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의 깊은 시름
경제위기 속 APEC 위한 묻지마식 인프라 투자
관세 인상으로 지역경제 보루 중고차시장 휘청
러시아가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산업생산량은 감소했고 국내총생산(GDP) 또한 줄어들었다. 임금은 삭감되고 실업은 날로 늘어간다. 하지만 도시와 농촌에서 경제위기의 여파는 무척 상이하게 나타난다. 러시아 정권은 국민의 불만을 억누르려 하고 있다. <<원문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는 열악한 조건을 타고난 도시다. 먼저 지리적 여건이 그러하다. 인구 60만 명에 길이가 30km에 달하는 대도시지만, 이곳을 연결하는 도로는 고작 2개뿐이어서 고독한 섬을 떠오르게 한다. 도로 하나는 구불구불한 2차선으로, 그나마 움푹움푹 패어 있다. 굴곡이 너무 심해 공룡 발자국 위를 달리는 듯하다. 다른 쪽 도로는 4차선 도로지만, 교통체증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모스크바보다도 상황이 심각하다.
물론 모든 걸 상쇄해줄 전설적인 강점이 있다. 환상적으로 분산된 항만기지를 제공해주는 들쭉날쭉한 지형이다. 군항과 무역항으로 이용되는 블라디보스토크 금각만은 극동의 보스포로스 해협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우며, 이곳에 들어선 작은 마을들에는 ‘디오메드’, ‘율리시스’, ‘아작스’, ‘파트로클’ 등과 같은 전설적인 이름이 붙여져 있다. 최적의 항만 입지조건이지만, 제약이 무척 많다는 게 흠이다. 제방에는 일반인의 진입이 금지된 항만시설들이 줄지어 있는데, 그 가운데에 있는 300m 길이의 모래밭과 일부 산업시설만 출입이 가능하다.
자동차 문제도 만만치 않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곳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이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도 보기 드물다. 우측통행을 하면서도 차량의 99.9%는 오른쪽 핸들을 장착하고 있다는 것도 여기서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대다수 러시아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시계획을 세운 사람들은 이렇게 자동차들이 많아질 것은 예상하지 못했고, 또 이같은 상황에 적절한 환경을 구비하려는 노력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급작스러운 건설 붐
사람들의 과도한 욕심 또한 문제가 된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러시아어로는 프리모르스키 크라이) 지역은 러시아에서 부패 정도가 가장 심하고, 마피아 세력이 가장 강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 지방정부들은 도로를 정비하고 상하수도 시설을 현대화하기보다는 부동산 투기로 이익을 내는 데만 열을 올리는 듯하다.
이곳 주민들을 살펴보면 순탄치 않은 도시의 역사가 보인다. 1938년에는 러시아와 중국 간 전투 이후 중국인이 추방됐고, 2차 대전을 앞둔 1939년에는 이곳에 한인이 이주해왔다. 이로 인해 현지 정치인들과 언론들 사이에 동양인의 등장에 따른 ‘황화론’(黃禍論)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이 지역의 동양인 수는 20세기 초나 지금의 모스크바보다 더 줄어들었다. 참고로 1992년까지 외국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블라디보스토크는 상태 보전이 잘된 도시였다. 일부 사람들은 폐쇄 상태에서 나름대로 번성하던 이 도시의 황금기에 향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당시 이런 형태의 도시가 공산 체제 시절에 생필품의 특별조달 혜택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특권을 누리던 지역이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게다가 블라디보스토크는 정치적 야욕이 넘쳐나는 도시이기도 하다.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러시아는 그동안 APEC 회의와 꽤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이번 정상회의 개최는 러시아로선 무척 중요한 의미가 있다. 크렘린 대통령궁은 이번 회의를 새로운 대아시아 전략의 전기로 삼으려 한다. 세르게이 다르킨 현 연해주 주지사 또한 APEC 정상회담 개최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엄청난 인프라 건설을 제안한 상태다. 현지 지도자들의 말을 빌리면 블라디보스토크를 러시아의 밴쿠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2)
현지 사정 모르는 중앙정부
그 결과, 6성급 호텔과 초호화 회의 시설, 특히 터널 1개와 대형 교각 2개 등 각기 엄청난 비용이 드는 비현실적 규모의 건설 공사들이 여러 해 이어지게 됐다. 특히 교각 건설 공사의 경우, 하나는 금각만 다리 공사고 다른 하나는 이 남쪽의 보스포로스 해협 반대편 루스키 섬과 연결되는 연륙교 공사인데, 문제는 이 섬에 사는 거주민이 실질적으로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곳에는 폐허가 된 군사기지 몇 개와 러시아 전통가옥 몇 채, 항구의 오염물질이 유입되지 않는 동해 쪽이라 현지인이 즐겨 찾는 해변들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투기꾼들로서야 눈이 번쩍 뜨이는 곳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 언론은 이같은 공사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으나, 공염불일 뿐이었다.
한편 당국 지도자들은 회의 개최라는 일회성 행사를 위해 이곳에 많은 공사 비용을 들여 교각과 새 건물을 짓는다는 지적에 대해 나중에 신축 건물들을 극동의 연방대학교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두 다리를 거쳐 섬까지 가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며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 각종 보조금을 죄다 빨아들이는 이 건설 계획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는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시민의 일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학생들과 교수진 대부분이 시의 중심 및 북부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그 멀고 먼 섬 안의 캠퍼스까지 달려가 강의를 하고 수업을 받겠는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는 올바른 문제 인식이 필요하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해 “무척 훌륭하고 아름다운데도 묻혀버린 도시다. 제대로 된 수로 시설조차 없다. 이곳에서는 모든 게 노후하고 불안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정상회담은 이 도시로서는 하나의 기회이며 대규모 공사를 시작하기에 좋은 구실이 된다는 것이다.(3) 이는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기회인가? 도시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당국의 지도자들을 위한 것인가?
일부는 주지사 교체도 언급하고 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지난 9월 그를 지지하고 나섰다. 보리스 옐친 시대의 상징적 인물인 현 주지사는 수산업계 마피아 두목이라는 설이 있다. 그는 푸틴에 의해 좌천된 바 있으나, 곧이어 장관직으로 임명되었다. 그것도 수산부 장관이었다. 그는 장관직 임명 당시 본인과 배우자 재산 공개를 했을 때, 모스크바의 <노바야 가제타>는 “그가 해외 계좌와 차명을 이용해 재산을 은닉하려 했다”고 보도했다.(4) 물론, 이 기사의 진실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에서 정치 분쟁은 종종 폭로전의 양상을 띤다. 언론이 진위를 가리기 힘든 루머와 혐의를 터뜨리는 것이다.
이렇게 긴장된 상황 속에서 2008년 12월, 정부는 2009년 1월 11일부터 중고 수입차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는 법령을 채택했다. 이는 블라디보스토크 주민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도화선으로 작용해, 최근 유례없는 시위 사태가 벌어졌다. ‘러시아 경제활동인 동호회’라는 이름의 비공식 단체와 러시아 공산당이 이 시위 행렬의 선두에 섰으나, 불길은 이들을 넘어서 더 멀리 퍼져나갔다. 12월 14일, 1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도심을 완전히 점거했고,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공항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시위대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던 민병대와 러시아 경찰 특무부대(OMON)는 시위대 규모를 최소화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수많은 지역 의원들이 시위에 동참한 상태였다. 12월 15~17일, 주의회에 이어 블라디보스토크 시의회는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푸틴 총리에게 중고차 세금 인상 결정을 철회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5) 사태가 얼마나 커졌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관세 반대 대규모 시위
시위 규모가 이렇게까지 커진 것은 중고차 수입이 이 지역의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로 설명된다. 러시아 운전자들은 품질이 안 좋기로 정평이 난 국산차보다는 수입차를 훨씬 더 선호한다. 사회 지도층조차 국산차를 외면하고 BMW, 메르세데스, 포르셰 카이엔 같은 차만 몰고 다니는 실정이다.
더욱이 자동차 공장이 단 한 개도 없는 러시아 극동지역과 동시베리아 지역에서는 유럽 쪽에서 러시아 자동차를 운반해와야 해 그만큼 차량 가격이 올라간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사용되는 자동차 90% 이상이 오른쪽 핸들이 달린 일본 제품이나 한국 제품이며, 대개는 중고차인 경우가 많다. 이 지역에서 중고차 시장은 실로 하나의 경제 분야로 발전된 양상이다. 이 지역을 거쳐 아시아로부터 러시아 전체로 중고차가 유입된다. 아시아 지역에서 차를 사들인 뒤 연간 수만 대의 중고차를 유통시키는 무역업자 및 해운업자를 넘어, 중고차 시장은 사실 하나의 제대로 된 산업으로 자리를 굳힌 상태다. 점차 구속력이 높아지는 법적 규정들을 피하기 위해 일각에서는 일본 지프 차량의 차체를 해체하고 둘로 나누어 ‘키트’별로 수입한 뒤 현장에서 재조립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최종 사용자의 용도에 맞게 차량을 개조하는 각종 옵션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연해주 지역에서 창출되는 일자리는 10만 개 가까이 된다고 한다. 특징은 대부분 독립적인 중소기업이라는 점이다.
시위가 발발하자, 모스크바는 발빠른 대응을 보였다. 크렘린궁에서 호되게 꾸중을 받은 지역 지도자들은 시위대를 지지했던 자신의 입장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부 결정의 긍정적 측면을 설명하다가 시민의 반발만 더 높이고 말았다. 분노한 시민의 시위는 2008년 12월 21일로 잡혔으나, 경찰 특무부대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국영방송들은 입을 다물었고, 대통령궁 쪽이 보여준 타협적 입장을 칭찬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대통령궁은 러시아제 차량을 극동지역으로 운송할 때 지원금을 지급해 가격을 균등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학생과 퇴직자들에게 유럽으로 가는 항공권 가격을 낮춰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법령이 시행된 올 1월 초 또 다른 시위가 발발했다. 하지만 혹한의 날씨와 경찰 특무대의 활약으로 당국은 시위대의 확산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외부 불순세력 개입” 왜곡
만 근본적으로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수많은 러시아 전문가들은 도산 위기에 처한 러시아 자동차업체를 구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취하는 보호 조처들을 비판했다. 엄청난 재정 지원금을 동반한 보호 조처들은 여태껏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부패와 방임, 정부 주도의 경제 운용 방식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타파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들 회사가 계속해서 사용자가 원치 않는 자동차만 양산해왔기 때문이다.
5월 초, 결국 봄이 오긴 했으나 통제 속에서 진행된 5월 1일 집회와 5월 9일의 승전기념일 사이에는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항만 활동이 둔화됐기 때문이다. 물동량은 경제활동 위축의 직격탄을 맞았다. 사람들은 경제위기가 끝나길 기다리고 그동안 비축해둔 것으로 근근이 버티면서도 아직은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면 정부가 다시 법령을 철회하거나 완화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다시금 일이 잘 풀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비관적이고, 이미 최악의 상황을 예견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가 더욱 약해질 것이고, APEC 정상회의를 유치한다 한들 이 지역 경제는 되살아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이들은 지방의 러시아인이 다시금 유럽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는 새로운 인구 대이동이 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나는 것은 젊은 층과 활발한 경제활동 인력이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프로파간다를 통한 국면 전환 시도가 있었다. 2009년 1월 초, 연방의회(러시아 의회)의 한 위원회가 시위 조직 세력에 대해 외부의 사주를 받은 조직원이라는 혐의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한 것이다. “관세 인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는 러시아 여러 지역에서 사회불안을 조장하기 위해 조직된 행위로 간주될 수 있으며, 오렌지혁명(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때 야당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으로 여당의 부정선거를 규탄해 결국 재선거를 치르게 했던 시민혁명-역자)을 연상시키는 단일 시나리오에 따라 이루어진 행위”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외부의 불순세력’에 의해 조작된 이번 사태는 러시아에서 극동지역을 떼어놓으려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고 결론지었다.(6)
일부 시위 참가자가 작은 오렌지색 깃발을 흔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극동지역 러시아 주민에 대한 분리 위협의 핑계는 과거 현지 지배세력 일부가 자신들의 뜻대로 시민을 움직이려고 휘두르던 협박에 불과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는 빅토르 라린 블라디보스토크 역사연구소장의 보고서에서 드러난 지역 여론에 대해 실질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의 보고서에서는 “러시아 및 러시아 극동지역의 이익에 반하는 주된 위협이 무엇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지역 주민 47%가 “모스크바 정부의 실정”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대답했다. 37%만이 “중국의 군사 위협”이라고 대답했고, 36%는 “미국의 패권주의”라는 답변을 내놓았다.(7) <<원문 보기>>
글·장 사바테 Jean Sabaté
언론인 겸 학자. 주요 저서로는 <신 러시아>(La nouvelle Russie)(Armand Colin·2007) 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의 역서가 있다.
<각주>
(1) 조제프 케셀, <야만의 시대>(Les temps sauvages), Gallimard, Folio, 파리, 1978.
(2) 도시화를 위한 공간 활용에서 자연환경의 제약이 있던 항만도시 밴쿠버는 지난 몇 년간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고, 오늘날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비중이 큰 대도시가 됐다.
(3) <Kommersant>, Moscow, 2009년 6월 5일.
(4) ‘모든 것을 포기했던 주지사들’, <Novaïa Gazeta>, 2009년 7월 1일.
(5) interfax.ru 및 kasparov.ru, 2008년 12월 18일.
(6) ‘이제 시작이다’, <Nezavisimaïa Gazeta>, 2009년 1월 16일.
(7) 안드레이 칼라친스키, ‘불그스름한 동방’(L‘Orient rougeoie), Ogoniek, 2009년 5월 18일.
기업 쥐락펴락…푸틴의 막강 파워
2009년 5월 15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의 소도시 피칼료보 화력발전소는 빚더미에 몰려 가동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2만1천 명의 주민은 온수를 공급받지 못하게 됐다. 여러 달 동안 갈등이 이어져온 상황에서 이 사건은 하나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그다음 월요일, 지역 노조 가운데 한 노조는 연방도로인 볼로그다의 봉쇄를 호소하는 전단지를 배포했다. 시의 주변부를 지나가는 도로였다. 화요일, 알루미늄 재벌인 올레그 데리파스카 소유의 바젤 공장 소속 노동자 300여 명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A-114도로를 점거했다. 여기에 (시멘트공장 두 곳 및 화학공장 한 곳 등) 3개 공장 직원의 아내와 자녀들도 합세했다. 이들 공장 세 곳은 모두 연초에 문을 닫음으로써 도시 주민 4천 명을 실업자로 만들었다.(1)
불과 몇 시간 만에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다. 438km에 달하는 도로가 완전히 막혀버린 것이다. 이 지역의 주지사는 그 지역 다른 도시들로 가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얘기하며 시위대를 달래려 했다. 민병대는 시위대를 해산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다칠 우려가 있고, 또 이미 화요일부터 푸틴 총리가 현지를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으므로, 대치 상황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고 본 것이다.
피칼료보에 들이닥친 위기는 (러시아어로 ‘모노고로드’라고 하는) 단일산업특화도시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대개 이들 단일산업특화도시는 인구 2만~2만5천 명의 중소도시인 경우가 많으나, 이 가운데에는 제철 분야에 특화된 대도시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 도시에서는 오직 단 한 개의 기업이 주된, 아니 유일한 고용주인 셈이다.
피칼료보는 자체적인 화력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던 하나의 시멘트 및 화학 재벌을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였다. 그러나 이 재벌은 금융위기에 이은 철도와 에너지 요금 인상으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올해 초, 불과 몇 주 만에 공장은 문을 닫았고, 부채와 체불임금은 불어났다. 사회 갈등이 높아졌으나, 이런 경우 러시아에서 종종 그러하듯 일단 가장 기본적인 공공서비스가 차단된다. 피칼료보에서는 급수가 끊겼다. 이렇게 되면 주민의 거센 반발이 이어진다. 사태가 진정될 동안 사람들은 서로 돕고 아르바이트일을 하며 버텨갔다. 특히 이렇게 작은 도시라면 ‘만일에 대비해’ 반드시 자기 채소밭은 갖고 있어야 하기에, 밭에서 직접 채소를 가져다 먹는 것 또한 무시 못할 힘이 됐다.
수요일, 이 지역 주지사는 특별기금을 풀어 밀린 임금의 일부를 지급하고 발전소의 빚을 갚았다. 목요일, 푸틴 총리가 연방 TV 취재단뿐 아니라 여러 장관들, 철도 지도자, 3개 공장 지주회사의 사장 세 명도 대동하고 현장을 방문했다. 지방도시가 처한 위기에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이 투입된 것이다. 교묘하게 연출된 이 상황은 “악덕 귀족에 대한 훌륭한 성군”의 전례에 따라 굉장한 볼거리를 제공했다.(2) 텅 빈 시멘트공장을 서둘러 돌아본 푸틴 총리는 주지사에게 “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지역 지도층이 전력을 다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소리쳤다.
위기의 장본인들을 모아놓은 회의 자리에서, 푸틴 총리는 기업경영 개선, 대출금 상환, 철도 운송료 인하 등의 내용을 담은 결정 사항들을 통보했다. 그리고 푸틴은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지금 당신들의 야심과 탐욕, 그리고 부족한 직업의식의 볼모로 잡혀 있다. 늘 떠들어대던 기업의 사회적 책무는 대체 어디에 가 있는가? 위기가 오기 전부터 이미 현 사태는 시작됐다. 전부 다 생산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앞으로 석 달의 시간을 주겠다. 당신네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당신들 없이 이뤄질 것이다.” 협조하지 않으면 하원에서 국유화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뜻이었다.(3)
하지만 인터넷 사이트에서 돌아다니는 또 다른 발언 내용에 관심이 집중됐다. 피칼료보의 경영주인 데리파스카가 공장의 기술적 어려움을 해명하려 하자, 푸틴은 자신이 제안한 협정서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올레그 블라디미로비치(데리파스카), 당신은 여기에 서명했나? 당신 서명이 보이지 않는다. 이리 와서 서명하라.” 몹시 성난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데리파스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협정서에 서명을 했다.
피칼료보 사태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를 깨달을 수 있다. 정부는 그 자신의 효율성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블라디미르 푸틴, 불과 몇 시간 만에 피칼료보 사태 해결’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재산을 증식한 것과 더불어 최근 금융 위기에도 큰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탄받던 기업 지도자들이 순순히 자신의 명령을 따르게 하는 정부의 이미지를 보여준 것이다. 언론에서는 기업 총수들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다는 사실 또한 종종 강조했다. 시위대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 가운데에는 “데리파스카는 요트를 팔라”는 식의 평범한 문구도 보였지만 “데리파스카에게 부헨발트 수용소의 돼지죽을!”이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구호도 있었다.(4) <노바야 가제타>도 다른 관점의 기사를 실었다. TV에 비친 모습 이면에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즉, 정부가 아무런 대가 없이 정부예산에서 수십억 루블을 빼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재벌기업들에 지원금을 제공했다는 주장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중앙정부가 경제계를 장악했으며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이곳에서 장관들, 특히 총리는 프랑스의 경우라면 기업들의 소관에 들어갈 세세한 것 하나까지도 직접 관리한다. 이런 특수 상황은 정부의 사회 통제와 현대화 작업의 지연, 중소기업 활동의 제약, 일반화된 부패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각주>
(1) <Kommersant>, Moscow, 2009년 6월 3일.
(2) <Kommersant Vlast>, Moscow, 2009년 6월 8일.
(3) <Kommersant>, Moscow, 2009년 6월 5일.
(4) <Kommersant Gazeta>, Moscow, 2009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