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가짜 봄 반부패 운동을 가장한 쿠데타?
2016-05-30 로랑 델쿠르
상파울루에는 50만 명,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이보다 조금 적은 수가, 브라질리아에는 10만 명이 모였다. 3월 13일, 브라질의 10여개 도시에서 총 30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이는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인 1980년대 초중반,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벌어진 ‘Direitas Já!(직선제를 당장 실시하라!)’ 시위와 맞먹는 규모다. 시민들이 형성한 엄청난 인파에 군인들은 부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브라질 국가대표 축구팀의 대표색인 노란색 티셔츠를 갖춰 입은 시위 참가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보다 많은 권리나, 민주적 발전이나, 사회적 진보가 아니었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는 “지우마는 물러나라!”, “지금 당장 대통령직을 내놓아라!”, “룰라를 감옥으로!” 등이었다. 즉, 그들은 예산관련 법규를 위반하는 ‘책임 범죄’를 저지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를 둘러싼 부패 수사를 일컫는 ‘Lava Jato(세차용 고압 분사기) 작전’에 연루 혐의가 있는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있었다.(1) 브라질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가 수십억 달러를 빼돌려 기업, 정당, 정치인에게 뇌물로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규모 시위 며칠 전인 3월 4일, 룰라 전 대통령의 자택에 중무장을 한 경찰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이 장면은 이후 TV를 통해 브라질 전역에 반복적으로 중계됐다. 룰라 전 대통령은 이날 새벽 자택에서 체포돼 콩고냐스 국제공항 경찰서로 이송된 후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스캔들 수사를 이끌고 있는 세르지우 모루 판사에게 조사를 받았다. 룰라 전 대통령의 긴급 체포를 지휘한 모루 판사에 따르면, 현재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들 중 하나인 오데브레히트로부터 룰라 전 대통령이 돈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틀 후인 3월 6일에는, 상파울루 주 검찰청이 룰라 전 대통령을 재산 은닉과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정식 기소하고 ‘미결구금’을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룰라 전 대통령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그의 지지자들은 법조계가 이번 ‘미디어 린치’를 대대적으로 계획했다고 주장한다. 몇 개월 전부터 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캠페인을 추진 중인 이들은 탄핵에 유리한 증거가 추가됐다며 기뻐하고 있지만, 판사들 사이에서는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처우가 적법한지, 그리고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기소 및 탄핵’ 절차가 유효한지를 놓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호세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정적들이 계획한 ‘제도적 쿠데타’라며 비난하고 있다.
룰라를 표적 삼은 언론들의 ‘마녀사냥’
전 세계 언론들은 한 목소리로 부정부패에 대한 브라질 국민들의 ‘합당한 분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르몽드>는 2016년 3월 30일자 사설에서 “이것은 쿠데타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고, 미국의 척 토드 기자는 2016년 3월 17일, NBC뉴스를 통해 ‘민중들의’ 저항이라며 지지의 뜻을 나타냈다. <엘 파이스>는 2016년 3월 19일자 신문에서 “영웅적인 판사의 용감한 행위”라는 문구로 모루 판사를 치켜세웠다. 한편 스노든 사건을 단독 보도했던 미국의 글렌 그린왈드 기자는, 전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브라질 언론의 “구석기적이고 반민주적이고 과두적인 담론을 베껴내는 데만 만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최소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극단적인 단순화이며, 일개 좌파 정당 1개를 무너뜨리려는 선전성 캠페인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2) 이와 같은 맥락에서, 독일의 일간지 <슈피겔>은 “차가운 쿠데타”라는 문구를 인용했다. “군사독재정권 이후 처음으로 브라질은 지난 30년간 쌓아올린 모든 진보들을 일시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심각한 제도적 위기에 직면했다. 야당과 사법기관, 그리고 세계 최대의 민간 방송국 <TV Globo>가 한 통속이 돼 룰라 전 대통령을 표적으로 삼고, 마녀사냥을 시작했다.”(3)
룰라 전 대통령의 마녀사냥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언론사는 비단 <TV Globo> 뿐이 아니다. 3월 13일 탄핵 시위가 일어나기 몇 시간 전, 상파울루의 신문 <에스타다오(Estadão)>는 “역대 최악의 정부를 맞이해 소양을 갖춘 시민이라면 누구나 각자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라며 독설이 가득한 사설을 실었다. 사건 전날 새벽에는 <트랜스아메리카(Transámerica)> 라디오가 신랄한 어조로 현 정부를 비판하면서, 이번 시위를 이끈 핵심 세력들 중 하나인 ‘Vem Pra Rua(거리로 나오라)’ 단체의 반정부 슬로건을 24시간 내보냈다. 잡지 <베자(Veja)>는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부패 시스템을 주도한 룰라’, ‘이제는 그가 감옥에 가야할 때’ 등 자극적인 문구들과 왜곡되고 과장된 이미지로 1면을 채우면서, 현 대통령과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4)
<폴라 지 상파울루(Folha de São Paulo)>는 보다 덜 공격적인 어조를 사용했지만, 탄핵 절차의 적법성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아 바르보사와 헬레나 마르탱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여론은 섬세하고 미묘한 과정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 증오를 투영할 필요는 없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담론을 사용하고 다양한 의견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 브라질 언론은 부패가 특정 그룹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선전하고, 우리가 최악의 정부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계속해서 강화시킨다.”(5)
브라질의 양대 뉴스 채널인 <TV Globo>의 프로그램 조르나우 나시오나우(Jornal Nacional)와 STB의 텔레조르나우(Telejornal)는 이 방면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였다.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긴급체포된 사건은 편향적인 보도를 통해 무제한적으로 재생산됐다.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여론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축소보도하면서 기소 내용은 확대보도했다. 호세프 대통령이 룰라 전 대통령에게 현 정부에 합류해줄 것을 요청한 것과 관련해서는, 이들의 사적인 전화통화 감청 내용을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룰라 전 대통령의 부패 혐의를 입증해 보였다. 일부 법학자들이 “이러한 감청은 불법이며, 사법권 남용과 반역 행위로까지 볼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기자들은 비판에 귀를 닫고, 무죄추정의 원칙도 무시해버렸다.
친정부 시위도 상당수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이에 대해서는 조소로 일관했다. 또는 노동자당(PT), 노조, 사회 운동에 소속된 ‘활동가들의 시위’로만 치부했다. 다만 부패한 정부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브라질 서민의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전달하려 노력했다.
부유층 시위대,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그러나 2016년 3월 14일 <폴라 지 상파울루>가 공개한 조사 결과는 반정부 시위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반정부 시위 참여자들의 절대 다수는 교육수준이 높은 백인이었고, 소득도 평균 이상으로, 상위층인 경우도 있었다. 한 마디로, 브라질 사회의 부유층인 것이다.
소셜네트워크 상에서도 이번 시위의 성격을 보여주는 몇 가지 클리셰들이 관찰된다. 예를 들어, 한 부부가 유모차를 끄는 유모를 대동하고 행진하는 모습, 샴페인 잔을 들고 건배를 하는 시위대의 모습,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플래카드를 자랑스럽게 흔드는 젊은 참가자의 모습 등이다. “망할 지우마! 이제 우리 가족은 가정부를 쓸 수 없게 됐어요. 사회보장 분담금을 낼 수 있는 가정부가 없기 때문이에요.” 2013년 호세프 정부는 브라질 내 600만 명에 달하는 가정부들에게 사회보장 분담금 납입을 의무화한 바 있다.
반부패와 반정부라는 시위의 모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 ‘잘사는 시민들’이 내건 슬로건들은 진보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세금관련 불만, 사회정책에 대한 거부감, ‘바보들을 양산’하고 마르크시즘을 찬양하는 공교육을 향한 비난, 가난한 자들과 노동자당에게 끌려 다니는 현명하지 못한 유권자들에 대한 공격, 인종차별적인 풍자화, 심지어 군부 개입을 촉구하기까지 한다.
반정부 시위대의 상징인 플라스틱 대형 오리는 TV를 통해 전 세계로 방영되고 있다. 그러나 상파울루산업연합(FIESP)이 주도하는 브라질 반정부 시위대의 이 마스코트는, 시민운동과 민주주의 부활보다는 ‘가족과 신과 자유를 위한 행진’을 내걸었던 1964년 쿠데타를 연상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 시위는 공산주의 세력과 결탁했다는 혐의를 받던 조앙 굴라르 대통령의 진보주의적 개혁에 반대하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반부패 투쟁 뒤에 감추어진 이번 시위의 진짜 목적은 바로 노동자당을 무너뜨리고 ‘룰라이즘’을 통해 획득한 (몇 안 되는) 성과들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자유브라질운동(MBL)의 중심인물이자 반-호세프 운동을 이끄는 킴 카타귀리도 이러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노동자당이 피를 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망하게 해야 합니다.”(6)
대형 언론사들의 공격은 이미 익숙한 일이지만, 사법기관이 무대 위에 등장한 것은 새로운 일임에 분명하다. 룰라 전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에 얼마나 깊이 연루됐는지와는 무관하게, 최근 법원이 보여주고 있는 공격적인 행보는 판사들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과 공적인 부분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품게 한다. 룰라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발표한지 며칠이 채 안 돼 그에 대한 소송이 시작된 것이, 과연 우연에 불과할까? 언론계와 탄핵 시위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모루 판사의 신속하고도 자의적인 소송처리 방식 역시 의문점을 낳고 있다. 자료의 선별적 언론 공개, 예심절차상 비밀유지 의무의 파기, 전화감청 내용의 폭로, 증인 매수, 룰라 전 대통령의 극적인 긴급 체포 등도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다.
브라질사회민주당(PSDB, 우파)의 측근으로 2014년 선거 패배에 대해 불만이 많던 파라나주 연방법원 소속의 모루 판사는, 1990년대에 이탈리아 판사들의 주도 하에 전개됐던 부패추방운동인 ‘깨끗한 손(Mani pulite)’을 표방하면서, 브라질 좌파의 아이콘인 룰라 전 대통령을 몰락시키려는 야심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2004년 한 기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중의 관심도를 높이고 정치적 리더들을 불안에 떨게 함으로써, 여론이 소송을 지지하고 기소된 인물이 판사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명예에 손상을 입을 것도 각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다른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적법하고 정의로운 목적들에 언제나 이끌리기 때문입니다.”(7)
야당의 입장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루 판사의 정계 등장 자체가 특별히 이득이 될 것은 없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룰라 전 대통령의 축출은 뜻밖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호세프 현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가 다른 주요 야당들에게 희망이 되는 상황에서, 룰라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는 이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당의 대리인은 “시위대의 목소리가 모든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서민 지역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지우마가 물러난다고 칩시다. 그 다음은요? 누가 대통령이 될 건가요? 그는 희생양일 뿐이에요. 브라질에서는 누구나 도둑질을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룰라도 그랬겠죠. 도둑질을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요? 그나마 룰라 정부 덕분에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 많이 나아졌는걸요.”(8)
조사가 진행되면서 매일 새로운 내용이 추가로 드러나고, 그 여파는 정계 전체로 퍼지고 있다. 그린왈드는 지적한다.
“이번 조사를 통해 우리는 노동자당을 포함한 브라질 정당들 사이에서 부정부패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브라질의 금권정치, 언론, 중산층과 상류층은 민주적인 방식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즉 노동자당 제거를 위해 부정부패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정부 반부패를 표방하는 도덕적인 사회 운동 뒤에 감추어진 다른 문제들도 있다. 대선을 향한 정치적 야망, 현재 누리고 있는 특권을 유지하고, 사회적 성과를 매장시키고, 최근 발견된 심해유전 관리의 민영화를 주장하는 소수 기득권층의 의지, 그리고 Lava Jato 작전에 발목을 잡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등이다. 이와 관련해 변호사이자 정치인인 시로 고메스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브라질사회민주당(PSDB)-브라질민주운동당(PMDB)(9) 연정은 현재 Lava Jato 작전을 종결시킬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대중들은 얼마 전 로드리고 자누트 검찰총장이 찾아낸 스위스 비밀계좌 1천여 개에 야당의 모든 정당들이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당 지도자들은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지우마 탄핵 절차의 가속화를 논의하고, 점점 더 자신들을 압박해오는 Lava Jato 작전을 끝낼 방법만 찾고 있습니다.”
현 대통령이 물러날 경우 차기 대통령직을 맡을 인물로 거론되는 에두아르도 쿠냐 하원의장과 미쉘 테메르 브라질 부통령 역시 페트로바스 스캔들에 휘말려있는 상태다. 이들을 비롯해 Lava Jato 작전을 통해 부패 및 다른 범죄에 연루돼 있는 300여 명의 의원들(부정부패 소송에 찬성했던 탄핵위원회의 위원들 38명 가운데 36명 포함)에 대해, 브라질 언론은 침묵과 관용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오늘날 브라질을 관통하는 위기의 가장 큰 책임은 분명 노동자당에게 있다. 기존의 정치적 관행을 바로잡지 않은 탓에, 스스로가 쳐놓은 덫에 걸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글·로랑 델쿠르 Laurent Delcourt
트리컨티넨털 센터(CETRI)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브라질 정치사회를 논평하는 글을 주로 쓰고 있다.
글·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호세프 정부는 ‘분식회계’의 메커니즘을 이용했는데, 공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아 재정적자를 메꾸면서 회계 장부를 조작했다. 그러나 많은 판사들은 이 혐의만으로 탄핵 절차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2) Andrew Fishman, Glenn Greenwald & David Miranda, <Brazil is engulfed by ruling class corruption – and a dangerous subversion of democracy>, 디인터셉트, 2016년 3월 18일, www.theintercept.com
(3) Jens Glüsing, <Ein kalter Putsch>, 슈피겔, 함부르크, 2016년 3월 19일
(4) 카를라 루치아나 실바, ‘베자’, 브라질 신자유주의의 선봉,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12년 12월호
(5) Bia Barbosa & Helena Martins, <Análise: O papel da mídia nas manifestações do 13 de março> Folha de Dourados, 2016년 3월 15일
(6) Claudia Autunes, <Tea Party à brasileira. Um debate com a nova direita>, Piauí, 상파울루, 2015년 4월
(7) Venício A. de Lima, <A hipocrisia da grande mídia>, Carta Maior, 2016년 3월 22일, www.cartamaior.com.br
(8) Eduardo Guimarães, <Protestos de ricos contra petistas deixam pobres desconfiados>, Brasil 247, 2016년 3월 15일, www.brasil247.com
(9)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중도우파