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에도 영혼이 깃들 수 있다

2016-03-31     마르틴 뷜라르
 
황석영의 소설 <낯익은 세상>이 최미경과 장 노엘 쥐테의 번역으로 동아시아 문학전문 출판사 ‘필립 피키에’에서 불어판으로 출간됐다. 
서울의 서북쪽 끄트머리. 원래 몇 명의 농부가 살던 잡초가 무성한 작은 언덕이었다. 1970년대 중반 쓰레기 매립지로 사용되면서 한강에서 약 1백 미터 높이로 쌓아올려진 쓰레기 산이었다. 그리고 정비공사를 거쳐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작가 황석영은 ‘꽃섬’이라 불렸던 난지도 이야기를 들려주며 지금의 한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들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황석영 작가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소설 <낯익은 세상>도 현실, 픽션, 판타지가 은밀하게 섞이며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한 문체로 전개된다. 서울의 빈민촌에 살고 있는 열네 살 소년 ‘딱부리’는 엄마와 함께 이곳에서도 쫓겨나 더욱 비참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은 바로 난지도. 난초와 꽃들 대신 이제는 서울을 만들어 가는 부유층, 신흥 중산층, 미국인들, 그리고 공장과 공사장들이 버린 각종 쓰레기가 자리를 차지한 ‘꽃섬’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각종 물건들이 모이는 쓰레기장. 그리고 여기에 살고 있던 이들도 도시에서 버림받고 쫓겨난 사람들이었다.”
빠른 속도로 근대화된 한국을 위해 꼭 필요했던 곳.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결정해 만든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권에 반항하는 사람이나 생계형 범죄자들을 ‘교정교실’에 보내기도 했다. 딱부리의 아버지도 ‘새 사람’이 되기 위해 이곳에 보내졌다. 결국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난지도에 도착한 딱부리는 코를 찌르는 악취에 숨이 탁 막혀온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 부식된 물건들, 죽은 고양이 시체들, 메탄가스가 가득한 이 쓰레기장을 뒤지고 또 뒤져 쓸 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 2천여 명의 사람들이 언덕 기슭에 임시 오두막을 짓고 여기서 살아간다. 이곳에서 형성된 인간관계가 오랫동안 뿌리박히게 된다. 주인공 딱부리와 땜통을 연결해주는 것은 김씨네 가족 혼령이다. 고향에서 쫓겨난 농부 가족 김씨네 혼령을 딱부리가 볼 수 있게 해 준 인물이 바로 땜통이다. 
황석영의 세계에서는 사물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 적어도 사람들이 아끼는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 “한국의 이야기들에는 짓궂고 익살스러운 도깨비, 생전에 사람들이 애착을 가진 물건에 깃드는 도깨비불이 종종 등장합니다.” 황석영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도깨비는 사라져가는 추세죠. 사람들은 물건을 쉽게 사고 버립니다. 소비 사회,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죠. 도깨비를 되살려내어 생산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전설과 샤머니즘이 현실 속에 어우러져 새로운 사회, 인간과 물건의 새로운 관계(이 소설의 이야기처럼), 평범한 사람들과 권력층의 새로운 관계를 꿈꾸는 작가의 끝없는 투쟁에 힘을 실어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난지도의 아이들에게 라면을 나눠주고 사진을 찍는 위선적인 도시의 사모님들을 풍자하는 장면이 잘 보여주듯, 이 소설은 서정성과 해학이 가득하다. 황석영 작가가 주인공들에게 느끼는 연민은 언제나 권력자들에 대한 커다란 분노로 이어진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으로 아시아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작가, 주요 저서로 『중국-인도, 용과 코끼리의 경주』(2008), 『서구에서의 병든 서구』(공저, 2009) 등이 있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