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저지른 패권주의적 폭력의 대가

2016-05-30     노엄 촘스키
     
   
▲ <무기>, 2008 - 나타샤 부비에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많은 이들이 국가들, 특히 국제사회의 주체로 활동하는 강대국들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화는, 진실을 호도할 우려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는 그 내부 구조가 복잡하며 정치 수뇌부의 선택과 결정에 내부 권력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에서 보통 일반 대중은 소외된다. 비교적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진정으로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지 알고 싶다면, 애덤 스미스가 ‘인류의 지배자(Masters of mankind)’라고 일컬은 주체를 고려해보라. 애덤 스미스 시대에는 영국의 상인과 제조업자, 현대에는 다국적 대기업, 거대 금융기관, 유통 대기업 등이 세상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지배자’가 추종하는 ‘사악한 원칙’, 즉 ‘모든 부를 독차지하고 타인에겐 아무 것도 양보하지 않는’ 원칙은 심각하다. 이는 끝없는 일방적 계급전쟁을 초래하며, 이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현 국제질서 내에서는 ‘인류의 지배자’들이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자국에서도 거대한 권력을 행사 중이다. 자국의 국가권력을 사유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 ‘인류의 지배자’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알려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 등의 국가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TPP는 투자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협정이다. 그러나 각종 선전과 방송에서 종종 ‘자유무역협정’으로 미화된다. 이러한 협정은 비밀리에 이루어지며, 수백 명의 기업변호사와 로비스트들이 주요조항을 작성한다. 관련 국가들은 토론 절차도 없이 가입/비가입의 선택권만 주어지는 스탈린식의 ‘신속협상권(Fast track)’을 통해 협정에 가입하도록 압박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대중은 부수적인 역할만 하며, 그 결과는 예상대로다. 

제2의 슈퍼파워

과거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은 부와 권력을 일부에 집중시켜 민주주의를 저해하면서,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권력의 중심부에서 반발에 직면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부상한 유럽연합(EU)은 경기침체기에 실시한 긴축정책의 여파로 휘청거리고, 특히 단일화폐인 유로화 등장 이후 의사결정권한이 브뤼셀의 EU 본부로 옮겨가면서  북유럽 은행의 영향력이 커지고 민주주의가 훼손됐다. 
주류 정당은 빠른 속도로 극좌와 극우에 세력을 빼앗겨왔다. 파리의 연구기관 유로파노바(EuropaNova)의 한 상임이사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권력의 중심이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시장, EU기관이나 기업으로 이동함에 따라 유권자들의 분노와 무력감이 표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권력 이동은 상당부분 신자유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의사결정과정에서 대중이 철저히 배제된다는 점에 있다. 이제, 대중은 자유민주주의 제도에서 부여한 ‘구경꾼’(‘참여자’와 대조됨) 역할을 거부한다. 대중의 불복종은 지배계층에게 골칫거리로 인식돼 왔다. 미국만 봐도 그렇다.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워싱턴은 휘하의 민병대를 “극도로 더럽고 추잡한 사람들로, 하층민의 설명하기 어려운 어리석음을 보여준다”고 폄하했다. 윌리엄 포크는 미국의 ‘반란’부터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반란 등을 다룬 그의 저서 <폭력 정치(Violent Politics)>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워싱턴은 자신이 경멸한 군사들을 배제하려 애쓴 나머지, 혁명에 실패할 뻔했다. 프랑스가 대대적으로 개입해 혁명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실제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즉, 오늘날이라면 ‘테러리스트’로 불릴 게릴라들이 승리를 거두는 반면, 워싱턴의 영국식 군대는 연전연패해 전쟁에서 거의 패배했을 것이다.”  
포크에 의하면, 전투가 성공할 경우 대부분의 지도층은 “더럽고 추잡한 사람들”을 억압한다. 바로 그 (더럽고 추잡한) 사람들이 게릴라 전법과 테러를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전쟁 승리 후 계급특권에 도전할 것을 우려해 억압하는 것이다. ‘하층민’에 대한 엘리트 계층의 경멸은 오랜 세월 다양한 형태로 있어 왔다. 한 예로, 1960년대 대중운동의 민주화 영향을 우려한 자유국제주의자들은 ‘수동성과 복종(절제된 민주주의)’을 촉구했다.  
종종 (독립된) 국가들이 국민 여론을 따른 것이, 강대국의 분노를 유발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 2003년 터키의 결정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터키에 이라크 침공 동참을 요청했다. 그러나 터키 국민의 95%가 반대 의사를 밝혔고, 터키 정부가 여론을 받아들이자 미국 정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터키는 “책임을 회피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미행정부의 ‘최고 이상주의자’로 불렸던 폴 월포위츠 국방차관은 “터키 군부가 정부의 월권행위를 허락했다”고 비난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터키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미-영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발이 거세졌다. 국제적 여론 조사에 의하면, 미 정부의 전쟁계획에 대한 지지도는 어느 지역에서도 10%미만이었다. 미국 안팎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발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제국주의 침공이 공식 개시도 하기 전에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다. <뉴욕타임스>의 패트릭 타일러는 1면 기사를 통해 “이제 지구상에는 두 개의 슈퍼파워가 있다. 미국과 세계여론이 그것이다”라고 평했다.  
미국 내 전례 없는 시위가 일어난 것은 수십 년 전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한 비난을 시작으로, 미국의 침공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이 계속 확대돼 비록 늦게나마 영향력을 형성한 덕분이었다. 반전 운동이 세력을 형성해가던 1967년 경, 군사역사학자이자 베트남 전문가인 버나드 폴은 당시 이렇게 경고했다.
“베트남은 문화적, 역사적으로 소멸될 위험에 처해있다. 이 정도 규모의 지역에 유례없는 군사조직의 폭격으로 지방 곳곳이 문자 그대로 죽어가고 있다.”
반전 운동은 마침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세력을 형성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취임 후 중앙아메리카를 침공하려 했을 때도 반전 운동이 영향을 끼쳤다. 레이건 행정부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20년 전 남베트남을 침공했을 때 취한 정책을 따랐다. 그러나 1960년대 초와는 달리 격렬한 대중 시위에 직면하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중앙아메리카 침공도 충분히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아직도 그 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남베트남, 이후 인도차이나 전역으로 확대된 전쟁의 경우, ‘제2의 슈퍼파워’가 뒤늦게 영향을 미치면서 비교도 안될 만큼 끔찍한 피해를 끼쳤다.    
종종 이라크 침공에 대한 반대 여론이 효과가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라크 침공 자체는 충분히 소름끼치고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반대 여론이 없었다면 더욱 끔찍했을 수도 있다.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케네디 대통령과 린든 존슨 대통령이 40년 전 별다른 반대 없이 취했던 조치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서구에 대한 도전 
   
▲ <첫번째 희생자>, 2010 - 나타샤 부비에
 

국가가 국제사회의 주체라는 통념을 수용할 때 간과되는 요소는 더욱 많겠지만, 현실에 접근하기 위해 이를 유념하면서 일단 통념을 받아들여 보도록 하자. 그렇다면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은 중국의 부상과 미국 및 “세계 질서(World order)”에 대한 도전, 동유럽의 신 냉전 위기, 테러와의 글로벌 전쟁, 미국의 헤게모니 및 미국의 몰락 등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질 것이다. 
2016년 초 서구 강대국이 직면한 도전과제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외교문제 수석평론가 기디언 래크먼이 제시한 구조로 요약할 수 있다. 래크먼은 서구가 보는 세계질서에 대해, “냉전이 종결된 이후, 압도적인 미군의 전력이 국제정치의 중심이 됐다”고 묘사한다. 그에 의하면, 특히 세 지역, 즉 동아시아, 유럽 및 중동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경우, 미 해군은 태평양을 ‘미국의 호수’로 간주하며, 유럽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회원국의 영토보전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나토 군비 중 무려 3/4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나토는 곧 미국과 같다. 마지막으로, 중동에는 미국의 대규모 해군 및 공군 기지가 위치해 우방을 안심시키고 경쟁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래크먼은 주장한다. 이어 래크먼은 오늘날 국제질서의 문제는 “세 지역 모두에서 기존의 안보질서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및 시리아를 침공했으며, 중국은 근해를 “미국의 호수에서 영유권 분쟁 해역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제는 국제관계에 대해 미국이 “다른 강대국이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권을 형성하는 것을 수용해야 할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래크먼은 “상식적인 얘기지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경제력을 고려하면 미국은 새로운 질서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국제 질서에 대해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주요 세 지역에 대해서 다루겠다.  

동아시아 

‘미국의 호수’와 관련해, 일부는 지난 2015년 12월 중순의 보도내용에 대해 눈살을 찌푸릴 지도 모른다. 보도에 의하면,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일상적인 임무를 수행하던 B-52 전략폭격기 1대가 의도치 않게 남중국해의 중국 인공섬 인근 2해리(약 3.7km) 이내에서 근접 비행했다고 밝혀 미국과 중국 간 분쟁을 악화시켰다.” 70년에 걸친 암울한 핵무기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도발적, 공격적 행동은 지지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핵 탑재가 가능한 폭격기가 나타난 곳이 카리브 해나 캘리포니아 연안이 아닌 점, 그리고 이 해역을 ‘중국 호수’로 만들 의사도 없다는 점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에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중국의 해상 교역로에 일본부터 말라카 해협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등에 입은 적대적 세력이 가득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서쪽으로 교역로를 확대하고 통합을 위한 조심스러운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상하이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등을 통해 계획을 진행 중인데, SCO에는 현재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가 회원국으로 있으며 곧 인도와 파키스탄이 가입할 예정이다. 이란은 옵서버로 참가 중이나, 미국에 대해서는 옵서버 자격을 거부하고 해당지역의 모든 군사기지를 폐쇄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은 고대 실크로드의 현대 버전을 건설함으로써 중국 영향력 하의 지역을 통합하려 하며, 나아가 유럽 및 중동의 산유지역까지 통상로를 이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또한 고속철도 및 파이프라인 확대를 통해 아시아의 통합 에너지·통상 시스템을 신설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는 중이다.
중국이 진행 중인 프로그램 중에는 세계 최고 높이의 산들을 통과해 중국이 개발한 파키스탄 과다르(Gwadar)항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를 통해 미국이 석유 수송에 개입할 가능성을 막으려는 것이다. 중국과 파키스탄은 동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이 방대한 군사지원을 통해서도 하지 못했던 파키스탄 산업 발전에 박차를 가하려 한다. 또한 중국 서부 신장지역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국내 테러 문제에 파키스탄이 나설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과다르 항은 중국의 ‘진주목걸이’, 즉 현재는 상업적 목적이지만 잠재적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 중인 인도양 기지 중 하나다. 중국은 향후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페르시아 만까지 세력 확장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 중국 모두를 소멸시킬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미국의 군사력이 중국의 이러한 행보에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다. 중국은 또한 2015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해 대주주가 됐다. 56개국이 6월 베이징에서의 은행 개관식에 참석했는데 그 중 호주, 영국 등 미국 동맹국 일부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석을 결정했다. 미국과 일본은 참석하지 않았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AIIB가 미국이 거부권을 갖고 있는 브레튼우즈 체제(IMF 및 세계은행)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마찬가지로 SCO가 결국 나토의 대항마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의견도 있다. 

동유럽

두 번째 주요 지역인 동유럽의 경우, 나토 회원국과 러시아 국경에서 심각한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동유럽에 대한 명쾌하면서도 신중한 연구 내용을 담은 저서 <프론트 라인 우크라이나: 국경의 위기>에서 리처드 사카와는 “2008년 8월의 러시아-조지아(그루지야) 전쟁은 사실상 ‘나토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첫 번째 전쟁이었다. 두 번째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였다. 세 번째 전쟁이 발발한다면 인류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논리적인 주장을 펼친다. 서구에서는 나토 확대를 무해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러시아를 비롯해, 다수의 남반구 국가 및 서구의 일부 인사들은 다른 의견을 보인다. 조지 캐넌(1)은 일찍이 “나토 확대는 비극적 실수”라고 경고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미국의 원로 정치인들은 백악관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이를 “역사적인 정책 실수”라고 비판했다. 
현재의 위기는 1991년 냉전이 종결되고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것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유라시아의 새로운 안보 및 정치경제 체제에 대해 두 가지 비전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사카와의 말을 빌리면, “EU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유럽-대서양 안보 및 정치 공동체로 발전해 나가는 ‘범유럽(Wider Europe)’, 그리고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지는 유럽대륙을 형성해 브뤼셀, 모스크바, 앙카라 등 다수의 도시를 중심지로 하되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과거의 분열을 극복하려는 ‘대유럽(Greater Europe)’이 대조를 이루었다.”
소비에트를 이끌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유럽의 드골주의(Gaullism) 및 기타 이니셔티브에 뿌리를 둔 ‘대유럽’을 지지한 대표적 인물이다. 1990년대 시장개혁으로 러시아가 붕괴됨에 따라 ‘대유럽’ 비전도 힘을 잃었으나 러시아가 국력을 회복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필두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제고에 힘쓰면서, 새롭게 부상했다. 푸틴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 함께 “진정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형성하기 위해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르는 ‘대유럽’의 지정학적 통합을 이룰 것”을 여러 차례 촉구했다.
사카와는 이러한 이니셔티브가 “눈에 띄지 않게 ‘대 러시아’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감추는 눈속임에 불과하며, 북미와 서유럽 간 관계 악화를 꾀해 은근한 경멸을 불러일으켰다”고 기술했다. 그의 이런 우려는 유럽이 초강대국과 군소 강대국 모두와 별개로 ‘제3세력’을 형성하고 점차적으로 군소 강대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냉전 초기의 공포에 기인한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동방정책(2) 및 기타 이니셔티브가 그 예다.
소련이 붕괴되자, 서구는 승리에 도취됐다.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 즉 서구의 민주 자본주의가 최종 승리했으며 러시아가 마치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서구의 경제적 식민지로 돌아갈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붕괴 후 나토 확대가 시작됐다. 이는 고르바초프 옛 소련 서기장에게 독일 통일 시 나토 가입을 지지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양보를 이끌어낼 때 나토가 “조금도 동진(東進)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구두 약속을 어긴 것이다. 당시 논의는 동독에 집중됐다. 나토가 독일을 넘어 확대될 가능성을 은밀히 고려했더라도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에게는 언급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토는 독일을 넘어 러시아 국경까지 동진을 시작했다. 나토의 공식 임무는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 해로, 파이프라인 등 중요한 인프라를 보호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또한 널리 알려진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3) 독트린을 UN 규범과 달리 수정함으로써 나토도 미국 지시에 따라 군사적 개입이 가능하게 됐다. 
러시아는 특히 나토가 우크라이나까지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확대 계획은 2008년 4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에 나토 가입을 약속하면서 구체화됐다. 당시 회의에서는 명시적으로 “나토는 우크라이나 및 조지아의 나토 및 유럽-대서양 체제 편입 의사를 환영한다. 우리는 오늘 두 국가의 향후 나토 가입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위키리크스 리포트에 의하면, 2004년 우크라이나의 친서구적인 후보가 결국 대선에 승리한 ‘오렌지 혁명’이 일어나자 미 국무부의 대니얼 프리드는 바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및 유럽-대서양 체제 편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강조했다.
러시아의 우려는 이해할 만하다. 이에 대해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는 미국 국제정치 유력지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기고문에서 “나토 확대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독립시켜 서구권으로 편입하려는 미국의 계획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며,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이를 “러시아 핵심 이익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했다”고 설명했다. 
미어샤이머는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미국은 러시아의 입장을 수용할 수는 없더라도 그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의 말대로 “미국은 다른 강대국이 자국 국경은 물론 서반구 어디든 군사력을 행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국의 실제 입장은 이보다 더 강력하다. 미국은 1823년 먼로 독트린에 대한 ‘성공적 저항(Successful defiance)’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먼로 독트린’(4)이란 미주 대륙에서의 미국의 배타적 영향력을 선언한 것이다. 만일에 미국에 도전할 경우, 쿠바와 같이 테러 공격(Terrors of the earth)(5)과 대대적 금수조치에 직면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바르샤바 조약기구(6)에 실제로 가입하고 멕시코와 캐나다까지 가입을 결정했을 경우, 미국이 취했을 대응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CIA 용어를 빌리자면, 가입을 시도하는 조짐만 있어도 ‘제거’됐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푸틴의 행보 및 동기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비난만 하는 대신에 그 이유와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와 같이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권 

마지막 주요 지역인 이슬람권은 9·11 테러 이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지역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전쟁이 선언된 지역이다. 앞서 레이건 행정부는 취임 후 “문명을 거부한 부정한 세력이 퍼트린 질병 및 현대사회에 역행하는 야만으로의 회귀”(레이건 행정부의 조지 슐츠 국무장관)를 비난하며 테러와의 글로벌 전쟁(GWOT, Global War on Terrorism)을 선언했다. 첫 GWOT는 역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및 중동에 대한 끔찍한 테러 전쟁으로 변모해 아직까지도 그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국제사법재판소가 미국을 규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은 묵살할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바람직한’ 역사는 아니었기에 결국 조용히 사라지게 됐다.     
부시-오바마 행정부의 GWOT의 성공 여부는 직접적 조사를 통해 평가할 수 있다. 전쟁이 선언됐을 때, 테러 공격 대상은 아프가니스탄 부족 일부로 제한됐다. 테러리스트들은 부족민 대부분이 이들을 싫어하거나 경멸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의 환대 원칙에 따라 부족민의 보호를 받았다. 이러한 부족 규범 때문에 미국은 가난한 소작농들이 “2천5백만 달러라는 그들에게는 천문학적인 보상금에도 불구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넘기는 것을 거부했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국지적 군사행동을 제대로 구상했거나, 탈레반과 외교협상만 했더라도 재판 및 판결을 위해 9·11 테러 용의자들을 인도받을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법은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았다. 대신 즉각적인 대규모 공격을 결정했는데, 당시만 해도 탈레반 정권 전복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빈 라덴 인도에 대한 탈레반 정부의 잠정적 제안을 거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당시 제안을 고려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실제 진정성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됐다. 어쩌면 반 탈레반 지도자로 존경받았던 압둘 하크의, 다음과 같은 평가가 맞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그저 힘을 과시하고 승리를 거둬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은 아프간 사람들의 고통이나 인명피해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압둘 하크는 다른 비판세력과 입을 모아, “2001년 10월 미국의 폭격작전으로 인해 탈레반 정권 전복이 성공을 눈앞에 두고 큰 차질을 빚게 됐다”고 비난했다. 아프가니스탄 공격 계획을 수립할 당시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안보팀을 이끌었던 리처드 클락 국장 또한 같은 의견을 보였다. 클락은 당시 회의에서 해당 공격이 국제법에 저촉된다는 지적을 받자,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부시 대통령은 ‘국제변호사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그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지’라고 좁은 회의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 중이던 원조기관들도 강한 반대를 표했다. 이들은 수백만 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이미 아사직전에 있으며 미국의 공격은 더욱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이 어떻게 됐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의 다음 목표는 이라크였다. 미-영의 이라크 침공은 합리적 명분도 없는 21세기의 대표 범죄로 꼽힌다. 이 침공으로 이라크인 수십만 명이 사망했으며, 이라크의 민간사회는 침공 전에도 미영의 제재조치로 인해 이미 황폐화돼 있었다. 이 제재조치를 담당했던 저명한 외교관 두 명은 “대량 학살”과 다름없는 조치라고 비난하며 항의의 표시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한 침공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리고 전국이 파괴되고 현재 이라크 및 지역 전체를 분열시키고 있는 종파 갈등을 야기했다. 놀라운 것은, 충분한 정보를 접하는 지식인들이 이를 두고 태연하게 “이라크 해방”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영국의 국방부 설문조사에 의하면, 이라크인 중 미국의 이라크 내 안보 역할이 정당하다는 의견은 3%에 불과했다.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이 이라크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은 1%도 되지 않았다. 또한 80%는 이라크 내 연합군 주둔에 반대했으며, 대다수가 연합군에 대한 공격을 지지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신뢰할만한 여론조사를 실시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됐으나,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특히 이라크에서 큰 패배를 겪었으며 공식적 전쟁 목표를 포기함에 따라 이라크는 유일한 승자라 할 수 있는 이란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테러와의 전쟁은 다른 지역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리비아의 경우 과거 제국주의 열강이었던 3개국(영국, 프랑스, 미국)이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973호(7)에 동참했다. 그러나 반군의 공습을 지원하면서 이를 곧바로 위반한 바 있다. 그 결과, 평화적인 협상 가능성은 낮아지고 사상자 수는 급증했다(정치학자 알란 쿠퍼만에 의하면 10배 이상에 달함). 또한 리비아를 폐허로 만들고 무장 민병대 간 교전이 계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에는 이슬람국가조직(IS)의 테러 기지로 이용되고 있다. 아프리카 전문가인 알렉스 드 왈에 의하면, 아프리카연합에서 합리적인 외교안을 제시하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도 원칙적으로 동의했으나 제국주의 3개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대량의 무기가 거래되고 지하디스트 활동이 확산되면서 서아프리카(현재 테러살인 1위)에서 레반트지역(8)에 이르는 지역이 테러와 폭력으로 물들었다. 또한 나토 공격에 따라 수많은 난민이 피난처를 찾아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이 또한 소위 “인도주의적 개입의 승리”이며 기나긴 음울한 역사적 기록이 보여주듯 4세기 전 근대역사에 뿌리를 둔 또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폭력의 대가(代價)

요약하면, ‘테러와의 글로벌 전쟁’이라는 쇠망치 전략은 아프가니스탄 구석에 보잘 것 없이 존재하던 지하드 테러를 아프리카부터 레반트, 남아시아를 거쳐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지역까지 확산시켰다. 유럽과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 공격도 조장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 이는 상당부분 정보기관들이 예상했던 바이기도 하다. 테러리즘 전문가 피터 베르겐과 폴 크루익쉥크는 이라크 전쟁의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산한다.
“이라크 전쟁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지하디스트 공격 건수가 연간 7배나 증가했다. 실제로 기존보다 수백 건의 테러 공격과 수천 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더 발생한 것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내 테러 행위를 제외하고만 보더라도, 그 이외 국가들에서 발생한 사망자 발생 공격이 3분의 1이상 증가했다.” 기타 조치들도 이와 유사하게 테러 공격을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주요 인권 단체들, 예컨대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협회(Physicians for Social Responsibility, 미국), 글로벌 생존을 위한 의사협회(Physicians for Global Survival, 캐나다), 핵전쟁 방지 국제 의사회(International Physicians for the Prevention of Nuclear War, 독일) 등은 테러와의 전쟁 12년 간, 주요 전쟁지역 세 곳(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총 사망자 수를 가능한 한 현실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군사 작전에 관한 추가적인 정보와 더불어 해당 국가들에서 발생한 희생자 수 관련 주요 연구 및 데이터를 폭넓게 검토했다. 이 단체들은 ‘2백만이 넘을 수도 있는’ 희생자 수를 ‘보수적으로 추정’해서 약 13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해당 보고서가 출간된 이후, 독립 연구원 데이비드 피터슨이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한 결과, 이 보고서 내용이 언급된 검색 결과를 사실상 한 건도 찾지 못했다. 그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오슬로평화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해당 지역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중 2/3가 외부인들이 자신들의 해결책을 가져와 시행한 지역에서 발생한 내분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물리적 충돌로 인한 사망자의 98%가 외부인들이 자신들의 군사력을 동원해 해당 지역 국내 분쟁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발생했다. 시리아의 경우, 서구 국가들이 IS라고 자칭하는 세력에 공습을 시작하고 CIA가 간접적으로 전쟁에 군사개입을 한 이후 직접적인 충돌로 인한 사망자 수가 3배 이상 증가했다.
위의 군사 개입은 러시아가 전장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의 최신 대전차 미사일이 러시아의 동맹자 바샤르 알 아사드의 군대를 섬멸했기 때문이다. 초기 징후들을 볼 때 러시아군의 폭격도 별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치학자 티모 키비마키가 검토한 증거들은 “자발적 의지를 가진 국가들의 연대가 싸우는 보호명목의 전쟁은 세계에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됐으며, 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 전체의 50% 이상이 이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게다가 시리아를 포함해 이와 비슷한 대부분의 경우, 외교적 합의의 기회들이 있었으나 무시된 경우가 많았다. 이는 기타 끔찍한 상황들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1990년대 초의 발칸반도 전쟁, 제 1차 걸프전쟁,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범죄인 인도차이나 전쟁에서도 그러했다. 이라크의 경우, 이에 대한 의문조차 생기지도 않지만 분명 여기에는 몇 가지 교훈이 있다.
취약한 사회를 상대로 쇠망치를 휘두르는 폭력적인 전략을 사용했을 때, 그를 잇는 일반적인 결과들에는 그리 놀라울 것이 없다. 윌리엄 포크가 ‘반란’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는 <폭력 정치>는 단순히 권력이나 지배가 아니라, 인간에 미치는 결과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읽어볼 만한 책이다. 현대의 물리적 충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정책 계획자들은 특히 읽어봐야 한다. 포크는 계속 반복되는 패턴을 폭로한다. 침략자들은 (자신들은 진정으로 친절을 베풀 마음에서 그랬다고 주장할 테지만) 당연히 현지 주민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 주민들이 처음에 소규모로 반기를 들었던 것이 강력한 대응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는 곧 반항과 저항세력 지지가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진다. 침략자들이 물러갈 때까지 (또는 거의 학살에 가까운 방법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 폭력의 빈도는 계속 높아지는 것이다.

알카에다의 게임 플랜에 놀아나기

오바마 대통령이 글로벌 테러리즘 분야에 선보인 놀랄 만큼 혁신적인 드론 암살 작전도 위와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 종합해보면, 드론 공격은 언젠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인물들을 살해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테러리스트들을 키워내고 있다. 반란 세력의 지도자를 제거함으로써 해당 반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노력이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동안 비난받던 지도자는 더 젊고, 더 결단력 있으며, 더 잔인하고, 더 효과만점인 지도자로 대체될 것이다. 
포크는 이와 관련한 많은 예들을 제시한다. 군사 역사가인 앤드류 콕번은 그의 중요한 저서 <킬 체인(Kill Chain)>에서 마약, 그 후에는 테러 ‘킹핀(kingpin)’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의 작전들을 오랜 기간에 걸쳐 조사했고,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누구나 이러한 패턴이 계속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상할 수 있다. 
틀림없이 현재 미 전략가들이 ‘IS의 칼리프’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제거할 방법들을 물색 중일 것이다. 그런데 알바그다디는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의 숙적이기도 하다. 저명한 테러리즘 학자로 미 육군사관학교 테러퇴치센터의 선임연구원인 브루스 호프먼은 작전성공 시 벌어질 일들을 전망하고 있다. 그는 “알바그다디의 사망은 (알카에다와) 화해의 포석을 놓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영역, 규모, 야심, 자원 등의 측면에서 전례 없는 테러리스트 연합세력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포크는 스페인 게릴라들에 패한 나폴레옹에 영향을 받아 앙리 조미니가 저술한 전쟁관련 논문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논문은 수 세대에 걸쳐 미 육군 사관학교 생도들의 교과서로 사용됐다. 조미니는, 주요 강대국들의 개입이 ‘의견의 전쟁’ 그리고 거의 대부분 ‘국가적 전쟁(national wars)’을 야기한다고 관찰했다. 포크가 묘사한 역학 관계에 의하면 처음에는 그런 패턴이 아니었어도 투쟁과정을 거치며 그렇게 변해간다. 조미니는 “정규군 지휘관들이 질게 뻔한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무분별한 행동이며, 명백한 승리를 거뒀다 하더라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알카에다와 IS를 자세히 분석한 연구들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두 테러 세력의 게임플랜을 정확히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목표는 “서양 국가들을 가능한 한 깊숙이, 적극적으로 수렁 속에 끌어들이고, 오래도록 계속되는 잇단 해외 전쟁으로부터 미국 및 서방세계가 영원히 발을 빼지 못하게 해 기운을 빼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약화시키고, 자원을 쏟아 붓고, 폭력의 수위를 높이게 됨으로써 포크가 언급한 역학 관계의 불씨를 지피게 된다.
지하드 운동과 관련해 가장 견식 있는 학자 중 한 명인 스콧 아트란은 다음과 같이 추산했다. “9.11 테러 공격에 든 비용은 40~50만 불에 불과했던 반면, 이에 대응한 미국과 동맹국들은 그보다 약 천만 배가 넘는 비용을 군사 및 안보에 썼다. 엄밀히 손익분석을 따져볼 때, 이 테러 공격은 빈 라덴이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갈수록 그 성과를 더해가고 있다. 주짓수 같이 완전히 비대칭적인 싸움인 것이다. 결국, 예전보다 형편이 더 나아졌다거나 전반적인 테러 위험이 감소했다고 그 누가 주장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은연중에 지하드의 각본에 따라 계속 쇠망치를 휘둘러댄다면, 지하디즘은 대중들에게 더욱 폭넓게 어필하며 훨씬 극악무도한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아트란은 과거를 교훈삼아 “우리의 대응전략들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충고한다. 알카에다와 IS에게는 자신들의 명령을 잘 따라주는 미국인 조력자들이 있다.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로 “테러 세력에 융단폭격을 가하겠다”고 공언한 테드 크루즈가 그 중 한 명이다. 또 다른 예로는 <뉴욕타임스>의 중동 및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로 테드 크루즈와는 스펙트럼의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는 토머스 프리드먼이다. 프리드먼은 2003년 ‘찰리 로즈’ 토크쇼에서, 이라크에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테러리즘 거품 같은 상황이 있었어요. 우리가 할 일은 그 지역으로 가서 그 거품을 터뜨리는 것이었죠. 우선 그 지역으로 가서, 음, 엄청 큰 막대기를 꺼내 들고 그 지역 심장부에서 거품을 찔러서 터뜨려야 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단 하나 뿐이었죠. 우리 미군들이 바스라(Basra)부터 바그다드까지 가가호호 찾아가서 말하는 겁니다. ‘이해 안 가는 게 있는가? 당신들은 우리가 우리의 개방된 사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이 거품에 대한 환상을 우리가 그냥 내버려 둘 것 같은가? 자, 그러니 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시지’라고 하는 거죠. 찰리, 바로 이 전쟁이 그런 겁니다.”
무슬림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뜻일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며

아트란과 기타 전문가들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해결책들이 있다. 우선, 신중히 수행된 연구가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설득력 있는 내용들을 인정해야 한다.
“지하드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 전통, 영웅, 도덕관에 있는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다. 그리고 IS는 이러한 점을 꿰뚫고 있다. 이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아랍-무슬림 세계 사람들 대부분에게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세력이라고 할지라도, IS에 대해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오늘날 가장 치명적인 테러공격을 부추기는 것은 코란이 아니다. 동료들 앞에서 영예와 자부심을 약속하는,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다.”
실제로 지하드 전사들 중, 이슬람 경전이나 신학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갖춘 이는 별로 없다. 포크는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최선의 전략은 다수 국가가 참여하고, 복지에 기반을 둔, 심리적으로 만족감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IS를 지탱하고 있는 증오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려 줄 것이다. 구성요소는 이미 정해져있다. 집단적 요구사항, 과거에 저지른 죄에 대한 보상,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요구가 그것이다. 과거의 죄에 대해 고심해서 다듬은 표현으로 사죄한다면,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거둘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난민 수용소, 또는 “파리 교외지역의 가축이나 살법한 집들과 암울한 빈민 주택단지” 등에서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트란은 “그러한 곳에 사는 꽤 많은 사람들이 IS의 가치를 용인하거나 지지하는 것을 우리 연구팀은 발견했다”고 서술한다. 무조건 반사적으로 폭력에 의지하는 대신, 외교와 협상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그동안 계속 진행돼 왔으나 2015년이 돼서야 유럽에서 중요한 문제로 부상한 ‘난민 위기’에 명예롭게 대처하는 것이다. 즉, 처참한 상황에 놓인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레바논, 요르단, 터키의 난민 수용소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초월해서, 자칭 ‘문명국’이라는 나라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볼품없는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행동을 개시하는 자극제가 돼야 한다.
엄청난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난민을 발생시키는 나라들이 있다. 우선 미국, 다음은 영국과 프랑스다. 한편, 서양 국가들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달아난 이들을 비롯해 엄청난 수의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중동지역 국가들, 즉 레바논(1인당 난민수로 보면 단연 1등이다), 요르단, 그리고 붕괴 이전의 시리아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일부는 앞에 언급된 국가들과 겹치는데, 중동뿐 아니라 미국의 국경이남 ‘뒷마당’ 국가들의 난민 발생의 원인을 제공하고도, 이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나라들이 있다. 생각하기 고통스러운, 기이한 현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민 세대의 기원은 훨씬 더 이전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테랑 중동 기자 로버트 피스크의 보도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IS가 제작한 최초 영상 중에는 불도저가 등장해서 이라크와 시리아 사이의 국경을 표시했던 모래 성벽을 밀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기계가 모래벽을 부서뜨릴 때, 카메라는 모래에 놓인 포스터에 수기로 쓰인 문구를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종말’이라고 적혀 있었다.”
중동 지역민들에게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서구 제국주의의 냉소주의와 잔인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이다. 제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는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공모해 아랍지역의 영토를 인위적으로 분할했다. 이는 아랍지역 주민들의 이익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였다. 또한, 아랍인들을 연합전에 동참시키기 위해 내걸었던 전시 약속을 어긴 것이다. 이 협정은 비슷한 방식으로 아프리카를 초토화시켰던 유럽 국가들의 행태를 쏙 빼다 박았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상대적으로 평온했던 오스만 제국 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곳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이후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반복돼온 서구의 개입은 그 지역 사회를 무너뜨린 긴장과 갈등, 분열을 악화시켰다. 그 최종 결과가 바로 무고한 서구국가들이 힘들어하는 ‘난민 위기’다. 독일은 유럽의 양심으로 부상했다.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약 8천만 명의 인구가 사는 독일은 처음에(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1백만 명에 가까운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반면, 빈곤 국가인 레바논을 보자. 대부분 이스라엘 정책의 희생자로서 UN난민 기구 UNRWA에 등록된 약 5십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더해, 현재 레바논 인구의 1/4에 해당되는 약 1백4십만 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은 자신들이 아프리카에서 황폐화시켰던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난민 문제에 신음 중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도움이 없지 않다. 아마 콩고와 앙골라 사람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이제 유럽은 시리아의 끔찍한 상황에서 도망친 이들이 유럽 국경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터키(약 2백만 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있다)를 매수할 방법을 찾고 있다. 이 방법은 오바마가 멕시코에 압박을 가해 레이건 대통령의 테러와의 글로벌 전쟁 여파를 피해온 가엾은 사람들, 그리고 최근 거의 오바마 혼자 정당화한 온두라스의 군사 쿠데타(이로 인해 해당 지역에서 가장 끔찍한 공포국가가 됐다) 등을 피해 나온 사람들이 미국 국경지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와 유사하다. 어떤 말로도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미국의 대응방식을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적합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맨 처음 제기 했던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우리에게는 어쩌면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질문이 필요할지 모른다.
“어떤 원칙과 가치가 세상을 지배하는가?” 이 질문은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의 국민들이 가장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들은 이전 세대들의 고군분투 덕분에 자유, 특권, 그리고 기회라는 흔치않은 유산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 국가에 들어오는 엄청난 수의 난민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운명적인 선택과 마주하고 있다.  



글·노엄 촘스키 Noam Chomsky
MIT 공대에서 언어학 교수를 역임하며 우수한 이론들을 내놓았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지배질서에 대한 비판의 글들을 써 오며 세계적으로 반항하는 지식인의 상징이 되었다. 저서로는 〈테러리즘의 해부. 911 테러와 세계질서〉,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비밀, 거짓말, 그리고 민주주의> 등이 있다. 


번역·권혜숙/ 오정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조지 프로스트 캐넌(George Frost Kennan): 미국 외교관 출신 역사학자로 미국의 대소 봉쇄전략을 창안해 “냉전의 설계자로” 불렸다. 
(2) 동방정책(Ostpolitik)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동독을 정상적 국가로 인정하고 중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화해를 추진함으로써 독일 통일과 유럽 평화의 초석을 쌓은 정책을 말한다. 
(3)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은 2001년 ‘개입과 국가주권에 관한 국제위원회(ICISS)’ 보고서에 처음 등장한 용어로, 특정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할 능력을 잃거나 인권유린 등의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할 경우 국제사회가 인도주의적 개입을 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후 2005년 UN 세계정상회의 결의문에 명시됐다.   
(4) 먼로 독트린 또는 먼로주의는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1823년 연두교서에 밝힌 외교 방침으로 유럽 등 외부 세력의 미주 대륙 식민화 또는 주권 국가 간섭을 거부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5) “The terrors of the earth”는 케네디 행정부가 쿠바 피그만 침공을 계획하면서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당시 보좌관 아서 슐레진저의 케네디 평전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6) 1955년 나토 창설에 대응해 동구권 8개국이 결성한 군사 동맹 조약 기구. 1991년 소련 해체 후 동 기구도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7) 2011년 3월 19일 UN 안보리에서 통과된 결의안으로 리비아와의 무기거래 금지, 비행금지구역 설정, 자산 동결 등을 주 내용으로 했다. 
(8) 레반트(Levant)는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이 위치한 지역을 가리킨다. 

※이 글은 노엄 촘스키의 신작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가?(Who Rules the World?)>의 내용 일부를 1, 2부로 나누어 발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