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를 위한 프랑스 노동개악
2016-05-30 소피 베루
사회당 출신인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3월(4월호 이므로)주 35시간 노동제의 폐지, 해고요건 강화 등이 포함된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고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직권으로 통과시킨 것이므로, 반대파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프랑스 정부와 친 정부 언론은 ‘부유한 대학생 대(對) 고용불안 속 저학력 청년’, ‘노동자 대(對) 실업자’의 구도로 몰아가며, 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을 집요하게 깎아 내리고 있다. 그와 동시에, 기업 차원의 협약이 가져올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미리암 엘코므리 노동부장관의 노동법 개혁안의 발표에는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이 병행됐다. 정부는 이번 개혁안의 취지에 대해, 사회적 대화를 ‘용이하게’ 하는 것, 노동자 밀착형 협약 즉 기업 차원의 협약을 활성화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들의 의견을 직접 수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세 가지 주장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첫 번째 주장은 현재의 노사관계를 평가절하하면서 마치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두 번째 ‘밀착형 모델’은, 노동자들과 최대한 가까이에서 협상하면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입지와 권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마지막 세 번째 주장은 기업 내 교섭을 통해 사용자들이 보다 많은 자율성과 자유를 누리게 되면, 이것이 고용창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기업 내 교섭은 이미 프랑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행이 대폭 확대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노동조합의 대표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기업 내 교섭에 할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본인들도 강조하듯 정작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은 적다. 2014년 체결된 기업 차원의 협약은 3만6,500 건에 달한다.(1) 기업 내에는 이미 임금, 노동시간 조정, 직장 내 평등, 종업원 저축, 장애인 고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연례 교섭의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례적인 경우에만 교섭 성사의 의무가 있다. 임금 인상 등 노동자에게 유리한 조항을 신설하기 위한 교섭 시에는 합의를 도출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렇듯 전혀 참신할 것이 없는 ‘노동자 밀착형’ 교섭에 관한 장밋빛 담론은, 프랑스에서 노동권이 구축돼 온 역사적 과정의 근간을 이룬 ‘유리의 법칙’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사실상의 목적이다. 유리의 법칙에 의하면, 기업별 협약은 산별 협약(산업단위의 단체협약)에 규정된 내용보다 유리해야 한다. 또한, 산별 협약은 노동법보다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규모와 무관하게 노동자들이 기본적 권리는 물론, 산별 합의사항도 누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그 취지다. 산별 협약은 모든 기업에게 동일한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해당 업종을 규제하는 장치다. 그와 동시에, 중소기업들을 사회적 덤핑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논평가들은 프랑스의 낮은 노조가입률(경제활동인구의 8~9%)을 종종 언급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단체협약 적용을 받는 프랑스 노동자의 비율이 90%에 달하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위권에 속한다는 말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이란 이름의 교묘한 기만
‘규범 간의 위계질서 전복’이라는 목표에는, 기업 차원에서만 적용되는 협약 프레임을 구축해, 규칙 제정을 직장 단위로 세분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이 의도는 아직 실행 단계는 아니지만, 30년도 더 전부터 이미 조짐을 보여 왔다. 정부와 입법자들이 근무시간 조정에 관해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산업별 단체협약이나 법률에 규정된 것보다 노동자들에게 덜 유리한 내용의 기업차원 협약 체결을 허용했다. 2004년 5월 4일자 사회적 대화에 관한 법률, 이른바 ‘피용(Fillon)법’의 도입과 함께 이러한 추세는 가속화됐다. 이 법률은 “산별협약이 이를 명시적으로 금하지 않는 한, 기업별 협약은 산별 협약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2) 이제 마뉘엘 발스 총리는 이 법률을 근무시간에 그치지 않고 해고요건에까지 확대 적용하려 하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이러한 교섭 분산화 추세를 강화했다. 결국 노동법의 기본철학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노동법을 노동자가 아닌, 기업을 보호하는 법으로 간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유례없는, 그것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이 자행하는 공세는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조의 역할을 저지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엘코므리 장관의 개혁안이 가지는 목표 중 하나는 노조를 부분적으로나마 교묘하게 무시하는 것이다(적어도 몇몇 노조만이라도 말이다).
2008년 8월 20일자 ‘사회민주주의 혁신 및 노동시간 개정에 관한 법률’이 노조들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의 대표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대폭 개정했던 것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선택은 놀랍다. 2008년 법률 시행 이후, 한 노조가 종업원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기업선거에서 득표율이 최소 10%에 달해야 하며, 협약에 서명할 권리를 가지려면 최소 30%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그러나 합계 득표율이 50%에 달하는 노조들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간 직장 내에서 지지기반은 협소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대표성 추정’(박스 기사 참조)의 혜택을 보는 소수 노조들도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혁과 더불어 이러한 관행은 사라졌다. 이전까지는 이러한 노조도 종업원 전체를 대표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2008년부터 기업선거 결과가 노조의 대표성과 교섭 자격을 직접 좌우하게 된 것이다.
엘코므리 장관의 개혁안은 2008년 법률의 일부 조항에 반기를 들고 있다. 노조의 대표성 판정기준 개혁이 프랑스경영자연맹(MEDEF), 그리고 프랑스민주노동동맹(CFDT)을 비롯한 일부 노조의 기대에 온전히 부응하지 못한 듯하다. 이들이 원한 것은, 기업 내 교섭이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 조성이었다.
사실 2013년 최초로 프랑스 전국 노동조합의 대표성 평가 결과가 발표됐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군소’ 노조들이 자취를 감추지도 않았으며, 신생노조들이 변방으로 밀리지도 않았다. 전국자율노조연맹(UNSA)이나 연대노조(Solidaires)가 이를 증명한다. ‘쉬드(SUD)’노조(3)의 경우, 오히려 개혁의 덕을 본 경우다. 개혁 이후 대표성을 입증하기 위해 법정에서 싸울 필요가 없어졌고, 민간부문에서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경영진이 추구하는 방향에 반대하는 노조들은 개정된 규칙 덕분에 과반수를 구성해 경영진의 계획을 일부 저지할 수 있게 됐다. 결국 2008년 개혁은 사용자가 추구하고, 일부 노조가 바라는 방향의 ‘맞춤형 사회적 대화’를 선사하지는 못했다. 노조의 역할 및 이들이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대표하는 능력을 제고하겠다는 현 정권의 의지는 여기서 비롯된다.
엘코므리 법안은 찬반투표라는 무기를 다시금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 무기를 사용자 측의 제안을 승인하려는 소수 노조들에게 쥐어주려고 한다. 기업선거에서 50% 이상을 득표한 노조 연대가 있는 기업에서 찬반투표제는 ‘개혁파’ 노조들을 위해 고안됐다. 이들 노조는 선거 결과에 따라 대표성을 인정받은 노조를 통하지 않고 직접 노동자들의 의견을 물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노동자와 보다 가까운 교섭을 추구한다는 구실을 앞세우지만, 실상 강경 노조를 교묘하게 무시하려는 심산이다.
이 찬반투표제의 도입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 제도가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사용자가 제시하는 기업의 상황을 고려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직접민주주의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사용자는 분명 온갖 중요한 요소들을 감춘 채 기업 상황을 제시할 것이다.
기업마다 목표가 파편화되면, 노동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 감소와 노동시간 증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일자리가 달려있는 사안에 대해 어떻게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와 관련해 모젤에 위치한 스마트사 공장의 사례를 주목해보자.
2015년 9월, 스마트사 경영진은 노조에 압력을 가해 합의안에 서명을 받아낼 요량으로, 직원들을 대상으로는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주당 노동시간은 39시간으로 되돌리고, 37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는 안건이었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이 안건에, 정규직의 56%가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스마트사의 기업선거에서 합계 득표율이 50%가 넘은 노동총동맹(CGT)과 프랑스민주노동동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이 합의를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노동법이 통과될 경우 이러한 노조의 저지는 불가능해진다.
기업이라는 사회적 공간 내에서는 최대한 완벽한 정보와 찬반토론을 토대로 결정을 내릴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용계약은 사용자와 노동자 간에 평등한 관계가 아닌 비대칭적인 종속관계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적 공간과 거리가 멀다. 또한, 사용자가 압력을 행사해 소수 노조에게 투표를 제안토록 하고 노동자들의 투표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4) 게다가 민주주의 형태에 관한 정치용어를 빌자면 ‘노동공동체’는 결코 존엄성을 띠지 않는다. 투표권자의 범위는 기업의 법적 경계선에 따라 결정될 뿐, 해당 사업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산업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이 진행되면서 기업의 활동사슬은 대폭 분화돼 다수의 (중소)기업들로 나뉘거나 하청업체 조직망으로 편입됐다. 스마트사의 예를 다시 살펴보자. 하청업체에서 파견된 임시직 노동자도 엄연히 노동시간 조정 결정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투표에서는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피아트사의 경영진도 공장폐쇄를 내걸고 사업장을 돌아가며 수없이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결국 경영진들은 사회적 성과물을 파괴하고 강성 노조의 영향력을 축소시켜, 그룹 차원에서 어떤 저항의 움직임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5)
끝으로, 투표권을 개별적으로 행사(노동자 1명 당 1표)하는 찬반투표제는 같은 기업 내 직원들(예를 들어, 노동자와 관리직) 간에도 노동조건과 임금이 불평등하고 이해관계가 상충된다는 점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찬반투표제가 도입되면 취약한 노동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집단대표제 형태가 힘을 잃게 된다. 앞서 언급한 스마트사의 찬반투표에서 관리직 385명 가운데 74%가 협약에 찬성했다. 반면 공장노동자들의 경우 367명 중 39%만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처럼 직접민주주의 형식을 통해 아무리 그 주도권을 노조에게 주더라도 본래의 의미가 크게 상실될 우려가 있다. 즉, 직원들 간의 호혜적인 협력에 따른 노동의 논리가 아니라,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논리에 매몰되는 것이다.(6) 노사관계의 여건과 수단을 심도 있게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기업 내에 가둔다면, 기업의 논리를 유일한 대안처럼 강요하는 것이 된다. 중요한 핵심은 일체 제거한 노동 민주주의 개념을 노동현장에 적용하는 셈이 될 것이다.
글·소피 베루 Sophie Béroud
리옹 2대학 정치학 교수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주요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2> 등이 있다.
(1) ‘2014년 단체교섭 종합보고서’, 프랑스 노동·고용·직업교육·사회적대화부, 2015년 5월.
(2) 프랑스정부 법무행정정보국, www,vie-publique.fr
(3) 연대, 통합, 민주(Solidaire, Unitaire, Démocratique)의 첫 글자를 따서 명명한 쉬드(SUD)는 연대노조(Solidaires)에 속해 있다.
(4) ‘아니오, 기업은 평온한 대화 공간이 아닙니다’, Guillaume Gourgues 인터뷰, <뤼마니테>, 2016년 2월 22일자.
(5) Cf. Guillaume Gourgues, Jessica Sainty, ‘찬반투표의 덫에 걸린 기업교섭. 이탈리아 피아트 공장의 새로운 기업협약이 주는 교훈(2010~2011)’, <노동사회학>, vol. 57, n° 3, 파리, 2015년 7월-9월.
(6) Cf. Isabelle Ferreras의 저서 <자본주의를 통치한다? 경제의 양원제를 위해>(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파리, 2012년)에 관한 토론, <SociologieS>, 툴루즈, 2016년 3월. http://sociologies.revues.org
박스기사
대표 노조란 무엇인가
2008년 개혁 이전에는 노동총동맹(CGT), 노동자의 힘(FO), 프랑스민주노동동맹(CFDT), 프랑스기독교노동자동맹(CFTC), 프랑스관리직총동맹(CFE-CGC) 등 5개의 노동조합이 ‘부인할 수 없는 대표성 추정’의 적용을 받았었다. 따라서, 이 5개 노동조합은 굳이 대표성을 입증해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2008년 8월 20일자 ‘사회민주주의 혁신 및 노동시간 개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각 노조의 대표성은 선거 결과에 따라 결정되게 된 것이다. 2013년 처음으로 노조별 대표성 판정 결과가 발표됐다. 여기에는 2009년에서 2012년 사이에 실시된 기업위원회 위원 선거(또는 종업원 대표 선거), 2013년 12월 초소형 기업에서 실시된 선거, 그리고 2013년 1월 농업회의소 노동자 대표단 선거 등 여러 선거의 결과가 취합 및 반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