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사우디아메리카’의 꿈

2016-03-31     마이클 클레어
 
3년 6개월 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미국이 2020년에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최대 산유국이 될 것이며, 2030년에는 캐나다와 함께 석유 순수수출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함으로써 전 세계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수압파괴(Hydro-fracking)라는, 당시에는 혁신적이던 신기술로 얻게된 풍부한 양의 천연가스와 석유로 미국의 경제는 활기를 띠었다. 
 
 
 하루 아침에 ‘미국의 에너지 승리주의’라는 새로운 압박이 등장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사우디 아메리카’라는 신조어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IEA의 공표를 다루는 사설을 통해, “이것은 진정한 에너지 혁명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크이론의 효과가 피크를 찍었다”
 
사기가 높아진 이 에너지 혁명의 즉각적인 효과는 석유의 ‘피크’이론을 반박하는 것이다. 21세기 초에 왕성했던 피크이론은 가까운 미래, 아주 가깝게는 2012년이 되면 세계 석유생산이 정점에 달해 그 이후에는 주요 석유광구가 메마르면서 내리막길에 접어들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이 주장의 지지자들은 수압파괴 공법이 나오면서 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지하 셰일가스(1) 형태의 천연가스와 석유 매장지가 개발될 것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의 엄청난 석유생산 증가를 그들은 감지하지 못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2010년 하루 550만 배럴이던 미국 원유 생산량이 2016년 초 920만 배럴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캐나다가 앨버타의 역청탄에서 비투멘(2) 형태로 석유를 추출하는데 성공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오늘날, 석유가 고갈될 것이란 생각은 완전히 희박해졌다. 하지만 에너지 전문가나 석유회사 간부들이 최근까지 광고하던 석유 풍족기의 장점 또한 희석됐다. “지하에 매장된 자원은 풍부합니다”라고 거대 석유기업 BP의 CEO 밥 더들리는 2014년 1월 발표했다. “공급이 곧 정점을 찍을 거라는 과거의 염려와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피크이론의 효과가 피크를 찍은 셈이죠.”
석유산업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2012년 북미 에너지 풍요가 도래하면서, 가속화된 셰일가스 생산 및 이와 관련된 석유화학 기업들의 발전에 힘입어 “미국산업의 신(新) 르네상스”가 올 것이라 선전하고 있다. 이러한 비전이 외국, 특히 중동에서 수입하는 석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과 결합했다. 이에 따라, 석유산업의 지지자들은 “미국은 지구의 초강대국으로서 다수의 지정학적인 우위를 점한 새출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의 새로운 석유지도의 윤곽이 나타나고 있다. 그 지도는 중동이 아닌 서반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지에 실린 석유산업 전문가 대니얼 이어긴의 말이다. 이어긴은 “새로운 에너지 축은 캐나다 앨버타로부터 미국의 (셰일가스 산지가 있는) 노스다코타 주와 남부 텍사스를 거쳐 브라질 근처 연안에 위치한 거대한 석유 매장량까지 이어진다. 이 모든 것은 중대한 지정학적인 변화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어떤 국가와도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 독보적인 우위를 점할 것을 시사했다.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이어긴의 주장에서 나타나는 맹목적인 성격이 어쩐지 친숙하게 느껴지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피크이론주의자들이 에너지 세계의 중차대한 기술적 진보와 이 진보가 화석연료 생산에 가져올 영향을 예측하는데 실패했다면, 현 석유산업의 지지자들은 추가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에너지 가격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파쇄공법이 피크이론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처럼, 석유와 천연가스의 공급과잉은 원유가격을 바닥까지 떨어뜨림으로써 가속화된 에너지 생산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신(新)산업 르네상스의 전망을 산산조각냈다. 
2014년 6월까지만 해도, 국제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의 가격은 배럴당 114달러였다. 2015년에 들어서자 이 가격은 배럴당 55달러로 곤두박질쳤다. 2016년 현재 이 가격은 36달러에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이러한 가파른 가격하락은 세계 석유시장에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파산하고, 대기업들도 수익에 참패를 겪었으며, 베네수엘라 등  석유수출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은 재정관리 상태에 놓일 위기에 처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약 25만 명의 석유산업 근로자들(텍사스에서만 5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또한, 몇몇의 주요 산유지는 폐쇄되거나 향후 개발 및 탐사 전망에서 제외됐다. 
일례로 북해의 영국 측 구획에서는 약 300개의 석유 시추 플랫폼 중, 최대 150개가 10년 내로 사라질 전망이다. 여기에는 브렌트유의 이름을 따온, 한때 풍부한 석유 저장고였던 브렌트 유전도 포함된다. 갈수록 얼음이 줄어드는 북극해의 시추 계획도 사실상 전부 보류 상태에 들어갔다. 원유가격 하락이라는 불가해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유와 각종 음모 이론이 제기됐다. 과거에는 원유가격이 하락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가입된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동맹국들이 생산을 축소해 가격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도 생산을 증가시켰다. 이를 두고 몇몇 분석가들은 리야드(사우디의 수도)가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공조한 이란과 러시아를 벌하기 위해서였다고 추측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은 “사우디가 두 나라를 파산시키기 위해 모스크바와 테헤란이 정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정 이하 수준으로 원유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여러 형태의 의견이 다른 전문가들에 의해서도 계속 나오고 있다. 
사실, 이 문제의 원인은 매우 단순하다. 미국과 캐나다의 석유생산 업체들은 세계시장에 하루에도 수백만 배럴의 석유를 새로 생산해내고 있다. 반면, 세계적 수요는 그만큼의 추가생산량을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이라크의 급작스런 석유생산 증가도 원유의 공급과잉이 늘어나는 것을 부추겼다. 중국과 유럽의 경제적 문제점들은, 예전보다 낮은 증가세의 석유 소비를 불러왔고 원유시장은 과포화상태가 됐다. 이 사태는 공급과잉과 수요부족이 가격하락으로 이어지는 고전적인 시장원리에 의한 것이다. 작년 6월, BP의 더들리는 “아직도 공급은 충분합니다”라고 말했다. “수요도 늘고는 있습니다. 공급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느는 것 뿐이지요.”

OPEC 산유국들, 
고통스러운 선택에 놓이다
 
이러한 현실에 부딪히면서, 사우디와 동맹국들은 고통스러운 선택 앞에 놓였다. 세계 원유생산의 40%를 차지하는 OPEC 산유국들은 세계시장에 실질적인, 그러나 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산량을 통제함으로써 가격 향상을 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OPEC 비회원국인 브라질, 캐나다, 러시아, 미국 등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OPEC 비회원국들의 석유기업들이 OPEC 회원국들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시장점유율을 빼앗을 것이다. 이것이 직관에 어긋나는 행동임을 알아도, 사우디는 이 같은 손해를 염려해 석유생산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희망은 생산비용을 많이 들여 석유를 시추하는 미국 기업들이 가파른 가격 하락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OPEC 회원국들은 가격이 얼마가 되든, 생산량을 줄일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사우디 석유 장관 알리 알 나이미는 설명했다. “생산량을 축소하면 우리의 시장 점유율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격이 올라가면서 러시아, 브라질, 미국의 셰일 석유생산국들이 우리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사우디도 이 전략을 채택하면서 큰 위험부담을 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국외수출 수입 중 85%, 그리고 정부수익 중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부분을 석유수출이 차지한다.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은 왕실이 공적 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지급금과 보조금, 직업 프로그램 등을 위협할 것이다. 
그러나 석유가격이 높았을 때 사우디는 세계 곳곳에 다양한 투자 계좌로 수천억의 달러를 축적해 놓았다. 그리고 현재 (긴축재정이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마어마한 현금 보유고에 의지해 국민들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있다. “석유가격이 계속 낮은 채로 머물러도, 우리는 장시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사우디 왕실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칼리드 알팔리 총재도 1월에 열린 스위스 다보스 경제포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 결과, 이 에너지 전쟁은 에너지 각축장에서 최대한의 시장노출을 위해 대형 석유생산업체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지구전이 됐다. 결국 현재의 낮은 가격이 일부 생산자들을 시장 밖으로 퇴출시킬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 공급과잉은 아마 소멸돼 가격은 다시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정말로 그 기간을 심각한 국내 불안 없이 견뎌 낼 수 있다면, 마침내 가격이 반등되기 시작할 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강력한 위치에 올라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의 해외 투자계좌가 다 바닥나고, 국가기반이 무너져 내리기 전에 미국이나 다른 경쟁국가들의 셰일가스 생산자들을 누르고 올라설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실 최근 몇 주 동안, 사우디가 조급해지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됐다. 사우디가 정부 보조금을 줄이기 시작했고, 러시아, 베네수엘라와 석유생산 축소 및 동결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석유 과잉공급이 부른 ‘전 지구적 대재앙’
 
그 동안, 이 소모전이 그 대가를 치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미 타격을 입은 북해와 북극해의 생산자들뿐만 아니라 앨버타에 있는 애서배스카(Athabasca) 역청탄을 개발하고 있던 회사들도 곧 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역청탄 채굴장비는 손실에도 불구하고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의 프로젝트는 취소 또는 연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라는 것도 그리 멀 않은 일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석유산업의 거의 모든 기업이 이 새로운 가격 조정으로 손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 중 브라질의 심해저 시추, 미국의 수압파쇄 공법, 캐나다의 역청탄 개발 같은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에 의존하는 업체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공법들은 기존의 유전(지표면이나 해안선에 가깝거나 침투 가능한 암석 형태로 된)이 장기적으로 쇠퇴할 것에 대비해 주요 대기업들에 의해 개발됐다. 이러한 채굴방식으로 얻는 석유를 ‘터프오일’이라고 부른다. 이는 땅 위로 끌어올리기 더 어렵고, 개발비용도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역청탄 개발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80달러에 이른다. 셰일 석유의 경우에도 통상 50~60달러 정도이다. 석유가 100달러 이상에 팔릴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가격이 6개월 이상 30~40달러 사이에 정체된 현 시기는 대단히 비극적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또 있다. 석유업체들이 축소하거나 도산할 경우, 그와 관련된 수백 개의 중소기업들(유전 근로자 용역업체, 석유관 공사업체, 수송업체, 케이터링 업체)이 북미의 ‘에너지 르네상스’를 보지도 못한 채 쓰러진다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이미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됐다. 한때 석유도시로 번성하던 노스다코타의 윌리스턴이나 앨버타의 포트맥머리는 불경기에 빠져 ‘인부 캠프(남성 유전 근로자들의 임시 숙소)’는 문이 닫힌 채 버려졌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의 팀 마신에 의하면, 한때 셰일 붐의 진원지였던 윌리스턴은 이제 지역교회에서 무료로 배급하는 식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구세군으로부터 옷이나 생필품을 보급받는 마을이 돼버렸다. 부동산 시장도 완전히 타격을 입었다. “일자리가 멸종하고, 사람들이 떠나가자 일부 거주지는 유령마을로 변해버렸다”고 마신은 보도했다. “시 공무원에 의하면, 호황일 때 지은 호텔과 아파트의 대부분이 11월에는 50~60%만 차있다고 한다.” 
여기에 숨겨진 위기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셰일 붐이 일어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이 산업에 상당한 금액을 대출해준 미국은행들의 재정상태가 셰일 업체들이 도산함에 따라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전문 데이터를 제공하는 기업인 딜로직(Dealogic)에 의하면, 지난 5년 간 미국과 캐나다의 석유·천연가스 회사들이 발행한 채권과 대출금은 1.3조 달러를 넘는다. 이 금액의 상당한 부분이 기업들의 채무불이행과 파산 신청에 따라 회수되지 못할 위기에 놓여 있다. 시티은행만 해도 에너지 부문에 할당한 대출의 32%가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 빌려준 것이기 때문에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더 높다고 보고했다. 웰스파르고은행도 에너지 부문 대출의 17%가 낮은 신용도의 기업에 빌려준 것이라고 발표했다. 채무불이행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은행들의 주가도 하락하고, 석유기업의 주가 하락과 결합하면서 전체 주식시장이 삐걱거리고 있다. 
2012년만 해도 미국의 에너지 산업의 기량을 끌어올렸다고 추앙받던 기술적 혁신이, 이제는 북미 유전을 둘러싼 기업과 마을, 주민들에게 너무 큰 불행을 안겨준 시장 공급과잉의 주범이 된 것이다. 참으로 역설적인 사실이다. 에너지 전문가 스티브 르바인이 2월에 발표한 논평에 의하면, “2014년 초, 미국이 엄청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하자 전문가들은 수조 달러의 투자와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미국의 신 중흥기를 예견했다.” 2년 뒤, “똑같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전 지구적인 대재앙을 불러오자 사람들은 경악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최악의 지정학적 성적표
 
눈 앞에 다가온 줄만 알았던, 신 르네상스가 실현되지 못할 경우, 워싱턴에서 자부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통한 지정학적 우위 선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어긴과 전문가들은 북미의 생산확대가 세계 석유생산의 중심을 서반구로 옮기면서 미국이 액화 천연가스, 즉 LNG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그 결과 독일 등 동맹국들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미국의 영향력과 권한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 예측대로만 됐다면, 미국은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군림할 에너지 승리주의를 만끽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에너지 분석가인 에이미 마이어스 제프와 에드 모스가 2013년에 말했듯이 “OPEC이 창조한 에너지 세계에 대항하는 반혁명 운동”이 됐을 것이다. 
현재까지로 보면 이런 지정학적 노다지가 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사우디의 소모적인 전투 스타일로 인해 러시아의 거대 국영 천연가스 수출기업인 가스프롬이 유럽에 수출하는 가스의 가격을 내렸고, 따라서 미국 LNG의 가격 경쟁력이 잠재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2월 25일 미국의 첫 LNG 수출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행선지는 유럽이 아닌 브라질이었다. 2011년 이어긴에 의해 새로운 석유 지도의 두 축으로 지목됐던, 브라질과 캐나다 역시 그 동안 석유가격 하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미국은 산유지의 생산효율성 증가 덕택으로 생산량이 크게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사업을 받치는 기둥들이 점점 도산 위기에 놓이거나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다. 
반면, 사우디는 아직까지는 이 소모전에서 시장 점유율을 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십 년 간 세계 유가 정책에서 지휘관 역할을 할 것임이 분명하다. 물론, 국가가 현재의 석유 공급과잉의 압박으로부터 살아남는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아마도 OPEC에 대항하는 ‘반혁명’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야 할 것이다. 텍사스, 펜실베니아, 노스다코타, 앨버타의 풍경은 시작하자마자 쇠락한 신산업의 녹슨 폐기물로 가득차고 있고, 미국의 힘은 더 이상 예전처럼 강건하지 않다. 
결국, 유가소모전은 북미의 핑크빛 미래나 사우디가 예전의 영광을 찾는 엔딩보다는, 석유의 무제한적 공급이 그것을 흡수할 만한 능력이 없는 뒤틀린 자본주의와 만난 낯선 신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아마, 이 생각이 앞으로 다가올 현실에 가까울 것이다. 사우디가 시작한 ‘포로 없는 전쟁’의 큰 불로 뜨겁게 달궈졌던 지구에서 결국 수 세기 동안 석유에 의존했던 우리의 세상이 공급과잉과 산업 공동화라는 재만 남긴 채 함께 타버리는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소모전인 셈이다.  
 
 
글·마이클 클레어 Michael T. Klare
미국 매사추세츠 주 애머스트 햄프셔 대학 교수, <The Race for What's Left. The Global Scramble for the World's Last Resources> (Metropolitan Books, New York, 2012)의 저자 
 
 
번역·이유민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1) Shale gas, 오랜 세월 동안 모래와 진흙이 쌓여 단단하게 굳은 탄화수소가 퇴적암(셰일)층에 매장돼 있는 천연가스.  
(2) Bitumen, 반고체 상태의 석유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