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절대 웃지 않았다

2016-03-31     브누아 브레빌
   
 

출간 후 한 세기가 지났지만 대학에서 꾸준히 읽히고 재판돼 나오는 역사서는 흔하지 않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문화학자인 요한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이 여기에 속한다.(1) 중세의 역사는 전쟁, 국왕, 굵직한 사건 이야기만 담겨있지만, 1919년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중세의 가을>은 예술과 문학을 중심으로 한 코드와 정서에 초점을 맞춰, 중세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14~15세기에 두려움, 질투심, 분노를 부추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세의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웃었을까, 어떤 방법으로 사랑했을까? 등의 주제가 다뤄진다. 
이 책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쁨, 애도, 평온, 혹은 위험을 알리는 익숙한 종소리가 지배하던 중세의 세상을 다룬다. 이 책은 당시에도 눈물은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한 예로 프랑스 국왕의 특사가 필립 공에게 긴 연설을 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아무도 놀란 사람이 없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1452년에 시각장애 선수 4명이 새끼 돼지를 놓고 결투하는 것을 보며 즐기던 파리 시민들, 강도 한 명을 이웃마을에서 돈 주고 사서 능치처참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몽스(현재 벨기에 남서부 에노 주의 주도) 시민들의 고약한 취향도 다룬다. 
마지막 에피소드와 관련해서 덧붙이자면, 몽스 시민들은 새로운 성인의 육체가 부활할 때보다 강도의 몸이 갈갈이 찢어질 때 더 즐거워했다고 한다. 기사도가 지닌 에로틱한 성격 등 <중세의 가을>이 다루는 감각적인 내용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그 후 중세에 대한 연구가 한 세기 동안 이루어지면서 중세의 인간상은 입체적으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다미앵 보케와 피로스카 나기(2)는 중세에는 감정이 하나로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집단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하며 분노는 권력자의 정서, 수치심은 여성과 청년이 주로 보이던 감정이라고 예를 든다. 아울러 이 시대의 감정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변화한다고 설명한다. 13세기부터 서구는 본격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을 받으며 감정도 원죄로 취급받았다. 감정은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무시받고 죄악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수는 절대로 웃지 않았기에 수도원에서는 웃음이 금지됐다. 
웃음을 경멸하는 분위기는 약 천 년 동안 이어졌다. 13세기, 생 루이는 금요일마다 일체 웃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인식이 달라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감정을 공공연하게 표현하게 됐다. 15세기, 길드(동업조합)가 위기를 맞자마자 플랑드르 도시의 길드 조합원들은 몽둥이를 들고 광장을 에워싸고 분노 혹은 실망감을 표출했다. 일반 사람들은 감정을 이용해 권력자의 관심을 끌어 협상을 이끌어냈다. 
호이징가는 체념적인 중세의 인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세상은 예상만큼 좋거나 나쁘다. 정치와 사회 제도를 개선하고 개혁하려는 의식을 갖고 노력하겠다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플랑드르에서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변화에 대한 열망, 운명의 흐름을 바꾸려는 의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파트릭 부슈롱은 1338년 시에나(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도시)의 왕궁에 위치한 평화의 방에 그려진 ‘좋은 정부'에 관한 벽화를 다룬 에세이 <두려움을 쫓다>(3)에서 예를 들어 설명한다. 당시 시에나는 재정, 사회,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시에나를 이끌 대표로 선출된 행정관 아홉 명은 시민들이 내전을 피할 마음에 힘있는 인물 한 명에게 의지해 독재가 들어서고 공화정의 막을 내릴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아홉 명의 행정관들은 화가 암브로조 로렌체티에게 누구나 볼 수 있는 벽화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의 효과'를 의뢰했다. 부슈롱은 이 벽화의 요소를 하나씩 분석해 관람자가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 지를 이해하고, 벽화가 단순한 알레고리가 아니라 공화정을 위한 변호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벽화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의 효과'는 일시적인 평화의 수단으로 독재로 회귀하려는 유혹을 몰아내기 위해 제작된 정치적 수단이었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 
번역서로는 <워크숍 매뉴얼>(2015) 등이 있다. 
(1) Johan Huizinga, <L'Automne du Moyen Age>(중세의 가을), Payot, 파리, 2015년
(2) Damien Boquet, Piroska Nagy, <Sensible Moyen Age. Une histoire des émotions dans l'Occident médiéval>(민감한 중세. 중세 서구의 감정에 관한 이야기), Seuil, 파리, 2015년
(3) Patrick Boucheron, <Conjurer la peur. Essai sur la force politique des images, Sienne, 1338>(두려움을 쫓다. 1338년 시엔나, 그림에 깃든 정치적인 힘에 관한 에세이), Seuil,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