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환자 쇼핑, 히포크라테스의 종언

빈곤층 보험환자 진료 거부하려고 거짓말 밥먹듯
공적자원으로 교육받고 사회적 책무엔 나몰라라

2009-12-03     피에르 랭베르 | <르 디플로> 기자

“대답하는 목소리는 거칠거나 공격적이며, 때로는 응답이 없기조차 하다. 한 의사는 ‘난 그런 사람을 취급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이란 무엇을 뜻할까? 전화로 진료 시간을 예약하려 애쓰는 ‘포괄적 질병보험’(CMU) 가입자다. 의사가 빈곤층의 CMU 가입 환자를 거부할 때는 종종 “그건 불가능합니다”처럼 근거가 없거나 “난 서류들 때문에 피곤해요”처럼 교활한 이유를 들이댄다. 다음과 같이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찾아냈지요?”

“전화번호부에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 아래에 나와 있는 번호로 다시 거세요.”

이런 대화와 관찰은 ‘파리 지역의 CMU 가입자에 대한 진료 거부’(1) 사례 조사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2009년 7월 1일 공개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의사의 4분의 1가량이 극빈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38%는 산부인과 의사였고, 31.6%는 치과 의사였으며, 38%는 안과 의사, 19.4%는 일반의, 5.2%는 방사선과 의사였다. 또 보고서는 이런 행동이 탐욕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진료 거부의 대부분은 특진이 허용된 의사한테서 나타나는데, CMU 가입자는 특진 대상이 아니다.

의사 면허증을 받는 순간, 의사들은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그리스의 저명한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약속한 내용을 골자로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한다. “나는 극빈자에게, 그리고 치료를 요구하는 모든 이에게 의술을 제공하겠노라. 나는 돈 벌려는 욕심에 영향을 받지 않겠노라. 내가 만약 약속을 충실히 지킨다면 사람들과 동업자들이 나를 존중해주길 원하노라. 그렇지 못할 경우, 나의 명예가 박탈당하고 멸시받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좇아, 1996년까지 의과대학생들은 “나는 맹세한다! 나는 맹세한다! 나는 맹세한다!”라고 우렁차게 외치면서 자신의 서약을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명예냐, 돈이냐?” 프랑스 보건경제자료연구소(IRDES) 소속팀이 2008년 12월~2009년 1월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리 지역에 거주하는 861명의 의사는 이런 의문을 담은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이 조사는 치과 의사, 일반의, 그리고 섹터1(의료보험 기본요금)이나 섹터2(가입자의 의료보험료 선택제, 섹터1보다는 더 비쌈) 쪽 협약을 맺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료 예약 과정에 관한 표본조사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서류를 지참한 첫 번째 사람이 의료 전문가에게 전화해 진료를 요구하면서 자신이 CMU 수혜자라고 알리는 방식이다. 그러면 의사나 그의 비서가 요청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한다. 병원의 거부가 공식적으로 CMU 탓이 아니라면, 두 번째 사람은 이번에는 자신의 사회보험 형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약속을 요구한다. 만일 그가 약속을 얻어낸다면 첫 번째 거부의 범죄적 성격이 성립된다. 연구자들은 “그런 식으로 얻어낸 결과들이 오히려 과소평가되었다”고 지적한다.

   
▲ <거절당한 사람들>, 1977-제라르 가시오로우스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자유요금제인 섹터2 분야에서 일반의의 3분의 1, 안과 의사의 31%, 산부인과 의사의 40%가 극빈자들이 대기실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한다. 이는 의료보험 요율을 지키는 (몇 안 되는) 자기 동료에 비해 3배나 높은 수치다.(2) 의사들은 사회보장으로 고작 25유로를 내는 최저생계부조금(RMI) 수령자가 100유로의 진료비로 내는 고객을 위해 깔아놓은 양탄자를 어지럽히는 것에 몹시 언짢아하는 것이다. 일부 의사들은 예약이 꽉 찼고, 행정적 절차가 너무 과중하며, 비탈(Vitale) 판독기가 없어서 진료카드를 완전히 새로 작성해야 한다고 둘러댄다. CMU 환자에게 직접 받는 돈은 전혀 없고, 의료보험에서 기본요금만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요금제를 택한 전문의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신들이 다른 환자한테서 받는 진료비보다 적은 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CMU를 받아들이면 나는 의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한 부인과 의사는 말한다.

다른 의사들은 취약계층 사람들이 예약 시간을 어기고, 펑크족 사람들이 애완견을 데려와 돈 많은 고객을 도망치게 하며, 끔찍하게도 자기 동료에게 다른 우수 고객의 주소를 누설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2008년 말 기준으로 파리에서 CMU 혜택을 보는 사람은 총 17만1713명인데,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할 만하다. 바로 그 때문에 일부 의사들은 환자가 전화를 걸어오면 그가 틀린 주소로 전화했다고 말해주거나, 그를 설득해 전화를 끊도록 하는 일이 벌어진다.

방식은 다양하다. 상냥한 어조도 있고(“당신은 CMU 혜택을 보시나요? 아, 그렇군요”),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기술도 있으며(“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걸 좋아하지 않아요”), 친구로서의 조언(“종합병원으로 가세요”)도 있다. 어떤 의사는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진료 대기 시간을 언급하면서 비싼 진료비와 삶의 의미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볼 시간을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론 일부 의사들이 자선을 베풀지만, 단지 상황이 괜찮은 빈자에게 국한된다. “나에게 친절하게 요구할 때만 나는 수락한다”고 한 방사선과 의사는 말한다. 다른 의사들은 환자에게 냉정을 되찾으라고 권고한다. 파리 제8구에 있는 한 치과의 비서는 “여기는 CMU를 취급하는 (싸구려) 동네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환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잘 오셨습니다”, “환자를 거부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에요”, “당연하지요, 법으로 정했으니까요!”라고 그들은 대답한다.

1999년 7월 17일 선포된 CMU법은 극빈자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본 체제에 CMU-C라는 보완적 시스템이 따라붙는데, 이미 살펴본 것처럼 진료비를 미리 지불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1인 기준으로 할 때 월 621유로라는 낮은 봉급을 전제로 교부된 이 무료보험은 2008년 12월 31일 기준으로 417만4753명에게 혜택을 주었다. 수혜자는 종종 실직한 자들이거나 학업 정도가 낮은 사람들이다. 실업의 대량 증가로 2010년쯤에는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또한 보건의료 시스템의 전반적 쇠퇴 속에 극단적 이익을 추구하는 의료계의 뒤틀린 현실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민간 분야는 가장 유복한 환자들을 끌어모으는 대신 ‘그 밖의 환자들’을 공공병원 쪽으로 내몬다. 병원의 차별 문제는 자칫 위험으로 치달을 수 있다. 만일 파리 치과 의사들의 3분의 1이 여성, 유대인, 흑인에 대해 진료하기를 거부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큰 분노를 부르는 스캔들일까. 여기에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직의 범죄행위에 대한 관용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의사들은 CMU 수혜자 진료를 거부함으로써 의료윤리법과 차별에 관련된 형법 25-1조를 동시에 어기고 있다. 2년간의 투옥과 3만 유로의 벌금이 가능한 범죄인데도 말이다. 어떻게 하면 의사들이 이미 차고 넘치는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비록 극빈층에 대한 진료 거부의 ‘불법적’ 성격을 인식하고 있다 할지라도, 의사협회는 지난 7월 15일 “일부 의사들의 행위 때문에 의료집단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최소한의 처벌도 받지 않고서 전세계를 황폐화시킨 은행가들이 얼마 전까지 되뇌던 후렴구다. 국회의원들의 직업별 신분 구성을 살펴보면, 의사들의 이런 면책특권은 당연한 듯 보인다. 하원에는 외과 의사 8명, 치과 의사 7명, 일반의 36명, 의대 교수 2명이 포진해 있다. 환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보건서비스연합’의 실뱅 페르난데즈 퀴리엘은 “양원에서 지난 7월22일 ‘종합병원, 환자, 건강, 환경’(HPST)에 관한 토론이 벌어졌을 때 배석한 의원들 대부분은 직업이 의사였다”고 지적했다.(3)

은행가들과는 반대로 의사들은 유리한 편견의 대상이다. 그는 신종 독감을 막는 소방수이자 청진기를 귀에 꽂고서 생명을 구하는 천사다. 하늘에서 내려온 후손이 아니라 대개 유복한 부르주아 가문 출신이지만 말이다.(4) 또 그는 10년에서 15년에 걸쳐 사회에서 열정적인 연구를 제공받은 사람이다. 비싼 교육을 받은 셈인데 국민 대다수가 그들을 재정 지원했다. 하지만 경제활동인구의 70%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지식인 노동자를 교육하는 일은 집단의 부가 개인의 지식으로 전환되게 해준다. 이러한 작업은 의사들에게 높은 사회적 지위라는 막대한 책임과 안락한 수입을 안겨준다.(5)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일부 사람에게는 구제도(앙시앵레짐) 방식을 통해 이뤄진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번역·이상빈 malraux21@ilemonde.com 
파리8대학 불문학 박사. 역·저서로 <현대 프랑스 문화사전>과 <나폴레옹의 학자들> 등이 있다. 



<각주>

(1) 카롤린 데프레(Caroline Desprès), 스테판 기욤(Stéphane Guillaume), 피에르 에마뉘엘 쿠랄레(Pierre-Emmanuel Couralet), ‘파리에서의 보완적 CMU 수혜자에 대한 진료 거부’, 질병 위험에 대한 보편적 보장을 보완하는 보호재정기금, 프랑스 파리, 2009년 7월. www.ladocumentationfrancaise.fr/rapports 사이트를 통해 다운로드할 수 있다. 10년 전부터 유사한 연구들이 규칙적으로 수록되고 있다.

(2) 파리 부인과 의사의 10분의 1, 안과 의사의 7분의 1 미만이 섹터1 쪽 협약을 맺고 있다. 일반의의 경우 그 비율은 2명 중 1명 정도다.

(3) 건강을 생각하는 협회연합집단, ‘2009년 6월 8일의 진료 거부에 대항한 의료보험의 날’, 프랑스 파리, 2009년 7월.

(4) 파스칼 브뢰유 제니에(Pascale Breuil-Genier)와 다니엘 시카르(Daniel Sicart), ‘의료 전문인들의 출신성분 연구’, <에튀드 에 레쥘타>(Etudes et résultats), no 496, 파리, 2006년 6월호.

(5) 2007년을 기준으로 전문의들은 평균 10만9400유로의 순수입을, 일반의들은 6만6800유로의 순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엘렌 프레슈(Hélène Fréchou)와 프랑수아 기요마 타일리에(François Guillaumat-Tailliet)가 쓴 ‘2006년과 2007년의 의사들 자유소득 연구’, <에튀드 에 레쥘타>, no 686, 2009년 4월호를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