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고래와 물개에게 안부를 묻다

[Spécial] 카밀라 연례회의 참가기
남극 생태계 살리기 위한 과학적 ‘열린 회의’
생물 자원 멸종 앞두고도 돈벌이 꼼수 격돌

2009-12-03     박지현|남극보호연합 활동가

 



남반구에 봄이 찾아오는 매년 10월 말이면 호주의 태즈메이니아주 호바트시에서는 특별한 국제회의가 열린다.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Convention for the Conservation of the Antarctic Marine Living Resources) 연례회의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도 지난 10월 26일부터 11월 6일까지 2주에 걸쳐 제28차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 연례회의가 개최됐다. 흔히 영문 이니셜만을 따서 ‘카밀라 협약’이라 부르는 이 협약은 남극해에서 서식하는 모든 해양생물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1980년 체결됐다. 현재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유럽연합, 프랑스, 인도, 일본, 한국, 중국, 미국, 영국, 러시아, 노르웨이 등 총 25개 회원국이 가입해 있다. 카밀라 협약은 다른 지역수산기구들과 달리 생물자원 관리에 관해 사전 예방적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과 생태계적 접근방식(ecosystem approach)이라는 양대 원칙을 토대로 남극 해양 생태계의 보전을 유난히 강조한다. 그 배경에는 남극 생물종에 대한 가슴 아픈 남획의 역사가 있다.

 

인류가 공식적으로 처음 남극을 발견한 것으로 기록한 해는 1819년이다. 그러나 이미 1780년대부터 유럽인들은 남극 사우스조지아섬 등 주변 해역에서 중국에 내다 팔 모피를 얻기 위해 털가죽물개를 사냥해왔다. 남획으로 털가죽물개가 인근 해역에서 자취를 감추자, 뒤이어 코끼리바다표범이 희생양이 되어 수십만 마리가 도살됐다. 이후 바다표범도 거의 멸종에 이르렀고, 다음으로 고래 사냥이 시작됐다. 20세기 초부터 본격화된 포경산업으로 단 80여 년 만에 약 150만 마리의 고래가 죽었다. 물개·해표·고래가 멸종 위기에 이르며 관련 산업이 쇠퇴하자 인간이 눈을 돌린 것은 남빙양의 어류 어업이었다. 남극 바다에만 서식하는 물고기는 대략 200여 종으로 추정되는데, 종의 가짓수도 그리 많지 않지만 개별 종의 개체 수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1969년 본격화된 남극해 어업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종에서 종으로 남획과 자원 붕괴를 답습했다. 그러나 1972년 사우스조지아섬 등 남극 섬 주변에서 상업적 크릴 조업이 시작되면서 드디어 남극 해양 생태계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크릴은 남극의 어류·조류·펭귄·물개·해표·고래 등 거의 모든 남극 생물종들의 기초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래의 먹이가 되는 크릴을 많이 잡는다면 고래의 개체 수에 타격을 입힐 것이며, 크릴 중심의 남극 생태계도 위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마침내 1982년 남극의 모든 해양생물을 포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카밀라 협약이 발효됐다.

이처럼 약탈과 남획으로 얼룩진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컸기 때문에 카밀라 협약의 1차 목적은 남극 해양생물 자원의 보존과 합리적 관리에 있다. 현재 남극 주변 해역, 즉 남빙양에서 조업이 허용된 수산 어종은 크릴, 파타고니아 이빨고기, 남극빙어, 별오징어, 게 등이다. 남극해에서 조업하려면 카밀라 협약에 가입해야 하고, 조업에 관한 모든 자료를 사무국에 상세하게 보고하며 협약에서 규정하는 보존 조처들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협약국들은 매년 카밀라 연례회의에 참석해 조업 대상 어종별로 자원량, 어업 허용 구역, 금어기, 허용 어획량, 보존 어종 등 여러 세세한 내용을 일일이 논의하고 세부적인 보존 조처들을 정한다. 해당 내용들이 상당히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자료들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카밀라 회의는 과학자들로 구성된 자문기구인 과학위원회를 두고 있다. 그만큼 카밀라 회의는 생물자원 관리와 관련해 매우 선진적이고 체계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연구활동도 활발한 편이며, 정부 관계자와 업계, 국제환경단체 활동가들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린 회의’다.

올해 카밀라 회의에서는 작지만 매우 의미 있는 두 가지 성과를 냈다. 하나는 사우스오크니섬 인근 해역 일부를 해양보호구역(MPA·Marine Protected Area)으로 지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크릴 조업이 일부 소해역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해양보호구역은 보존 및 연구가치가 높은 특정 해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이 해역에서 상업적 조업과 오염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에 지정된 해양보호구역은 카밀라 협약에서 최초로 공해 해역에 해양보호구역을 도입했다는 면에서 고무적이다. 크릴의 경우 그동안 크릴 조업이 일부 소해역에서만 집중돼 주변 포식동물들의 먹이를 빼앗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늘 제기됐다. 이제 조업 지역을 분산시키면 펭귄·물개·고래 등 주변 해역에서 서식하는 포식동물들에게 충분한 먹이가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이는 지난 몇 년간 국제환경단체인 남극보호연합(ASOC)에서 추진해온 크릴 보호 캠페인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올해 회의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회원국들 모두 지구온난화나 남극 해양 생태계의 중요성을 대부분 공감한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남극해에서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이한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등 강력한 경고음이 울렸다. 전통적으로 과거에 크릴이 많이 잡히던 특정 해역에서 올해는 크릴이 전혀 잡히지 않은 것이다.

카밀라의 한계, 인간의 탐욕

 


그러나 카밀라 회의가 늘 올해처럼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카밀라 회의는 환경 보전을 지향하는 서방 선진국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데다, 이들이 주요 환경 어젠다를 이끌고 있어 다른 지역수산회의에 비해 선진적이다. 그러나 만장일치라는 의사결정 원칙 때문에 서방 선진국들의 어젠다에 종종 제동이 걸리기도 한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특정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내세워 새로운 보존 조처에 끝까지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이 발생한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은 크릴 조업선에 대한 과학 관찰관 승선 의무화를 끝까지 반대하기도 했다. 물론 환경보전주의 국가들도 자국 이해에 따라 얼마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다. 현재 남극해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어류는 바로 파타고니아이빨고기다. 미국 시장에서는 칠레산 바다농어로 알려진 이 물고기는 t당 약 1만 달러나 되는 ‘남극해의 로또’다. 미국·일본·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인기가 높고, 한국의 호텔이나 일식 요리집에서도 ‘메로’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그만큼 시장 수요가 높기 때문에 환경 보전을 내내 외치던 호주·영국·프랑스 같은 서방국가들도 이 물고기 앞에서만큼은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이빨고기를 가장 많이 잡는 국가가 다름 아닌 이 세 나라다.

 

한국·일본·중국 등과 같은 신흥경제발전국들은 이러한 서구 선진국들의 이중성을 꿰뚫고 있다. 많이 잡고 많이 팔아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욕구가 큰 신흥경제발전국의 처지에서 서구 선진국의 환경 보전 논리는 부담스럽고 때로는 부당하게 느껴진다. 남극해의 생물자원을 먼저 남획한 자는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회의에서 중국 대표단의 수석대표는 그런 불만을 내비쳤다. 그는 카밀라 회의가 비영어권 국가들에 불공평하며, 서구 영어권 국가들은 중국 같은 나라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학 자료를 기초로 비정치적인 객관적 의사결정을 지향하는 카밀라 회의에서 이같은 정치적 발언은 부적절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과학 정보를 해석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행위는 결국 정치적이고 경제적일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 협약에서도 이와 비슷한 갈등을 볼 수 있다. 더구나 남빙양에서 잡히는 수산자원의 시장은 주로 북미·유럽·일본·중국 등이다. 중국은 앞으로 더욱 커질 시장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두고 주판알을 튕기지 않는 나라들이 어디 있을까. 2세기 전의 맹목적이던 제국주의 열풍이나 지금의 시장 자본주의 열풍이나 그 본질은 똑같고, 결국 그 희생물 중 하나가 남극이다.

깨지기 쉬운 얼음 대륙

남극은 이제 200년 전의 남극과는 다르다. 남극 생물자원의 남획뿐 아니라 점차 늘고 있는 각국의 연구기지와 관광객 등으로 환경과 생태계가 급속도로 오염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지구온난화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지역이 바로 남극이라는 점이다. 기후변화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지난 1세기 동안 지구 온도는 평균 0.74도 상승(기후 모델에 따라서는 1.4도 상승)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남극반도에는 지난 30년 동안 무려 4.5도나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지난 50년간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극반도의 244개 해빙 중 87%에 해당하는 212개 해빙이 녹아 없어지고 있다. 많은 매체에서 다루었듯이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남극의 차가운 바닷물을 북쪽의 더운 바다로 전달해주는 현재의 해류 흐름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다. 그렇게 되면 지구의 기후 시스템에 불균형이 생길 수 있다. 빙하가 녹으면 남극 생태계에 더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남극 해빙 주변에는 식물 플랑크톤인 미세 조류와 동물 플랑크톤인 크릴이 서식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빙이 사라지면 남극 생태계의 기반인 이런 먹이들도 서식지를 잃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먹이사슬의 기초 단계가 무너진 남극 생태계가 받을 영향은 심각할 것이다. 그뿐 아니다. 오존층 파괴로 지난 수십 년간 증가한 자외선 투사량도 남극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랜 세월 물리적으로 안정된 환경과 기후에 적응해온 남극 생태계는 그만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고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경제나 자본 논리를 앞세워 인간의 탐욕만을 채울 것인가. 이제 어느 나라도 전 지구적 환경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지구 환경 문제는 모든 국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속하는 윤리적 당위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남극은 지구 환경 문제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다. 남극은 어느 특정 국가나 민족의 것이 아닌 인류 전체의 자연유산이기 때문이다. 2세기 전까지만 해도 남극은 인간의 손이 미치기 힘든 성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남극은 인간의 손에 의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연약한 얼음 대륙일 뿐이다. 남극 빙하에서 녹아내리는 물은 아마도 남극의 눈물일지도 모른다.

글·박지현
남극보호연합(ASOC) 한국지부 캠페이너 



남극 남획의 역사
  

남극은 만년빙으로 덮인 남극대륙과 그 주변을 둘러싼 남빙양을 모두 포함하는 이름이다. 남극대륙의 넓이는 1360만㎢ 이상으로 지구 육지 면적의 약 9.2%를 차지한다. 쉽게 비교하면 유럽이나 호주 대륙보다도 넓고 아프리카 대륙의 반이 넘을 정도로 거대하다. 남극의 연평균 온도는 영하 23도로, 아예 비가 내릴 수 없는 기후 조건이다. 땅이라고는 하지만 남극대륙은 평균 2160m의 만년빙으로 덮여 있다. 생명체가 살기 힘들 것 같은 극한의 환경이지만 놀랍게도 박테리아부터 미세조류, 식물, 50여 종의 새와 펭귄, 물개·고래 등 포유류 동물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남극은 17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멀리 외떨어진 지리적 조건과 극한의 기후 및 환경 조건 덕분에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유일한 원시 자연이었다. 물론 남극의 존재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인식됐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기하학적 관점에서 지구의 균형을 위해선 북반구와 마찬가지로 남반구에도 거대한 대륙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 가설은 ‘Terra Australis Incognita’, 즉 ‘미지의 남쪽 땅’으로 상징화되며 유럽인들의 호기심과 탐험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15세기부터 유럽 제국주의의 맹목적인 탐험과 식민지 경쟁이 시작됐는데, 탐사 항해 동기에는 왕국의 번영을 위해 자원을 약취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18세기 들어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대영제국이 번영하면서 더 많은 식민지와 자원이 필요해지자 영국은 미지의 남극 대륙을 찾기 위한 항해에 나섰다. 제임스 쿡 선장이 이끄는 영국 남극 탐사단은 여러 차례 항해 끝에 1775년 남극권의 섬 사우스조지아를 발견한다. 그러나 쿡 선장의 위대한 발견은 남극 생물종 남획의 시발점이었다. 쿡 선장은 사우스조지아에 발 디딜 틈 없이 많던 물개들과 고래들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고, 이 기록은 곧 물개 사냥꾼들을 불러들였다. 당시 물개의 털가죽은 중국이 많이 수입해가는 품목이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돈에 눈이 먼 물개 사냥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은 물개들을 사정없이 둔기로 내려치고 심장을 찔러 죽인 뒤 가죽을 벗겼다. 기록으로는 어떤 이는 1시간에 60마리를 죽이기도 했고, 단 5주 만에 약 1만4천 마리의 털가죽물개를 잡아 죽였다고도 한다. 그렇게 1822년까지 최저 120만 마리 이상의 물개들이 살육됐다.

 

그 많던 물개들이 거의 사라지자 다음 희생물은 코끼리바다표범이었다. 바다표범은 불을 밝히기 위한 기름을 얻을 수 있는 자원이었다. 마찬가지로 잔혹한 살육이 자행됐다. 사우스조지아에서는 금세 물개와 바다표범이 자취를 감추었다. 물개 사냥꾼들의 배는 새로운 사냥터를 찾기 위해 남극의 다른 섬들을 찾아나섰다. 그런 와중에 1819년 윌리엄 스미스라는 영국인이 남극반도의 끝자락인 사우스셰틀랜드 군도를 우연히 발견했다. 인류의 공식적인 첫 남극 발견이었다. 이 섬도 사우스조지아처럼 발견되자마자 도살장으로 변해버렸고, 수십만 마리의 물개와 해표가 죽었다.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류는 불가능할 것 같던 남극대륙 정복에 나섰다. 유럽 각국과 미국에서 탐험가들뿐 아니라 수많은 고래잡이 배들이 몰려왔다. 남획으로 인해 북극해에서 고래가 자취를 감추자 사람들은 남극의 바다로 관심을 돌렸다. 20세기 들어 갑판에 장착하는 작살포를 개발하고 고래를 잡아 바로 배 위에서 가공할 수 있는 공장형 모선을 도입하는 등 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신나게 남극 고래 사냥에 나섰다. 1904년부터 사우스조지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남극 고래 사냥은 지금까지의 고래잡이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살육이었다. 1930년대까지 약 10만여 마리의 혹등고래가 죽었다. 혹등고래의 씨가 마르자 다음은 흰수염고래의 살육이 이어졌다. 흰수염고래는 지금까지 지구에서 산 생물체 중 가장 크다. 20세기 중반 즈음에는 기존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일본, 소비에트연방, 미국 등 새로운 나라들이 포경업에 가담하면서 남극해의 포경 산업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흰수염고래도 4만 마리 넘게 잡히던 것이 1960년대 들어 한 어기에 겨우 20마리가 잡힐 정도로 거의 멸종됐다. 그러자 다음으로 큰 종류인 긴수염고래, 뒤이어 보리고래, 향유고래, 그리고 밍크고래가 차례로 인간들의 탐욕에 희생되었다.

1950년 영국의 공장 모선에 주치의로 탑승했던 로버트슨은 고래 사냥의 현장에서 본 인간들의 혐오스러운 행동을 개탄하며, 이 광경을 쿡 선장이 보았다면 눈물을 쏟았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생기 넘치는 아름다운 고래들로 가득하던 남극 바다는 고래의 시체가 널린, 피비린내와 악취가 진동하는 지옥의 바다로 변했다. 1982년이 되어서야 국제포경위원회(IWC)는 지구 전체에서 상업포경을 중지하는 조처를 내렸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근 80여 년간 남빙양에서 잡혀 죽은 고래는 모두 150만 마리가 넘는다. 이제 남극해든 어디든 지구 어느 바다에서도 혹등고래나 흰수염고래 같은 큰 고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이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남극 바다에 그렇게 많이 살았다는 사실은 이제 전설로만 남았다. 그러나 지금도 일본은 ‘과학 연구’를 핑계로 매년 몇백 마리의 고래를 잡고, 우리나라도 일부 몰상식한 지방자치단체와 정치인들이 일본과 함께 포경 재개를 로비하고 있다. 


가속화되는 극지방의 해빙

지구온난화는 지구 전역에서 균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구온난화 모형은 그 효과가 북반구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구 전체의 평균기온이 섭씨 2도 상승하면 북극 지방의 기온은 그보다 2~3배 정도 더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남반구는 비록 그 정도가 약하다고는 하지만, 역시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북극 지방에서는 이미 변화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계절이나 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지난 30년간 북극 지방의 얼음 면적이 10%가량 감소했으며 두께는 40%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21세기 말에는 그 면적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북극권의 북항로 개통이나 세계 매장량의 40%를 차지하는 캐나다 북부와 시베리아의 화석연료 채굴 등 지구온난화가 가져다줄 긍정적인 측면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다. 단기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멕시코만류의 비정상적인 흐름이다. 1950년부터 2000년까지 멕시코만류의 유량은 20% 정도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유럽에서는 일시적으로 급격한 기온 하강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태양광의 반사율은 육지가 30%, 바닷물이 7%인 데 비해 얼음은 80%나 된다. 따라서 얼음이 녹으면 반사율이 떨어져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이로 인해 영구동토대(연중 얼어 있는 땅)에도 이미 얼음이 녹는 곳이 생겼는데, 그중에는 건물과 기반시설이 들어서 있거나 엄청난 양의 메탄이 묻혀 있는 곳도 있다. 미국·캐나다·러시아가 주축을 이루는 북극위원회도 이런 위기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북극해의 바다얼음이 녹는다 하더라도 해수면은 상승하지 않는다. 이미 물 위에 떠 있던 얼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린란드의 빙모나 육지의 빙하가 계속 녹아내리면 해수면이 크게 상승하게 된다. 토펙스 포세이돈 위성의 측정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해수면은 연간 2.4mm씩 상승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2세기 무렵에는 해수면이 최소한 25cm 상승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남극 일부 지역에서 얼음이 녹고 있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해수면이 적게는 1m에서 많게는 수m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연구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 원인 중 3분의 1은 단순한 기온 상승으로 인한 바닷물의 부피 팽창이고, 또 다른 3분의 1은 빙하가 녹은 물이다. 그리고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극대륙의 얼음이 녹은 물이 그 원인의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수면 상승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구자들은 남극대륙에서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나타나는 곳은 남극반도뿐이라고 믿었다. 1974년과 2000년 사이에 남극반도의 기온은 섭씨 3도 상승했고, 2002년에는 라르센 빙붕이 남극반도에서 떨어져나왔다. 남극반도의 얼음이 전부 녹는다면 해수면은 45cm 추가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남극반도의 얼음이 남극대륙의 빙모와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에 남극대륙은 안정적이며 최소한 앞으로 1세기 동안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게 최근까지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2004년 10월, 미 항공우주국은 2050년까지 남극대륙 일부의 기온이 3.6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2004년 12월에는 영국남극조사단도 남극대륙 서부의 빙하가 연간 250㎦씩 녹는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지만, 만약 얼음이 더 빨리 녹는다면 장기적으로 해수면이 8m나 상승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면적이 훨씬 넓은 남극대륙 동부(해수면을 64m 상승시킬 수 있는 면적)만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남극해의 바다얼음이 줄어들면 해양생물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조류를 먹고사는 크릴은 30년 전에 비해 80%나 감소했다. 크릴은 오징어·물고기·고래의 먹이로서 해양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인 남획 및 산호초 감소와 더불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 <르몽드 세계사>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