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후보보단 백지표를 허하라

2016-03-31     알랭 가리구

보통선거는 모든 국민이 그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투표한다는 것을 전제로 탄생한 개념이다. 한 마디로 보통선거가 제대로 되려면, 모든 국민이 정직하고 성실한 유권자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늘날 보통선거의 이런 기본 전제가 얼마나 지켜지기 어려운지를. 
그리고 우리는 선거결과가 정치적 신념이 아닌 사회운동이나 집단주의, 인기전술, 심지어 부정부패와 같은 다른 투표 동기들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도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정치적 신념’이라는 것도 공공재를 제공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닌 적절한 선거공약들을 내건 ‘정치적 기업가’를 선택하는 것으로 대부분 귀결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보통선거의 제2시기는 표현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이자 내면화된 책임이라고 하는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 약 1세기 동안 참여는 보통선거의 효력을 보장하는 장치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기권율은, 지금까지 보통선거를 지탱해온 두 기둥인 정치적 경쟁의 의지와,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재화 공급 간의 관계에 생긴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이다. 기권율의 상승은 20년도 더 전부터 시작된 일이지만, 사람들은 이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권자들이 당선자가 나올 정도로만 투표를 해주면, 언론은 투표 참여율을 언급하고 점점 떨어지는 투표율에 대해 잠시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누가 이기고 졌는지를 알리기에 바빴다. 유권자는 정치적 경쟁의 중재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선거의 적법성과 연속성을 유지시켰다. 물론 그 중 일부는 선거결과의 적법성, 즉 당선자의 적법성을 보장하는데 필요한 기준선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과반수만 충족되면 문제될 것이 없다. 따라서 당선자가 나왔다면 기권율에 대해서는 잊어도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비판론의 존재 여부와 선거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된다. 때로는 선거결과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 

당선을 위해? 
아니, 당선을 막기 위해 투표한다

기권율이 모든 후보들에게 공평하게 영향을 준다면, 기권율은 선거의 적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기권표가 선거결과를 좌지우지 한다면, 다시 말해 기권표가 특정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까?
1977년부터 지속돼온 결선투표제의 결과들을 살펴보면, 여당 지지자들에 비해 야당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높다. 야당 지지자들이 투표를 통해 여당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려는 경향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선거가 거듭될수록 야당은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고, 많은 야당 출신 당선자들이 생긴다. 중앙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위로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이 보통선거를 지탱하는 두 기둥 간의 관계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한 마디로, 당선자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투표를 독려했을 뿐이다. 낙선자에겐 안타깝겠지만, 이 ‘투표독려’의 최고 수혜자가 바로 국민전선(FN)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몇 년 전부터 FN 득표율의 적법성을 문제삼는 사람은 없어졌다.
2015년 12월 지방선거의 1차 투표에서 이 논리는 명확히 입증됐다. 1994년 유럽의회 선거와 1995년 프랑스 지방선거에 이어 다시 한 번 FN이 선두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변화는 결선투표에서 나타났다. 보통 결선투표에서는 기권율이 높아졌는데, 이례적으로 참여율이 높아진 것이다. 그렇게 2015년 지방선거는 새롭고 중요한 경험으로 남았다. 1차 투표에서 기권율이 약 절반을 기록하면서 FN은 전국적으로는 근소하게, 몇몇 지역에서는 큰 표 차이로 1위에 올랐다. 보통은 이런 분위기라면 결선투표에서 무난한 승리가 예측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와 노르-파-드-칼레-노르-피카르디, 두 지역에서 FN은 패배했다. 그것도 참패에 가까웠다. 이 지역들은 ‘FN의 텃밭'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FN 지지도가 높았던 곳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결과였다. 우선 1차 투표에서 기권했던 유권자들이 대거 결선투표에 참여했다. 또한 FN을 견제하기 위해 좌파 후보자들이 자진사퇴하고 좌파 지지자들은 자신의 정적인 공화당(LR)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결선 투표에서는 FN의 득표율도 약간 올랐지만, 결국 졌다. 한 마디로, 높은 투표율이 FN의 패배를 가져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권으로 인한 오류가 참여를 통해 정정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선거결과가 특정후보나 정당에 대한 지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투표동기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견제표’가 투표동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새로운 사실은 아니지만, 오늘날에는 주된 동기, 나아가 결정적인 동기가 되고 있다. 즉, 우리는 더 이상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투표한다. 르펜 일가를 지지하기보다는 현 시스템을 규탄하고자 FN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그랬고, FN당선으로 상징되는 파시즘의 귀환을 막기 위해 결선투표에서 공화당에 몰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그랬다. 이것이 바로 보통선거의 새로운 현상이다. 

보통선거의 제3시기

보통선거의 제3시기에는 정치적 경쟁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시민들이 선거의 인질이 된다. 시민들은 선거라는 경쟁상황을 거부하고, 특정신념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신념이 승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투표소로 향한다.
정치인의 선택 과정에서 시민들의 영향력은 너무나 미미하다. 수십 년 후에는 마음에 안드는 후보자들을 눈물을 흘리며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후보자들 간에 득표차도 점점 더 좁아져, 더 이상 새로운 정치적 제안은 없고, 선거는 가식이고, 후보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공약은 다 똑같고, 그나마 그 공약을 지킬만한 후보도 없다는 것이다. 초능력이 있지 않는 한 정치적 프로그램들 간의 차이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정치인의 사전 선택 과정에 시민들을 다시 투입시켜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매우 신중하게, 그러나 매우 요란하게.
이것이 바로 예비선거 제도다. 유권자들은 지지하는 정당의 대표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일부 주에서 실시됐던, 꽤 오래된 제도이다. 우리는 이 제도가 최근 프랑스에 도입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정당들이 당 내부적으로 대표 후보를 선택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비선거 제도에도 물론 단점은 많지만, 일단 유권자들의 박탈감을 보상해준다는 측면에서 현재로서는 최선으로 보인다.(1) 단, 예비선거는 대통령 선거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된다. 따라서 대대적인 광고와 여론조사 홍보가 유권자들로 하여금 결국 등을 돌리게 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의 경험에 따르면, 후보들의 공약은 여전히 잘 이행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제도가 대통령 선거에만 국한된다는 점은, 이 선거왕국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박탈감은 다른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로 관측되는 문제다. 대통령 선거 외의 선거에도 적용할 해결책이 없는 관계로, 제도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선거법은 민주주의의 기본법이다. 프랑스 헌법 상 선거법은 변경할 수 없다. 
조세프 슘페터에 따르면, 모든 선거법은 두 가지 요건을 지닌다.(2) 첫 번째는 정의의 원칙, 즉 득표율로 표현되는 대표성이고 두 번째는 효율성의 원칙, 즉 정부의 구성이다.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하지만 나쁜 해결책은 분명 존재한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선거제도의 개혁 논란은 대부분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3) 
제4공화국 말기에 최고 득표자 당선제(다수결 제도)가 부활한 것은, 집권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게 함으로써 안정적인 통치 조건을 마련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이런 다수결 제도가 정착된 오늘날에는 FN처럼 득표율은 높지만 대표성이 결여된 정당들에 대한 불공정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단 한 번의 투표만 진행하는 영국의 최고 득표자 당선제는 매우 엄격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아직 그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프랑스의 경우, 다수결 제도에 비례대표제를 가미한 혼합형 선거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런 오랜 논란은, 지금까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됐던 기권율 상승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지는 못한다.  
기권율 상승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전자투표 등의 기술적인 방법도 제안됐다.(4) 투표비용을 낮추어 투표참여를 보다 쉽게 (집에서도) 함으로써 투표율을 높인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기권자들의 정치적인 이유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개표 참관인을 찾기가 힘들어 개표의 어려움을 겪는 현 상황에서 자칫 개표기 판매업자들의 이익만 챙겨줄 수 있다. 
좀 더 직접적인 해결책인 ‘투표의무제’는 단순하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또한 애초에 의도했던 목적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 정치적 무관심 때문에 기권한 유권자들의 경우, 투표의무제 때문에 억지로 투표장에 끌려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5)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 후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말이다. 현 시스템에 대한 저항으로 투표에 불참하는 유권자들의 경우, 투표의무제가 반항심을 자극해 편향적인 사상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두 가지 문제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즉, 투표의무제로 인해 정치적 무관심이 반항심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투표의무제에 반대하는 이들과 투표의무제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처벌이나 위협을 받는 이들에게, 투표의무제는 또 다른 반항의 동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항의표만 늘어난다. 결국 우리가 기권율을 낮춤으로써 당선을 방지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백지표로 말하자,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

“컬러가 블랙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컬러의 포드 모델 T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헨리 포드의 이 말처럼, 투표의무제는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 후보들 중에서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 유권자들에게 강요한다. 이 점에서 유권자들과 후보자들 간의 거리를 조금 좁혀줄 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기행위에 가깝다. 단, 투표의무제가 백지표를 허용할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실 오늘날의 투표계산법 하에서 투표의무제를 제안하는 것은 다소 불합리하다. 원치 않는 후보자에게 표를 던지거나 또는 무의미한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 인질로서의 지위를 오히려 강화하는 속임수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기권을 백지표로 취급하고 전체 집계에 반영하지 않는 것은 어떨까? 자유는 자유대로 박탈당하고 선거결과에는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결국 무의미한 투표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또는 만장일치를 표방하는 독재주의에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셈이 될 것이다. 
투표의무제는 우리를 원치 않는 선택지들 속에 가두어 버린다. 투표의무제가 도입된다면, 백지표를 투표집계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권자에게 “마음에 드는 후보가 한 명도 없다”는 의사표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비용이 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백지표가 투표집계에 포함되면 유권자들의 참여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투표의무제에도 어느 정도 효용이 있다고 본다.
제안된 후보자들을 거부하는 유권자는 백지표를 통해 그 거부감을 표출할 수 있다. 이는 상당히 정치적인 행위다. 아예 투표를 하지 않는 무관심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또한 후보선택 과정에도 잠재적으로 참여하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백지표는 다수득표자가 나오는 것을 막는데 일조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낙선한 후보는 다른 후보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선거란 유권자들이 사전 선정된 후보들을 인정하고 그중에서 선택을 하는 행위라는 믿음을 가지고, 업무의 상당부분을 후보 선정에 할애하는 훌륭하신 정치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일 것이다. 분명, 백지표를 투표집계에 포함시키는 해결책에는 불확실한 위험이 존재한다. 만약 유권자들이 백지표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낮은 투표참여율을 핑계로 선거결과의 부당함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유권자들이 백지표를 너무 많이 던진다면, 그래서 다수표를 얻은 후보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예상 밖의 어려움에 대처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상대다수제와 같은 기술적 장치들의 도입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에서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위험이 전혀 없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백지표를 허용한다면, 유권자들은 적어도 더 이상은, 당선될 자격이 없는 그토록 많은 무능한 후보, 부패한 후보, 야심가, 변태 성욕자, 허황되고 기괴하고 대중선동적인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에게 표를 던져놓고, 다음과 같은 한심한 말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었어요.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구요!”  


글·알랭 가리구 Alain Garrigou
파리 웨스트 낭테르 대학 정치학 교수, 여론조사 관측소 소장. 
주요 저서로 <이상을 얻기 위한 죽음>(레벨레트르 출판사, 2010), <반여론조사 매뉴얼>(리샤르 부르스 공저, 라빌브륄 출판사, 2011) 등이 있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레미 르페브르, <최초의 사회주의자들>, 사회당의 최후, Raisons d'agir, 2011
(2) 조세프 A.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ayot, 1981
(3) 토마스 마티, <정치적 동원 및 선거 평가 : ‘비례대표제’의 문제. 제3공화국 선거제도 개혁의 사회사>, 사회학 박사 학위 논문, 2011년 통과된 후 Fondation Varenne에서 2013년 ‘논문 컬렉션’으로 출간됨
(4) 질 구글리엘미 & 올리비에 일, 전자 투표, LGDJ, 2015
(5) 아니사 암자하드 & 장-미쉘 드 웰, 미쉘 헤이스팅스(지도), <의무 투표. 논쟁, 쟁점, 도전 과제>, Economica,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