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마음 깊은 곳을 응시하는 지혜

2008-09-29     고세규 | 도서출판 고즈윈 대표

   
 

고세규 <도서출판 고즈윈 대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차', '26년 만에 이룬 꿈', '유럽의 새로운 발견' 같은 화려한 수사와 함께 프랑스 초고속열차 테제베(TGV) 새 노선이 개통됐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부드러운 출발, 잘 터지는 휴대전화 같은 장점도 강조됐지만, 실제로 타 본 사람에 의하면 승차감 등은 이전 열차에 비해 큰 차이가 없었다 한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속도. 프랑스는 1년 전 이 노선에서 테제베를 시험 운행하면서 최고 시속 553km로 달려 세계 기록을 갈아 치웠다. 상용 속도도 시속 320㎞로 세계 최고다. 파리에서 유럽의회가 있는 독일 접경 도시 스트라스부르까지의 운행시간이 4시간에서 2시간 20분으로 단축됐다고 한다.

스피드는 성공의 핵심 요건 중 하나다. 누가 먼저 기술을 확보하는가, 누가 먼저 표준화를 이뤄내는가, 누가 먼저 시장을 선점하는가가 성패를 좌우한다. 가장 빠른 자가 가장 강한 자로 통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역시나 프랑스도 테제베 새 노선을 두고 '비행기보다 경쟁력 있다'며 선전에 열을 올렸고, 가까이 있는 독일은 자존심에 살짝 상처를 입었다.

   빠름의 놀라움을 선사해 준 테베제의 속도. 하지만 이보다 더할까. 우리 내면에서는 늘 테제베 못지않은 생각의 속도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하루 24시간 동안 6만 개 정도의 생각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거듭한다고 한다. 오늘 하루만 그런 것이 아니고, 어제도 6만 개 정도의 생각을 했고, 내일도 모레도 변함없이 6만 개 이상의 생각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점잖은 경영자, 입담 좋은 세일즈맨 할 것 없이 우리 마음속은 날이면 날마다 수다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밤이고 낮이고 전속력으로 달릴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머릿속은 언제나 멀게는 10년, 20년 뒤의 일부터 당장 내일의 스케줄, 돈 걱정, 자녀 걱정, 입을 옷 문제, 휴가 계획, 건강 문제까지 자잘한 생각들로 뒤엉켜 있다.

  이런 습관이 반복된 탓일까. 우리는 대화나 미팅, 식사 중에 생기는 침묵을 어색하게 느끼곤 한다. 혹 침묵이 길어지면 어떻게 그 틈새를 메울까 고민하고, 그걸 잘 채우지 못하면 실례로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그 공간을 채우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소위 입담 좋다고 하는 사람은 그 공간을 어떤 종류의 소음으로 채워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고 처세가 좋다는 평도 받는다.

  반면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1623~1662)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불행은 방 안에 홀로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보다 2,200년 전에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BC 580~BC 500)도 비슷한 말을 했다. "침묵하는 법을 배워라. 너의 고요한 마음에 들려오는 그대로를 흡수하게 하라."

 무한 속도 경쟁에서 '침묵'의 지혜라니. 시간은 돈이고 경쟁력이라고 학습된 현대인에게는 낯선 것일 수 있지만, 두 현자 모두 침묵 속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최고의 속도를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엔진의 최고 파트너는 최고의 제동력을 지닌 브레이크일 수밖에 없다. 그것 때문일까. 디지털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 사람들은 쉼 없이 흘러가는 생각과 생각 사이를 침묵과 명상, 서적으로 채우고 있다. 다음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내면의 지혜를 다루고 있는 책들이다.

 

 

 사막별 여행자

 영혼의 양식을 멀리한 채 하루하루 자신을 소멸시키며 부와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는 문명세계 사람들에게, 사막의 유목부족인 투아레그 청년이 전하는 사막의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이다. 사막 유목민의 믿음과 이상, 진정한 풍요의 의미 등을 전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내던 진정한 삶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힘을 지키는 법, 생명의 신호에 응답하는 법, 돈이 아니라 삶 자체에 머무르며 살아 가는 법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인 사하라 사막의 한 유목민 소년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게 된 프랑스 파리는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뜨거운 물을 하염없이 쏟아내는 놀라운 마법의 세계였다. 소년은 척박한 사막의 삶과는 너무나도 다른 문명세계의 풍요를 경험하지만, 그 황홀경은 오래가지 못한다. 마법의 세계를 떠받치는 지혜가 부재한 탓이다.

   유목민의 오래된 지혜와 사막의 자연이 가르쳐준 교훈을 토대로 무사는 문명인들의 삶 곳곳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호화롭고 편리한 문명의 이면에 있는 도시인들의 결핍된 열정, 고독을 감춰버리는 아찔한 마천루와 빌딩 숲, 돈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영혼과 육신, 노인들을 외톨이로 가둬 버리는 양로원, 뭐든 빨라야만 직성이 풀리는 조급증에 비판을 가한다.

 

마음밭에 무얼 심지?

 

 

  돌볼 틈 없이 바삐 흘러가 버리는 마음을 고요히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명상 카툰집이다.

 "한 사람이 실수로 대형 냉동고에 갇혔다. 빠져 나가려고 아무리 소리치고 문을 두들겨 봐도 인기척이 없다. 그는 서서히 탈진해 갔고 추위와 공포가 밀려왔다. 그의 몸은 차갑게 굳어갔고 다음날 차디찬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런데 그 냉장고의 전원은 꺼져 있었다. 그를 죽게 한 것은 그의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렇게 되묻는다. "세상이 따듯하다고 믿으면 우리 몸도 따뜻해질 수 있을까?"

    한 페이지의 그림과 한 페이지의 짧은 경구가 짝이 되어 만들어내는 99편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미소 짓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러주고 꾸짖고 하던 책은 어느덧 마음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있다. 천천히, 하얀 여백이 많은 책장들을 넘기다 보면 독자들은 마음밭에 평화를 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저것 늘어놓는 천 마디 말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단 한 마디가 훨씬 뛰어난 말이다"라는 말처럼 조금도 욕심 부리지 않은 책, 욕심 없을 것 같은 작가, 그리고 그가 그려내는 등장인물들의 절제된 맑은 이야기는 마음밭에 치유의 씨앗을 심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