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초래한 미 우파의 분열증

2016-03-31     세르주 알리미

 

세 번 결혼한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 이런 사람이 어떻게 기독교 우파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미국 남부에서 이토록 인기를 얻는 것일까?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둘러싸고 대립 중인 앨라배마 주 공화당 당원들에게서 그 해답을 찾았다. 


2월 27일 토요일 앨라배마 주 모빌. 미국 남부 여러 주에서 치러질 대통령 후보 경선을 3일 앞두고 한 컨벤션 센터의 대회의장에서 앨라배마 주 공화당 집행부의 연례회의가 열렸다. 공화당 유력인사 수백 명이 회의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보다 쉽게 눈에 띄는 흑인 의원 한명을 마주쳤다. 뉴욕 억만장자가 아주 인기 있을 듯한(3일 후, 트럼프가 경선에서 승리를 거두며 인기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리고 공화당 의원이 모두 백인인(1) 주에서 만난 광경치고는 참으로 역설적이었다. 
회의 중 트럼프 후보의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의 머릿속에 트럼프 후보가 자리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성공에 당의 미래도 좌지우지될 수 있다. 어느 선거에서나 사람들이 싫어하는 후보가 한두 명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주요 라이벌인 텍사스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후보만큼이나 불쾌한 이 남자를 어떻게 쓰러뜨릴 수 있겠는가. 동료인 다른 공화당 의원들조차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경우,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경영에서라면 적대적 매수라 불리는 상황이다. 공화당 의원 절대다수를 포함한 수많은 공화당원들은 트럼프가 가진 이데올로기적 신념이라고는 지나친 자아도취와 권위주의적인 충동뿐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링컨과 레이건의 정당”을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이 운영하는 고급 호텔이나 보드카 브랜드의 명성에 신경을 더 쓰는 사람이 바로 트럼프다. 이번 2월 27일, 모빌에서 공화당 간부들은 약간 절망적인, 어쨌든 예측 불가능한 실험을 준비했다. 트럼프가 승리의 축포를 받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전자 투표를 통해 공화당의 근간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장래에 집행부가 다양한 결의안을 검토할 수 있게 해줄 이 ‘작은 투표상자’의 기능을 미리 시험해보기 위해, 300명이 넘는 공화당 위원들은 먼저 좋아하는 전쟁영화를 “뽑아”보았다. <패튼 대전차 군단>이 <진주만>을 압도적인 표차로 꺾었다. 이 선택의 결과가 말해주듯 당 간부들은 대규모 전투, 그리고 승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욱 의미 있는 투표는 그 다음에 나왔다. 위원들의 76%가 앨라배마의 다음 경선이 ‘비공개’로 진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이번 경선은 ‘개방형’ 경선이었다). 다시 말해, 당의 유권자들에게만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목표는 명백하다. 수많은 민주당 유권자들이나 무소속 후보 지지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이끄는 트럼프와 같은 비정통파 공화당 후보가 2020년에는 쉽사리 후보에 나서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러 개의 카지노도 소유한 트럼프가 혹여나 자신들의 메시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 앨라배마에서 “모든 형태의 도박”을 불허하는 또 다른 결의안도 나왔다. 회의의 나머지 프로그램은 고전적인 내용이었다.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의 파괴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고발은 대통령 선거가 미국 연방 대법원의 정치적 공정성과 낙태권리를 제한하자는 새로운 요구, 총기 규제에 대한 반복적인 거부 등을 결정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각인시켜주었다.
 

TV 리얼리티 쇼와 
극단주의가 빚어낸 위력

회의장 입구에 놓인 여러 개의 탁자와 패널에는 아직 경선에 참여 중인 크루즈, 마르코 루비오, 존 케이식, 벤 카슨 등의 후보들에 대한 선전 내용이 가득했다. 한쪽에서는 후보들의 이름이 적힌 배지와 작은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트럼프와 관련된 홍보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뉴욕 출신의 이 미운 오리 새끼는 이미 재앙을 점치고 있는 공화당 간부들에게서 별다른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다가오는 11월 트럼프가 참패하든, 트럼프가 당선되든 재앙은 예고됐다. 
하지만 트럼프가 무슬림들을 비난하는 것이, 그가 미움을 사는 첫 번째 이유는 아니다. 이날 발의된 동의안 제 2016-06호는 미국이 “극단주의 이슬람과 관련이 있는 국가 출신의 난민들”의 망명을 거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공화당의 한 의원은 이 동의안을 이렇게 옹호했다. “세계의 절반이 미국에 와서 미국인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라는 것은 이 의원이 지지하는 동의안만큼 모호하고 대략적인 그의 국제정치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회의장에 들어온 프랑스인에게 (아무리 악의 없는 질문이라지만) 프랑스 국민의 대다수가 무슬림이냐고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의안은 가까스로 부결됐다. 
이어지는 (150달러라는 가격에 비해 형편없는) 저녁 만찬에서는 서빙을 하는 사람들의 2/3이 흑인이었고, 만찬 참석자의 98%가 백인이었다. 각 후보들은 만찬장에 대리인을 보냈다. 카슨 후보의 경우 아들을 대신 참석시켜 은연중에 트럼프를 비난하며(어쨌든 13일 후 카슨 후보는 트럼프 지지를 결정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라는 성경 구절로 연설을 시작했다. 크루즈 후보의 대변인도 같은 레퍼토리를 인용했지만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 받을 것이다”라는 구절을 통해 크루즈 후보가 가진 일관된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강조했다. 루비오 후보는 복음교회에서 아주 인기가 많은 릭 샌토럼을 밀사로 급파했다. 2012년 경선 후보로 나섰던 샌토럼은 앨라배마 경선에서 승리를 거둔바 있다. 그리고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한 지역의원이 “트럼프의 최고 장점은 대중을 움직인다는 점이다”라고 말하며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다. 
마지막으로 만찬의 하이라이트가 돌아왔다. 만찬 기획자들이 가장 많은 돈을 썼을 게 틀림없는 순서다. 지금은 고액 강연료를 받는 연사가 된 옛 리비아 사설 보안요원 마크 가이스트가 2012년 9월 벵가지에서 발생한 미국 총영사관 공격(2)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너무나 자세한 나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말이다. 그는 이날 저녁 모두가 만장일치로 동의한 명백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의 태만이 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의 죽음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선거운동의 방향은 결정됐다.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실업과 기업의 해외 이전을 경험한, 분노한 미국인들이 결정한 것이 아니다.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비로 이동경비를 마련하고 호텔을 예약했으며 만찬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이 지역 최저시급인 7.25달러(미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를 받고 2~3주를 일해야 마련할 수 있는 비용이다. 
오바마와 힐러리에 대한 공화당 간부들의 반감이 트럼프에 대한 불신을 잠재울 수 있을까? 앨라배마 주 공화당의 한 위원회에서 흑인으로서 위원장을 맡고 있는 본 포는 모든 게 명백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는 뉴욕 출신 부동산 업자의 인기가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서 TV 리얼리티 쇼와 극단주의가 뒤섞여 만들어낸 위력이라고 생각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염려하고 있었다. “히틀러도 인기는 많았다. 하지만 그 끝을 생각해보라. 트럼프가 우리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된다면 너무나 창피할 것이다. 나는 절대로 이 나라에서 그에게 투표할 수 없다.” 본 포는 앨라배마 대학에서 컴퓨터 보안을 가르치는 교수답게 이렇게 덧붙였다. “내 IQ는 50이 넘는다. 당신이 뇌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 뇌의 제어화면에 트럼프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사태는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는 공화당원이 아니라 민주당원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쉽게 속지 않는다. 이 사람은 거래가 본업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는 9월 중순에 (두 곳의 대정당에서 공식적으로 대선 후보를 선정하고 나면)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의 경쟁자가 된다고 해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아쉽게도) 당에서는 다른 후보를 새로 내세울 시간이 없다.”
트럼프의 엉뚱한 계략이 놀라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공화당원들이 그의 비정형적인 정치이력, 그리고 종종 그가 당의 정통성을 해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염려하고 있다. 공화당원들은 트럼프가 자신의 세 번째 결혼식에 힐러리 클린턴을 초대했던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은, 분노에 찬 지역 의원들이나, 폭스 뉴스, SNS, 음모이론에 의해 단련된 당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3월 16일 애리조나에서 크루즈는 “거의 모든 언론이 좌파 지지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최선을 다해 우리가 도널드를 후보로 뽑게 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이길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후보가 도널드라는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라며 언론들을 비난했다.
바버라 프리스터는 공화당 집행부 위원이다. 올곧은 신념을 가진 80대의 그는 1874년부터 2010년까지 136년 간 민주당이 집권한 앨라배마 주에서 최초의 여성 공화당의원이 됐다. 프리스터는 이제 이 나라에서 가장 강경한 공화당 의원이다. 그는 민주당 출신의 앨라배마 주지사인 조지 월리스를 만나 대결한 바 있다. 월리스는 기이한 행보에서 종종 트럼프의 비교대상으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기존 질서와 지식인들에 반대하며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고, 민중을 선동해 인종차별을 고수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시민의 권리를 탄압하려했던 월리스의 정치 인생은 미국 현대사에 고스란히 남았다.
월리스는 미국 대선에 4차례나 출마해서 1968년에는 앨라배마를 포함한 남부 5개 주에서 66%의 득표율로 승리하기도 했다. 강력한 두 명의 적수,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과(대통령 당선) 민주당 출신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와 대결했던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득표율이었다. 월리스의 선거 집회는 요즘 트럼프의 선거 집회처럼 야유와 고성이 오갔다. 그럴 때마다 월리스는 방해꾼들에게 “세수하고 면도나 하고 오라”며 맞받아쳤다. 월리스는 기분이 아주 좋을 때 그들에게 “신고 있는 샌들을 헌정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1972년 백악관 입성을 위한 세 번째 도전에 나섰을 때, 암살 시도로 인해 휠체어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이 사건도 그를 정부의 관직에서 멀어지게 하지는 못했다. 월리스는 네 번이나 주지사에 당선됐다. 프리스터 위원의 딸로서 남편 케빈과 함께 공화당원으로 활동 중인 앤 베넷은(부부는 2012년 공화당 전당 대회에 파견된 바 있음) 말했다.
“월리스의 힘은 패배한 국민들 즉 남부 국민들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트럼프의 위력도 이렇게 설명된다. 오바마는 아메리카를 패배한 민족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했고, 이슬람 국가 조직에게도 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누가 됐든 주먹에는 주먹으로 맞서겠다는 약속만 하면, 그 사람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한다.”
너무나 나약한 지도자 때문에 패배한 민족. 트럼프의 사고에 그나마 꾸준히 자리하고 있는 주제이다. 그가 나선 모든 전투에서 즉, 미국 대통령이 되려는 전투에서 그에게 “이기고”(트럼프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 싶게 만드는 사업가의 자아도취 외에도 권위적인 민족주의는, 여러 잡지에 그의 사생활과 재산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이런 그의 기질이 새삼 주목받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미 25년 전에 <플레이보이>와의 긴 인터뷰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3) 
트럼프는 인터뷰를 통해 당시 두 초강대국의 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경멸스러운 방식으로 언급했다. 

반란은 총알이 아니라, 
투표용지로 일어난다

트럼프는 먼저 미군으로부터 공짜로 보호받고 있는 동맹국들(일본, 독일, 그리고 특히 걸프만 국가들)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너무나 관대한 태도를 비난했다. 이 동맹국들이 자국에서 무역과 관련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소련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전복될 것이라고 본다. 나약함을 드러내보였기 때문이다.” 1990년 3월, 로널드 레이건이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떠나간 백악관에서 공화당 출신의 새로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벌써부터 전세계의 지도자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있고”, “우리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우리를 짓밟으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트럼프는 경기장에 들어가 “미국의 위대함을 되살리기 위해” 자유무역 협정과 싸우고, 남쪽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하고 있다. 그 사이 트럼프는 그가 만든, ‘전세계가 만만히 여기는 미국의 어리석음을 이용해먹는 국가’ 목록에 중국과 멕시코를 올렸다. 
프리스터 위원은 월리스를 통해, 국가의 문제 대부분이 소수집단과 외국인, 범죄자들을 보호하는 정치인들의 탓이라고 말하는 선동가를 이미 경험했다. 그는 또한 기자들을 비난한다. 그는 자신을 “보통 사람의 유일한 대변인”이라 칭하면서 노골적인 언행을 일삼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했던 언론조작 전문가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프리스터는 트럼프를 경계한다. 그리고 딸 앤과 사위 케빈처럼 프리스터도 주기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확인해 이웃들과 신자들에게 트럼프를 쓰러뜨릴 만한 공화당 후보를 소개하려 하고 있다. 세 명 모두 루비오와 크루즈 사이에서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크루즈의 손을 들어주었다. 헛된 일이었다.(4)
베넷 부부의 사회적, 문화적 세계관에서 트럼프보다 생소한 것은 없다. 앤은 미국 풋볼 팀으로 유명한 작은 대학도시 오번 근처에 800헥타르에 달하는 옛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 앤의 남편은 토지를 관리하며 사슴사냥을 기획한다. 침례교 신앙은 이들 부부의 존재와 삶에 있어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에는 실력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점잖고 낮은 목소리로 미국 헌법 수정 10조(5)와 지방권력, 남부지역의 농업전통을 철저히 존중하는 토머스 제퍼슨식의 제한된 정부 형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갑자기 스캔들 폭로 전문매체에 자신의 사생활을 늘어놓고, 레슬링의 링 위에서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은 두 명의 톱모델에게 둘러싸인 이혼한 억만장자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이들 부부의 공화당에서 대표 자리에 서겠다는 것이다!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는 이 남자는 TV에 나와서,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미군들에게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법을 어기라고 주저 없이 명령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의회의 지지 여부에 상관없이 여러 개의 무역 조약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한다. 앤 베넷은 씁쓸함과 당황스러운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그가 비난해마지 않는 기존체제에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뉴욕이나 동북 지역에서 우리를 짓밟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이스트먼 코닥에서 고위 임원을 지냈던 케빈 베넷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트럼프가 토론회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집권 시절을 얘기하며 “군림했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역사, 특히 미국의 남북전쟁 역사에 심취하고, 연방국기에 애착을 갖는 그는 이미 자신의 정당이 에이브러햄 링컨을 표방하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는 터였다. 이 맨해튼 억만장자의 권위주의적인 실수들은 케빈에게 너무 많이 ‘대해방군’의 북군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남부지방 지지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족 모두가 줄곧 공화당에 투표해왔다는 다이앤 제이를 오번에서 만났다. 그는 핸드백에 스미스웨슨 38구경을 넣고 다닌다. 그리고 지역신문은 너무 좌편향 됐다고 생각해(논란의 여지가 있는 판단임) 읽지 않는다. 그는 트럼프의 유권자들을 분노한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것을 가장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이는 두 정당 모두에게서 신뢰를 잃어버린, 그동안은 그 의지가 알려지지 않았던, 이제는 자유로워진 미국시민들의 움직임이다. 공화당의 기득권층에서는 많은 약속을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공화당은 그동안 단순 노동자들에게 그래왔듯, 트럼프를 멸시한다. 그가 억만장자인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돈은 그가 번 것이다. 그는 말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냈다. 우리 당 사람들은 그저 말 뿐이었다.”
당 지도부는 트럼프 후보의 길을 막기 위해 연합했다. 그 결과, 당 지도부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내가 좋아하는 마이크 허커비가 분명히 말했다. ‘공화당의 기득권자들은 이러한 반란이 총알이 아닌 투표용지를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투표용지(Ballots)와 총알(Bullets)의 변증법은 1964년 흑인 운동가 맬컴 엑스의 아주 유명한 연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6) 사실 미 의회 공화당 의원들을 향한 제이의 반감은 분노와 잘 맞아 떨어진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공화당의 기득권층은 가면을 벗고 당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대신, 당을 분열시키고 힐러리 클린턴에게 승리를 선사해주려 하고 있다. 내가 도널드 트럼프를 높게 평가하는 점은, 자기 돈으로 선거 운동을 해나가고 있고 다른 이해관계가 얽힌 이들에게서 돈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원 소수당 대표인 미치 매코널은 1년에 1백만 달러 이상을 벌고, 연방 하원의회 의장인 폴 라이언은 90만 달러 이상을 번다. 만일 누군가가 이들에게 ‘자, 이제 비용을 줄여봅시다’라고 한다면 이들은 아주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2008년 위기 때 다 태워 버렸어야 했다”

트럼프에게는 매우 적대적이지만 케빈 베넷은 ‘월스트리트의 갱단’이라 칭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애정을 갖고 있다. “두 정당은 부유함과 도시라는 동일한 문화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들에게 이 나라의 본질은 그저 양쪽을 오가며 살피는 땅 덩어리일 뿐이다. 2008년 위기 때 모든 것을 다 불태워 버렸어야 했다. 아주 힘든 시기가 됐겠지만 그래도 많은 부정부패를 뿌리 뽑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 정치권과 대표적인 두 정당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이제, 반론이다. 2월 29일 월요일 오펠리카, 오번에서 멀지 않은 옛날 병 제조 공장에서 공화당 위원회의 연례 만찬회의가 열렸다. 1994년 첫 만찬의 참석자는 40명이 넘지 않았으나, 이날은 300명에 가까웠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기도가 끝난 후, 이 지역구 국회의원인 마이크 로저스는 민주당 의원들뿐만이 아닌 워싱턴의 동료 국회의원들을 향한 부패와 공모라는 비난에 대해 답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크루즈의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공화당 출신 국회의원들을 비난하고 있다. 이들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에서 내린 주요 결정들(건강보험 개혁 또는 ‘오바마 케어’, 이란과의 핵 협상, 일부 이민자 추방 유예)에 대해 어떤 것도 무력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뽑힌 것인데 말이다. 
이들은 ‘시스템’에 매수돼 크루즈의 표현대로 ‘워싱턴 카르텔’의 일원이 돼버린 것일까? 대통령의 거부권을 넘어서려면 2/3 이상의 과반수가 필요하다고 로저스는 반박한다. 그리고 동료들에게는 고통을 인내할 것을 요구한다. “이 사회주의 행정부의 마지막 한 해 동안 우리는 별다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임무는 더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공화당 대통령이 선출된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대통령의 서명을 받을 내용은 바로 ‘오바마 케어’의 철회에 관한 것이다. 그 다음은 은행들을 규제하는 도드 프랭크 법이다. 현 사회주의 행정부는 곧 그저 나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어떻게, 복음주의파의 표심이 아주 큰 영향력을 차지하는 정당, 그리고 지역에서 트럼프가 이토록 쉽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인가? 제이는 이전에는 옛 침례교 목사이자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의 옹호자인 허커비를 지지했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불타는 신앙은 커녕 상스러운 말을 늘어놓고, TV에서 자신의 성적 매력에 대해 말하는 카지노 소유주를 지지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낙태에 반대한다. 그리고 학교 내 기도에 대해 찬성한다. 이보다 더 전통적인 것은 없다. 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을 한 번 보라.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이다. 물론 그가 결혼을 세 번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 역시 한 번 이상 결혼했었다. 배우였던 레이건은 불륜을 저질렀었다. 한 사람을 모든 면에서 비난하려 든다면 우리 중 죄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죄인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면 상원 전체가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직접적이고 단단한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제이를 포함해 이미 90만 명을 넘어선 미국 내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모두 트럼프의 문자 메시지를 여러 번 받아보았다. 대다수의 언론과 예술가, 지식인들이 트럼프를 향해 쏟아내는 비난과 불편한 폭로전은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동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든다. 제이는 말한다.
“나는 트럼프를 신뢰한다. 우리는 사업가가 필요하다. 트럼프는 더 이상 증명해 보일 게 없다. 이미 그는 훌륭한 가족과 100억 달러를 가졌다.”
실업, 저임금, 기업의 해외 이전, 미국 기독교인 정체성의 변질, 국경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연방정부의 무능력함, 미래에 대한 두려움. 거의 모든 문제가 아주 빠르게 이민자 문제로 이어진다.(7) 케빈 베넷은 말한다. 
“바로 이 문제가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 뛰어들게 한 이유다. 아무도 이 문제를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했다. 미국의 학교에는 이민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민자 학생들의 부모가 법적 체류자격이 있는지 확인할 권리가 없다. 법은 명확하지 않고, 학교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하면 인종차별주의자 취급을 받는다. 장벽을 건설한다는 아이디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국경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맞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경을 개방했으니 말이다. 지금 사람들은 지쳐있다. 두 거대 정당 어디에서도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의 불만을 살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것이라는 걸 사람들도 알고 있다.”
두려움이 쌓여갈수록, 트럼프의 주장에는 힘이 실린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침투하려했던 테러리스트 조직들에 대한 이야기는 앨라배마에서 며칠만 머무르면 들을 수 있다. 수 톤에 달하는 마약과 1,200만 명의 이민자들에 맞먹는 외국군대를 보낼 수 있는 터널이 국경 아래에 만들어졌다는 식의 이야기들. 그러나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2012년 재선 이후, 공화당의 전략가와 여론조사관들은 이러한 두려움의 고착화는 선거 관점에서는 당에게 해가 되는 것이고, 어떤 대선후보도 히스패닉 표심의 전격적인 지지 없이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민문제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언론인 앤 콜터도 현재 미국의 인구통계를 보면 제임스 카터와 월터 먼데일이 레이건을 상대로 출마했던 때보다 덜 “하얗다”고 주장한다. 1980년 제임스 카터는 레이건에게 압도적인 표차로 패했고, 4년 후에는 월터 먼데일이 레이건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콜터는 트럼프의 성공 가능성을 점친다. 물론, 콜터가 상대하는 대상은 미국 유권자들 중에서도 단일민족에 남성적인, 아주 한정된 부류다. 다가오는 11월, 힐러리 클린턴은 소수집단, 월스트리트, 페미니스트, 자유무역, 골드만삭스, 현상(現狀)을 대리하는, 이들의 어쩔 수 없는 대선 후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힐러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임기와 단 하나의 임무는 바로 트럼프의 앞길을 막는 것이다. 

미국을 분노케 한 3분짜리 영상

이러한 동맹이 승리한다 해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버니 샌더스의 선거운동에서도 이런 식의 타협이 바닥을 드러냈던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정치계의 부패를 비난하는 샌더스의 연설문 내용이 바로 코앞 선거 캠프에서 그대로 발표되는 정도였다. 트럼프에 의해서만은 아니다. 크루즈 역시 “공화당 사람들은 민주당 사람들만큼 나쁘다. 너무 많은 이들이 로비스트나 대기업 등 월스트리트와 결탁해 저임금의 원인을 불법이민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기업의 해외이전이나 국제무역, 자유무역 문제에서는 다이앤 제이와 샌더스 지지 유권자 간의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보수주의 공화당 지지자 제이는 우리에게, 인터넷에서 급속히 확산 중인, 그를 분노케 한 3분짜리 영상에 대해 알려주었다.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의 협력업체인 캐리어의 사장이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일하는 1,400명의 직원들에게 자사의 생산공장이 멕시코로 이전된다는 사실을 발표한다.(8) 사람들의 야유 속에서 사장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사업이 오래 지속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전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이 이야기는 트럼프 선거운동 레퍼토리의 일부가 됐다. 노동자들과 조합원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여기서도 몇몇 패는 되돌려질 것이다. 
이번 선거운동 초반부터 공화당 유권자들은 과거 대통령들이나 대부분의 국회의원, 그리고 당 재정을 지원하고 당을 위해 조언하는 이들이 가진 것과는 정반대인 선택을 하려 한다. 이들이 레이건 시절부터 자신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이루어 준, 그리고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준 것들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화당의 내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남부 지역에서는 흔한 일이다. 다음 기사 참고. 브누아 브레빌, ‘두 개의 남부, 두 개의 미국Géorgie et Caroline du Nord, les deux Su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2년 10월호.
(2) Mitchell Zuckoff (그리고 Mark Geist), 13 Hours : The Inside Account of What Really Happened in Benghazi, Twelve Books, New York, 2014. 
(3) Playboy, Chicago, 1990.3
(4) 2016년 3월 1일, 앨라배마 경선에서 트럼프는 43.4%를 득표했다. 크루즈는 21.1%, 루비오는 18.7%, 카슨은 10.3%를 얻었다. 
(5) “본 헌법에 의해 미합중국 연방에 위임되지 않았거나, 각 주에 금지되지 않은 권력은 각 주나 국민이 보유한다.”
(6) 다음 기사 참고. Achille Mbembe, ‘극한 시련의 시대, 사라지지 않는 맬컴 엑스의 신화’(Malcolm X, un inépuisable mythe en temps d’extrême adversit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1993년 2월호.
(7)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 때문에 앨라배마 주 상원의원 제프 세션스는 2월 28일 상원의원 중 처음으로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8) <Carrier Air Conditioner (part of United Technologies) moving 1,400 Jobs to Mexico>, YouTube.com, 2016.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