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지령자로 적합한 사람을 찍으세요

2016-03-31     매티아 크레이머


연단에 선 남성이 “여성과 어린이들을 살해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러자 사막(1)의 비행기 격납고에 모인 인파가 환호하며 흥분감에 몸을 떨었다. 이것은 다름아닌,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 현장이다. 트럼프는 이 행사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죽이고, 그들의 가족들 또한 “제거하겠다”는 기존 약속을 공고히 했다. 

 
 
물론 트럼프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충격적인 건 그뿐만이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돼 최악의 전쟁 범죄를 저지를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경합중인 대부분의 공화당 경선 경쟁자들도 트럼프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먼 이국땅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더 많이 살상하는 일의 총괄책임자가 누가 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등골서린 주장들, 그리고 이러한 허풍에 화답하는 박수갈채. 이 모든 것은 과대망상에 빠진 억만장자이자 공화당의 유력 후보, 트럼프뿐 아니라 그의 동조자와 반대세력들조차 모두 제정신이 아님을 쉽게 증명해주고 있다.
 
자신의 공격으로 누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의 가족들을 찾아내 죽이겠다”는 트럼프의 맹세는 수많은 드론과 미 특수작전부대들을 대중동 지역에 풀어놓는 오바마 대통령의 현 정책과 비교하면 약과다. 게다가, 트럼프는 적어도 솔직하기는 하다. 이러한 정책들과 그 정책들에 포함된 암살들, 그리고 이들이 정기적으로 야기하는 ‘부수적 피해’들은 미국 대중에 관해서 한 가지 사항을 전제하고 있는데, 멀리 떨어진 나라의 사람들(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 대해 우리 미국인들은 영원히 슬퍼하지도, 공감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내부고발자에 의해 <인터셉트>(2)에 유출된 기밀문서를 보면, 펜타곤의 합동특수작전사령부 및 CIA가 예멘과 소말리아에서 자행 중인 ‘살상 작전’에 대해 상세히 기록돼있다.(3) 먼저 정보요원들이 테러 용의자에 불리한 각종 정보들을 수집한 다음, ‘베이스볼 카드’(4)라는 것을 만든다. 이 카드는 지휘 계통을 따라 상부보고 되고, 결국 백악관 집무실로 간다. 그러면 대통령은 100명이 넘는 국가안보팀 대표들과 보통 주 단위로 회의를 한다. 그리고 이 카드들 중 살해대상이 될 카드를 선택, 결정한다.(5) 
그 후, 살해당할 사람들에게서 수천 마일 떨어진 미국 어느 곳에 있는 드론 조종사들에게 명령이 하달된다. 드론 조종사들은 해당지역으로 항공기를 원격조정해 방아쇠를 당긴다. 더욱 끔찍한 것은 드론 조종사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뉴욕타임스> 헤드라인이 잘 말해주듯, “미국은 보통 누가 죽게 될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타깃의 정확한 위치정보가 언제든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뉴욕타임스>의 보도대로 “사망자 대부분이 살해 명단에는 없던 자들이고, 정부는 그들의 이름조차 모른다.” 
그 예로, 2014년 인권단체 ‘리프리브(Reprieve)’는 미국의 드론 공격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제한된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41명의 테러인물들(이들 중 일부만 사망했다)을 죽이기 위해 1,147명이 희생된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대다수의 공격이 표적이 된 인물을 제거하지 못했으며, 단 한 명의 타깃을 잡기 위해 종종 수없이 많은 공격들이 시도됐음을 밝혀냈다.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 내 24명을 제거하기 위한 공격으로 이들 중 6명만이 성공적인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으며, 그 과정에서 142명의 어린아이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그에 비하면, 단순히 테러리스트들의 일가친척들을 살해하겠다는 트럼프의 계획은 사실상 온건한 편이다.

누군가의 사랑하는 이들이 죽어간다
 
보아하니 우리 미국인들은 이 모든 우연한 살인들을 단순히 ‘부수적 피해’로 여기든지, 아니면 이들을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게 프로그래밍돼 있다. 그리고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미국식 접근방법에 희생되는 모든 민간인들에게 우리가 느낄지도 모를 죄책감이나 연민의 감정 일체에 대해서도, ‘오프(Off)’  상태에 두기로 프로그래밍돼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프로그래밍에 허점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따금 뉴스 보도 깊숙이 파묻힌 이야기들(6)을 들을 때마다, 나는 우리 정부의 전략을 받아들이는데 필수적인,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다. 사실 이는 나의 아버지 때문이다.
내가 희생자들에 대해 대충 넘어갈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내가 결코 잊지 못할, 그리고 그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지 못할 2003년 12월 1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당시 배낭여행 중이던 나는 스위스의 자갈도로 위 공중전화 박스에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을 들었다. 헬파이어 미사일처럼 갑작스런 심장마비가 원인이었다.
나는 햇볕으로 달궈진 전화박스에서 땀에 젖어 미끄러운 손으로 수화기를 부여잡은 채 서있었다. 목구멍 뒤편에서는 신물이 올라왔다. 애써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아빠가 보였다. 처음에는 작업실의 넓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점점 숱이 줄어드는 아빠의 머리와 등이 보였다. 다음에는 나일론 바지에 야구모자 차림으로 패들테니스를 치러 나가던 아빠가 부엌 문 앞에 멈춰선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스턴 로건 공항의 거무죽죽한 회색 카펫 위에 서서 나를 바래주던 아빠의 모습이. 구레나룻이 수북한 아빠의 뺨에 내가 키스하던 마지막 작별의 순간이 보였다.
며칠 후, 나는 소리 없이 흐느끼며 만석 미국행 비행기에 자리를 얻어 탔다. 12월 초의 창백한 햇빛아래 서서 장례식장 직원들이 도르래로 아빠의 나무 관을 땅에 내려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몸을 후벼파는 듯한 바람 속에 땀투성이가 돼 울부짖고 전율하며 그 흙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 애쓰면서.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는데 아빠는 돌아가셨을까?’
그러한 이유 때문에, 테드 크루즈 공화당 대선후보가 “축복”이라고 일컬은 우리의 공군이 수년간 살해해온 무고한 시민들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면 나는 남겨진 사람들, 즉 우리가 살해한 사람들을 사랑했던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그 소식을 어떻게 전해 들었을까? 엄마는 내게 “이곳에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어”라고 말했었다. 또한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 형제, 자매, 아들, 딸, 친구들을 잃고 느꼈을 고통을 생각한다. 그들이 슬픔에 젖어 눈을 꼭 감았을 때 어떤 기억들이 떠오를까? 그들이 부서진 삶의 조각들을 다시 주워 맞추고 그들에게 종종 충격을 안기는 이 사회에서 정상에 가까운 생활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그들이 급진주의자가 돼 미국의 드론뿐 아니라 미국과 미국인을 혐오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하지 않겠다. 그것은 답이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배우 리암 니슨은 “사람에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라며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드론 공격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원인이 무엇이든, 사랑하는 이를 잃는 ‘상실’이라는 본질적인 경험에 대해 말한 것이다. 아내의 갑작스런 사망 5주기를 기린 글이었다. 그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는 남편을 잃은 후 “공허함에 사로잡혀 앞으로의 몇 달, 몇 년이 하염없이 텅 비어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잔인한 순간”이라는 글을 올렸다. 작가 조안 디디온은 남편을 갑작스레 보낸 후 “무의미함, 그 자체에 직면할 순간들이 끝없이 계속된다”며 슬픔을 묘사했다.
이는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미국의 드론 폭격으로 대가족의 대부분을 잃은 예멘의 한 남성이 토로한 것과도 일치한다. 그는 “마치 어둠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는 심정이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드론은 신랑의 고향까지 신부를 에스코트하기 위한 리본 달린 차들에 결혼식 하객들이 막 올라탄 직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양고기로 배를 든든히 채운 상태였고,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았을 무렵이었다. 주위는 조용했다. 그 때 하늘이 열리고, 네 대의 미사일이 차량 행렬에 비 오듯 쏟아져 12명이 숨졌다.
미 공군은 수많은 결혼식장을 타격했다. 그리고 장례식장, 병원,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가정집들도 공격했다. 파키스탄 부족 지역들에서 벌이는 CIA의 드론암살 작전을 보다 못한 미국과 파키스탄의 일부 화가들은 잦은 공격대상 지역에 거대한 어린이 초상화를 설치하기까지 했다. 드론 조종자들이 ‘벅스플랫(Bugsplats)’이라고 부르는 컴퓨터 콘솔상의 작은 적외선 형체를 보는 것 대신에, 그들이 폭격하게 될지도 모를 어린이의 얼굴을 보라는 취지에서 설치한 것이다. “누군가의 사랑하는 이를 죽이지 말라”는 일종의 간곡한 권유인 것이다.
이따금 드론 조종사 중에는 양심고백을 하며, 공군기지 내 창문 없는 벙커에서 12시간 교대 근무를 하면서 컴퓨터 키를 눌러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감정적, 정신적 무게를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군인은 21세부터 6년간 드론 조종을 했다. 그는 한번은 이미 발사돼 날아가고 있는 미사일의 타깃인 아프가니스탄의 한 주택 주변에서 매우 작은 형체가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깜짝 놀라 동료 조종사에게 “아까 어린이가 있었지?”라고 물었다. 그는 매우 흥분했다. 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려 해당 임무의 원격 참관인(다른 곳에 있는 정보요원)에게 현장에 어린이가 있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그 답을 앞으로도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잠시 후, 미사일은 그 집에 떨어졌고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 그 조종사는 군을 떠났다. 일을 그만 둔 후, 그는 필름이 끊어지도록 술독에 빠져, 공공 놀이터에서 정부가 보급해준 침낭 속에서 잠을 자며 그의 고향 몬태나 주에서 매섭도록 추운 겨울을 보냈다.
물론, 콘솔 앞 그의 자리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채워졌다. 그 후임자는 상부에서 하달되는 살인명령을 계속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와 기타 공화당 후보자들 대부분이 “전투원들뿐만 아니라 가장 성공적으로 민간인들을 제거할 수 있을 자는 누구인가”를 놓고 경쟁 중에 있다. 테드 크루즈가 “모래가 어둠에 빛날 수 있는지”(7) 확인할 때까지 ISIS에 융단폭격을 가하자고 한 발언은 사실상 캐치프레이즈가 돼버렸다. 그러나 이는 공화당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양 당의 주요 후보자들 모두 워싱턴의 대대적인 드론 작전과 비슷한 전략을 유지하려는 계획이다. 다시 말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시절 “테러와의 글로벌 전쟁”의 중대한 요소로 등장한 후, 오바마 행정부에서 더욱 제도화되고 강화된 이 프로그램을, 이제는 곧 새로운 대통령 당선인이 물려받을 예정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지구 최후의 초강대국 수장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다. 백악관 집무실에 입성해, 살인지령을 내리기 적합한 자를 선발하는, 일종의 토너먼트인 셈이다. 누군가의 사랑하는 이들을 계속 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격인 자는 누구인가, 적임자로 당신은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미국인들이여, 투표소로 가십시오.  
 
 
글·매티아 크레이머 Mattea Kramer
군사문제부터 이웃사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글을 블로그(This Life After Loss)에 올리고 있다.  
 
 
번역·오정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아리조나 주 피닉스.
(2) Intercept, 워드 스노든의 폭로내용을 첫 보도한 매체로, 글렌 그린월드(Glenn Greenwald)가 공동 편집인으로 있다.
(3) 미국은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리비아 등지에서도 드론 공격을 감행 중이다. 이 유출된 문서는 어떻게 오바마 대통령이 “진행 중인 적대관계” 외의 지역에서 공격하는 관행을 제도화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4) Baseball card, 원래는 앞면에 야구선수의 사진, 뒷면에 해당 선수와 관련된 기록 등이 인쇄된 카드를 말하나, 여기에서는 타깃 인물의 초상화와 그가 미국의 국익에 위협을 가한 것으로 주장되는 혐의들을 요약한 서류를 말함.
(5)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은밀한 암살 타깃 선정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바 있다.
(6) 지난 10월, 미 공군이 “실수로”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서 국경없는 의사회가 운영하는 병원을 폭격해 30명(어린이 3명 포함)이 사망했다. 지난 봄 이라크 북부 IS 검문소에서는 2대의 A-10워트호그(Warthog) 조종사들이 검문소에 멈춰선 민간인 차량을 공격해 2명의 여성과 3명의 어린이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산산조각이 됐다. 이런 사건들은 놀랄 만큼 자주, 정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뉴스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7) 테드 크루즈(Ted Cruz) 공화당 대선 후보의 지난 해 12월 유세 중 발언. IS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