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급진자유주의의 위기

2016-03-31     세드릭 구베르뇌르

   

 
2015년 10월 선거에서 승리한, 보수 성향의 PiS(Prawo i Sprawiedliwosc, 법과정의당)가 독단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EU 집행위는 1월, 폴란드에 대해 EU 역사상 처음으로 ‘법의 지배 원칙(Rule of law) 수호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지난 25년 간 급진적 자유주의를 호되게 경험한 폴란드 유권자들은, PiS가 내건 사회복지 공약들에 마음을 빼앗긴 듯하다.
 
 
실레지아 시, 루다 슬라스카에 위치한 포코이 광산의 솔리다르노시치(자유노조연대) 사무실. 한 남자가 우리에게 차를 권한다. 그의 이름은 아담 칼라비스, 올해 46세로 짧은 머리에 건장한 체구를 지녔다. 큼지막한 손에는 석탄이 묻어있다. 불과 30분 전까지 지하 800m에서 석탄을 캐던 칼라비스가 입을 열었다. “이 곳에는 4천 명이 일하고 있어요. 그 중 절반은 광부입니다. 저는 열여덟 살 때부터 여기서 일했어요. 석탄 포대를 옮기는 일부터 시작했지요. 지금은 유지 보수를 하고 있습니다. 광산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요. 아버지처럼 살다 죽고 싶진 않거든요. 아버지는 45세에 은퇴하셨는데, 은퇴 후 1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퇴직은 생각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병가와 헌혈 휴가도 없애버렸다. 광부들이 헌혈을 핑계로 휴가를 쓴다는 것이다. 칼라비스는 “자유주의자들은 공산정권 하의 군 복무 기간도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칼라비스는 공기업 KW에서 일한다. 월급은 2,900즐로티, 700유로(약 94만 5천원)가 채 안 된다. “제 월급은 15년 만에 고작 150즐로티(약 34유로, 약 4만 6천원) 올랐습니다. 제 친구 한 명은 2006년 할렘바 광산에서 가스폭발 사고(23명 사망)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부인은 6개월 간 보상금을 받은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칼리바스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제 가족은 몇 대에 걸쳐 광부로 일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로 끝낼 거예요. 아내는 공중 화장실을 청소해요. 종일 일하고도 월급은 겨우 800즐로티(약 180유로, 약 24만 3천원) 받아요. ‘쓰레기 고용계약’이죠.” 폴란드 사람들은 ‘유연고용계약’을 ‘쓰레기 고용계약’이라 부른다.
칼라비스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정규직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계속 해외로 나가는 겁니다. 2004년 폴란드가 EU에 가입한 후, 2백만 명 이상의 폴란드인들이 해외, 특히 영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제 아들과 딸은 영국에서 사는 게 꿈입니다. 자본주의는 비즈니스맨들에게나 유용할 뿐이에요.” 칼라비스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의 사무실 벽에는 여러 가지 그림들이 어지럽게 붙어있다. 솔리다르노시치의 깃발, 폴란드의 국가 문장(붉은 바탕에 왕관을 쓰고 있는 흰 독수리), 요한 바오로 2세의 초상화, 폴란드 복싱 챔피언의 사진, 그리고 PiS의 2016년 달력이 눈에 띄었다. 칼라비스는 솔리다르노시치의 노조 대표로, 극우성향의 PiS를 지지한다. 솔리다르노시치는 2015년 대통령 선거에서 PiS의 후보인 안드레이 두다에게 투표할 것을 독려했다.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특정 후보를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솔리다르노시치가 누구를 지지하는지 알고 있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하지만 종교 때문에 PiS를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지원하고 우리와 친해지려는 유일한 정당이 PiS이기 때문입니다. 할렘바 광산 폭발사고 때도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이 직접 우리를 찾아왔습니다.(1) 그 때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반면, 칼라비스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집권당이었던 중도우파 정당인 PO(Platforma Obywatelska, 시민강령)의 자유주의자들을 혐오한다. 그는 솔리다르노시치를 억압했던 폴란드 공산정권의 마지막 대통령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1981~1989) 장군의 장례식에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대통령이 참석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PO정부가 아무런 협의 없이 2015년 1월 광산 폐쇄를 결정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제가 일하는 광산의 폐쇄 소식을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다니까요.” 그는 분개한다. 칼라비스는 현재 EU 정상회의 의장이 된 PO 출신의 전 총리 도날드 투스크(Donald Tusk)가 폴란드의 모든 광산을 폐쇄하려고 한다고 확신하면서, “PiS는 반대로 광산을 보호하려는 입장입니다. 제 동료 대부분은 PiS를 지지합니다”라고 말한다.
2015년 10월 25일, PiS는 37.6%의 득표율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겼다(상원 및 하원). PO는 24.1%, 쿠키즈 15(Kukiz 15)는 8.81%의 득표율을 보였다. 다른 정당들은 의석 확보를 위한 최소 득표율 8%를 넘지 못했다.(2) 좌파 진영은 두 개 정당, ‘좌파연합’과 ‘다함께’로 분열됐다. 게다가 좌파의 사회적 사상까지 흡수해버린 반동적 우파로 인해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사실 이러한 정치적 변화의 조짐은, 국회의원 선거 몇 달 전인 2015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이미 포착됐다. PO 소속의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현 대통령이 결선 투표에서 거의 무명에 가깝던 안드레이 두다 후보에게 패배한 것이다.
우리가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PiS 측은 결국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다.(3) 그러나 2016년 1월 3일자 독일의 타블로이드 신문 <빌드(Bild)>에 실린 폴란드 외무부 장관과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PiS의 이데올로기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마르크시스트 모델에 따르면, 세상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진화해 나가야 합니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뒤섞인 세상,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채식주의자들이 주가 되는 세상, 그리고 신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하고, 모든 형태의 종교가 배제된 세상.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폴란드의 전통적인 가치에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폴란드인들 대부분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예를 들어 전통, 역사의식, 조국에 대한 자부심, 신에 대한 믿음, 남녀 1명씩으로 구성된 평범한 가정의 모습과는 대척점에 있습니다.”(4)
 
 

빈곤층을 유혹하는 PiS의 달콤한 공약들

 
그러나 사람들이 PiS가 보수주의를 표방한다는 이유만으로 표를 던진 것은 아니다. PiS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사회 하위계층, 즉 뛰어난 거시경제지표(폴란드 국가 정보 참조) 뒤에 숨겨진 이들이다. 폴란드는 칼라비스와 그의 가족들처럼 급진적 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고통 받은 이들, 200유로(약 27만 원)짜리 ‘쓰레기 계약’과 해외 이민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서민들의 국가다. 또한 유럽, 특히 독일의 대기업들에게 싸구려 제품들을 가장 많이 납품하며, 퇴직자가 월 300유로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야 하는 나라다. 
PiS는 야심찬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앞세워 민족주의자, 종교주의자, 보호주의자, 외국인 혐오주의자(박스 기사 참조) 등의 아웃사이더들까지 매혹시켰다. 은행과 대형 마트에서 거둬들인 세금으로 자녀 1명당 500즐로티(약 115유로, 약 15만 5천원)의 지원금 지급, 시간당 최저임금 준수, 퇴직 연령을 남성 67세에서 65세로, 여성 65세에서 60세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정치학자는 PiS의 진화를 연구했다. “2005~2007년 집권 당시, PiS는 보수주의 정당이기는 했지만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적으로 포퓰리즘적이고, 외국인을 혐오하며,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성향이 짙어졌습니다. 사회주의가 섞인, 가톨릭적인 민족주의로 발전하게 됐지요.” 그는 PiS 지지자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스몰레스크 파’입니다. 2010년 4월 대통령 전용기 추락 사고가 도날드 투스크와 블라디미르 푸틴의 합작품이라고 믿는 부류입니다.(5) 두 번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신부님의 설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인데, 폴란드 가톨릭 신자의 1/3이 교회에서 정치적 발언을 접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 번째는 PiS가 내건 사회복지 공약들에 매료된 빈곤층이다. “PiS는 노동자들과 농부들의 요구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50%에 달하는 기권율도 PiS의 선전에 한몫 하고 있다.
좌파의 싱크탱크인 ‘크리티카 폴리티츠나(Krytyka Polityczna,정치 평론)’의 사회학자인 자쿠브 마즈무레크는 자유주의자들의 몰락 요인을 다음과 같이 지목한다. “시민강령은 8년 간 집권했습니다. 신생 민주주의 국가로서는 긴 시간입니다. 게다가 EU 정상회의 의장이 된 도날드 투스크의 뒤를 이어 총리에 오른 에바 코파츠는 카리스마가 부족했습니다.” 특히 자유주의자들은 ‘도청 사건’으로 치명타를 입었다. 2014년 6월, 보수성향의 일간지 <브프로스트(Wprost)>는 바르샤바 소재 대형 레스토랑의 웨이터가 녹음한 정계 인사들 간의 대화를 공개했다. 그들이 사용한 저속한 언어들, 은밀한 합의 내용, 거만한 어조는 시민강령 정당의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그는 설명한다. “도청 사건 이후, 이들이 현실과는 담을 쌓고 사는 엘리트층이라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그는 또한 자유주의자들의 ‘자기만족’을 지적했다. “시민강령의 지도자들은 비교적 높은 연령대에 속합니다. 즉, 공산주의와 가난을 경험해본 사람들이지요. 이들이 단골로 사용하는 멘트는 ‘폴란드가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를 보라!’입니다. 과거를 모르는 젊은이들은 당연히 공감을 못합니다. 젊은이들은 서유럽에서 일하면 훨씬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베를린의 경우 집세는 바르샤바보다 조금 더 높지만 월급은 3배나 많습니다. 그러니 폴란드 젊은이들이 열광할 수밖에요.” 물론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테지만 말이다.
우리는 광산이 폐쇄된 후, 거의 폐허가 된 실레지아 시의 비톰에서 34세의 CEO 파웰 미샬스키를 만났다. 상점들의 셔터는 모두 내려져 있었고, 구걸하는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 실업률은 20%나 됩니다.” 이 청년 사업가는 한숨을 내쉰다. 그는 인습 타파주의적이고 포퓰리즘을 표명하는 반체제 정당인 쿠키즈 15 소속이다. 쿠키즈 15는 로커 출신의 파웰 쿠키즈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당으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극우 정당이다. 쿠키즈는 2015년 5월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2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좌파 정당들을 제치고 제3당 자리를 차지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쿠키즈 15의 후보로 나섰던 미샬스키는 비톰에서 15%의 표를 얻었다. “젊은이들은 이민을 떠납니다.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으니까요. 제 친구는 간호사인데 월급이 1,700즐로티(약 400유로, 약 54만 원)밖에 안 됩니다.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지요.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결국 그 친구도 독일로 떠났습니다.” 미샬스키는 ‘시장 자유화에 찬성’이지만 자녀 당 500즐로티(약 115유로, 약 15만 5천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PiS의 프로젝트를 지지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너무 힘든 상황입니다. 도움을 주어야 해요.” 쿠키즈 당의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한다. “아시다시피, 쿠키즈 당에서는 모든 것들이 허용되지 않습니까….”
33세의 로버트 피아티는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쓰레기 고용계약’을 전전하고 있다. 지금은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월급으로 1,400즐로티(약 320유로, 약 43만 2천원)를 받는다. “제 친구의 절반이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저도 영국에서 6개월 있었는데 한 달에 1,200유로(약 162만 원)를 벌었어요.” 그는 Sierpien 80(솔리다르노시치 파업이 일어난 ‘1980년 8월’을 의미함) 노조 소속으로, 폴란드의 포데모스당을 표방하는 좌파 정당 ‘다함께(Razem, 득표율 3.6%)’에 투표했다. 하지만 그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혹해서 PiS를 지지하는 가난한 젊은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PiS는 2016년 7월부터 시간당 최저임금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새 집권당인 PiS는 선거에서 내세운 사회복지 공약들을 지키기 위해 정부기관 통제를 강화 중이다. 크리스마스와 생실베스트르 축일(12월 31일) 사이, PiS는 최고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에 5명의 판사를 새로 임명했고, 헌법재판소의 기능축소에 관한 법을 표결에 부쳤다. 그리고 공영방송국의 이사진을 해임했다. 게다가, 3월에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자리를 겸하는 법이 통과될 예정이다. 1월부터 수만 명의 폴란드 국민들이 ‘민주주의 수호 위원회’를 주축으로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1월 13일, EU 집행위는 EU 역사 상 최초로 폴란드에 대해 ‘법의 지배원칙(Rule of law) 수호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폴란드의 최근 행보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확인하는 예비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폴란드의 민주주의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우파 일간지 <W Sieci>의 기자, 알렉산드라 리빈스카가 말한다. 1월 중순에 발간된 <W Sieci>의 표지에는 ‘폴란드를 둘러싼 음모’라는 타이틀과 함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 그리고 1815년 폴란드의 모습을 합성한 사진이 실렸다. 리빈스카는 PiS의 정책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PO는 선거에서 패배하기 직전, 자기 편 판사들을 헌법재판소에 대거 임명했습니다. 따라서 PiS는 선거에서 이기고도 법을 통과시킬 수 없었던 겁니다. 공영방송국의 이사진 해임 건은 폴란드에서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2008년에도 PO의 지시로 우파 경영진이 해임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서유럽 국가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진실은, PiS가 68혁명 세대인 현 유럽 지도자들이 싫어했던 일들을 지금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유럽 국가들은 빅토르 오르반의 헝가리 정도만 예외로 인정하고 있지요. 폴란드는 전통적인 가치들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EU는 보수주의 세력을 두려워합니다.”
“PiS 당원들은 자신들이 자유주의 엘리트들에게 무시당하고 박해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즈무레크가 분석한다. “PiS의 지도자들은 PO의 지도자들에게 조금 더 젊다는 이유로 ‘기저귀 찬 애숭이들’(6)이라는 야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기득권 정치세력에 반감을 품었고, 선거에서 이기면서 이제 자기들 세상이 왔다고 생각한 거지요. 복수의 기회를 얻은 겁니다.”
연보라색 조끼, 귀걸이, 꽁지머리 등 자유분방한 차림의 47세 남성 마튀즈 키조브스키는 PiS가 거부하는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는 IT 전문가로, 지난 1월에 페이스북을 통해 KOD당을 만들었다. “며칠 만에 가입자가 5만 5천명을 돌파했습니다.” 그가 웃으면서 말한다. 스트라스부르에 다녀왔다는 그는 “우리 KOD 대표단은 자유주의당, 사회주의당, 녹색당 소속의 유럽의회 의원들에게 크게 환영 받았습니다. 올해 1월 중순에는 “46개 도시와 유럽 내 폴란드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두 번째 시위를 조직할 예정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KOD가 미국의 백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극우주의적 내용의 동영상을 보여주며 큰 소리로 웃었다. “안타깝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이런 식의 자유침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요. 선거운동 때는 한마디도 못하던 PiS가, 선거에서의 승리가 절대 권력이나 되는 양 행동합니다. 권력분립이라는 EU의 기본원칙도 무시하면서 말이죠.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싶습니다.”
그 다음 주 토요일 그단스크에서, KOD당 지지자들 약 2천 명이 조선소 앞 솔리다르노시키 광장에 운집했다. 추위 속에 발을 동동 구르며, 그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고 있었다. 공영방송국 TVP의 새로운 사장 자섹 쿠르스키(그단스크 출신으로 ‘PiS의 투견(鬪犬)’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음)와 과거 공산정권의 대변인이었던 예르지 우르반을 비교한 캐리커처도 있었고 폴란드 국기, EU 국기, 그리고 드문드문 LGBT(7)를 상징하는 무지개기도 보였다. 어나니머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이 폭스의 가면도 간혹 눈에 띄었다. 드론 1대가 광장 위를 날아다니며 시위자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드론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실망은 반대편으로 돌아서게 만든다 
 
“이곳에 꼭 와야 했습니다.” 두 명의 퇴직자가 설명했다. 시위 행렬은 도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1980년에도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이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게 하려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은 높은 편으로, 대부분 40세 이상이었다. 그 가운데, 한 젊은 여성이 눈에 띄었다. “저는 100% 제 의지로 왔어요. 조지 소로스한테 돈 받고 온 게 아니고요.” 젊은 여성이 ‘조지 소로스 KOD 지원론’에 대한 반감을 표하며 말했다. 젊은이들의 참석률이 저조한 이유를 물으니, 그 여성은 이렇게 대답했다. “한 마디로 관심이 없는 거죠. 정치적 인식도 부족하고,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올해 18세가 된 남동생이 쿠키즈를 찍겠다기에, PO를 찍으라고 설득했어요.” 시위대는 들루가 거리에 도착했고, 1980년 솔리다르노시치의 슬로건 “우리는 우리 자신이고 싶다”를 외치기 시작했다. 운동가 출신의 알렉산더 홀은 확성기를 낚아채, 현재 폴란드의 최고 권력자인 PiS의 수장 카친스키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또 다른 플래카드에는 카친스키가 꼭두각시 인형인 대통령과 총리(8)를 조종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오후 1시 30분, 시위대는 폴란드 국가를 부르고 유럽가(Anthem of Europe)를 들은 후 흩어졌다. 몇몇 젊은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사료통에서 탈출한 돼지들”이라고 조롱했다. PiS 지지자들이 PO 지지자들을 모욕하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KOD는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젊은이들의 표가 우파당이나 포퓰리즘적 정당으로 쏠리는 현상을 우려한다. KOD의 고민은 한 가지 더 있다. 자유주의 진영 밖으로 나가면 전혀 힘을 못 쓴다는 사실이다. 좌파 지지자들은 KOD가 조직한 시위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는다. “자유주의자들은 경제개혁의 수혜를 받은, 여유가 있는 계층입니다.” 카토비체에 거주하는 가난한 젊은이 피아티가 지적한다. 바르샤바의 여성해방운동가 아냐 자와츠카는 매년 폴란드의 독립기념일인 11월 11일, 국수주의자들의 집회에 반대하며 벌어지는 게이 퍼레이드와 파시즘 반대 시위에 참여한다. 하지만 KOD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딱 잘라 말한다. “자유주의적 사상의 지식인들이 현재의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교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낙태 규제의 완화를 거부했어요.(9) 그들이 폴란드를 급진적 자유주의 국가로 만들었고, 노동자의 이익에 반하는 법을 다수 통과시켰고, 빈곤층을 무시하고 소외시켰습니다. 민심이 우파로 넘어간 건 그들 때문입니다.” 
카롤 구지키에브츠는 16세 기계공 견습생 시절, 레흐 바웬사의 편에 서서 역사적인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에 동참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조선소의 솔리다르노시치 부대표가 된 그는 이제 PiS를 지지한다. “조선소는 쇠락해가고 있습니다. 1990년에는 수백 헥타르였던 조선소 면적이 지금은 20헥타르 밖에 안 됩니다. 직원들도 그 때는 1만 7천이나 됐는데, 지금은 1천 명 남짓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용접공들이 일하는 작업장을 보여주며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요즘에는 주로 풍력 터빈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도날드 투스크와 EU 때문입니다. 자유주의자들 때문에 폴란드 노동법이 유럽 최하위 수준이 됐습니다. 그래서 2008년부터 PiS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PiS와 솔리다르노시치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유사해서, PiS 당에 가입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과거 멘토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에 빛나는 레흐 바웬사는 지난 12월 23일, Radio ZET에서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집권당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며, 폴란드를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며 PiS를 맹비난했다. PiS 집권 이후 폴란드를 향해 쏟아진 EU의 비판에 대해 구지키에브츠는 일축했다. “EU는 난민들 걱정이나 하고, 폴란드는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어요.”
같은 날 그단스크에서, 우리는 1980년에 솔리다르노시치 회보를 비밀리에 제작했던 스테판 아담스키를 만났다. “솔리다르노시치 구성원들은 자유주의자들에게 배신당했습니다. 폴란드가 다윈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로 갑자기 변해버렸으니까요. 그 때 배신당한 사람들이 강력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내건 정당으로 마음을 돌린 건 이해가 갑니다. 좀 무책임하긴 하지만요.” 폴란드 ‘아탁(Attac)’(10)의 주창자 중 한 명인 아담스키는 좌파 정당 ‘다함께(Razem)’의 당원이다. “솔리다르노시치는 애초에 자본주의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공산정권에게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것을 요청했을 뿐이지요. 반면 PiS는 자본주의에는 반대하지 않고, 사회복지만 약간 강화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카친스키 대통령의 행보가 민주주의 수호자들로 인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PiS가 내건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보호주의적 정책 실행을 반대하는 금융시장과 충돌하면,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글·세드릭 구베르뇌르 Cédric Gouverneu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2005년 대통령에 당선된 레흐 카친스키는 2010년 4월 10일, 스몰렌스크 부근에서 발생한 대통령 전용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쌍둥이 형, 야로슬라프 카친스키는 2005~2007년 총리를 지냈으며, 현재 PiS 당수로 있다.
(2) 8%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독일 소수민족당(Mniejszość Niemiecka)은 제외.
(3) 유럽의회 의원인 Tomasz Poreba는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에 응했다. 하지만 자신의 답변이 본 기사에 인용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4) 이 발언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그는 “농담이었다”고 변명했다.
(5) 각주1 참조
(6) 원문: “Pampers”(기저귀 브랜드 ‘팸퍼스’)
(7)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등 성소수자들을 총칭하는 약어.
(8) Beata Szydlo
(9) 1993년부터 폴란드는 성폭행에 의한 임신, 또는 산모 혹은 태아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 외에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10) Association for the Taxation of financial Transactions and Aid to Citizens, 시민지원을 위한 국제금융과세연대
 
 
박스기사
 
유대인들이 사라져도, 반유대주의는 남는다
 
 
“스웨덴과 프랑스를 보십시오. 샤리아가 지배하는 구역이 따로 있고, 경찰들은 이 구역을 감시하기 바쁩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지난 가을 선거운동에서, 2015년 9월 16일, PiS 당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는 유럽난민 사태를 운운하며 외국인 혐오주의를 부추겼다. 그는 10월 2일 미팅에서 “이민자들이 콜레라와 기생충을 옮기고 있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폴란드인들도 해외를 여행하면서 이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봤을 겁니다.” PiS를 지지하는 일간지 <W Sieci>의 기자 알렉산드라 리빈스카는 말한다. “다문화주의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아요. 폴란드인들이 다문화주의를 원하지도 않고요. 이전 정부는 어쩔 수 없이 7천 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였는데, 그것만도 이미 너무 많아요.”
튀니지 출신의 아지즈 W는 6년 전부터 바르샤바에 살고 있다. 그의 직업은 요리사다. 얼굴은 매끈하게 면도를 했고 폴란드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폴란드인 친구들과 종종 술을 마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지즈는 자신이 언제나 이방인 같다며 고충을 털어놓는다. “비뚤어진 시선들을 견디기 힘듭니다. 버스정류장에 서있으면 젊은이들이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 이 무슬림 테러리스트야!’하고 외쳐댑니다. 실제로 몇 번 공격당하기도 했고요.”
마마두 디우프는 세네갈에서 태어났지만 폴란드에 정착한지 30년이 넘었다. “저는 2007년에 폴란드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PiS가 집권하고 있을 때라 갑자기 추방당할까봐 두려웠습니다.” 아프리카 관련 재단(Afryka.org)의 대표인 디우프는 TV토론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그가 한탄하며 말한다. “선입견에 맞서 싸우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검둥이’라는 말이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됩니다. 과거에 쓰인 인종차별주의적인 소설과 시들이 교과서에 버젓이 등장하고요. 그래서 저는 인간은 단일성을 거부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도 주변 국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했다고 설명합니다. 솔직히, 폴란드 역사를 봐도 그렇고, 지금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엄청난 수의 폴란드인들을 봐도 그렇고, 폴란드인이 파시스트가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요?”
과거 식민지였던 경험, 끊임없이 변경됐던 국경, 역사 속의 상흔들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강화된 폴란드의 정체성, 민족성, 가톨릭주의는 다문화주의를 거부하고 있다. 물론 독일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타타르인, 무슬림 등이 폴란드에 거주하기는 하지만, 유럽 외 지역 출신의 이민자는 거의 없다. 1970년대에 폴란드에 정착한 베트남 상인들과 아프리카 출신자들 약 5천 명이 전부고, 정식 이민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물다. CBOS 기관이 1월에 실행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폴란드인의 대부분은 단일성을 보존하기 원하며, 이민자들을 수용해야한다는 대답은 4%에 불과했다. 게다가 최근 파리 테러와 독일 쾰른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외국인 혐오주의는 심화되고 있다. “독일은 조만간 이슬람 국가가 될지도 모릅니다.” PiS의 한 지지자가 내뱉는다. 반유대주의적 그래피티, 축구팬들이 종종 사용하는 파시스트적인 켈트 십자가는 폴란드 도시 곳곳의 벽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홀로코스트로 유대인들이 거의 사라졌을 때도 반유대주의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좌파 정당 ‘다함께(Razem)’의 당원 마르타가 개탄한다. “이제 이민자들도 거의 없는데, 외국인 혐오주의가 판을 치네요!”  
 
 
폴란드 국가 정보
 
인구: 3,850만 명(EU 국가 중 6위)
경제성장률: 2015년 3.6%
(2014년 3.3%,EU 국가 중 6위)
GDP: 4,130억 유로(1인당 1만8,600유로)
실업률: 2015년 12월 9.8%
(2014년 12월 11.4%)
중위소득(세전): 686유로
(프랑스 1,717유로, 루마니아 397유로)
시간당 임금: 8.4유로
(독일 31.4유로, 대한민국 4.46유로(6,030원)
비정규직: 140만 명의 노동자가 유연고용계약(일명 ‘쓰레기 고용계약’) 상태.
출처 :GUS, Krytyka Polityczna, Eurost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