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위한 TGV 탓에 사라지는 작은 역들

2016-05-30     줄리앙 미치 & 발레리 솔라노 l 언론인
 
독일 파르킴 기차역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 곳곳에 낙서가 보인다. 열차시간표에는 환승시간만 적혀있다. 2만 명이 사는 이곳 북부도시의 기차역은 매각될 운명에 놓였다. 붉은 벽돌로 세워진 영국 북부의 애싱턴 기차역에는 나무판자로 막아놓은 매표소 위로 “선로에 가까이 가지 마시오”라고 적힌 경고판이 비스듬히 걸려있다. 에든버러행 고속열차가 매시간 세 차례 이곳을 지나가지만, 애싱턴 역에 서지는 않는다. 길이 막히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뉴캐슬까지 시외버스로는 55분, 차로는 30분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 대해, 2만8천 명이 사는 이 마을의 한 주민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기차로 뉴캐슬까지 30분이면 갔었는데, 이젠 열차가 없어요. 고속도로로 가면 마을 입구 쪽부터 막혀서 시간 내에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어서, 시외버스도 고속도로를 탈 수밖에 없어요.”
 
‘철도 위의 비행기’ 때문에 
기차역이 사라진다
 
단거리 구간 기차역을 폐쇄하는 움직임은 25년 전부터 유럽 차원에서 진행된 철도 민영화의 명백한 결과다. 여기에도 저항이 뒤따랐다. 2014년 5월 3일, 핀란드의 호키부오리에서는 주민들이 기차역 폐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주민 리사 풀리아이넨은 분개하며 말했다. “코우볼라와 쿠오피오 간 거리를 3분 단축시켜보겠다고 125년간 건재했던 기차역을 없애겠다는 발상이 기가 막힙니다! VR(핀란드 철도회사)은 1만2천 명이 넘는 주민들이 안중에도 없나 봐요. 이게 다 ‘철도 위의 비행기’ 때문입니다!”
 
철도 민영화는 이원적 변화를 불러왔다. ‘철도 위의 비행기’라 불리는, 부유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초고속열차(TGV)에 모든 관심이 쏠린 것이다. 반면, 지역교통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공공서비스는 방치됐다.(1) EU의 권고에 따라 VR도 2015년 9월에 총 200개 역 중 28개를 폐쇄하고, 지선철도의 승객수송 서비스를 중단했다. 지난 3월, 핀란드 정부는 철도산업을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VR이 기관사직 200개 감축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는 24시간 철도파업으로 이어졌다. 파업을 단행하는 동안 노조는 “경쟁체제 도입이 철도서비스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열차 및 역내 정보이용이나 수하물 수송 서비스, 그리고 환승역 안내 서비스도 중단됐다. 모든 것을 여행객들 스스로 해결해야 하며, 표도 인터넷으로 직접 사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상황이 목격된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중앙역은 수많은 철도회사가 경쟁한다는 점 때문에 승객들이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스톡홀름에서 남부도시 말뫼로 가려면 승객들은 36개 사 중 누가 얼마에 어떤 열차편을 제공하는지 일일이 찾아야 한다. 표를 미리 사놓거나 특정 시간대의 표를 사면 더 저렴하게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예매한 열차를 한 번 놓치면 다음 편 열차에서는 그 표를 쓸 수 없다. 또한 매표소 직원들은 자사가 운영하는 열차편만 취급하므로, 승객들은 표를 사려면 시간과 공을 들여 인터넷을 뒤져야 한다. 
 
유럽이사회가 1991년 이후 도입한 지침들, 특히 2001년에 채택한 ‘철도 패키지’의 목표는 분명하다. 유럽 철도교통의 단순화, 경쟁의 활성화, 그리고 요금 인하다. 그밖에 투명한 요금책정, 통합 매표소 설치, 국가 간 상호운영(전력공급, 철도궤간, 교통신호, 안전기준 등) 보장, TGV 증편 등이 있다. 문서상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제약이 뒤따른다. 인프라(철도)와 운영권(철도교통 서비스)을 분리해 국영철도회사를 해체하고, 기능(판매, 청소, 유지보수, 운행, 관리)을 세분화해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제1차 패키지’는 화물운송에 관한 것이다. 화물운송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완화로 인해, 철도운송사들이 자기들끼리는 물론 도로운송사들과도 경쟁하게 됐다. 경쟁 속에서, 철도운송사들은 프랑스 SNCF와 그의 자회사 GEODIS의 뒤를 따라 도로운송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유럽 화물수송량은 비교적 안정적 수준을 유지했으나, 철도운송은 도로운송 대비 시장 점유율이 오히려 감소했다. 반면 도로운송은 철도가 닿지 않는 지점까지 수송이 가능한데다, 유럽의 도로수송 시장 개방으로 운임도 낮아졌다. 하지만 공기 오염이 발생했다. 도로운송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노동환경 악화와 사고를 부르는 민영화
 
민영화의 폐해는 승객, 환경,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로 이어진다. 남북교통의 작은 요충지 역할을 하는 스위스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크로스레일AG는 스위스 철도산업 개방으로 스위스 철도망을 이용하게 됐음에도, 기관사 급여는 이탈리아 법에 따라 매월 3,600스위스프랑(한화로 약 433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스위스 국영철도회사(CFF)보다 2,000스위스프랑(한화로 약 240만원) 낮은 수준이다. 스위스철도노조(SEV)는 “크로스레일AG의 급여수준이 철도법 위반”이라고 주장했고, 2016년에 스위스연방 행정법원은 SEV의 손을 들어주었다. 스위스 철도법에 따르면, 스위스 철도망을 이용하려면 관례적인 계약조건 적용을 전제로 해야 한다. 
 
2014년, 스웨덴 남부지역에 철도운영권을 소유한 프랑스 철도회사 베올리아는 계약형태 및 임금문제로 스웨덴에서 2주 넘게 파업을 겪어야 했다. 철도 종사자 250명에 대한 풀타임 노동계약을 해지하고, 임시노동계약 및 파트타임계약으로 대체하려 했기 때문이다. 미카엘 나이버그 기자는 한때 유럽에서 가장 믿음직하고 평등하다고 소문난 국영 철도시스템의 붕괴를 ‘대약탈’이라고 표현했다.(2) 한 조사에 의하면, 스웨덴 국민의 70%가 철도 재국유화에 찬성하고 있다.(3) 
 
2001년 철도 민영화 이후 경쟁체제가 빚은 결과는 승객들에겐 예정된 것이었다. 비싸고, 복잡하고, 정시 운행률이 떨어지는 기차를 타게 된 것이다. 열차편이 증가하면서 정체현상이 심해지고 운행차질이 반복됐다. 철도망의 70%가 단선궤도(상·하행 열차를 모두 운행하는 궤도)인 관계로, 그토록 찬양했던 TGV도 늘릴 수 없었다. 열차가 몰리는 정차역에서는 화물열차나 단구간 운행열차 때문에 TGV 운행이 지연됐다. 또한 운행이 지체될 때마다 철도교통망 전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현 철도망에 끼워 맞추기보다는 차라리 새로운 선로를 만들자는 방안이 제시됐다. 그리고 현재 스톡홀름, 예테보리, 말뫼를 잇는 노선계획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철도망 개선에 철도회사 간 경쟁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철도‘운영’회사들은 채산성이 낮은 인프라 투자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물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탓에 유럽 곳곳에서 철도사고가 발생했다. 2000년 해트필드 역 열차탈선 사고(4명 사망, 35명 부상)와 2002년 포터스바 역 사고(7명 사망, 76명 부상) 이후 철도사고 발생률이 높아졌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철도 민영화의 선구자인 영국에서 발생했다. 해트필드 사고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영국의 철도시설은 만성적 투자 부족으로 전반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다. 그 와중에 철도관리업체 레일트랙은 이윤을 챙겼다. 낙후된 철로를 교체해야 했던 레일트랙은 정부에 보조금을 요청했고, 받은 보조금의 일부를 주주 배당금으로 사용한 것이다.(4)
 
프랑스의 경우, 생산비를 감축하고 정비작업을 하청업체에 맡기면서부터 철도시설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2013년 7월 12일에 브레티니-쉬르-오르즈 역에서 발생한 탈선 사고의 원인은 두 철로를 잇는 금속부품의 결함이었다. 이 사고로 7명이 목숨을 잃었고 70명이 부상당했다. 이 같은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철도관리가 엉망인 탓도 크다. 하지만 철도 종사자들, 특히 기관사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3년 3월 8일, 스위스 펜탈라즈 조차장에서는 열차 한 대가 너무 빨리 달린 나머지 선로 끝에 달린 완충장치가 떨어져버렸다. 결국 그 열차는 강으로 추락했다. 한 조차원은 “기관사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아예 기계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기관실에 오르면서 철도정비 매뉴얼을 들춰본 것이 전부일 테니 말이다!”라고 증언했다. 사고를 낸 기관사는 철도기관사를 고용하는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비용절감 위주의 운영이 불러온 문제들
 
비용절감 위주의 운영방식은 국영 대기업의 노동조건을 악화시켰을 뿐 아니라 운전자는 반드시 온전한 상태에서 운전해야 한다는 직업윤리를 무시한 처사였다. 새로운 운영방침이 노동자에게 생산성 향상을 압박한 결과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고 결국 안전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스위스 CFF에서 32년간 유지보수 담당자로 일한 장 T. 는 말한다.
 
“나는 항상 우수한 평가를 받았었다. 그런데 상사는 내가 너무 일을 잘한다고, 매사 너무 분명하다고 나무랐다.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내 할 일이나 하라는 소리였다. 나는 그런 식으로는 일 못한다. 브레이크 잡는 일을 맡았다 해도, 전선이 닳은 것을 봤다면 당연히 교체해야 한다. 내 일은 안전관리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지만, 그들은 정작 안전관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안전관리란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프랑스 SNCF 정비작업장에서는 임원들의 입에서도 비슷한 증언이 나온다.(5) 이 작업장의 전 인사팀장은 2000년대부터 점차 이윤을 추구하는 분위기로 바뀐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전에는 일을 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우리가 제공한 서비스에 대해서 설명하면 됐었다. 비용 측면을 설명한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했지, 비용이 높은 것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예전에는 안전을 우선시했는데, 이제는 자동적으로 시간당 노동임금을 민간기업의 임금수준과 비교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부터 심야열차 재정지원을 대부분 끊을 계획이다. 또한 EU가 정한 기한에 맞춰 2020년까지 철도 여객수송 시장을 개방할 예정이다. EU는 2020년까지 TGV가 다니는 철도를 중심으로 국유철도를 개방하고, 2024년경까지 소위 ‘공공서비스’라 불리는 지선철도와 앵테르시테(TGV가 다니지 않는 중거리 구간)를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전망을 보면, 지난 몇 주간 SNCF가 겪은 파업의 강도를 알 수 있다. SNCF 노조는 민간 철도회사들과 SNCF로 구성된 대중교통·철도연합(UTP)과의 협상에서 전체 철도 노동자의 근무조건을 관장하는 단체협약을 압박하려 했었다. 
 
2014년 1월에 착수된 ‘제4차 철도 패키지’는 “유럽 통합 철도망 창설의 최대난관을 제거한다”(6)는 구실을 앞세워, 민영화 흐름에 뒤쳐진 국가들이 규제완화를 시행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더욱 경쟁력 있는 철도산업 건설’을 여전히 목표로 내세우지만, 철도 민영화가 확산되면서 발생한 부정적 결과들은 더는 드러내지 않는다. 해트필드 사고가 발생하기 7년 전, 1993년 철도법 개정을 통해 이미 민영화를 착수했던 영국정부는 이 사고 이후 또다시 철도사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객수송’ 분야의 규제를 완화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현재 이 분야에 30여 개의 회사가 있으며, 하나둘씩 철도 운영권을 갖게 됐다. 철도 민영화가 실패작이라는 것은 승차권 요금이 끝없이 오르는 것(2012년 +6%, 2013년 +4.2%, 2014년 +2.8%, 2015년 +2.5%)과 철도인프라 유지보수에 공적자금이 정기적으로 투입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7)
 
또 하나의 논란거리가 있다. 이는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와도 관련이 있다. 영국 철도 운영권을 소유한 회사들 대부분이 영국계가 아닌, 유럽대륙 출신(독일 도이체반의 자회사 아리바, 프랑스 케올리스와 RATP, 네덜란드 아벨리오)이라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철도 민영화가 영국기업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한 것이다. 불필요하거나 결함이 있다고 판정된 기차역과 노선을 부활시키려는 시민운동이 몇 년 전부터 일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8)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철도 종사자, 승객, 지방의원이 대중교통의 가치 수호를 위해 투쟁에 임하고 있다.  
 
 
글·줄리앙 미치 & 발레리 솔라노 Julian Mischi & Valérie Solano 
줄리앙 미치는 사회학자이며 <Le Bourg et l’Atelier. Sociologie du combat syndical(마을과 작업장. 노조 투쟁의 사회학)>(Agone, 마르세이유, 2016년)의 저자다. 발레리 솔라노는 스위스 철도노조(SEV) 사무처장이다.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뱅상 두마이루 Vincent Doumayrou, ‘Des transports publics en chantie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2년 9월
(2) 미카엘 나이버그 Mikael Nyberg, ‘Det Stora Tågrånet’, <Karneval>, 스톡홀름, 2011년
(3) 제니 비요크만 & 비욘 피예스타드 Jenny Björkman & Björn Fjæstad, ‘Svenskarna vill ha statlig järnväg och marknadshyror’, <Dagens Nyheter>, 스톡홀름, 2014년 6월 7일
(4) 크리스찬 볼마르 Christian Wolmar, ‘Forget Byers: The scandal was in the original sell-off’, <The Guardian>, 런던, 2005년 7월 8일
(5) 마르탱 티보 Martin Thibault, ‘Métro, boulot, chrono’,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4년 11월
(6) ‘Le quatrième paquet ferroviaire : améliorer les chemins de fer européens’, <유럽이사회>, 2015년 12월 22일, www.consilium.europa.eu
(7) 피터 핸디 교통부 정부차관의 철도망 투자사업 재정비 보고서, 2015년 11월, www.networkrail.co.uk/Hendy-review/
(8) www.disused-stations.org.uk/sites.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