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전쟁, 무엇을 위한 것인가?

2016-03-31     로랑 본푸아

2015년 3월 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는 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핵심세력인 이슬람 10개국 연합의 지원을 받아 예멘 후티 반군을 상대로 공습작전을 펼쳤다. 시아파에 속하는 소수 자이디파 출신인 예멘 반군은 몇 달 전부터 예멘 정부에 압력을 가해 왔지만, 사우디 왕조를 직접 위협하지는 않았다.(1) 


압델 말레크 알-후티 반군 설립자이자 지도자를 추종하는 무리는 과도정부 대통령인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를 물러나게 하면서 ‘예멘의 봄’으로 싹텄던 희망의 역학을 무너뜨렸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과거의 적이자, 30년 장기집권자였던 알리 압둘라 살레와 손을 잡았다. 살레는 2011년 시작된 민중봉기로 2012년 2월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면책특권을 십분 활용하면서, 후티 반군을 통해 실각에 대한 복수를 계획했다. 
‘단호한 폭풍’ 작전이 도입된 시점에 후티 반군은 2014년 9월부터 무력으로 수도 사나를 장악하고 있었다. 또한 남부의 주요도시인 아덴을 점령한 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연합군의 목표는 사임발표를 철회하고 리야드로 망명한 하디의 요청에 따라, 공식적으로 그를 정권에 복귀시키는 것이었다. 즉 후티 반군을 도시 밖, 그들이 처음 세력을 뭉친 사다 북쪽으로 내쫓는 계획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된 결의안 2216호를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 영국, 프랑스, 미국은 연합군에게 무기와 군사첩보를 제공했다. 연합군은 지정학적 차원에서 후티 반군에 대한 공세를 펼침으로써, 이들을 앞세워 이익을 챙긴다고 비난 받던 이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했다. 하디를 지지하지 않던 일부 예멘 사람들, 특히 남부지역 출신으로 알-후티에게 반대하던 이들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연합국의 개입을 반겼다.(2)
전쟁이 시작되고 일 년이 지난 지금, 연합군과 국내외에서 지원하던 이들이 달성한 목표는 극히 일부분이다. 하디가 리야드에서 9개월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공식 귀국했지만, 아직 아덴에 머무르고 있다. 대규모 항구도시인 아덴은 2015년 7월 후티 반군에 맞서는 무장 단체가 연합군의 도움을 받아 탈환했지만, 아직 안전문제가 남아있다. IS 예멘 지부를 비롯한 지하디스트 단체의 위협과 테러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주정부 청사가 테러를 당해 주지사가 암살됐으며, 2016년 1월 말에는 후임 주지사를 겨냥한 테러가 다시 발생했다. 아랍에미리트 군대가 아덴의 치안을 위해 개입했지만 거의 효과가 없었고, 도시 재건은 아직 꿈같은 일이다.
후티 반군은 아직 수도인 사나를 공고히 지키고 있다. 이웃주민들과 부족의 무력 항쟁이 일어나지 않아, 사나 내부와 근교에서 지상전은 거의 없다. 그들은 구체제의 안보기관을 이용해 반대세력, 독립지식인, 수니파 이슬람운동가 등을 가차 없이 억압한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습은, 대부분 자이디파에 인구도 많은 예멘 북서쪽 지역에서 후티 반군을 더욱 지지하게 만든 듯하다. 따라서 하디의 정권회복을 지원하는 이들이 수도를 재탈환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2015년 7월 예멘에 투입된 지상연합군은 이미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같은 해 9월 아랍에미리트인 45명을 포함해, 군인 83명이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했다. 12월 중반에는 또 다른 공격으로 152명이 사망했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민간군사기업인 블랙워터 등이 공급하는 용병을 고용하고, 지역 전투병도 활용한다. 
국제사회가 망명정부를 인정했고, 연이은 폭격에 시달리면서도 후티 반군은 국가에 준하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비자 발급소, 국경수비대, 법원, 대학 등 일부기관을 지속적으로 운영 중이다. 또한 공무원에게 월급도 주고 있다. 그 공무원에는 남부지역 소속인 이들도 있다. 중앙은행의 자금이 급속도로 줄고 있다는 소문이 돌지만, 정확한 액수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무드 알-미클라피가 이끄는 알-이슬라 이슬람주의 정당의 전투병은, 2015년 3월 후티 반군이 점령한 예멘의 세 번째 도시인 타이즈를 수차례 ‘수복’했다고 선언했다. 후티 반군이 이곳에서 받는 지원은 미약한데 반해 타이즈는 격렬한 전투의 현장이다. 반군은 군대에 있는 협력자의 도움으로 이 도시를 장악중이다. 그들은 인도주의 단체의 지원을 막고, 기자나 운동가를 납치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종종 가자지구에 비유되는 타이즈 거주민들의 운명은 소셜네트워크에서 후티 반군의 잔혹한 범죄를 보여주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서로 희생자를 자처하는 경쟁논리가 분쟁의 복합성을 직시할 수 없게끔, 모든 게 양측 간 공동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군사작전의 결과는 그리 신통하지 않다. 군사전략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고,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기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멘의 민간인 피해자는 4천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비정부기구는 예멘 인구의 80%가 신속한 도움을 필요로 하고, 주민 1백만 명이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예멘에 임박한 기근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인프라, 도로, 교각은 물론 병원이 파괴되어 인도주의 활동을 막고 있다. 지역군과 국제군, 양측 모두 국제협약을 공공연히 무시하고 있다. 전쟁에 참여한 이들 모두가 전범인데도, 미디어는 전쟁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다. 어느 쪽에서도 아직 전략을 재검토하겠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UN의 지원으로 2015년 6월과 12월, 스위스에서 열린 평화회담은 무위로 돌아갔다.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 것이다. 평화회담 중의 휴전 상태도 형식적인 것에 불과해 지상전과 포격은 멈추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군, 하디 추종자, 후티 반군 모두가 회담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은 듯 보인다. UN안전보장이사회 소속국은 최소한의 외교적 압력만 가했고, 대부분 망명 중인 교전국의 대표들은 현지 상황 앞에 무기력했다.

무엇을, 누구를 위하여 포성은 울리나

예멘 내전은 종종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실상 이란은 뒤로 물러나있다. 구두논평으로 도발을 했고 암암리에 재정지원을 할 것으로 추정되나, 이란은 분명 후투 반군지원을 주요 외교정책으로 삼지 않았다. 지역연합국도 서로 생각하는 이해관계가 다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는 살레 전(前) 정부, 남부 분리독립운동, 무슬림형제단은 서로 다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살만 국왕이 즉위하자 2013년 지역차원에서 시작된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공습이 약화됐다. 반면, 아랍에미리트는 계속 이들을 압박하며 알리 압둘라 살레의 아들인 아흐메드 알리 살레를 자국 영토에 받아들였다. 아랍에미리트는 예멘 전(前)대통령의 아들이자, 최고위직에 내정됐던 아흐메드 알리 살레가 현재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공화국군을 이끌고 있지만, 잠재적으로 자신들에게 유익하게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국과 예멘에서 연합국을 지원하는 이들 간에 의견 차도 뚜렷하다. 하디와 그가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던 칼레드 바하의 역할은 무엇이고, 사나를 ‘해방’시키고 ‘적법한’ 정권을 재수립한 후에 국가를 건설할 것인가? 내부의 권력 암투와 남부의 분리 독립 열망으로 인해 미해결된 문제가 수없이 쌓여있다. 예멘 내전은 다분히 자주적인 국가의 논리로 해결할 사안이다. 인접지역의 내정간섭은, 예멘의 내전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지속적인 평화수립을 위해 충분한 조건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예멘 내전이 지속되면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줄어들고 있다. 국가의 해산, 인프라 파손, 사회 깊숙이 뿌리내렸던 정당의 소멸 등 걱정거리가 산재해 있다. 이 때문에 전시경제, 기근으로 인한 암시장, ‘전쟁의 제왕’과 민병대는 물론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과격한 이분법으로 인한 정체성의 파편화가 횡행한다. 
이런 변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건설적일 수 있다. 전쟁 당사자들끼리 해결하게 둘 수 있을까? 미국, 영국, 프랑스, 유럽연합의 다른 나라들은 예멘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임했다. 2015년 2월 예멘 주재 서방국가들의 대사관은 황당한 방식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외교관은 기밀문서를 둔 채 대사관을 비우고, 보안용 장갑차 수십 대를 공항 주차장에 버려둔 채 본국으로 복귀해야 했다. 서방국가의 대사관이 문을 닫으면서 예멘의 현 상황을 이해하고 관련정책을 재편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외국 외교관을 담당하는 예멘 담당자도 상당수 후티 반군의 편으로 편입돼, 안보분야를 비롯한 각 담당자와의 연락도 단절됐다.
국제사회가 인정한 대통령인 하디 정부의 정당성은 그의 제도적 기반이 좁아진 상황에서 복잡한 문제가 됐다. 게다가 경제적 이해관계는 페르시아만 연안 군주제 국가들과 군수계약으로 맺어진 서방국가의 외교정책에 큰 제약을 가해, 연합군의 행동반경을 좁혔다. 서방국가들은 예멘 내전이 불안정과 종파 분리로 힘을 키우는 지하디스트에게 얼마나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다.(3) 앞으로 몇 달 동안 드러날 이주 움직임에도 무관심하긴 어려울 것이다.(4)
중국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뒤로 물러나있던 러시아도 협의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사나 주재 러시아 대사관 소속 외교관들은 2016년 2월 예멘을 떠나기 전까지 수차례 살레를 만났다. 십중팔구 그에게 출구를 찾아주고, 그 아들의 역할을 정립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의 아들이 추종자들로부터 후티 반군과 연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알력관계를 움직이는데 이를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예멘 문제는 시리아 문제와 같은 긴장감을 야기하지 않았다. 이런 상대적 무관심은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기 힘들게 한다. 그러므로 협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전쟁당사자들에게 국제법을 지키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목표대상을 명확하게 한 제재를 강화하고, 모리타니 출신의 UN특사인 이스마일 오울드 셰이크 아흐메드에게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할 여지가 아직 있다. 1990년대 승승장구하던 UN군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면, 중기적으로는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은 몇몇 남부분리주의자들이 제안한 바 있다.
적대적인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것 외에도, 2012~2014년 과도정부 시절, 경제발전 전망을 지나치게 간과한 문제도 남아있다. 이 때문에 하디 정부가 전복되고 제도권 정치의 밖에 있던 후티 반군과 남부분리주의자, 일부 지하디스트가 인기를 끌게 됐다. 지역유력자는 물론 유럽과 북미 국가의 일관성이 있는 지원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런 국제적 문제 해결은 현재 벌어지는 군사적 개입으로 투입되는, 1일 2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으며, 그 어떤 방법보다도 효과적일 것이다.  


글·로랑 본푸아Laurent Bonnefoy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와 파리정치대학의 연합연구소인 국제연구센터(CERI) 연구원, Wafaw(When Authoritarianism Fails in the Arab World) 프로그램 멤버.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Samy Dorlian, ‘예멘 알-후티의 추종자들: 억압받는 자에서 억압자로’, Anna Bozzo 와 Pierre-Jean Luizard(dir.), <정치적, 신념적 분극화, ‘과도기’를 지나는 아랍 지역에서 이슬람의 입지>, Roma Tr-E Press, Rome, 2015.
(2) Cf. ‘예멘, ‘단호한 결정’ 작전의 낙오자’, Orient XXI, 2015년 9월 10일, http://orientxxi.info
(3) Farea Al-Muslimi, ‘How Sunni-Shia sectarianism is poisoning Yemen’,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Washington, DC, 2015년 12월 29일.
(4) Cf. Helen Lackner, ‘Can Yemenis escape?’, Open Democracy, 2015년 12월 11일, www.opendemocrac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