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전자책 리더

2016-03-02     에릭 뒤세르
적어도 15년 전부터 온라인 산업은 디지털 방식에 더욱 익숙해질 독자층을 위한 새로운 독서법이 담긴 전자책 리더기와 전자책을 보급하기 위해 대대적인 홍보 전략을 펼쳐왔다. 전자책이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던 종이책에 도전장을 내밀고, 출판업계가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황에 빠지면서 “책이라는 유산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이 위협을 받으면 출판문화 역시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세드릭 비아지니가 총괄 편집한 <디지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책에 저지르는 만행>(1)을 보면, 공공정책, 금융정책 그리고 산업정책과 얽힌 다양한 현상들이 뒤엉켜 있어, 분석이 쉽지 않다. 2012년 디지털 시대의 책에 관한 에세이 <책들의 싸움>을 펴낸 올리비에 라리차는 디지털이 대중을 대상으로 한 거짓말을 폭로하고자 다양한 독서 방법, 전자책, 종이책, 도서 제작과 편집, 판매에 대해 다루며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공저자인 장 뤽 쿠드레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는 디지털 복제방식 때문에 책이 싸구려 대용품으로 전락된다며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다. 분명 기술주의를 내세우는 테크노크라트의 흐름은, 전자책 도서관을 집과 직장에 이은 ‘제3의 장소’라는 콘셉트를 내세워, 물리적인 책이 없는 편안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전자책에서 찾아야 할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보면, 책과 글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네덜란드 출신의 타이포그래퍼 헤라르트 윙어는 에세이 <독서하는 동안>(2)에서, 요즘 책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그리고 책과 함께 타이포그래피도 “어디에나 있는 잠자는 요정” 이미지에서 벗어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상드르, 입실론, 포르낙스 등 여러 출판사들이 타이포그래피를 다룬 귀한 작품집들을 내면서, 타이포그래피는 다시 주목받게 됐다. 이를 증명하듯 책에 관한 기념비적인 백과사전 두 권과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의 역사 4부작이 출간됐다. 윙어의 에세이가 때를 잘 맞춰 나온 셈이다.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이자 교육가인 윙어는 에세이에서 글자, 우리와 글자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생각을 간결하게 다루고 있다. 
“매년 만들어지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은 얼마나 될까?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들은 꾸준히 실험하고 일상에서 사용되는 글자들이 타이포그래피의 색채를 정기적으로 풍부하게 만든다. 타이포그래피로 탄생한 독특한 서체들은 관심을 끌고 소리와 움직임을 만들어내며 도발적인 매력과 놀라움을 선사한다.” 리아드 사투프 감독의 2014년도 영화 <여인 공화국의 재키>에도 타이포그래피가 등장한다. 파네트 멜리에 그래픽 디자이너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라틴어가 아닌 일부 서체에서 영감을 받은 글자들이다. (…) 글자에 이질감을 불어넣어 낯선 느낌을 주려는 생각이다(즉, 읽을 수는 있지만 익숙한 느낌이 아니다). 거미줄, 여인들이 짜서 만든 머리쓰개도 역시 영감의 대상으로 활용됐다. 끝이 둥근 서체는 더욱 유머러스하고 영화 속 왕국만의 개성을 잘 살려준다.”
윙어는 독서의 생리적인 과정, 우리의 그래픽 어휘에 기본이 되는 7천 가지 기호, 시점과 여백의 효과를 묘사하며 독자가 눈에 보이는 글자들을 다루는 방법과 글자형식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본다. 세리프(글자 획의 끝에 돌출한 부분)의 유무, 글자의 효과가 정신에 미치는 수많은 영향 등에 대해 전문가들이 펼치는 유쾌한 토론들. 우리는 책의 진정한 필살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다름 아닌 종이다. 실제로 코덱스 같은 오래된 요소인 ‘GPS’로 불리는 것이 바로 종이에 있다. 두께가 있는 종이책은 두뇌로 하여금 읽을거리를 효과적으로 기억하게 한다. 종이가 쌓여서 이루어진 책이 없다면, 두뇌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데이터는 계속 발전할 것이고, 독자를 유혹할 것이다.  
 
 
글·에릭 뒤세르 Eric Dussert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 
번역서로는 <워크숍 매뉴얼>(2015) 등이 있다. 
(1) Cédric Biagini, <L’Assassinat des livres par ceux qui œuvrent à la dématérialisation du monde>(디지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책에 저지르는 만행), L’Echappée, 파리, 2015년
(2) Gérard Unger, <Pendant la lecture>(독서하는 동안), B42, 파리,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