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외교정책, 실용과 관념 사이의 늪에 빠져

2008-09-29     박홍서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친미노선 견지…'무늬만 실용외교' 비판 일어
한미동맹강화, 그 자체가 궁극 목적일 순 없어

박홍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실용주의'는 글자 그대로 '실제에 쓰임이 있는 것을 지향함'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은 실용주의 노선에 대한 정확한 비유라 할 수 있다. 쥐를 잡는 게 목적이라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수단'이나 '방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결국, 실용주의는 독단적 관념이나 이론, 가치 등에 얽매이지 않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유연한 사고와 행태를 추구하는 "결과의 논리(logic of consequence)"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실용외교는 국제정치론의 현실주의에 맞닿아 있다.

 현실주의에 따르면, 국가들은 자국의 독특성(관념, 문화)에 기초해 대외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정부상태하의 가혹한 국제사회에서 '생존'이라는 최우선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 따라서 국가들이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대외적 변인은 국가간 '세력관계'일 수밖에 없다. 국제제도가 존재하든 부재하든 이천여 년 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20세기 세계대전의 발발논리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결국 국제정치의 기본논리가 '힘'이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오히려 그런 국제제도는 강대국의 힘의 외교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반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또한 각종의 국제안보레짐이 존재하는데도, 21세기 미국은 거리낌 없이 이라크를 침공했고, 러시아 또한 최근 그루지아를 맹폭하였다. 이것이 국제정치의 가혹한 현실이다. 힘이 지배하는 무정부상태가 그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개별국가는 생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현실주의 이론가 월츠(Kenneth Waltz)가 강변하듯, 그런 선택의 자유가 국가의 안위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최근 한중관계의 불협화음은 상술한 실용외교에 대한 이명박정부의 불완전한 이해와 모순된 행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이명박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실용외교를 표방하였지만, 실제로는 노골적인 친미노선을 견지해 중국을 자극해 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중국은 이명박 정부 취임 이전부터 이미 당기관지 <인민일보> 등을 통해 이명박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움직임과 그로인한 대중압박 가능성에 대해 경계성 기사를 내보내기도 하였다. 물론, 한미동맹의 강화가 반드시 한중관계의 악화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미중관계의 미래가 현재와 같이 안정적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오히려 미중간 분쟁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재 중국의 화평굴기 전략은 장기적으로 강대국화를 이루기 위한 단기적인 전략일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미중간의 세력관계가 역전되는 상황에서도 중국이 현재와 같이 안정적인 대미관계를 유지할지는 불확실하다. 비스마르크 시기 안정적인 대외관계를 유지하던 독일이 그의 사후 패권국 영국에 도전함으로써 세계전쟁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은 국제정치의 이러한 가변성을 뒷받침한다. 더군다나, 현재 중미간 협력관계의 이면에는 양국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도 있는 뇌관이 산재해 있다. 대표적으로 타이완 문제를 둘러싼 미중간 대립이 그것이다. 미국은 미일동맹을 축으로 타이완 문제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으며, 중국은 이를 '내정간섭'으로 규정하고 타이완 독립시 무력침공을 합법화한 반분열국가법까지 제정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향후 미중관계가 불확실하다면, 그 사이에 위치한 한국의 대미, 대중 정책방향은 보다 분명해질 수밖에 없다. 즉, 한국의 국가목표가 미중간 경쟁 속에서 생존을 담보하고 더나아가 정치경제적 이익의 극대화라면, 미중 양국 어느 한쪽이라도 소홀히 하는 것도 또한 어느한쪽에 '올인'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약소국 실용외교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지난 6개월 이명박정부의 실용외교는 실제로 그다지 실용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논란이 되었던 미국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MD)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대한 이명박정부의 전향적 태도는 대중실용외교와는 거리가 멀다. MD체제와 PSI는 모두 탈냉전기 패권견지를 위한 미국의 구체적 전략들이다. 특히, MD체제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카드로 정당화되고 있으나, 실제로 유럽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고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카드임이 확실하다. 이런 연유로 중·러 양국이 MD체제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이런데도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미국주도 MD체제에 대한 가입을 검토하였다. 결코 실용적이라 보기 힘든 비합리적 행태다.

  실용외교를 추구한다는 이명박정부의 대중정책이 왜 실제적으로는 비합리적 상황들을 초래해 왔는가? 그것이 단순한 정책적 실수가 아니라면 신정부의 외교정책이 실용적 이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관념외교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정부의 외교정책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호불호라는 관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관념의 기원은 반세기전 한국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한국을 살렸고, 중국은 압록강을 넘어 한국을 위협했다. 그러한 이미지에 최근 '중국위협론'이란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담론이 덧붙여지면서 '부상하는 중국'과 '패권'은 연관어가 되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략적 사고는 마비될 수밖에 없다. 실용외교의 기본논리인 "결과의 논리"는 없고, 관념외교의 논리인 "적합성의 논리(logic of appropriateness)"가 지배하는 것이다. 명의 재조지은을 갚아야 한다는 관념에 후금의 등장이라는 현실을 전략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던 사백 년 전의 인조정권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그 결과마저 동일하다면 향후 한중관계는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물론, 중국이 부상한다고 기존의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노골적인 대중접근을 시도하는 것역시 합리적이지 못하다. 실용외교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한미동맹을 이용해 중국에 대한 한국의 '몸값'을 높이는 것이 보다 영리한 외교정책이다. 일부에서 지적되듯, 한국은 한미동맹을 유지하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오히려 대접을 받는 측면이 있다.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한국의 친중정책이 보다 강화될 때 중국은 오히려 한국을 배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이명박정부의 실용외교가 전제해야 할 가혹한 국제정치현실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국제지형 속에서 향후 한국의 외교정책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 '약자의 힘'이란 국제정치적 논리에 주목해 보자. 약자의 힘이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약소국은 그것을 기반으로 주변강대국에게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그 지역을 둘러싸고 강대국들 간의 경쟁이 존재한다면 약소국의 힘은 더욱 강력해질 수가 있다.
 

  사실, 북한이 국력의 상대적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반복된 벼랑끝 외교로 중국을 괴롭힐 수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러한 약자의 힘이다. 1993년 1차 북핵위기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벼랑끝 외교로 가장 곤란한 처지에 놓여왔던 국가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게 북한의 위협은 오히려 동북아 지역에서 자국의 패권을 견지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술한 MD 체제가 그 대표적 예이다. 반면, 중국에게 북한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벼랑끝 전술로 초래될지도 모를 북미간 분쟁에 연루되는 상황도 피해야 하고, 반대로 동맹국 북한을 섭섭하게 함으로써 발생할지도 모를 북한의 대미 편승 역시 방지해야하는 대북 동맹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항상 북중관계의 미묘한 긴장관계와 동반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북한의 대중국 전략행태는 논리적으로 한국의 대미전략에도 적용될 수 있다. 중국에게 북한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만큼 미국에게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처럼 한국이 벼랑끝 전술을 통해 미국의 정치경제적 지지를 도출해 내는 것은 가능성도 없고 또한 그럴 합리적 이유도 없다. 반면, 북한이 북중동맹을 이탈해 미국에 편승하려는 의도를 보임으로써 중국의 정치경제적 지원을 도출해내는 논리는 대미관계에 전략적으로 충분히고려해 볼 수 있다. 즉, 한국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의 대중편승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 할수록 오히려 동맹국 미국으로부터의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한다거나 반대로 너무 많은 양보를 하는 것모두 전략적이지 못한 행태다. 그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한미동맹의 불가피성을 중국에 설명하고, 한미동맹의 견지가 대중압박의 수단이 되지 않을 것임을 중국에 확신시켜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향후 MD체제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문제가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휴전선을 남북으로 각각 2킬로미터 안에 비무장지대가 있다.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이다. 동일한 논리로 한반도 전체는 주변 강대국들 간의 충돌을 방지하는 '거대한' 비무장지대라 할 수 있다. 바로 그 이유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배제한 채로 명과 일본이 강화회담을 벌였으며, 1885년 청일간 천진조약이 체결되었고, 1945년 38선을 기점으로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었던 것이다. 어디에서도 '코리아'의 의견은 존중되지 않았다. 한반도 분단이 20세기 강대국간 현실주의 정치의 전형이었다는 모겐소(Hans Morgenthau)의 지적은 이젠 상식이 되었다.
 

 더욱이,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균형이 붕괴될 때 강대국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세력확장을 기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유인책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임란시기 일본이, 명청교체기 청이, 그리고 19세기말 일본은 모두 조선이 자국으로 편승하도록 회유 혹은 압박하였다. 해방정국에서 김구가 좌익에 동조한다고 비판받았고, 한국전 이후 북한에서 박헌영이 미제의 간첩혐의로 제거되었다는 사실 역시 이러한 강대국간 역학관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08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상황은 상술한 역사적 상황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국가간 관계, 국내정치적 상황 등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위수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역학관계까지 변화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무정부상태의 국제정치 현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개별국가의 '합리성'이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여전히 주변 강대국의 거대한 비무장지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6자회담에서 보듯이, 각국은 다양한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화'란 대원칙에는 예외없이 동의하고 있는데, 이는 주변강대국의 그러한 문제의식을 극렬히 보여준다.
 

  최근 북미관계의 급속한 진전양상, 그리고 1992년 수교 이후 한중관계의 급속한 발전은 미중 양국 간의 역학관계와 분리해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실용외교라는 것이 진정 존재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이러한 강대국의 구조적 역학관계를 정확히 간파하고 그에 알맞은 전략을 세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필요한 것은 호불호의 관념이 아니라 수익과 비용을 계산할 수 있는 철저한 합리성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추구한 한미동맹강화는 국가생존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왔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친미라는 관념이 대중 실용외교를 질식케 하였던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한 관념을 갖는다. 그러나 그러한 독특한 관념이 빌딩에서 뛰어내리면 죽는다라는 현실까지 초월할 수는 없다. 국제정치에서 관념과 현실은 항상 별개의 문제며, 관념에 의해 현실이 마비될 때 외교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