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화물운송업자들의 공허한 투쟁

2016-05-30     엘렌 리샤르

 


러시아의 사회적 위기는 외교 분야에서 올린 성과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을까? 지난 가을, 새로운 세제 신설에 반발한 화물운송업자들의 시위는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는 일단 급한 불부터 껐다. 다른 사회계층을 대할 때와는 달리, 이 회색경제에 속하는, 영세개인사업자들의 조합 활동에 대해 비교적 정중히 대우했다.


3월 7일, 모스크바 북동부 외곽에 위치한 힘키. “저들은 화물운송업자의 호주머니를 털고, 연금생활자를 발가벗기려 한다.” 쇼핑센터 앞에 수십 대의 트럭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물가 인상, 화물운송업자(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세금은 결국 모든 이들과 연관된 문제다.” 화물운송업자들이 트럭 앞 유리창마다 붙여놓은 전단지에는 적힌 문구다. 그들은 수북이 쌓인 팔레트 위에 올라서더니, 트레일러 쪽으로 걸어갔다. 아직 농성장을 이탈하지 않은 화물운송업자들 사이에 트레일러는 사령부 역할을 했다. 그곳에는 큼지막한 테이블과 소시지를 구워먹는 버너, 프린터기 등 몇 가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불현듯 대화가 뚝 멈췄다. 오후 7시. 사복경찰 두 명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사실상 힘키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천막농성장’에는 여전히 항복을 거부하는 최후의 화물운송업자들이 집결해 있다. 그들은 올 겨울 러시아 수십 지역을 휩쓸고 지나간, 한 혜성 같은 노동연대운동의 꼬리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이후 가장 많은 수가 참여한 사상초유의 대규모 노동분쟁이었다”고 러시아 노동분쟁 현황을 격월로 발표해온 사회·노동권센터가 웹사이트에서 설명했다. 러시아의 경우 180만여 대의 트럭이 화물운송을 책임지며, 화물운송업자의 수는 모두 2백만 명에 달한다.(1) 처음 이 노동자연대운동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동업종사자들의 참여율은 매우 높았다. 가령 지난 가을 코카서스 북부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이 지역에서는 많은 자국의 화물운송업자들이 이란·아제르바이잔·터키 등에서 생산된 상품을 러시아에 공급하고 있다)에서만, 교통 차단 등 기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무려 1만7천 명에 달했다.(2) 그 외 지역에서도 11~2월, 수백 회의 집회가 조직됐다. 그러나 그날 저녁 힘키 천막농성에 참여한 노동자의 수는 9명에 불과했다. 그동안 러시아 정부는 크림반도 강제병합에 따른 서방의 제재, 2015년 유가 하락에 의한 경기 침체(2015년, -3.7%)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비교적 탄탄한 여론의 지지를 받아왔다.(3) 그러나 화물운송업계의 저항은 친 정부 여론에 흠집을 내고 말았다. 이제 실질적인 소득 감소(-4%)를 감내해야 하는 시민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라도 한 것일까? 현 위기로 가장 직격탄을 맞은 것은 화물운송업자들이었다. 화물운송업계는 가계 소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다. 2015년 러시아의 가계 소비는 무려 7.5%나 추락했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 11월 “12톤 이상 화물차량에 연방도로 파손복구를 위한 통행료를 물린다”는 내용의, 일명 ‘플라톤세’가 신설됐다.
화물운전사들은 이중고를 토로했다. 여기저기 움푹 팬 포트홀로 악명 높은 러시아 도로는 차량 제동장치를 못 쓰게 만들고 운전자의 허리를 망가뜨렸다. 그런데 이제는 그에 대한 비용까지 부담하라니! 더욱이 새 제도가 도입되면 화물운송업자들은 밀착감시를 받게 된다. 운행 거리를 엄격히 계산하기 위해 차량에 GPS 장비를 설치해야 하는 것은 물론, 운송 전 인터넷 사이트에 일일이 운행 루트를 입력해야 한다. 11월 11일 시작된 화물운송업계의 교통차단 운동은 이후 점차 확대됐다. 급기야 일부는 모스크바에 집결해, 외곽 고속도로를 봉쇄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미흡한 조직력에 경찰의 감시망을 피하지 못하고 이 계획은 끝내 좌절됐다. 12월 초 대부분의 차량은 모스크바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채 진입이 차단됐다.

운송업자들의 피눈물로 
측근 배를 불리는 푸틴

중소화물운송업자 권익보호단체 ‘화물운전기사’ 대표 발레리 보이트코는 “화물운송량이 최근 10~15% 가량 줄었다. 하지만 운송량 감소보다 더 업계를 위협하는 것은 무려 30%에 달하는 수익성 감소다”라고 지적했다. 사실 ‘플라톤세’는 다른 비용이 모두 오른 상황에서 도입됐다. 화물운송업계는 수입 의존율이 높은 교체부품 부담이 늘었다. 원흉은 루블화 하락이다. 지난 2월 루블화는 1998년의 가치평가절하 이후 최저 수준인 1달러 당 80루블까지 하락했다. 게다가 원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주유소 판매 소비자가격이 2년 새 무려 10%나 인상됐다. 석유소득 감소로 인한 피해를 상쇄하기 위해 정부가 새로운 세제를 도입한 탓이다. 
가령 지난 4월 경유에 붙는 세금은 무려 20%가 인상됐다. 그러나 운송업계의 고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GPS 설비 장착에서 위반차량 단속을 위한 신규 순찰차 도입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신규제도의 관리를 RT 인베스트 트랜스포트 시스템에 일임했다. 문제는 이것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교분이 두터운 러시아의 재벌 이고르 로텐버그의 아들 아카디 로텐버그가 소유한 회사라는 점이다. 분노한 화물운송업자들 사이에 일명 ‘로텐버그세’라고 불리는 이 ‘플라톤세’ 덕분에 푸틴 대통령은 사실상 화물운송업자들의 등골을 빼서 측근의 배를 불려주고 있는 셈이다. 
일종의 ‘기브앤테이크’라고 봐야 할까.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또 다른 재벌 젠나디 팀첸코가 퇴짜 놓은 정부 사업을 로텐버그는 수용했으니 말이다. 케르치 해협에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교량을 건설하는 이 사업에는 최종비용이 얼마나 투입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로텐버그가 흔쾌히 필요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우크라이나의 봉쇄작전으로 통행에 불편을 겪는 크림반도와의 중요한 연결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거의 모든 개인화물운송업자들이 ‘플라톤세’에 반기를 들고 있다. 2백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러시아 제2대 급여노동자단체 ‘노동회의’(4)의 대표 보리스 크라브첸코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형 또는 중견 화물운송기업들은 대부분 ‘플라톤세’에 긍정적입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업계 재편이 이뤄질 테니까요. 따라서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경영자단체는 시위에 참여 중인 화물운송업자들과는 입장이 다릅니다.”
그들과 달리 시위에 참여 중인 화물운송업자들은 대개 1~5대의 트럭을 소유한 영세 개인사업자들이다. 전체 화물운송 기업의 70%가 대개 여기에 속한다. 보이트코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2011년 정부가 면허시스템을 철폐했습니다. 규제 철폐로 무자격 운전기사들이 대거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지요. 놀라운 일이지만, 현 정권의 경제 자유화 수준은 프랑스, 독일보다 더 높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업계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화물운송업자들은 단지 새로운 세금 도입에 반대해 반기를 든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종말에 위협을 느낀, 독립성을 중요시하는 한 사회계층의 분노로 이해할 수 있다. 화물차 2대를 보유한 개인운송사업자로 힘키 천막 농성에 참여 중인 안드레이 바주틴이 힘주어 말했다.
“그들의 속셈은, 우리를 시장에서 몰아내고 결국 우리를 대기업의 월급쟁이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1,500km 떨어진 첼랴빈스크(우랄산맥 남동부)에서는 10여 명의 영세화물운송업자들이 ‘스토인카’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스토인카란 화물기사들이 다음 배송 전 잠시 들러 차량 점검 등을 하며 대기하는 장소다. 분위기는 비수기처럼 한산했다. 화물차 사이로 쌓인 눈은 4월이 돼야 녹을 것이다. 그러나 적재할 짐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차량 밑의 눈은 이미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덤프트럭 한 대를 보유한 개인화물운송사업자 아나톨리 스타히프가 말했다. 
“화물차들이 죄다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위기가 끝났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 같습니다. 빚더미에 깔려 죽을 지경입니다.”
대부분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화물운송업자들 중에서, 유독 마른 체구의 한 사람이 눈에 띠었다. 그의 이름은 안톤 크릴로프. ‘스토인카’의 주인이자 영세화물운송회사를 운영 중인 알렉산드르 타타린체프가 크릴로프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얼마 전 수술을 했어요. 종일 운전대를 붙들고 살다 결국 위 절반을 잃었어요.”
인근도시 미아스에 소재한 영세개인화물운송사업자단체 대표 니콜라이 마트베예프가 진지한 얼굴로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화물기사들은 살인적인 배송 스케줄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대충 식사를 합니다. 차안에서 중국의 면 음식으로 허기만 때우고 따뜻한 물을 마셔 배를 채우죠.”
우랄산맥 어귀에 자리한 첼랴빈스크는 서시베리아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극동지방을 운행하는 화물기사들을 흔히 ‘짐니키(겨울운전수들)’라고 일컫는다. 극동지방으로 장거리 운행을 가는 경우 차량 고장을 대비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여러 대가 동시에 움직인다. 한 화물 운전사가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일전에 아쿠티아를 방문했을 때는 꽁꽁 얼어붙은 레나 강 위를 1,000km이상 달리기도 했답니다.”
도로망이 형편없는 극동지역에서는 때때로 꽁꽁 얼어붙은 강이 교통로가 되기도 한다.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 40°C로 내려간다. 따라서 휘발유가 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밤새도록 시동을 켜놓아야 한다. 스타히프가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결국 바보처럼 월급쟁이 운전수가 될지 모릅니다. 사실 많은 동료들이 이미 트럭을 내다 팔고 슈퍼마켓 체인의 운전기사가 되고 있어요. 하루 일하고 이틀을 쉬는 식으로, 한 달에 4만 루블(2016년 4월 기준 약 540유로)을 번다더군요.”
그러나 사실 그 정도 수입이면, 개인 트럭 운전기사가 화물차를 몰고 얻는 순수 소득(중소화물운송업자 권익보호단체, ‘화물운전기사’에 따르면 4만~7만 루블)과 별 차이는 없다. 

 
회색경제 속에 사는 프리랜서 화물기사들

반면 독립화물운송사업자(프리랜서 화물기사)들은 월급쟁이 운전사들보다 훨씬 복잡한, 미로 같은 회색경제 속에 살고 있다. 타타린체프는 “법을 지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중량 규제를 예로 들며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했다. 개인화물운송사업자들은 일관성이 결여돼 있기 일쑤인 복잡한 규제 법안을 이해하기 어렵다. 반면 벌금을 협상하거나, 적재 중량을 낮추어 신고하거나, 월급쟁이 기사들에게 현금으로 보수를 지급하는 등 ‘융통성’에 매달려 살아간다. 러시아 제2대 급여노동자단체 ‘노동회의’의 대표 보리스 크라브첸코가 설명했다.
“도로운송 매출의 70~75%는 회색경제에서 비롯됩니다. 이를테면 연료 암거래, 불법노동, 허가증 매매, 심지어 경찰과의 유착관계 등이 여기에 속하지요. 이번에 신설된 세제는 그들의 수익성을 침해합니다. 더 이상 새로운 배송 경로를 이용하는 식으로 적재량 단속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세’ 제도가 도입되면 배송 경로가 미리 정해져 이를 이탈하는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현재 시위 참가자들 중에는 굳이 이 시장을 규제할 필요가 없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이대로 방치하면, 결국 운전기사들을 연속 18시간 노동에 내몰고 말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현재 시위에 참여 중인 개인운송사업자들의 목표와도 다르지요.”
지프차 두 대가 미아스 초입에 설치된 표지판 옆을 지나갔다. 우랄산맥의 지맥에 자리한 미아스는 오늘날 쇠퇴한 도시처럼 보이지만, 과거 소비에트 연방 시대에는 ‘울라라즈’ 트럭 공장 덕에 눈부신 번영기를 구가했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은 일요일이었다. 사냥터도 폐쇄된 참이라 마트베예프와 동료 화물운송업자들은 계절 스포츠인 부크사바트를 한창 즐기는 중이었다. 부크사바트는 진창에서 빠져나오는 기술을 말한다. 정식도로를 벗어난 곳에 운 좋게도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인 진창이 보였다. 그들은 차량을 눈밭 속으로 돌진시켰다. 그리고 수 시간 동안 온갖 수단을 동원해 차량을 전진시키려고 허우적댔다. 전나무에 권양기를 매고 가속 페달을 살짝만 밟아도 쉽게 눈밭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들은 애써 배기량 높은 차량을 이용해 더 가벼운 차량을 진창에서 빼내려고 했다. 이 스포츠의 묘미는 더 나은 기술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 것이다. 올레그 수크호프가 보드카 잔 서빙을 맡았다. 과거사를 떠올리는 데 이만큼 좋은 일자리도 없다. 
“저는 여기서 300km 떨어진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노동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살기 위해선 다 허용되던 시절이었지요. 우리는 깡패나 다름없었습니다. 20세에 돈을 벌러 도시로 왔어요. 친구와 함께 ‘사유화 증서’(5)를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는 그것으로 투자해서 돈을 벌었어요. 그 때 저는 그것이 무슨 차이를 의미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친구는 큰 부자가 됐습니다. 첼랴빈스크에서 가장 큰 호텔을 주물럭거리는 시의원 나리가 됐지요.”
생전에 큰돈을 만져본 적도 없는, 40대의 이 영세사업자 세대는 1990년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자본을 축적하게 된다. 당시 러시아의 경제는 깡패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타타린체프는 그 시절 채무 회수 일에 종사했다. 당시 시장은 정식 집행관보다 건장한 깡패들이 더 많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깡패가 판치던 시절에는 사업에도 타협이란 게 가능했다. 수크호프가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1990년대 깡패들이 법처럼 군림하던 시절에는 일종의 정의란 것이 존재했습니다. 언제든 타협의 여지를 누릴 수 있었어요.” 
현 러시아 정권은 시위에 참여한 화물운송업자들에 대해 비교적 너그럽다. 물론 시위를 엄격히 처벌하도록 된 현행 법률(6)은 교통 차단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별도의 형사사건(박스기사 참조)을 제외하고는, 개인화물운송업자 가운데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최근 푸틴의 3선 도전에 반대한 시위자들이 받았던 가혹한 처벌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그들은 2012년 5월 6일 모스크바 볼로트나야 광장에서 열린, 합법적인 집회에 참가했다가 그만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30여 명의 시위자는 미 정부의 지원을 받은 정권전복 작전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대규모 폭동을 참가·조직·선동한 죄”로 기소됐다. 최대 5년에 이르는 실형을 언도받은 시위자 중 10여 명은 수년 간 가택연금이나 구금에 처했다가, 1993년 12월 헌법제정 20주년이 되던 날 특별 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정부의 탄압보다 무서운 내부 분열

2005년 사회급여 현물화에 반대한 연금생활자들이 주축이 된 과거 시위에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7) 러시아 정부는 정권에 충직한 사회계층이나 직업군이 일으킨 비모스크바 지역의 비정치적 사회요구를 담은 운동에 대해서는 상당히 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대규모 연례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은 화물운송기사들에 대해 꽤 너그러운 듯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얼마 전 만난 판필로바(러시아 대통령 직속 시민사회발전인권위원회 위원장)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들은 노동에 혹사당하는 열정적인 노동자들이에요.’ 저는 그분들의 처지를 공감합니다. 그분들을 회색 경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화물운송업자들은 어렵지 않게 정부의 양보를 얻어냈다. 11월 11일 첫 시위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정부는 곧바로 2월 29일까지 한시적으로 세금을 경감해줄 것을 제안했다.(8) 12월 4일 러시아 국가두마(하원)는 불량납부자에 대한 벌금을 자그마치 90분의 1이나 깎아주는 내용의 법안도 통과시켰다. 대규모 연례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은 플라톤세와 ‘중복’된다는 점을 인정하며, 운송사업자들에게 교통세를 면제해주겠다고 약속했다.(9) 화물운전기사들의 연대운동에는, 정부의 탄압보다 내부 분열이 더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저는 운동이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저항의 물결이라 해두죠. 사실 조직력이 너무도 형편없어서 이 운동은 지역마다 구호나 일정 등이 중구난방이었습니다.”
크라브첸코는 이렇게 분석했다. 조직력이 약한 이 저항 시위는 사회적 지지 기반을 찾아 헤매는 야권정치세력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그들은 화물기사들의 분노 속에서 국제무대로 화려하게 복귀하기 위해 경제를 희생시키는 러시아 정부를 비판할 구실을 찾아냈다. 야권세력들은 화물운송업자들이 그들의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확대하도록(결국 이 운동의 분열을) 종용했다. 한편 사업가 드미트리 포타펜코는 화물기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대변자를 자처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2월 8일 모스크바 경제포럼에서 포타펜코는 현 정부가 경제에 ‘치명상’을 입혔다고 선언했다. 요컨대 일부 서방 상품에 대한 ‘살인적’ 금수조치가, 결국 물가폭등과 나아가 ‘로텐버그세’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힘키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천막농성 중인 화물기사들은 평소 혐오했던 정치인들보다는, 이런 성공신화의 주인공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상 포타펜코는 최근 경영자(석유, 가스 분야 제외)의 권익을 대변하는 ‘성장당’에 가입한 인물이다. 경제일간 <베도모스티>는 이 신생정당에 대해, “푸틴의 측근 비아체슬라브 볼로딘으로부터 크렘믈린의 성수로 세례를 받은 시험관아기와도 같다”고 보도했다. 성장당의 목표는 2016년 9월 총선에서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표를 끌어 모으는 것, 그리고 ‘야블로코’(지난 총선에서 하원 입성에 필요한 득표율 5%에 한참 못 미치는 1.6%를 득표)나 ‘파르나스’(2015년 2월 28일 모스크바에서 암살된 야당 인사 보리스 넴초프의 소속당) 등 현 정권에 비판적인 자유주의 및 사민주의 야당을 정치 무대에서 소외시키는 것이다.(10)
4월 3일, 모스크바 천막 농성을 이끄는 바주틴의 동료들은 최근 모스크바에서 조직된 ‘반플라톤세’ 집회에는 동참을 거부했다. 반플라톤 집회는 참석자가 그리 많지 않은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현장에는 원외정당 세 곳 야블로코, 파르나스, 그리고 진보당(과거 민족주의 이력을 지닌, 2011~2012년 시위의 상징적 인물로 떠오른 반부패 블로그 운영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대표를 맡고 있다)의 깃발만 덩그러니 하늘에 펄럭이고 있었다. “푸틴은 퇴진하라!” 연단에 오른 시위자들이 큰 소리로 연호했다. 1백여 명의 시위 참가자 가운데 낯익은 마트베예프의 모습이 비쳤다. 세상에! 그토록 애국주의적인 화물기사가 어찌 틈만 나면 정권전복 시도로 비판받는 자유주의 여당의 깃발 아래 설 수 있단 말인가? 그날 집회에서 우리는 추진력을 상실한 화물운송업자들의 운동과 사회적 지지기반이 약화된 여당의 쇠퇴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가을 시작된 이 화물운송시위자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정치시스템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할 만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2014년 2월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낸 독립광장의 ‘혁명’은 언론매체에서 미 국무부의 모략으로 보도되면서, 결국 대다수 러시아 시민들에게 ‘반면교사’로 인식되고 말았다. 화물차 한 대를 소유한 30대의 개인운송업자 파벨 스몰니가 설명했다.
“초기에 두 차례 시위는 자생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때 사건(11월 19일 시위 때 파업에 불참한 한 화물기사가 운전 실수로 시위참가자들을 치어 1명이 죽고 3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터진 것이죠. 그 때 이후 우리는 도심에서 합법화된 집회를 조직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저는 매일 행정기관으로 출근해 집회요청서를 제출했어요. 일주일 동안 매달렸지요! 관청에서는 엄청난 해명문서를 요구했지만, 결국 우리는 집회허가를 얻어냈습니다. 이런 일은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을 한 번 보시라고요!”
러시아는 사회적 폭발을 겪게 될까? 크라브첸코가 딱 잘라 말했다. “전혀요. 러시아인들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도 잘만 견뎌냈답니다.” 종이언론과 인터넷 매체의 관심은 한 몸에 받았지만, TV 뉴스에는 일절 보도된 적이 없는 이 화물기사운동은 이내 추진력을 잃고 말았다. 결국 이 운동을 정치화하려던 기획은 디지털 시민운동의 약화와 맥을 같이 했다. 과연 최근의 저항자들은 힘을 키우기 위해 다른 변두리 야권 세력에 합세한 것일까? 아니면 정치화 자체에 반감을 품고 이 운동을 그만둔 것일까? 진실을 알 길은 요원하다.  



글·엘렌 리샤르 Hélène Richard
언론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학교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도로교통단속 관련 통계
(2) 카브카즈스키 우젤(코카서스 지역 온라인 매체), 2015년 12월 1일
(3) 유가 하락은 2016년 1월 중순까지 지속(배럴당 28달러)되다가, 4월말 44달러로 다시 올랐다.
(4) 공산당 기관과 연관된 과거 소비에트 노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른바 ‘대안’ 노조들의 집합이다.
(5) 1991년 말, 국가는 시민들에게 액면가액 1만 루블의 주식상환증서를 나눠주었다. 시민들은 이 증서를 액면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투자회사나 기업의 경영진에게 되팔았다.  
(6) 2014년 2월, 러시아 형법에 새로운 조항이 신설됐다. 이로써 불법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재범의 경우 5년의 징역형과 1백만 루블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게 됐다.
(7) Carine Clément, Denis Paillard, ‘러시아 사회에 대한 10가지 해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05년 11월.
(8) 1km당 3.73루블에서 1.53루블로 조정됐다. 이 감면 혜택은 2016년 10월까지 연장됐다.
(9) 엔진출력 별로 모든 차량 소유주에게 부과
(10) Vedomosti.ru, 2016년 3월 30일.


박스기사

오판인가? 정치적 재판인가? 


2016년 3월 14일 미아스. 니콜라이 마트베예프가 장병모집센터 앞에서 자신의 병사들(동료들을 빗댄 표현)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 전역에 1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화물기사노조 직업운전사지역간연맹(MPVP) 지부장인 그는 지역기자 1명이 포함된 총 5명과 합세했다. 이 초라한 병력은 노조가 대절한 버스에 올라탔다. 지난 해 말 MPVP는 인구 15만 규모의 도시에서 차량 50대 이상을 동원한 도로운행 방해시위를 두 차례 조직했다. 그러나 이날은 어쩐 일인지, 장병소집이 영 시원치 않았다. 바야흐로 동원해제의 시대인 것이다.
버스는 첼랴빈스크 법원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현재 MPVP 노조원 알렉산드르 자하로프의 항소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지난 1월, 자하로프는 1심에서 9년의 실형과 50만여 루블(약 6천5백 유로)의 벌금형을 언도받았다. 이 사건은 2015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가을 시위가 열리기도 한참 전이었다. 2015년 5월 28일 피고인은 데니스 자피로프라는 사람과 몸싸움이 붙었다. 술에 취한 자피로프가 자하로프의 트럭 운전석 위에 올라가 그의 딸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는 그 사건이 있고 5일 후 돌연 사망했다. 법원은 그가 자하로프와 싸우다 입은 상처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 결론지었다. 자하로프는 도시 밖 출입이 금지된 상태로 11월 25일 노조가 기획한 도로운행 방해 불법시위에 참여했다. 동료들은 공연히 법적시비에 휘말릴 것이 두려워, 그를 억지로 집으로 되돌려 보냈다. MPVP는 자하로프를 돕기 위해 변호사 고용과 자피로프 사망원인에 대한 재판독에 필요한 비용 등을 지원했다. 재판독 결과, 자피로프는 5일 전이 아닌, 6~12시간 전에 입은 상처의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다.
“아무도 제 말이나, 제 변호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증거 검토가 거부됐어요.”
영상회의실 화면에 비친 자하로프의 얼굴은 약 150km 떨어진 즐라타우스트 감옥의 쇠창살 뒤에 가로막혀 있었다. 피고인이 갑자기 의자를 뒤로 빼고 일어났다.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는지, 교정당국에서는 벽을 파란 꽃무늬로 도배해놓았다. 판사는 항소재판에서는 단 한 번도 변호인 측의 재판독 자료를 수용한 적이 없다며, 곧바로 문서를 기각하고 판결을 내렸다.
“본 항소법원은 2016년 1월 18일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자하로프 관련 미아스 재판소(챨랴빈스크)의 판결을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잠시 방청객 사이에서 1심 판결이 뒤집어지는 것은 아닌지 기대감이 일어났다. 그러나 판사는 몇 가지 수정해야 할 철자 오류만 지적하고는 그대로 1심 판결을 확정했다. 복도에서는 20여 명의 기동헌병대가 방청객이 흩어지는 모습을 뒤에서 감시했다. 법원 현관에 있던 한 여경이 피고인의 처가 쪽 자매에게 다가갔다. 여경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재판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런 여경에게 그녀는 말했다. “러시아에 정의는 없군요.” 여경은 나긋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네,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제발 집회를 조직하지 마시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 주세요. 부탁입니다.” 
러시아 판사는 무조건 검사 측 의견만 수용한다는 의심을 받곤 한다. 경찰도 사건해결률을 높이기 위해 기소목적의 수사를 벌이는 일이 많다. 경찰이 체포한 피의자 중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을 확률은 0.5%에 불과하다. 항소심에서도 무죄선고 비율은 1.5%이 고작이다. 반면, 시민 배심원 앞에서 재판을 받는 경우 피의자가 무죄를 선고받을 확률은 무려 20%에 이른다.
자하로프 사건은 그저 흔하디흔한 오심사건에 불과한 것일까? 그의 동료들은 이 사건이 전형적인 기소 목적의 예심으로 출발했다가, 나중에 정치적 성격의 재판으로 변질된 경우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법정에 선 다른 시민들과 달리 자하로프는 제대로 된 변호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에 비추어 볼 때 감형의 여지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원이 재판독을 기각하고, 그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린 것에 대해 동료들은 이 사건을 화물운전기사 노조를 위협하는 전범으로 삼으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방청석 문을 나선 노조는 두 번의 패배를 당한 셈이다. 법적으로도 지고, 노조의 세력도 와해됐다.  


글·엘렌 리샤르 Hélène Richard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