칠레 북부 도시 이키케의 킨타 몬로이 구역을 정비하면서부터다. 여기서부터 아름다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빈민촌 철거 작업을 위임받은 아라베나의 건축 사무소에서는, 30채 예산으로 93채의 집을 지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반쪽짜리 집을 짓고 거주민이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이키케의 아파트들은 세로로 놓인 신발 보관 상자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아파트 사이의 빈 공간은 훗날 확장을 통해 채워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파트 내부에는 수돗물 설비와 방 한 칸이 있고, 1층에는 차고 한 칸 넓이의 확장공간이 있다. 단층의 경우 36㎡의 집을 70㎡까지, 복층의 경우 25㎡에서 72㎡까지 확장이 가능하다. 이 주택들 덕분에 변두리로 밀려날 위기에 처한 22만 명의 사람들이 도심에 거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주민들 스스로 노력해 집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방식은 사람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물론, 스스로 집을 짓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하나의 대중예술인 셈이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2000년대 초 엘레멘탈 사무소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엘레멘탈 사무소에서는 1970년대에 칠레의 페르난도 카스티요 벨라스코가 개발한 단계적 주거 시스템과 1965년 페루의 대통령이자 건축가였던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가 시작한 ‘프로엑토 엑스페리멘탈 데 비비엔나(프레비 실험주택)’의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2016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언급을 조심스러워했던 ‘사회적’ 건축가 선배들이다.
아라베나의 수상에 대한 언론의 열광은 아마도 건축가들의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축한 프랭크 게리에서,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자신의 부친을 위한 선물로 계획한 헤이다르 알리예프 복합문화센터를 건축한 자하 하디드까지, 월드 스타의 레벨을 높이는데 기여해왔던 하얏트 재단은 ‘스타 건축가’에게 주는 상이라는 오래된 이미지를 바꾸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주인공 역할을 해온 중국 역시 기후 위기나 사회적 위기 등의 주제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 채 사람들의 이목만 집중시키는 전시성 건축물 건설 바람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동안 ‘흰 코끼리(돈만 많이 들고 쓸모없는 것-역주)’들만 만들어내는 창작가들은, 사회적 의무를 다하며 인류를 생각하는 유용한 건축물은 생각 못한 채 대중을 버렸다. 아라베나를 첨병으로, 하얏트 재단은 다가올 미래를 위한 건축 계획을 세웠다.
반쪽짜리 집은, 과연 서민을 위한 아이디어인가
하지만 이 수상자가 과연 그들이 그토록 기다려온 영웅이었을까?
언론의 주목을 덜 받은 관계로 반쪽짜리 집들의 사진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2006년 킨타 몬로이 재개발을 계기로 아라베나와 석유왕 로베르토 앙헬리니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국에서 사업지원을 받지 못한 아라베나는 칠레 제1의 민영기업인 안타칠레에 후원을 요청한다. 안타칠레 사장이었던 앙헬리니는 이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자회사인 Copec을 통해 엘레멘탈의 자본 약 40%를 자사 그룹에서 투자하게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반쪽짜리 집을 판다는 아이디어가 이 백만장자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다. 그는 2009년 아보니 혁신상을 아라베나에게 수여하면서 “아라베나는 확장이 가능한 2층짜리 공영주택을 시도하는 천재성을 가졌다”(2)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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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쪽자리 집>, 2013-알레한드로 아라베나, 사진:ELEMENTAL. |
아라베나의 건축사무소(사무소라는 명칭은 혁신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아라베나는 ‘Do Tank’(실천 탱크)를 선호한다)는 주주의 영향 아래 놓여있기도 하다. 주 고객은 바로 칠레 가톨릭 대학교(UC 또는 PUC)이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4-1990) 독재정권 시절, 권력의 측근이었던 이 사립대학교에서는 칠리 사회에 통화주의와 시장만능주의를 전파한 ‘시카고 보이즈’들을 배출했다. 엘레멘탈 사무소의 포트폴리오에는 공영주택 외에도 수리 대학교(1998), 의과 대학교(1999), 건축 대학교(2004), 트윈 타워(2005) 그리고 안타칠레가 공동으로 출자한 UC 혁신 센터(2014)까지, PUC를 위해 지어진 우아한 대학 건물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자신이 프리츠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 발표됐을 때 아라베나는 말했다. “우리의 계획은, 아무 계획을 갖지 않은 채 불확실함에 대처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에 열린 자세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시민으로서 자신의 사회참여에 대해 말하는 동안 반쪽짜리 집과 주민들, 그리고 그 구역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주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진 결실처럼 소개되는 이런 종류의 사업은 칠레에서 멕시코, 그리고 뉴올리언스 또는 제네바까지 장소를 막론하고 대체로 같은 결과를 낳는다. 칠레에서는 2010년에 일어난 지진과 해안도시 콘스티투시온 재건 사업이 킨타 몬로이 프로젝트의 콘셉트가 빠르게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프리츠커가 칭찬해 마지않던 ‘질 높은 공공장소’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매우 간소한 건축물들이 들어선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자비로운 재건축가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선사하는 전형적인 주택 지구의 좋은 본보기다. 고객은? 이 도시의 주요기업이자 안타칠레의 자회사인 아라우코 공장. 정부 대표는? 엘레멘탈 사무소의 창립 멤버로 2010년과 2011년 세바스티안 피녜라(우파) 정부에서 도시주거부 차관을 지낸 안드레스 이아코벨리 델 리오. 감독관은? 도시 재건축 사업 국가 조정관이자 엘레멘탈 사무소의 세 번째 창립 멤버인 파블로 아야드. 건축가이자 칠레 대학교 건축·도시공학 단과대 연구원인 클라우디오 풀가르는 이러한 사업은 권력의 이동과정 즉, 정부에서 “명석하고, 강력하며 탁월하다”고 여겨지는 민간 관계자들로 권력이 옮겨가는 모델과 그로 인해 수반되는 고급화라는 현상을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3) 콘스티투시온에서는 엘레멘탈의 프로젝트로 인해 역사적으로 도시의 원주민이었던 가난한 어부들이 도심에서 쫓겨나게 됐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건축 비평가 프레디 마사드는 “실제적인 결과에는 무심하면서도 기적적이고 즉각적인 성공들은 믿고 싶어 하는 사회와 건축계의 선망이 아라베나에 대한 열광의 이유 중 하나다”라고 분석한다. 마사드는 새로운 프리츠커 수상자에 대해 탐탁지 않은 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4) 킨타 몬로이에 들어선 듯한 콘셉트에 감탄하던 이들 중에서 해당 장소에 돌아가 본 이는 드물다. 2013년, 완공 9년 후 이 실험 구역에는 노후한 공공장소와 비위생적인 외관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정비돼 없어졌어야 할 예전의 그 빈민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건축가가 야심 있게 선보였던 주거공간의 질은 말할 것도 없다. 온수는 나오지 않고, 벽돌 구조는 허술하며 최소한의 마감만이 이루어졌고, 건축에 사용된 자재의 품질은 형편없다. 풀가르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칠레에서 공영주택 아니 정부 보조금 주택은 프랑스의 서민을 위한 공영주택 구입 정책과 비슷하다. 주거정책이라기보다는 부동산이나 건축 등 민간부문을 지원하는 재정 메커니즘이다. 도움이 필요했던 이들은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개의 경우 큰 빚을 지고서 말이다.
사회 불균형은 남아메리카 대륙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라고 인정하면서도 아라베나는 문제의 해결방법을 재분배가 아닌 도시에서 찾고 있다. “적은 것으로 더 많이”하라는 그의 슬로건처럼 말이다. 아라베나와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들 간의 관점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데올로기적 기반인 셈이다. 빌 게이츠 재단이나 페이스북처럼 이들 기관은 예전에는 정부의 관할에 머물렀던 환경, 보건, 빈곤 등의 문제들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정복하고자 한다. 공영 주택을 인도주의를 위한 활동 반경으로 변화시키고 법에서 자선으로 바꾸는 것, 이것이 미래의 비전이다.
글·올리비에 나미아Olivier Namias
건축 전문 기자.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www.pritzkerprize.com/2016/announcement
(2) <Roberto Angelini explica las razones del fuerte vínculo entre Copec y Elementa>, Lignum, Santiago du Chili, 2009.9.7.
(3) Claudio Pulgar Pinaud, <공간적 정의가 신자유주의 도시를 불안에 떨게 할 때Quand la justice spatiale fait trembler la ville néolibérale>, Justice spatiale, EHESS/INVI, june 2014, www.jssj.org
(4) Fredy Massad, <Alejandro Aravena, Premio Pritzker 2016>, La Viga en el ojo, 2016.1.15, http://abcblogs.ab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