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실린 기사와 실리지 못한 기사

2016-03-31     아비바 촘스키

포스트 모던(또는 포스트 포스트 모던)시대를 사는 우리는 과거의 물질적 확실성을 초월할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세계가 현실의 물질적 세계를 대신하면서 ‘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론상으로도 불분명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가상의 세계는 알고 보면 낡은 제도와 현실 체계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후기산업 정보화 경제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돌보고, 제공하는 육체노동의 이야기다. 이 지하경제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실상 가상세계의 소비자들과 최접점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상세계를 만나는 연결통로가 되는 기기들의 제조과정은 다른 모든 일상용품과 마찬가지로, 희귀한 광물의 채취에서 시작해 저 먼 제 3세계 어딘가의 독성물질 처리 및 재처리장에서 끝난다.
손에 잡히는 거리, 눈에 명백하게 보이는 이 현실세계는 노동에 의해 구축된다. 그 노동은 주로 밀입국 노동자들에게서 나온다. 현실세계에 분명 존재하지만 마치 투명인간 같은 그들의 육체노동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지루한 일상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아무리 고매하고 범세계적인 포스트모던 시민이라도 먹어야 산다. 인류학자 스티브 스트라이플러의 말을 빌자면, “21세기 미국에서 멕시코계 이주 노동자의 손을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음식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이야기는 신문에도 해당된다. 서로 불가해한 두 세계를 잇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보스턴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2월 말 보스턴 시의 신문 <보스턴 글로브>의 임원들이 사소해 보이는 변화를 보여준 이후다. 새로운 회사와 신문배달용역을 계약한 것이다. 또한 신문광고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음에도, 여전히 신문사의 온라인 콘텐츠들은 지면광고비로 유지되고 있다. 
 <보스턴 글로브>지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신문을 배달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신문배달이라는 단순해 보이는 서비스는 사실 가장 소외된 이주 노동자들, 특히 밀입국 노동자들의 고되고 부당한 노동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문배달은 특권층과 착취당하는 계층 사이를 잇는 다른 형태의 노동과 성격이 같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불평등한 도시로 꼽힌 보스턴에서 이러한 현상은 심화된다. 복지혜택도 없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가장 위험하고, 불안정하며 불쾌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이주 노동자들로부터 받고 있는 혜택이나 그들과의 맺고 있는 밀접한 상호작용에 대해 상상도 못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은 식재료를 추수하고, 가공해 식품으로 만드는 전 과정을 도맡는다. 또한 집에서 받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네일 케어와 잔디 깎는 일도 한다. 즉, 그 존재감이 미미하고, 존중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우리 삶의 가장 친밀하고 중요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주 노동자들이 그림자처럼 일할 것을 계속 지시받기 때문에 일어난다. 

기자들의 영웅적인 신문배달

신문이 인쇄소로부터 여러분의 집 문 앞에 도착하려면, 365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도로 상황이 어떻든(뉴잉글랜드에서는 심각한 문제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밤중에 일어나 집을 나서야 한다. 그들은 보급소에 가서 신문을 배급받고 접어서 가방에 넣은 후 차에 싣고 어두운 밤길을 몇 시간씩 운전한다. 동 트기 전에 배달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유비, 자동차 유지비, 보험료 등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개인사업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문부수에 따라 받는 돈은 최저임금에 가깝다. 그들은 대부분 이주 노동자들이다. 
<보스턴 글로브>지의 숨은 일꾼들은 12월 28일 회사가 오랫동안 유지했던 계약을 깨고, 롱비치 소재의 ACI 미디어그룹(ACI Media Group)과 새롭게 계약을 맺으면서 대중에게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전 회사는 글로브지와의 계약을 잃고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해야 했고, ACI는 새로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더 적게 주고 더 열악한 조건에서 더 많은 시간 일하게 함으로써 배달 비용을 낮추기로 약속했다. 그리하여 ACI는 노동자들을 찾는 데 애를 먹었고, 간신히 찾은 노동자들도 너무나 열악한 근무 조건에 무더기로 일을 그만두는 사태가 벌어졌다. 수천 부의 신문이 매일 배달되지 못한 채 남겨졌다. 구독자들의 불평이 빗발치자, 그제야 신문사는 사태를 깨달았다. 하지만 정작 기자들은 이 사태를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눈앞의 노동자들을 외면한 채, 엉뚱한 곳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
구독자들은 희미하게나마 신문배달부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른 아침 신문과 함께 비친 그림자, 인기척, 또는 신문배달부들이 근근한 수입에 보태기 위해 정기적으로 두고 간 팁 봉투로 그들의 존재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러한 혼란이 일어나기까지 그들이 만든 신문이 어떻게 독자들에게 전해지는지 몰랐던 모양이다.
신문배달이 엉망진창이 되자, 신문사는 기자들과 직원들을 동원해 일요신문을 배달하게 했다. 이 전례 없는 사건은 보스턴 밖으로 퍼져나갔다. <뉴욕 타임스>는 “<보스턴 글로브> 직원들, 일요신문 배달에 나서다”란 제목으로 직원 2백 명이 “밤새도록 각자 내비게이션과 손전등을 챙겨 수천 부의 신문을 봉투에 넣어 자기 차에 실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미국 라디오 공영방송 NPR의 르네 몬테인도 “일요일 새벽, 동도 트기도 전에 <보스턴 글로브>지의 기자들과 편집자들 수십 명이 이곳저곳으로 직접 신문을 배달했다. 내비게이션과 손전등을 든 채였다”고 보도했다. 
그 기자들 중 한 명은 <더 타임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독자들이 신문을 현관 위 보이는 곳에 두길 바라는지, 어딘가에 숨겨놓길 바라는지 등의 지시에 따라, 집에까지 걸어가서 원하는 곳에 신문을 두고 와야 했다”고 전했다. CNN Money에서는 “우선, ‘봉사자’들은 신문을 봉투에 직접 담아야 했다”고 설명하고 그 놀라운 광경을 뒷받침하는 사진을 증거로 제공했다. 이 기사들은 모두 공통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기자들이 얼마나 “영웅적으로 인종과 신분과 계급을 초월”했는지를.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주 노동자 세계로의 진출은 기자들에게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다. 칼럼니스트 마르셀라 가르시아는 “믿을 수 없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이었다”고 진술했다. 칼럼니스트 셜리 릉은 “뉴스실에서는, 매일 신문을 뽑아내는 것은 기적이라는 속담이 전해진다. 나는 이 말이 마감시간에 맞추어 기사를 송고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말은 키보드를 떠난 기사가 집 앞에 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의미한다는 것을”이라고 썼다. 
칼럼니스트 조안 베노키는 밤새워 신문배달을 마친 후 보스턴 글로브지의 결정으로 인한 희생자들(물론 구독자들)의 고통에 대해 말했다. 케빈 컬른 기자는 신문배달 경로를 따라다니려는 자신의 아마추어적인 시도를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후 “신문배달부에게 얼마를 지급하든, 그 임금은 충분하다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사태가 그들에게 임금을 더 적게 주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상당히 우울한 일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신기하게도 이 사태를 취재하는 첫 2주 간 그 누구도 새로운 회사가 그들에게 실제로 지급하는 금액에 대해 밝혀내지 못했다.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노동력 부족은 ACI가 다른 회사들보다 적은 임금을 제시함으로써 불거진 것이라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ACI와 글로브지 경영진들은 이 주장을 부인했다”고 전했다. 왜,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의 데이빗 우버티 기자는 노동자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은 할 수 없었을까?
언론을 통해 신문이라는 매체는 특권층의 세계에서 살며, 그들하고만 소통한다는 것이 명백해진 것이다. 독자들 역시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신문이 그들의 집까지 오는 데 필요한 노동과 노동자에 관해서는 무지했던 걸로 보인다. 그들은 세상에 관한 ‘중요한 정보’에 무제한적인 접근과, 그 접근 뒤에 숨겨진 속사정에 관한 무지를 동시에 향유했던 것이다. 
일요신문 배달에 참여했던 언론인들 중 신문배달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이는 칼럼니스트 마르셀라 가르시아가 유일하다. 그는 종종 이주 노동자와 남미계 이슈들을 다뤄왔다. 그는 “자신이 쓴 기사를 직접 배달하는 기자들, 기사거리가 될 만하다”라고 썼다. “하지만 우리와 나란히 일하던 사람들은, 그 일을 매일, 최저임금 밖에 못 받으며 하고 있는데도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죠. 글로브지가 현재 겪는 위기의 숨은 원인은 새로 계약한 용역회사가 그토록 고된 일을 그토록 열악한 조건으로 하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가르시아는 자신의 블로그에 어느 동료가 한 말을 녹음해서 올렸다. “우와! 난 이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노동자와 그들의 근무조건에 대해 알게 됐다는 게 정말 놀라워.” 배달을 위해 나섰던 일요일 아침에, 가르시아처럼 “신문배달 노동자들과 이야기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기자는 몇 명 없었다. 언어 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 약 35%의 보스턴 주민들이 영어 이외의 언어를 할 수 있고, 보스턴 시도 “소수가 다수로 변한(더 이상 백인 중심이 아닌)” 사회가 됐다지만, 여전히 신문사 언론인들은 신문배달 노동자들과는 달리 거의 영어를 구사하는 백인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1월 5일 화요일, <글로브>지의 발행인 존 헨리는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 사과문은 물론 구독자들을 향한 것으로, 신문사의 조치로 실직했거나 노동조건이 더 열악해진 용역회사 노동자들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계약전환이 ACI가 더 저렴한 가격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가격 조건이 배달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존 헨리는 “약 2만 명의 독자들에게 일요신문을 전하기 위해 신문사 직원들이 발 벗고 나설 때에야, 우리는 이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게 됐다”라고 썼다. 그리고 나서 그는 지극히 포스트 모던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새로운 회사의 경로설정 소프트웨어가 기준미달이었다”고 설명한 것이다!
신문배달 소동이 벌어진 지 2주 후인 1월 9일, 마이클 레벤슨이라는 기자가 마침내 그늘에 가려져 있던 신문배달 노동자들의 현실을 폭로했다. “노동시간은 길고, 임금은 적으며, 휴가도 없다. 경제의 보이지 않는 곁길에서 수고하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으로 지독한 밤샘 마라톤을 한다”고 썼다. 다음 날 15명의 노동자들이 새 용역회사에 항의편지를 제출하고 일을 그만두자, 댄 애덤스라는 기자는 그들의 요구사항을 설명하면서 린 직업소개 센터의 관리자 훌리오 루이즈를 직접 인터뷰했다. 
1월 13일, <글로브>지 기자들은 경영진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노동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사설을 게재했다. 사설은 “한밤중에 신문을 비닐에 담는 등 대단히 고된 일을 하는 신문배달 노동자들은, 휴가도 없고 노동자로서의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한다”라고 인정했다. 사설은 주 검찰총장과 연방 당국에 신문배달 사업을 조사할 것을 촉구하며, 사업주들이 적합한 임금이나 노동자 보호 등 기본적인 권리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을 “개인사업자”로 분류시켰다는 노동자들의 고발을 암묵적으로 내포했다. 
즉, 노동자들의 단합된 항의와 기자들의 일일 신문배달 체험이 신문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사람들, 착취당하는 신문배달 노동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창을 잠시나마 열어준 것이다. 
그러나 그 창문은 곧 닫혀 버렸다. 1월 16일 <글로브>지의 마크 아스너는 3주 간의 배달 서비스 논쟁은,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었다고 설명하며 논제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그는 사후분석 기사에서 “신문배달 소동의 근간은, 배달경로 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라고 기술했다. 다시 한 번, 소프트웨어와 배달 경로 설정이 문제의 중심에 놓여지고 노동자와 근로조건은 편리하게도 논의 상에서 사라졌다. 
만약 신문기자들과 독자들이 신문배달 노동자들과 효과적으로 분리돼 있다면 그 가림막은 양쪽으로 효과가 있다. 가르시아가 스페인어로 인터뷰한 한 신문배달부는 과테말라에서 온 이주 노동자다. 새벽 1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한다는 그는 가명으로 해줄 것을 부탁했다. “저는 그에게 <글로브> 신문을 읽은 적이 있냐고 물어봤어요”라고 가르시아는 전했다. “그는 마치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이 저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웃더군요.”
우리가 아무리 가상현실에 심취해 있다 해도, 우리의 집 앞에서부터 지구의 반대편까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단단히 묶어주는 착취적인 육체노동 시스템을 외면할 수는 없다. <글로브>지의 배달대란이 분명히 보여주었듯, 현재의 시스템은 우리의 무지와 이주 노동자들, 특히 밀입국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글로브>지의 배달대란은 경제와 언론, 그리고 독자들의 세계가 얼마나 이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지에 대해, 극히 일부분을 엿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지역 언론과 전국매체를 통한 뉴스 보도는 신문을 소유하고 운영하고, 만들고 또 소비하는 사람들이 이 정보화 경제의 이면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주었다. 
여러분이 다음에 집 앞에 놓인 신문을 집어, 도널드 트럼프가 또 다시 밀입국 노동자들에 관해 돌직구를 날렸다는 기사를 읽게 된다면, 바로 그 노동자가 한밤중에 일어나 새벽에 여러분 집 앞에 그 신문을 놓고 간 덕택에 그 소식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글·아비바 촘스키 Aviva Chomsky
세일럼주립대학(SALEM STATE COLLEGE) 역사학부 교수이자 라틴아메리카연구 프로그램의 책임자다. 전공은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의 역사이며, 라틴아메리카인의 연대와 이민자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다.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진보 논객인 노엄 촘스키의 장녀로, 7개 국어가 가능하다.
1996년 출간한 <서인도제도 노동자와 코스타리카의 미국 과일회사, 1870~1940(West Indian workers and the United fruit company in Costa Rica, 1870~1940)>은 1997년 뉴잉글랜드 라틴아메리카학회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최근 <밀입국: 이민이 불법이 되기까지(Undocumented: How Immigration Became Illegal)>를 출간했다. 


번역·이유민 yoomineverything@gmail.com
연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