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평화의 걸림돌, 사이버전쟁
2016-03-31 카미유 프랑수아
산업사회가 점차 ‘지구촌’에 가까워지고 있다. 1967년, 저명한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미래사회를 ‘지구촌’이라 명명했다. 그의 선견지명처럼, 오늘날 사람들은 각자 자유롭고 개방된 인터넷에 의존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이버공간에서 군사적 문제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타격 받는 것도 사이버공간 내 민간인의 일상이다.
국방백서 ‘프랑스 정보시스템 방위안보전략’에 의하면, 이런 상황으로 인해 사이버공간은 ‘제2의 바벨탑’, ‘제2의 테르모필레’(1)가 되고 있다. 즉 오늘날 사이버공간은 생활공간이자, 동시에 전쟁터가 돼버린 셈이다. 사이버공간에서 일어나는 국가 간 분쟁사태를 ‘사이버전쟁’이라 부른다. 사이버공간 내의 폭력행위가 피를 부르지는 않더라도, ‘전쟁’이라는 명칭이 붙는 것이다.(2) ‘사이버전쟁’이라는 명칭은 꽤 매력적이다. 그 매력은 일정한 문화적 배경과 연관돼있다는 점에서 더욱 강렬하다. 우리는 헐리웃 영화 <위험한 게임>(원제 <War Games>-역주)(1983) 등 각종 문화 콘텐츠를 통해 사이버전쟁에 대한 공통된 이미지를 가지게 됐다. 그 이미지의 영향력은, 디지털 전쟁과 관련된 공공정책에까지 깊이 개입할 정도다.(3)
사이버전쟁은 이미 1995년에 <타임>지 1면을 장식했다. 그럼에도 본격적으로 국가 간 디지털 공격력 및 방어력이 대대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7년 말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러시아로부터 에스토니아의 행정부, 은행, 언론의 서버들을 상대로 사이버공격이 일어났다. 이어 2008년 그루지야를 타깃으로 한 사이버공격이 벌어졌다. 이 사건들을 바탕으로, 전략가들은 비로소 사이버공격이 국제적 차원이나 국가 간 양자 차원에서 어엿한 분쟁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민간과 군의 특별한 관계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령 에스토니아 정부는 자국 과학계가 묵묵히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덕택에, 당시 국방부장관이 ‘국가안보위기’라고 표현한 비상사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4) 이 사건은 강대국이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는 계기가 됐다. 2010년 메릴랜드 주(州) 포트미드에 미군 사령부 산하 사이버사령부(USCYBERCOM)가 공식 창설됐다. 이 신설기구의 수장을 맡은 사람은 2005년부터 미국 국가안보국(NSA)을 지휘해온 케이스 알렉산더 장군이다. 국방부에 의하면, 이 신설 기구의 임무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사이버공간에서의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반면 적대국에게는 “그 같은 자유가 부인”됐다.(5) 오늘날도 미 사이버사령부와 국가안보국은 예전처럼 마이크 로저스 사령관 혼자 겸임하고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권고가 있었음에도, 두 기구는 여전히 같은 지휘계통에 속해 있다.(6)
2010년 6월, 현대 사이버전쟁의 발전상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지멘스사의 발전소(주로 원자력, 수력)용 산업제어시스템을 파괴하기 위해, 특별제작된 웜 바이러스를 벨라루스의 한 연구팀이 발견한 것이다. ‘스턱스넷’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우연히 ‘자연 상태에서 발견된 최초의 사이버무기’였다. 말하자면 글로벌 인터넷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복제, 확산된 무기였다. 2012년 6월 <뉴욕타임스>는 스턱스넷이 본래 미국과 이스라엘이 ‘올림픽게임스’라고 불리는 합동 스파이 작전의 일환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이란의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제작한 프로그램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아직 관련 법제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사이버전쟁이 표면에 드러난 셈이다. 물론 사이버부대도 이미 조직된 상태다. 사실 불투명한 자료를 가지고 전 세계 사이버군의 수를 집계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월스트리트저널>의 취재진이 사이버군 수 집계에 나섰다. 그 결과 사이버 공격을 담당하는 군사조직이나 정보조직을 1개 이상 갖춘 국가는 총 29개국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이란, 이스라엘, 북한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비슷한 목적으로 곧바로 사용가능한 해킹 도구나 소프트웨어를 사들인 국가도 50개국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들 간에 해킹팀, 제로디움, 핀피셔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각광받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산업계는 항시 자중자애의 자세를 견지했다. 위 기사를 작성했던 취재진은 “사이버전쟁이 새로운 군비 경쟁을 촉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7) 군사전문가들은 “이제 모든 분쟁에 사이버전이 가미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것은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도 되는 것일까. 날이 갈수록 사이버 군비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가령 에스토니아 정부는 자국 과학계가 묵묵히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덕택에, 당시 국방부장관이 ‘국가안보위기’라고 표현한 비상사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4) 이 사건은 강대국이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는 계기가 됐다. 2010년 메릴랜드 주(州) 포트미드에 미군 사령부 산하 사이버사령부(USCYBERCOM)가 공식 창설됐다. 이 신설기구의 수장을 맡은 사람은 2005년부터 미국 국가안보국(NSA)을 지휘해온 케이스 알렉산더 장군이다. 국방부에 의하면, 이 신설 기구의 임무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사이버공간에서의 행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반면 적대국에게는 “그 같은 자유가 부인”됐다.(5) 오늘날도 미 사이버사령부와 국가안보국은 예전처럼 마이크 로저스 사령관 혼자 겸임하고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권고가 있었음에도, 두 기구는 여전히 같은 지휘계통에 속해 있다.(6)
2010년 6월, 현대 사이버전쟁의 발전상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지멘스사의 발전소(주로 원자력, 수력)용 산업제어시스템을 파괴하기 위해, 특별제작된 웜 바이러스를 벨라루스의 한 연구팀이 발견한 것이다. ‘스턱스넷’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우연히 ‘자연 상태에서 발견된 최초의 사이버무기’였다. 말하자면 글로벌 인터넷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복제, 확산된 무기였다. 2012년 6월 <뉴욕타임스>는 스턱스넷이 본래 미국과 이스라엘이 ‘올림픽게임스’라고 불리는 합동 스파이 작전의 일환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이란의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제작한 프로그램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아직 관련 법제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사이버전쟁이 표면에 드러난 셈이다. 물론 사이버부대도 이미 조직된 상태다. 사실 불투명한 자료를 가지고 전 세계 사이버군의 수를 집계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월스트리트저널>의 취재진이 사이버군 수 집계에 나섰다. 그 결과 사이버 공격을 담당하는 군사조직이나 정보조직을 1개 이상 갖춘 국가는 총 29개국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이란, 이스라엘, 북한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비슷한 목적으로 곧바로 사용가능한 해킹 도구나 소프트웨어를 사들인 국가도 50개국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들 간에 해킹팀, 제로디움, 핀피셔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각광받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산업계는 항시 자중자애의 자세를 견지했다. 위 기사를 작성했던 취재진은 “사이버전쟁이 새로운 군비 경쟁을 촉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7) 군사전문가들은 “이제 모든 분쟁에 사이버전이 가미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것은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도 되는 것일까. 날이 갈수록 사이버 군비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개념의 모호성은 결국 평화를 위협한다
2008년부터 각국은 본격적으로 사이버전력 구축에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사이버군사작전에 대한 법제는 지극히 모호하다. 전 국가안보국(NSA) 및 중앙정보국(CIA) 국장, 마이클 헤이든도 이런 문제를 순순히 시인한다. 그는 이와 관련해 토마스 헨드릭 일베스 에스토니아 대통령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사회계약이 부재한다면, 사이버공간은 아마 철저히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말한 세계처럼 돼버릴 것이다. 인간의 삶이 ‘비참하고, 끔찍하고, 폭력적이고, 유한한’ 무법천지, 즉 법치국가가 부재한 세계가 도래할 것이다.”(8)
200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산하 전문가들은 사이버교전에 관한 국제수칙을 마련하기 위한 학술연구에 돌입했다. 물론 사이버전쟁에도 무력분쟁에 관한 국제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체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것인가? 2013년 발표된 <탈린매뉴얼>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연구는 평화 시 국가 간 분쟁을 조율하는 규범보다는, 무력분쟁 시 적용가능한 수칙에만 중점을 두면서 강대국 간 논의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오늘날 사이버공간의 군국주의화는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반면, 그에 수반돼야 할, 보다 건설적인 차원의 평화 메커니즘 구축 과정은 너무나 더딘 현실이다. 일례로, 2012년이 돼서야 브라질, 미국, 나이지리아, 스웨덴, 튀니지, 터키가 합세한 끝에, 국제연합(UN)이 인권의 보호는 국경에 상관없이, 매체의 종류와 무관하게 온라인상에서도 적용돼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2013년에 이르러서야 UN 제1차 위원회 정부간 전문가 그룹이 군비축소와 국제안보를 주제로 작성한 한 보고서에서 국제법, 그 중에서도 특히 유엔헌장이 사이버공간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선언했다.(9) 이 선언을 계기로 관련 법제의 구체적 실행안을 마련하기 위한 후속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사이버 군비경쟁의 또 다른 특징은 매우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상황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사이버분쟁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도 아직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2016년 2월,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 국장은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로부터 “군사적 대응에 나서야 할 사건이나 공격의 종류를 규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클래퍼 국장은 “그것은 인식의 문제일 뿐”이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미 국방정보국 국장 빈센트 스튜어트 중장도 일갈했다. “사이버공간에서 일어난 모든 돌발적 사건을 무조건 사이버 공격행위로 분류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사이버공간에서 일어난 돌발적 사건들은 전쟁 따위와 구분해서 보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10)
이런 종류의 논란은 사이버공간에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줄기차게 반복된다. 2014년 11월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인터넷 공격이 발생했을 때도 온갖 잡음이 일었다. 미국의 일부 책임자들은 이 사건을 ‘사이버테러’, ‘사이버전쟁’이라고 했으며, 다른 이들은 ‘단순한 해킹’, 혹은 ‘사이버범죄’에 비견되는 일종의 ‘핵티비즘(정치·사회적 목적으로 해킹을 통해 국가나 기관에 압력을 행사하는 행위-역주)’의 일종이라고 간주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단호하게 ‘사이버반달리즘(사이버상의 질서파괴행위-역주)’이라고 규정했다.
사이버전쟁의 의미를 둘러싼 이런 논쟁에서 비롯되는 실질적 조치는 민주주의 사회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결과에 따라 적용 가능한 법제, 후속조치, 관련 주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현실(오프라인)’에서는 창문 하나 깼다고 군대를 동원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에서는 때때로 그런 과잉대응이 호응을 얻기도 한다. 사실상 사회가 점점 인터넷에 의존적이 돼가는 현실 속에서, 평화, 정의, 안보를 담보하기 위해 각 사회의 법률이나 작동방식을 시대상황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글로벌 군산복합체는 인간의 삶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각종 통제방법을 개발,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본래 인터넷망의 최초 설계자들, 인터넷 자유주의자들은 시인 존 페리 발로가 <사이버스페이스 독립 선언문>에서 말한 ‘살덩이와 쇳덩이로 이뤄진 거인들’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세계, 모든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이버공간을 꿈꿨다.(11) 그러나 헤이든 장군은 이런 시각을 비웃는다. 이 시각은 사이버공간을 육·해·공·우주의 뒤를 이을 제5의 군사작전지로 여기던 기존의 관점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과거 우리는 사이버공간을 강대국 간의 잠재적 분쟁지역이 아니라 글로벌한 구내식당, 내지는 놀이터 정도로 여기는 일정 세대가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이버공간에 대한 이런 각종 원형적 이미지의 충돌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12)
군사지대도, 놀이터도 아닌 사이버공간은 이런 다양한 원형적 이미지들로부터 여전히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즉, 각종 사이버분쟁이 사이버공간을 ‘회색지대’로 만들고 있는 듯하다. 사이버전쟁의 특징으로 ‘회색지대’가 종종 거론되는 것은, 양자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정보전(Information warfare)'과 그것의 전략적 영향에 대해 처음 정의가 내려진 것은 1976년 무렵이었다. 국방부 과학자문 토머스 로나는 보잉사에 전달한 보고서에서 “적대국들만이 아니라 경쟁국들 간에도 서로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IT기술을 동원해가며 평화, 위기발발, 위기격화, 분쟁, 전쟁, 전쟁의 종식, 평화회복 등에 이르는 기존의 단계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온갖 전략, 전술, 군사작전상의 경쟁이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이제는 동맹국들 간에도, 평화시에도 사이버공간에서 각종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전쟁이란 개념의 모호성은 사이버전쟁의 위험성을 가중시킨다. 개념이 모호하니 그와 관련한 법제 또한 모호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이 ‘모호성’은 사회의 불신을 조장하며 평화에 대한 사유를 가로막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에 대한 사유가 절실한 바로 이 시점에 말이다.
“사회계약이 부재한다면, 사이버공간은 아마 철저히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말한 세계처럼 돼버릴 것이다. 인간의 삶이 ‘비참하고, 끔찍하고, 폭력적이고, 유한한’ 무법천지, 즉 법치국가가 부재한 세계가 도래할 것이다.”(8)
200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산하 전문가들은 사이버교전에 관한 국제수칙을 마련하기 위한 학술연구에 돌입했다. 물론 사이버전쟁에도 무력분쟁에 관한 국제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체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것인가? 2013년 발표된 <탈린매뉴얼>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연구는 평화 시 국가 간 분쟁을 조율하는 규범보다는, 무력분쟁 시 적용가능한 수칙에만 중점을 두면서 강대국 간 논의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오늘날 사이버공간의 군국주의화는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반면, 그에 수반돼야 할, 보다 건설적인 차원의 평화 메커니즘 구축 과정은 너무나 더딘 현실이다. 일례로, 2012년이 돼서야 브라질, 미국, 나이지리아, 스웨덴, 튀니지, 터키가 합세한 끝에, 국제연합(UN)이 인권의 보호는 국경에 상관없이, 매체의 종류와 무관하게 온라인상에서도 적용돼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2013년에 이르러서야 UN 제1차 위원회 정부간 전문가 그룹이 군비축소와 국제안보를 주제로 작성한 한 보고서에서 국제법, 그 중에서도 특히 유엔헌장이 사이버공간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선언했다.(9) 이 선언을 계기로 관련 법제의 구체적 실행안을 마련하기 위한 후속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사이버 군비경쟁의 또 다른 특징은 매우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상황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사이버분쟁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도 아직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2016년 2월,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 국장은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로부터 “군사적 대응에 나서야 할 사건이나 공격의 종류를 규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클래퍼 국장은 “그것은 인식의 문제일 뿐”이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미 국방정보국 국장 빈센트 스튜어트 중장도 일갈했다. “사이버공간에서 일어난 모든 돌발적 사건을 무조건 사이버 공격행위로 분류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사이버공간에서 일어난 돌발적 사건들은 전쟁 따위와 구분해서 보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10)
이런 종류의 논란은 사이버공간에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줄기차게 반복된다. 2014년 11월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인터넷 공격이 발생했을 때도 온갖 잡음이 일었다. 미국의 일부 책임자들은 이 사건을 ‘사이버테러’, ‘사이버전쟁’이라고 했으며, 다른 이들은 ‘단순한 해킹’, 혹은 ‘사이버범죄’에 비견되는 일종의 ‘핵티비즘(정치·사회적 목적으로 해킹을 통해 국가나 기관에 압력을 행사하는 행위-역주)’의 일종이라고 간주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단호하게 ‘사이버반달리즘(사이버상의 질서파괴행위-역주)’이라고 규정했다.
사이버전쟁의 의미를 둘러싼 이런 논쟁에서 비롯되는 실질적 조치는 민주주의 사회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결과에 따라 적용 가능한 법제, 후속조치, 관련 주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현실(오프라인)’에서는 창문 하나 깼다고 군대를 동원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에서는 때때로 그런 과잉대응이 호응을 얻기도 한다. 사실상 사회가 점점 인터넷에 의존적이 돼가는 현실 속에서, 평화, 정의, 안보를 담보하기 위해 각 사회의 법률이나 작동방식을 시대상황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글로벌 군산복합체는 인간의 삶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각종 통제방법을 개발,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본래 인터넷망의 최초 설계자들, 인터넷 자유주의자들은 시인 존 페리 발로가 <사이버스페이스 독립 선언문>에서 말한 ‘살덩이와 쇳덩이로 이뤄진 거인들’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세계, 모든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이버공간을 꿈꿨다.(11) 그러나 헤이든 장군은 이런 시각을 비웃는다. 이 시각은 사이버공간을 육·해·공·우주의 뒤를 이을 제5의 군사작전지로 여기던 기존의 관점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과거 우리는 사이버공간을 강대국 간의 잠재적 분쟁지역이 아니라 글로벌한 구내식당, 내지는 놀이터 정도로 여기는 일정 세대가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이버공간에 대한 이런 각종 원형적 이미지의 충돌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12)
군사지대도, 놀이터도 아닌 사이버공간은 이런 다양한 원형적 이미지들로부터 여전히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즉, 각종 사이버분쟁이 사이버공간을 ‘회색지대’로 만들고 있는 듯하다. 사이버전쟁의 특징으로 ‘회색지대’가 종종 거론되는 것은, 양자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정보전(Information warfare)'과 그것의 전략적 영향에 대해 처음 정의가 내려진 것은 1976년 무렵이었다. 국방부 과학자문 토머스 로나는 보잉사에 전달한 보고서에서 “적대국들만이 아니라 경쟁국들 간에도 서로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IT기술을 동원해가며 평화, 위기발발, 위기격화, 분쟁, 전쟁, 전쟁의 종식, 평화회복 등에 이르는 기존의 단계들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온갖 전략, 전술, 군사작전상의 경쟁이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이제는 동맹국들 간에도, 평화시에도 사이버공간에서 각종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전쟁이란 개념의 모호성은 사이버전쟁의 위험성을 가중시킨다. 개념이 모호하니 그와 관련한 법제 또한 모호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이 ‘모호성’은 사회의 불신을 조장하며 평화에 대한 사유를 가로막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에 대한 사유가 절실한 바로 이 시점에 말이다.
글·카미유 프랑수아 Camille François
하버드 대학 ‘인터넷과 사회를 위한 버크먼 센터’ 연구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진 장소. ‘프랑스의 사이버방위, 사이버안보 전략’, 프랑스 정보시스템방위국, 파리, 2011년 2월.
(2) Thomas Rid, <Cyber War Will Not Take Place>, 옥스퍼드대학출판부, 2013년.
(3) Stephanie Ricker Schulte, <Cached : Decoding the Internet in Global Popular Culture>, 뉴욕대학출판부, 2013년.
(4) Andreas Schmidt, ‘The Estonian cyberattacks’, <A Fierce Domain : Conflict in Cyberspace, 1986 to 2012>, 사이버분쟁연구협회, 빈, 2013년.
(5) ‘US Cyber Command-US Strategic Command’, www.stratcom.mil.
(6) ‘Liberty and security in a changing world. Report and Recommendations of The President's Review Group on Intelligence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백악관, 워싱톤 DC, 2013년 12월 12일, www.whitehouse.gov.
(7) Damian Paletta, Danny Yadron, Jennifer Valentino-DeVries, ‘Cyberwar ignites a new arms race’, <월스트리트저널>, 뉴욕, 2015년 10월 11일.
(8) Michael V. Hayden, ‘The making of America's cyberweapons’,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보스톤, 2016년 2월 24일.
(9) ‘현 국제안보 상황에 대한 텔레매틱스의 발전상에 관한 연구를 맡은 정부간 전문가 그룹의 보고서’, 국제연합, 뉴욕, 2013년 6월 24일.
(10) ‘Worldwide Threats’,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워싱톤 DC, 2016년 2월 9일, www.armed-services.senate.gov.
(11) John Perry Barlow, ‘사이버스페이스 독립 선언문’, 다보스, 1996년 2월 8일.
(12) Michael V. Hayden, 위의 책.
박스기사
모로코와 알제리의 군비경쟁
북아프리카에서는 알제리와 모로코 두 국가가 치열한 군비경쟁에 돌입했다. 2014년 양국은 국내총생산(GDP)의 각각 4.72%와 3.19%에 달하는 예산을 군비 증강에 쏟아부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의하면, 최근 5년 간 아프리카에 판매된 전체 무기의 절반 이상(56%)을 알제리와 모로코가 독식했다. 알제리 정부는 2014년까지만 유가 상승에 힘입어 러시아 군수업체에서 수호이-30전투기, T-90전차, 킬로급 잠수함, S-300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판치르-S1 복합대공무기 등 150억 달러 규모의 군수장비를 사들였다. 본래 이 장비들은 2020년에 인도될 예정이다. 하지만 유가 폭락으로 인한 현 상황을 볼 때, 대금결제가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알제리는 러시아 외에도 독일(초계함, 국경보안시스템), 이탈리아(헬리콥터 모함), 중국(연안경비함)에서도 무기를 사들였다. 한편 모로코는 미국(F16 전투기, M1 전차)과 프랑스(미라주 F1 현대화, FREMM 다목적 호위함, 시그마 초계함, OPV-70 초계함)에서 무기를 사들였으며, 구식 장비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전력 보강에 나서고 있다. (출처 : 파트릭 미숑, 국방부, 파리, 2015년 9월)
상서롭지 못한 무기
다음의 시는 도교의 창시자 노자가 기원전 600~ 300년 경 쓴 것으로 추정되는 <도덕경>의 총 80장 가운데 제31번째 장이다.
“무릇 병기는 상서롭지 못한 도구여서 사람들은 모두 싫어하니, 도를 아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는다. 군자는 평소 왼쪽 자리를 상석으로 여기지만, 전쟁 시에는 오른쪽을 귀히 여긴다. 병기란 상서롭지 못한 도구여서 군자가 사용할 수단이 아니나, 어쩔 수 없이 써야 할 경우에는 그저 담담하게 다룸이 바람직하다. 승리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 승리를 미화하는 자는 살인을 즐기는 자다. 살인을 즐기는 자는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펴지 못한다.
좋은 일에는 왼쪽을, 나쁜 일에는 오른쪽을 상석으로 한다. 편장군(사령관을 보좌하는 장수)은 왼쪽에 자리하고 상장군(부대를 이끄는 사령관)은 오른쪽에 자리한다. 이는 상례에 따라 자리를 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애도함이 마땅하며, 전쟁에 승리했어도 죽은 사람에 대한 예를 다해야 한다.
(출처: 프랑스어역은 노자 <도덕경>(쇠이유·클라식어니마주총서·파리·2009년)에서 , 한국어역은 <도덕경>(풀빛·조수형 역)에서 발췌)
돈벌이를 위해 분노를 조장하다
한 평행세계에서의 2014년. 인종전쟁과 전 세계적인 인종차별정책이 판을 치는 가운데, 사회학자 콘로이와 유명 TV진행자 플레이먼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한 데 모여 한 시간여행자로부터 끔찍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콘로이가 물었다. “무엇이 ‘문명의 몰락’을 가져온 거죠? 방금 말씀하신 그 신형 무기 ‘C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인가요?”
“무기를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 사람들 간에 적대감을 높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적대감을 높일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이 동원됐지요. 그 중 최고는 애국심, 지역감정, 외국인혐오증, 군중공포증, 인종이나 언어, 종교의 차이, ‘세대 격차’ 등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잠재적 요소를 조장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결국엔 너도 나도 ‘C시스템’이라고 부르는 통합장비를 갖지 못해 안달했지요. 먼저 장비를 구입한 자가 천하무적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러니 다른 사람이 무기를 구입하기 전에 죽여야만 했던 거예요. (중략) 캘리포니아나 뉴욕 등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사고가 전체 사고의 70%에 달했습니다.”
“그렇다면, 부유층의 70%가 그들이 최신 무기를 구입할 것을 두려워한 이웃들에게 살해당했다는 건가요?”
“네, 바로 그렇습니다.”
존 브루너, <톱니모양의 궤도>(드노엘·파리·197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